당신은 ‘사회복지사’라고 하면 어떤 모습을 떠올리나요? 혹시, 천사처럼 착하고 물질에 대한 욕심이 없으며 아무리 궂은 일도 씩씩하게 해내는 그런 사람들이 사회복지사인가요? 당신이 갖고 있는 사회복지사에 대한 생각들은 일견 옳고 또 일견 그릅니다. 그것은 단지 이미지일 뿐,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개개인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질문- ‘왜’라는 물음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회 구성원을 돕는 일,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회복지사. 이번 달 드림플래시가 추천하는 ‘멋진 직업인’은 강서자활후견센터에서 일하고 계신 한복남 사회복지사님입니다. 직업현장에서 작지만 큰 변화를 이뤄가고 있는 한복남님의 이야기를 통해 ‘멋진 직업인’으로서의 왕성한 활동과 직업철학, 그리고 사회복지사로서의 일과를 엿보세요.
 
반갑습니다! 먼저 지금 하고 계신 일에 대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네, 반가워요. 강서자활후견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한복남입니다.
제가 지금 담당하고 있는 것은 가정 환경이 어려운 청소년 가운데 진로를 찾지 못한 친구들이 자립을 하도록 돕는 일이에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한 부모 가정, 해체 가정 등에서 자라난 친구들은 교육이나 문화 혜택을 누리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제가 주목하고 있는 점은 ‘빈곤의 대물림’입니다. 어렸을 때 많은 혜택을 받지 못한 친구들이 결국 학교 생활 중에 학습 부진 등의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그러한 차이들이 점점 더 커져만 가더라는 거죠. 이제는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개인의 힘으로 끊기가 힘든 상황에 온 것 같아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바로 그 고리를 끊기 위한 작은 노력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사로 발을 내딛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 제가 공부했던 것은 ‘유아교육’이었어요. 개인적으로 가정 형편이 많이 어려웠던 터라 인문계 고등학교가 아닌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늦게 대학엘 갔죠. 사회복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때였어요. 그러다 제가 아는 교회 전도사님께서 사회복지를 하면 저와 같은 청소년 시절을 보내 온 친구들을 도울 수 있다고 하셔서 이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저희 집이 생활보호대상 가정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청소년기에 방황도 많이 했고, 남들은 수월케 가는 길을 저는 어렵게 어렵게 돌아 오기도 했었고… 그렇다 보니 그런 환경에 있는 청소년들의 시행착오나 짐을 덜어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 시절 저에게 멘토나 길라잡이가 한 사람만 있었더라도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결심을 굳게 하고 24살에 다시 수능 시험을 치뤘어요.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죠.
청소년들과의 인연은 구체적으로 언제 맺어졌나요?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가양4 복지관의 가족복지과에서 일을 했어요. 자연스럽게 청소년들을많이 만나게 되었는데 “너는 꿈이 뭐야?”라고 물어보고선 놀랬어요. 청소년기엔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꿈’이 있게 마련인데 그 친구들의 꿈이 두 가지로 나눠지는 양상을 보이더군요. 하나는 아예 꿈 자체가 없는 경우였구요, 또 하나는 어린 나이에 이미 꿈이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의 모습으로 굳어져버린 경우였어요. 공장에 취업해서 한 달에 80만원이라도 벌고 싶다는 이야기를 중학생의 입으로 들었을 때 느꼈던 막막함이란… 꿈이라는 것은 무슨 일을 하느냐, 직업이 무엇이냐가 아니잖아요. 자신이 이루고 싶은 삶의 모습을 하나의 비전으로 그려내는 대신 그 친구들이 꿈을 ‘직업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이 친구들도 내 어린 시절과 다를 바 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구나,하구요.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대학원 재학 중에 ‘청소년’쪽으로 저의 구체적인 진로를 잡았죠.
 
졸업 후 사회복지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요. 어떻게 '취업'하셨는지요?
입사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어요. 대학원까지 공부를 마치는 동안 실습이나 자원봉사를 많이 했지요. 세브란스에서 의료사회 실습도 했고, 가정폭력 가해자 치료 프로그램에 참가하기도 했어요. ‘시설’에도 있어 보았고 일반 복지관에서도 일했습니다. 직접 부딪혀 보니 정확히 알 수 있었어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이런 것이구나, 이 분야는 내 관심사와 잘 맞지 않는구나-하구요. 그런 과정을 통해 제가 하고 싶은 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명확하게 파악한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생각해요. 입사도 자연스럽게 이뤄졌습니다. 대학원에 다닐 때 제 프로필을 준비해서 복지 관련 사이트에 올려놨었는데 그걸 보고 기관에서 먼저 연락을 주셨거든요.
일하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아! 바로 얼마 전에 가장 기뻤던 일이 있었어요. 성취감을 느끼는 크고 작은 순간이 많지만최근에 정말 행복한 일이 있었거든요. 우리 아이들 자랑 좀 할게요, 들어보세요. (웃음) 제가 이 친구들과 처음 만난 건 3년 전이에요. 이 친구들이 우리가 서로 한 약속이나 규칙을 잘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죠. 저녁마다 자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주2회 또는 주3회로 운영이 돼요. 무단결석이 3번 이상이면 더 이상 참가할 수가 없도록 규칙을 엄격하게 정해 놓았지요. 이 프로그램이 처음 시작된 게 2001년 8월입니다. 그 때 중3, 고1이었던 친구들이 이제 성인 사회구성원으로 자리를 잡았어요. 3년 동안 꾸준히 노력한 결과이지요. 그 친구들과 다 함께 캠프에 갔는데 이 친구들이 스스로 후배들을 위한 ‘서포터즈’가 되겠다고 하더군요. 취업한 친구들은 후원금을 내겠다고 했고, 대학생이 된 친구들은 대학 탐방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스스로 ‘재환원’을 하겠다고 얘기한 거지요. 그 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요. 저는 자발적인 재환원이 불가능한 일일 줄 알았거든요. 그 날 청소년 자립과 재활의 청사진을 보았습니다. 그 날만큼 뿌듯했던 적이 없어요.
힘들었던 일들에 대해서도 말씀 듣고 싶어요.
좌절은 방금 얘기한 것과 반대로 일이 돌아갈 때 느끼게 되요.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잘못된 길로 갈 때,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하거나 사회 문제를 일으킬 때… 아이들이 폭력 조직에 가입 한다거나 교도소에 가는 모습을 볼 때 큰 좌절감을 느낍니다. 내가 정성을 다하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닐까, 나는 이 일을 할 능력이 안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지요. 일상적인 업무 과정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사실 많습니다. 사회복지사들에게 부여되는 행정업무가 굉장히 많아요. 서류와 관련된 일이죠. 아이들과 같이 보내고 싶은 시간이 더 많은데 행정 업무를 보느라 그러질 못하니 회의를 느낄 때가 있어요. 내가 이거 하려고 사회복지를 하나-하구요. 그러나 무엇보다 힘들고 괴로운 순간은 나 스스로 내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할 때 입니다. 내가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고 있는 게 맞나,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게 가식은 아닐까, 더 해줄 수 있는데도 못 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고민이 불거져 나올 때지요.
 
하루일과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복지관에 출근을 해서 우리 홈페이지 들어가요. 상담 사이트를 열어보고 메일을 확인하죠. 오늘 같은 경우는 전화 업무가 많았어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자원을 연결하고 지원 필요하면 도와 달라고 연락도 하고. 점심 식사 후에는 주로 행정 업무를 봅니다. 오후 5시 이후부터는 우리 아이들 만나느라 정신이 없죠. 오후 5시부터 밤 10시까지 직업 교육, 창업 교육, 집단 상담 당의 프로그램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평일에는 10시, 토요일에는 7시 정도까지 일을 하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외부 출장도 나갑니다. 지역 협의체를 구성하는 일을 맡고 있는데 선생님, 부모, 학교사회사업가 등을 만나야 하거든요.
닮고 싶은 선배나 '역할모델'이 있다면.
테레사 수녀님을 마음의 모델로 삼고 있어요. 테레사 수녀님의 일대기를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삶을 마감할 때 조금이라도 그 분의 모습을 닮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또 다른 역할모델은 우연히 알게된 선교원을 운영하고 계신 어떤 분입니다. 그 분이 아이들에게 하는 행동,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자기 자식도 아닌데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말 한 마디, 손길 하나하나에 정성과 진심이 담긴 분이시거든요. 언제나 아이들을 대할 때면 꼬옥 끌어안아주시는데 그 작은 모습에서 처음 제 삶의 모델을 보았지요.
 
사회복지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전문적인 기술, 따뜻한 마음, 그리고 움직이는 손과 발. 학교 후배들에게도 늘 이 세 가지를강조합니다. 이것이 한데 어우러지지 않으면 조화로운 사회복지가 이뤄지기 힘들어요. 따뜻한 마음은 기본입니다. 그 위에 학교에서 배운 전문적인 기술과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력이 입혀져야 해요. 이 세 가지가 어느 한 부분에 치우침 없이 같이 맞물려서 움직이면 훌륭한 사회복지사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사회복지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편견 중의 하나가 보수에 관한 것 같아요. 물론 일반 대기업에서 제공하는 급여에 비하면 보수가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데 무리가 올 정도의 수준은 아닙니다. 사회복지라는 일은 ‘돈을 벌면서 남을 도울 수 있는’ 일이에요. 남도 잘 살게 하고 나도 행복하게 사는 일이지요. 보수에 대한 걱정으로 사회복지사의 길을 접는 후배들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꾸고 있는 꿈과 직업적 바램은?
지역협의체를 구성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 일이 잘 되었으면 하는 게 가장 큰 바램이에요. 제가 갖고 있는 신념 중의 하나는 지역 사회가 변화할 때 살기 좋은 사회가 온다는 것입니다. 지역 내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서로가 갖는 고민과 공동의 문제를 나누면서 의식 개선과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이뤄가자는 거지요. 청소년 문제는 사회복지사 개인이 열심히 뛴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에요. 학생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 가장 안식처가 되는 공간인 가정이 모두 함께 움직여야 되는 거죠. 학교 선생님들, 부모님들, 학교사회사업가들 그리고 민간복지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청소년 문제를 함께 고민, 공유하고 다각적인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서 지금 바쁘게 뛰고 있답니다.

직업에 있어서의 바람이라면 지금 말씀드린 그런 부분이 있구요, 제 삶에 대해서 갖고 있는 꿈을 말씀드릴게요. 저의 최종 비전은 ‘선교’입니다. 선교와 직업이 하나가 되는 ‘직업 선교’를 하고 싶어요. ‘월드비전’이 하고 있는 일처럼 말에요. 우리 보다 더 가난한 나라에 가서 아동과 청소년들을 돌보고 싶어요. 그래서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제 것’이 없었으면 해요. 테레사 수녀님의 찢어진 한 벌 신발 남기고 돌아가신 것처럼 말입니다.

 
  취업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꿈보다 ‘보수’와 ‘안정성’에 맞추어 직장을 고릅니다. ‘왜’ 그 직업이었냐는 질문에 명쾌한 대답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지요. 한복남 사회복지사님은 삶에서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꿈에 다가가는 길을 부지런히 걷고 있는 직업인이었습니다. 그 길은 평탄하거나 안락한 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한복남씨가 하루 하루를 기쁘게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이 그 길을 걷는 이유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요?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직업은 무엇인가요. 한복남씨의 이야기를 곰곰히 되씹으며 우리 다시 한 번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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