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일 : 코담배와 반탄(2005.11.2.수)

코담배와 반탄

아침에 숙박 장소인 게르에서 출발하려고 나서는데 일행이 타고 갈 차량 앞에 방물장수가 전을 펼쳐놓았다. 여러 가지 물건들 중 여성용 코담배(실제로 담배를 넣지는 않고 향료 가루 등을 넣어 소지하였다가 서로 인사를 나눌 때 교환하여 냄새를 맡고 돌려준다고 하고, 몽골 설날인 차강사르 때에도 새해 인사로 코담배를 서로 교환한다고 하는데, 부의 정도에 따라 코담배 용기가 천차만별이고 어떤 코담배를 가졌느냐가 부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고 한다)가 눈에 들어왔다. 호리병 모양의 옥으로 보이는 듯한 모습에 금속으로 용의 무늬가 씌워져 있었고 앙증맞은 뚜껑도 예뻤다. 사고 싶은 마음이 들어 흥정에 들어갔다. 2만 투그릭을 달라고 한다. 망설이고 있자니 스스로 값을 내린다. 결국은 1만 투그릭까지 내려 불렀다. 값을 깍는 데는 도무지 젬병인 내가 반이나 에누리한 값에 산다는 게 신이 나서 얼른 샀다. 사고 보니 정말 잘 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내 것이라고 생각하니 흥정할 때보다 코담배가 더 신기하게 보이고 더 이쁘게 보인다. 일행들도 모두 잘 샀다고 추어주니 마음마저 뿌듯해졌다(그러나 일행 중 한 명에게 두고두고 괴롭힘을 당할 줄 이때는 미처 몰랐다).



에르덴조 사원에 도착했다.

몽골문화수업을 준비하면서 사진을 여러 번 보고 몽골강사들에게 설명도 수차례 들었는데 과연 百聞이 不如一見이다.

우선 사방을 둘러싼 탑들이 108개라는데 참으로 아름답다. 높은 곳에서 108개 탑의 둘레 전체를 앵글에 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자면 저 멀리 보이는 구릉까지 올라가야 할 것 같고 카메라도 망원렌즈가 필요할 것이니 생각으로 그칠 수밖에……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나라 사찰에 비긴다면 불국사 정도의 사원일 텐데 겨울이라 그런지 방문객도 별로 없고 한산하다. 하기사 울란바타르에서 7시간이나 걸리니 몽골사람들이라도 자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일행도 일박을 해야 올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일정을 짤 때 고민을 하였으니……

문화적인 감수성이 없어서 그런지 사원 전체가 밖에서 볼 때와는 달리 황량한 느낌이 든다. 건물외관은 퇴락한 모습이고 사원 뜰도 거칠다.

하라호름이 징기스칸 시대의 수도였고 그 중심에 있었던 사원이고 오늘날까지 보존돼 있다면 우리나라 같으면 복원이다 뭐다 해서 화려하게 치장을 했을 텐데…… 이렇게 낡은 상태로 그대로 둔 것이 진정한 보존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복원사업에 드는 예산 때문에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몇 개의 사원 건물을 둘러보는 중에 가장 인상적인 곳은 스님들이 공부하는 건물이었다. 동승인 듯한 승려들이 차를 마시며 경전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실지로 공부를 하는 것인지 관람객들이 구경을 해서 그런지 열심히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한마디 말이라도 건네 보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냥 눈이 마주치는 대로 웃기만 했다. 어제까지는 몰랐는데 오늘 몽골 사람들과 얼굴을 대하고 물건을 사고 하는데 진작 몽골말 좀 배워둘 걸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렇게 많은 몽골 외국인노동자들을 상담하고 만나고 했으면서 ‘샤인베이노’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는 게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지고 게을렀다는 자책까지 든다.

모두 둘러보고 나오니 마당에 방물장수들이 10여 명도 넘게 줄지어 서 있다. 바람도 불고 쌀쌀하기도 한데 관람객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장을 펼쳐놓고 있는 게 마음이 쓰였다. 게르에서 출발하기 전에 보았던 방물장수의 물건들보다 종류도 훨씬 다양하고 많다.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신난다. 사고 싶은 게 무지 많았지만 문화수업재료로 쓸 후르드(돌리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사원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설치돼 있는데 이것은 휴대용 모형인 듯하다) 하나만 샀다. 일행들도 심사숙고하며 흥정을 하여 코담배 등을 샀다. 그런데 아뿔싸! 내가 오전에 숙소에 온 방물장수한테 샀던 것과 너무도 흡사한, 더 좋아 보이는 코담배를 7천 투그릭에 샀다는 것이 아닌가(이후 두고두고 약 올리는 통에 배 아파 죽는 줄 알았다).



숙소인 게르에 돌아와서 점심식사로 맛있는 반탄을 시원하게 먹었다. 반탄은 밀가루와 다진 소고기로 만든 스프 같았다. 몽골사람들이 술 먹은 다음날 속풀이용으로 많이 먹는다고 한다. 한국에 가서 우리 수겸이에게 만들어 주어도 잘 먹을 것 같아 조리방법을 물어두었다. 물이 끓으면 밀가루 푼 것과 소고기 다진 것을 넣고 저으며 소금으로 간을 하면 끝이라고 한다. 너무 맛있어서 빌렉씨에게 ‘맛있어요’를 몽골말로 가르쳐 달라고 했다. “새흥 허르드승!”



고소공포증?

드디어 유목민의 게르를 찾아간다. 말도 타 볼 것이다!

길인가 싶은 평원을 자동차가 달린다. 운전 기사는 이 넓은 벌판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가는 걸까. 건물도 나무도 도로표지판도 없는데 목적지를 향해 신나게 달린다. 물론 비포장이어서 흔들리는 차의 요동이 재밌다. 게르에 도착하니 안주인인 듯한 분이 약간 어색하게 그러나 반가워하는 느낌이 들게 우리를 맞는다. 의사소통이 안 되니 묵묵히 행동으로만 대접한다. 따끈한 수테차, 마유주 등을 차례로 권한다. 마유주는 정말 막걸리와 비슷하다. 그러나 아주 많이 먹어야 취기가 돌겠다.



게르 밖을 나서니 발 디딜 틈 없이 또-o 천지다. 몽골 말로는 빠스라고 했다.

빠스 없는 곳을 골라 딛는 일이 불가능하다.  염소 빠스, 양 빠스…… 마치 콩 멍석 같다.

말 타는 시간, 일행들은 모두 호기롭게 말 타기를 시작했다.

말 타는 것에 지레 무서운 생각이 들었으나 몽골에 와서 말도 한번 못타고 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하며 용기를 내어 말위에 올라앉았으나 말이 발자국을 떼니 간이 오그라붙는 것 같아 얼른 내려달라고 하였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한테는 말 위도 높은 곳이다!



말고삐를 잡아주는 목부(혹은 목동?)들의 표정에서 외국인을 대하는 어색스러움과 친밀감을 동시에 느낀다. 말 한마디 서로 나누지 못하지만 호감으로 대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같이 사진을 찍자고 청하니 착하고 기분 좋은 느낌의 미소가 얼굴에 번진다.

언어와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낀다.

말로 소통하지 않아도 통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손짓으로 눈빛으로 행동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도 하다. 그러나 말이 아니면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외국인노동자들은 소통의 어려움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소통의 어려움으로 문제를 풀지 못해 상담소를 찾아와 도움을 청한다.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보면 쌍방의 입장이 다름과 시각의 차이와 사실에 대한 오해는 언어 소통의 어려움으로 해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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