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일 : 해돋이와 홈스테이(2005. 11. 3. 목)
채 동이 트지 않은 어두운 새벽길을 나서다. 게르에서의 2박을 따뜻하게(?) 보내고 울란바타르로 돌아가는 길이다. 시시각각 뿌-염하게 밝아지는 하늘을 보며 해돋이를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잔뜩 품고서… (해돋이를 본 게 언제였더라, 고등학교 때 불국사로 수학여행가서 토함산에서 해뜨기를 기다리다가 김빠진 해돋이를 본 게 고작이었구나).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놓칠세라 차를 세워 달라 했다.
가슴이 후련해진다.
(모름지기 여행자는 모든 걸 ‘플러스 알파화’ 하는 건 아닐까.
이런 정도의 해 뜨는 장면은 한국에서도 어느 동산에 가든지 얼마든지 볼 수 있을 텐데 하는 김빠지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대학시절 엠티 때 날 새운 새벽, 교회에서 중고등부 학생들과 수련회 갔을 때의 이른 아침, 해돋이는 아니더라도 이 정도의 광경은 익히 보아오지 않았던가 하는, 들뜬 감상을 가라앉히려는 괜한 자제가 ‘여기가 몽골이라고 감상을 오버하지 말자’는 생각을 잠깐 떠올리게도 했으나……)
바다 같기도 하고 넓고 낮게 보이는 산 같기도 하고 부드러운 언덕 같기도 한 곳에서 해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을 때,
여행자의 들뜬 감상으로 감격하기도 했다.
해 뜨는 장면도 그렇거니와 아침결의 냄새가 시원하고 알싸하고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하다.
한편 비장한 느낌도 동시에 떠오른다.
해뜨는 모습을 보면서 외국인노동자 지원단체 활동가로서의 다짐과 각오도 새롭게 다져보았다. 몽골로 향하기 전 그 동안의 활동에 대한 자괴감, 활동가로서 정체성의 혼란, 일상의 고단함 등으로 심한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출발하면서 몽골에 다녀오는 동안 그간의 활동에 대한 내 모습들을 정리하고 향후 활동에 대한 각오들을 정비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중압감도 가졌었다. 일정이 어떠하든지 스스로 내면적인 ‘연수 프로그램’을 갖자고 다짐을 하며 출발하지 않았던가.
울란바타르에 도착해서 훼밀리 식당에서 한국음식을 먹었다. 늦은 점심이라 배도 고팠고 며칠 만에 한국음식을 먹는 것이 너무 좋아서 어느 것을 먹을까 심사숙고하여 동태찌게를 주문했다. 서울에서 먹었던 동태찌게처럼 국물 맛도 시원하고 만족스럽다. 빌렉씨의 말로는 한국에 다녀온 몽골사람들이 한국식당에서 식사하는 걸 좋아한단다. 몽골 음식보다 약간 비싸지만(4천~5천원)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한국식당에서 음식을 사먹는다고 한다.
식사 후에 간단사원, 역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 수흐바타르 광장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도심에 있는 간단사원에는 사람들이 꽤 많이 붐빈다. 시골에서 온 여행객같이 보이는 사람도 많고 학생들, 노인들, 다양한 사람들이 후르드를 돌리며 소원을 비는 모습, 사원 안에 시주를 하고 절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 야외촬영을 하는 듯한 신부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사원 안에서는 역시 사진촬영을 하려면 5천 투그릭을 내야 했다. 역시 한 사람이 대표로 촬영키로 하고, 나는 건성으로 불상에 초점을 맞춰보았는데 어느 틈에 관리인이 다가와서 5천 투그릭을 내라고 한다. 정말 사진 찍지 않았다고 카메라를 켜서 이미 촬영한 내용을 보여주니 알았다며 물러났다.
역사박물관에서는 설명해주는 안내인이 있었다. 처음부터 돌아가면서 전부 설명을 하는데 너무 피곤해서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며 둘러보기가 힘들어, 붙여져 있는 영어설명을 보며 자유롭게 둘러보았다. 문화수업 자료로 쓸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모든 전시품이 유리장안에 들어 있어서 사진효과가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 고대 문화재부터 현대의 뉴스까지 전시가 돼 있었는데 몽골역사에 대해 더 자세히 공부하고 왔다면 좋았겠다는 뒤늦은 후회가 들기도 했다.
역사박물관을 나서니 중고등학생인 듯한 학생들이 무리지어 있었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문을 잡아주어서 “바에르흘라!” 인사했더니 “감사합니다!”고 한국말로 답을 하면서 겸연쩍은 듯 왁자하게 웃는다. 표정들이 밝고 환하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몽골 청소년들이 한류 스타들을 좋아해서 한국가요 콘테스트도 열린다는 것을 보았는데 과연 한국에 대한 관심이 대단한가 보다.
자연사 박물관을 둘러보고 난 다음 간 수흐바타르 광장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고, 평일 저녁나절인데 넓다싶은 광장에 사람이 많은 것이 신기했다. 자연사 박물관을 들어갈 때 관람시간이 끝났다고 안 들여보내려고 해서 빌렉씨가 뭐라 얘기하니까 들어갈 수 있었는데 나오면서 관람시간표를 보니 동절기에는 오후 4시 30분까지로 돼 있었다. 아마도 퇴근 시간이 이르니 사람들이 저녁시간에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라호름에서 새벽에 출발해서 그랬는지 몸이 무지 피곤했다.
호텔로 돌아가 좀 쉬고 오늘 밤은 빌렉씨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기로 했다.
빌렉씨는 한국에서 4년 정도 일을 했는데 모은 돈으로 울란바타르 시내에 아파트를 사서 영국으로 유학 간 언니의 아들과 딸을 돌보며 살고 있다고 했다. 호텔에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있는 아파트로 갔다. 지은 지 20년 정도 됐다는데 겉보기에는 꽤 낡아보였다. 빌렉씨 말로는 오래됐어도 튼튼하게 지어져 비싼 아파트라고 한다. 사회주의 이후에 지어진 아파트는 날림으로 지어진 것들이 많다고 한다. 빌렉씨는 자기 아파트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진 듯 한참 설명을 하였다.
몽골에서는 거실을 포함해서 방수를 가지고 몇 칸짜리 아파트라고 구분한다고 한다. 방이 두 개에 거실 부엌과 목욕탕이 있었다. 방은 그리 크지 않은데 세간이 단출해서인지 넓어 보였다. 목욕탕도 부엌살림도 너무나 간소하다. 식사를 조리하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고 사다가 먹는다고 한다.
늦은 시간에 도착했는데 아이들이 자지 않고 있었다. 낮에는 빌렉씨 친구가 함께 있다가 저녁을 먹이고 돌아갔다고 한다.
7살 남자아이와 5살 여자아이인데 밤늦게 찾아온 방문객에게 낯설어하는 내색을 숨기지 않고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가지고 간 학용품과 인삼초콜릿을 주었는데 별로 좋아하는 내색도 없이 이모 뒤로 숨기만 한다. 말이 안 통하니 뭐라 말 붙일 수도 없어서 손이라도 잡아보려고 다가갔으나 몸을 뒤로 뺀다. 다음날 아침이면 조금 나아지겠지 하며 거실로 나왔다.
빌렉씨가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새벽까지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다. 특히 한국에서 일하다가 귀국한 몽골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몽골에 돌아오고 나서는, 고향을 그리워하듯이 한국에 대해 많이 그리워한다고 한다. 같은 아파트 아래층에도 한 아주머니가 있는데 한국에 다녀온 사실을 몰랐을 때는 별로 친하지 않았는데 한국에 갔다 왔다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 자주 만나서 한국에 대한 얘기도 하고 한국음식도 같이 먹으러 가곤 한다고 했다. 우리 상담소를 통해 알게 된 친구들과도 자주 만나서 맨날 한국 얘기만 한다고 한다(뭐가 그렇게 그리울까, 힘들게 일하면서도 차별받고 월급 떼이고, 다치고 그런 친구들이 많은데 그래도 한국이 그리울까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런데 대부분 귀국하고 나서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벌어온 돈을 까먹고 사는 친구들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빌렉씨는 한국에서 우리 단체를 알게 된 것이 꽤 충격이었다고 했다. 몽골의 시민단체들은 명목은 있으나 한국의 시민단체들과 성격이 많이 다르다고 했다. 빌렉씨 생각에는 몽골의 시민단체들은 정부쪽과 많이 가깝다고 생각하며 거의 외국에서 지원을 받는데 그 기금의 사용에 대해서 의혹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자신도 공부하고 준비하여 한국의 시민단체 활동가 같은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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