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찍는 토크쇼'에 입장하는 절차는 슈퍼마켓에서 물건 사기보다는 복잡하고, 기차를 타는 것보다는 간단하다. 토크쇼에 손님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의 10년 후'를 표현한 16절 도화지 한 장이 필요하다. 싸인펜, 매직, 크레파스 등 제한된 재료로 표현한 10년 후는 저마다 다르다. ‘로또 당첨'에서부터 ‘친절한 선생님', 꼬불꼬불한 도형으로 표현된 것, 단발마의 형용사. 지금 미래를 향해 보내는 희망과 소망이 다르듯, 이 사람들의 미래도 자신의 의지, 가치관, 문화 등을 직업으로 버무린 저마다 다른 형태일 것이다. 16절지 도화지에 나의 10년 후를 표현하는 작업은, 나의 미래를 상상해보며 현재 자신의 일에 대한 동기를 재확인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동기'는 꿈을 찍는 토크쇼에 입장하기 위한 결정적 티켓이다.

‘꿈.토 (꿈을 찍는 토크쇼)' 준비팀의 걱정과는 달리, 관객들은 모두 너무나도 즐겁게 그리고 진지하게 자신의 ‘10년 후'를 그렸다. 준비된 티켓을 객석 한편에 마련된 빨래줄에 걸고서 드디어 입장. 객석 어두운 구석에는 ‘강풀' 비슷한 사람이 약간 쑥스러운 표정으로 앉아있다. ‘맞다, 아니다' 수근대는 사람, 바로 옆에 있는데도 모르는 사람, 잠깐 혼잡한 상황을 틈타 길게 줄이 늘어서고, 책에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토크쇼는 ‘우리가 만화가라는 직업을 갖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만화가, 이런 사람일 것 같다'라는 테마의 만화가에 대한 우리의 진단서를 무대 곳곳에 붙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관객으로 온 이들이 제일 처음 무대에 올라 주인공이 되면서 토크쇼의 막이 올랐다.

첫 순서는 강풀이 그리는 ‘인생 그래프'였다. 좋았던 기억, 나빴던 기억을 수치로 환산해서 좌표에 점으로 찍어서 그 점들을 이어보면, 높낮이가 들쭉날쭉한 그래프가 나온다는 설명. 강풀의 인생 그래프는 생각과는 달리 온통 만화와 관계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생에서 의미 있던 시간, 중요한 순간, 좋았던 기억, 좋은 예감들은 만화와 관련되어 있었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강풀이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대자보 만화를 그리면서부터였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강풀:
그래프를 보면 저는 연애할 때가 가장 행복했고, 그리고 현재가 더 행복합니다. 고 3 때 곡선이 하락하기 시작하죠.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하고, 1년 후에 대학가고, 여자친구를 만나서 연애질하면서 곡선이 올라가요. 그리고 졸업과 때를 같이 해서 바닥에 떨어지죠. 실은 졸업을 하고 나서 일자리를 못 구했어요. 교수님이 소개해주신 곳도 있었지만,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 29살에 일 년을 넘게 일자리를 구하는데 시간을 보냈어요.
아무데서도 저를 만화가로 받아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전화번호부 상호편에서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 등을 뽑았더니 400군데나 되더군요. 400군데 전부에 만화로 그린 이력서를 보냈어요. 총 세 페이지였는데, 표지는 저를 그린 것, 두 번째 페이지는 제 소개를 한 것, 세 번째 페이지는 ‘내 만화를 쓰면 당신네 잡지가 더 잘 팔릴 것이다'라는 내용의 협박만화. 그런데 돌아온 반응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 당시에는 400통이 넘는 이력서가 쓸모없는 종이조각이 되어버렸는데, 지금 제가 일을 하고 있는 곳들은 모두 그 때의 제 이력서를 기억하고 있더라구요. 나중에 ‘왜 저를 안썼나요?'하고 물었더니, 너무 잘난 체를 해서 재수 없었대요. 그 다음으로 교보문고 잡지 판매대에 가서 모든 만화잡지 뒤의 주소, 편집장 이름, 전화번호를 적어와서는 직접 돌아다니면서 만났어요. 하루 10군데 정도씩 6개월을 돌아다니고 나서야 3-4군데에 연재를 할 수 있게 되었죠. 그게 기반이 되어 만화가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컴퓨터와 친해서 온라인으로 자신의 만화를 소개하시게 된 것인가요?
강풀: 저는 이전에는 거의 인터넷을 안했어요. 계기랄 것은, 제가 만화가로 유명해지고 싶은데 방법이 없는거에요. 삽화나 업계 신문에 연재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러면 제 만화를 보여줄 방법이 별로 없더라구요. 만화를 보여줄 수 있는 매체는 필요하고, 제가 신문사나 잡지사를 만들 수는 없고, 해서 인터넷에 강풀닷컴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었죠. 근데 막상 홈페이지를 만들긴 했는데 만화를 올려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대용량의 서버를 살 돈이 없었어요. 지금 밝히지만 제가 전교조 신문에 6년째 만화를 연재하고 있는데, 그 때 당시 전교조의 홈페이지를 관리하시는 분의 도움으로 전교조 홈페이지 서버에 몰래 들어가서 그곳 서버에 제 홈페이지를 올려서 만화를 연재할 수 있었어요. 그러다가 만화를 보는 사람이 하루에 20만명을 넘어서면서 전교조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했어요. 그래서 전교조 서버에서 쫓겨났죠. 그래도 인터넷을 통해서 일주일 만에 많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어요.
온라인 만화는 반응이 즉각적일 것 같아요. 신랄한 비판이나, 악플 때문에 힘들지는 않나요?
강풀: 온라인 만화는 일반 만화와는 달리 덧글이나 메일을 통해서 반응이 바로바로 오죠. 처음에는 욕도 많이 먹고, ‘재밌냐, 응? 재밌냐, 응?' 그런 것부터 해서 굉장히 안좋은 말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그 당시에는 누군가가 제 만화를 읽는다는 것, 독자들의 반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언제부터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셨나요?

강풀:
저는 만화를 많이 읽지는 않았어요. 어렸을 때에도 그랬고, 대학을 다닐 때도 제 자신이 만화가임에도 불구하고 만화를 별로 안읽었어요. 정말 남들 보는 정도로만 본 것 같아요. 어릴 적에는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져본 적이 없었어요. 초등학교 때는 그저 남들처럼 ‘보물섬'을 보는 정도였죠. 저는 대학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만화를 시작했어요.
제가 다닌 학교는 강원도 원주에 있는 상지대학교라는 곳인데 제가 재학하던 당시에는 학교 내에 데모가 많았습니다. 저는 총학생회 선전국장이라는 일을 했었는데, 대학교에는 대자보라는 것이 있어요. 학교 상황을 알리는 것인데, 한참 데모가 많던 때라 하루에 100장이 넘는 대자보가 범람했죠. 대자보가 너무 많으니까 아무도 보지 않게 되었고, 학생들에게 읽히는 대자보를 만들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제 만화의 모델이 된 대자보 만화입니다. 지금의 만화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림 하나에 말이 많잖아요? 대자보를 A4 한 장이라고 보고 그림을 그렸어요. 저는 군대를 방위로 다녀왔는데 그 때에도 근무를 마치면 학교로 달려가서 만화를 그릴 정도로 열심이었어요. 4년 내내 대자보 만화를 연재하면서 만화에 눈을 뜨게 된 것 같아요. 내가 그린 만화에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이 그걸 보고 재미있어 하는 것이 좋아서 그 때부터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만화가는 똑똑해야 할 것 같다. 맞춤법을 잘 맞춰야 하니까'?
강풀: 저는 오타 대마왕이예요. 명색이 국문과출신인데 말이죠. 똑똑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은 맞는 것 같아요. 그러나 똑똑하다는 것이 단지 공부 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죠. 말하자면 지성이 필요하다는 거겠지요?
'만화가 어떻게 되지? 그림에 소질이 있고 상상력이 좋아야겠지' ?
강풀: 꼭 그림에 소질이 있어서 만화가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그림을 배운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꼭 그림을 잘 그려서 만화가가 된다고 하기 보다는 창작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만화가로 성공하는데 있어 바탕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두 번째 문제인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을 만들어 내겠다는 욕구가 강할 때 만화를 그리는 것 같습니다.
만화가, 일단 그림을 잘 그려야 하고, 좋아해야 만화가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대여점이라는 대용량 자료실이 있어 만화가는 먹고살기 어려울 것 같다.
상상력으로 먹고 산다면 그것이 만화가의 길일 것 같다.
강풀: ‘만화가는 먹고 살기 어려울 것이다'는 맞는 말이에요. 왜 한국 만화가 어려운지 말씀드리자면 길어요. 근데 저는 잘 먹고 삽니다. 어느 분야나 그렇듯이 잘하는 사람들은 대접을 받습니다. 그래서 (모든) 만화가는 먹고 살기 어렵다는 것은 편견인 것 같습니다. 상상력 속에서만 의지하여 살고 싶은 것이 만화가의 길이라는 의견에 저는 상상력을 현실로 표현하는 것이 만화가의 길이라고 답해드리고 싶네요.
'만화가가 되려면 만화책을 백만권은 읽어야?'
강풀: 저는 만화책을 많이 읽지 않았어요. 난독증 비슷한 것이 있어서 오래 책을 못 읽어요. 친하게 지내는 만화가 선생님들, 형님들은 오히려 저에게 많이 읽지 말라고 말씀하세요. 기존 만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온라인 만화의 새로운 기법을 만들 수 있었던 거라구요. 저는 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서 일주일에 두 번쯤 극장에 가요. 책도 많이 읽는 편인데, 주로 장편 소설을 많이 읽어요. 10권 넘어가는 대하소설 같은 것들은 거의 다 읽었어요. 내용구상을 하는데 그런 것들을 읽은 것이 많이 도움이 되었죠. 그밖에도 공모로 만화의 소재를 구하기도 해요.
똥만화에서부터 ‘효선이 미순이' 같은 정치만화도 그리셨는데 어떤 만화를 지향하시나요?
강풀: 저는 박재동 선생님의 시사적인 만화들을 보면 지향하는 것은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통 정치사회는 일상에서 분리해서 생각하잖아요? 그런 것은 다른 사람의 일인 것 같고, 다른 사람이 그려야 할 몫인 것 같고. 하지만 정치사회야 말로 우리의 일상이고, 제가 똥만화를 그리는 것도 일상에 관한 것이고요.
인기 순위가 내려가 읽히지 않는 만화는 슬프잖아요? 인기가 떨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없으세요?
강풀: 제가 지금 꿈꾸는 만화는 30대에 관한 만화에요. 제 또래가 좋아할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제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만화. 그 나이대에게 공감을 주는 만화. 그런 만화를 그리고 있을 때는 순위에 연연하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은 연연하고 있지요.
직업과 꿈이라는 두 가지 말을 동시에 쓰면서 강풀과의 대화는 끝났다. 그가 만화가가 되지 않았다면 무엇이 되었을까? 만약 사람들이 그의 만화가 있는 것 조차도 모르고 지나 버렸다면? 강풀은 강하게 이야기한다. 그래도 만화를 그렸을 거라고. 왜냐하면, 자신이 하고 싶은 그 무언가를 가장 잘 이루는 방법은 만화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작 중요한 것은 만화가 아니었던 것은 아닐까?

트랙백 주소 :: http://www.daumfoundation.org/new/contents/news/trackback/439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