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31일
상담소에서 일한지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나에게 몽골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은 정말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평소 이주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문화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으면 그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직접 그들의 나라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열심히 그들의 생활을 보고 오겠다고 다짐하면서 상담소, 집안 식구들 생각을 멀리하고 몽골로 떠나는 여행의 첫걸음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떠나는 해외여행이라는 설렘을 안고 공항에 도착했다.
예정된 탑승시간에서 1시간 30분이 지나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작년 베트남 팀의8시간의 탑승대기 악몽을 방대욱실장님께 들으며 우리도 혹시 하는 걱정을 뒤로하고 그래도 우리는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기내방송을 들으며 영하8도의 날씨를 걱정했으나 추운날씨를 걱정해서 준비한 두툼한 겨울파카 때문인지 아니면 몽골에 도착한 흥분과 설렘 덕분인지 새벽1시에 도착한 울란바타르의 날씨는 생각했던 것처럼 춥지는 않았다.
어두움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몽골을 보기위해 우리를 안내해줄 빌랙씨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며 공항에서 30분정도 떨어져 있는 징기스칸호텔에 도착했다.
아직 한국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잘 정리된 징기스칸호텔에서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2005년 11월 1일
한 분수 선생님의 전화벨소리에 잠에서 깨어 나 어스름하게 밝아오는 창밖의 모습을 봤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행인과 차량, 가로수 없는 삭막한 거리를 보면서 이것이 몽골의 전체적인 느낌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아침을 시작했다.
간단한 빵과 야채, 그리고 커피로 아침을 먹고 바얀고비로의 출발을 준비했다. 그곳에서 먹을 물과 간단한 음식을 사기위해 국영백화점으로 가면서 몽골을 사진에 담기에 바빴다. 화력발전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굴뚝의 연기. 통일되지 않은 택시, 한국의 버스노선이 그대로 붙어있는 시내버스, 간간히 보이는 한국간판, 낡은 전차안의 사람들, 뒤 트렁크에 생고기를 가득 싣고 가는 승용차.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 양 볼이 발그스름한 몽골 전통의상을 입으신 할머니, 러시아 풍의 건물들, 매연, 이런 모습들을 담기위해 연신 카메라셔터를 눌러댔다.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빌랙씨의 주의를 듣고 국영백화점에 도착했다. 한국화장품과 모델이 눈에 잘 띄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언뜻 둘러보아도 한국물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슈퍼가 백화점 1층 중앙에 있다는 것이 특이했다. 아마 생필품이 이곳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하고 절실하기 때문에 1층에 있지 않을까? 무슨 이유인지 오후 1시에 개점한다는 말에 물건을 사지 못하고 그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슈퍼마켓에 갔다. 한국의 슈퍼마켓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몽골의 우유로 만든 여러 가지의 아롤들. 먹음직스러운 소시지. 좀 오래된 것 같은 고기, 풍성하지 않은 감자 양파 등. 이곳에서도 한국물품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나도 “오예스, 신라면, 알로에쥬스 ”등을 사고 나오는데 이동식 공중전화기가 눈에 띄었다. 걸어 다니는 공중전화라고 할까? 몽골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인 것 같다.
바얀고비로 가는 길은 걱정 했던 것처럼 비포장도로는 아니었다. 비포장도로라는 잘못된 정보에 멀미약까지 먹고 긴장했지만 다행스럽게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이었다. 하지만 흔들리기는 마찬 가지였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참으로 낯설고 알 수 없는 풍경들이였다. 몽골어로만 표기되어 있어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간판들,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없는 건물 등을 보면서 몽골의 이주노동자들이 우리 한국에 처음 왔을 때의 느낌이 나와 같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시작된 낮선 풍경은 드디어 몽골의 초원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보는 양떼, 소들의 모습에 신기해하며 감탄에 또 감탄했다 이런 대자연의 광활한 대지위에서 말을 타며 자란 몽골인 들의 기상을 생각하면서 나도 초원 위를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너른 초원은 점점 나를 지치게 했다. 한참을 가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 앞에 차를 세웠다. 준비한 한식 도시락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몽골식당에서 수태차와 함께 식사를 했다. 처음으로 맛본 몽골음식이 수태차였다. 바로 이 수태차가 한국에 있는 에르까가 먹고 싶어 하던 우유 차였다. 뭐랄까 우유와 사골의 만남일까? 따끈하게 데워진 수태차가 차 안에서 흔들리면서 피로해진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다시 광활한 초원을 지나 바얀고비로 출발했다. 몇 시간을 갔을까. 드디어 사막에 도착했다. 아! 이럴 수가 !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어서 길을 잃을지도 모를 걱정은 한 순간에 없어졌다. 그냥 황폐해진 들판을 보는 느낌이랄까. 기대했던 사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모래를 밟긴 했다. 하지만 포즈는 멋있게!
어둠이 내린 후에 우리가 묵을 숙소 인 몽골의 유목민천막 게르에 도착했다. 전통음식인 허르헉(양고기를 아무런 양념과 소스 없이 돌과 함께 찐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도시에서만 살던 나에게 보여준 몽골의 밤하늘에 뜬 별들과 은하수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물이 부족한 그곳에서의 불편한 생활을 밤하늘의 은하수가 대신 보상해 준 것 같았다. 장작불을 핀 난로 옆에서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몽골에서의 이틀을 마감했다.
2005년 11월 2일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징기스칸시대의 수도인 하르호름으로 출발했다. 몽골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게르, 나무울타리, 허름한 집들은 징기스칸시대의 화려하고 힘이 있는 도시의 모습은 아니고 남루하게 까지 느껴졌다. 허름하고 남루한 하르호름의 마을을 지나 에르덴죠 사원에 도착했다. 17세기에 지어진 라마불교사원인데 108개의 불탑이 울타리처럼 사원을 둘러싸고 있었다. 불탑만을 바라보아도 그 당시의 화려하고 웅장했던 사원의 모습이 그려진다. 남아있는 몇 개의 건물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내부의 모습이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의 사천왕상과 비슷한 모습을 한 그림과 불상 등이 훼손되지 않고 그때의 화려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의 불상과 비교한다면 우리 불상은 참 서민적이고 소박하다는 느낌이다. 내부를 사진 찍을 때는 5천 투그릭(우리 돈으로 5천 원 정도)을 내야만 찍을 수 있었다. 유물을 보존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직원들의 돈벌이로 대신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씁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원마당의 한쪽에서는 땅속에서 발굴했다는 골동품등을 파는 노점좌판이 펼쳐져 있었다. 빌랙씨에게 미리 설명을 들어 알고 있었던 코담배인 허르크가 눈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흥정을 시작했다 .바가지를 쓰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물론 있었지만. 1만 5천 투그릭이나 하던 허르크를 6천 투그릭에 살 수 있는 행운(?)도 있었다. 골동품 수집(?)을 마치고 유목민이 직접 사는 게르에 도착했다. 안에 들어가니 따뜻한 수태차를 준비하고 계신 아주머니께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마유주(우리나라의 막걸리보다 조금 더 새콤한 맛이 난다), 수태차등을 먹으며 게르 안을 둘러 봤다. 소박하고 단출한 살림 이였다. 욕심이 없는 사람들 인 것 같았다. 한쪽에 말 그림이 새겨진 메달이 많이 달려있었다. 나담축제 때 받은 메달이라면서 자랑스러워 하셨다. 여름에 와서 직접 나담축제를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또 말을 직접 탈 수 있었다. 무서운 마음이 앞서 타기를 주저 했지만 그래도 몽골의 기상을 느끼기 위해 무서운 마음을 떨치고 말에 올랐다. 몽골의 기상을 느끼기에는 부족했다. 달릴 수 가 없었다. 중심을 잡기에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그곳의 청년은 재미있어 하는 듯 했다.
2005년 11월 3일
새벽별을 보며 울란바타르로 출발하며 넓은 대지위에서의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졸음을 참아가며 갔지만 기대했던 일출은 볼 수 없었다. 하늘로 떠오른 해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초췌한 모습으로 울란바타르에 도착해서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먹었다. 몽골에 와서 까지 한국음식을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김치찌개라는 메뉴판을 보는 순간 나는 역시 한국 사람이라는 확인을 할 수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점심식사 후 바로 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기름진 머리, 부스스한 얼굴, 모두 씻지 못해서 초췌한 모습이지만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는 데 용기를 가지고 박물관으로 바로가기로 했다.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역사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다. 어두운 조명과 낙후된 시설, 부족한 설명, 그 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서의 위엄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또한 몽골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 안내원의 설명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초췌한 모습으로 더 이상은 무리 인 듯싶어서 예정된 민속공연은 내일로 미루고 모두 호텔에 가서 씻기로 합의했다.
1리터정도의 물로 여러 사람이 세수하고 양치를 할 정도로 물이 귀한 곳도 있는데 호텔에 도착해 샤워를 하면서 너무 물을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하르호룸의 사람들에게 미안함이 함께 밀려왔다.
2005년 11월 4일
테를지를 보면서 진짜 몽골의 모습을 본 것 같다.황량한 들판을 보면서 그것이 몽골의 전부 인 것처럼 느꼈던 나의 생각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여유롭게 흐르는 톨강, 낙엽진 침엽수림, 거대한 바위, 한가롭게 풀을 먹고 있는 말들. 이런 대자연의 모습에 취하면서 흡수골을 못 간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2시에 NGO(Centre For Human Rights And Development)방문이 예정되어 있어서 서둘러서 테를지를 출발했다. 우리가 조금 늦게 도착해서 인지 시간이 없다며 몽골통역을 하지 않고 영어로 직접 말씀하시겠다는 그쪽 관계자의 태도에 조금 기분이 나빴다. 방실장님의 대략적인 통역으로 그 단체에서 하는 일이 성매매와 관련 된 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활동, 몽골정부의 잘못된 부분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직접적인 활동보다는 법 개정, 법률적 조언 등에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외국인 노동자지원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있었던 방문은 아니었다.
울란바타르시내에 있는 간단사원은 에르덴조사원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웅장함은 느낄 수 없었다. 많이 훼손되어 보수된 흔적을 많이 볼 수 있었지만 그래도 도시 가까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찾아가 신앙적인 위로를 받고 자기의 소망을 빌 수 있다는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그들처럼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불경이 적혀져 있는 원형기둥모양의 통을 돌리면서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자이승기념탑에 올라 울란바타르시내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보았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해서 인지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둠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연기. 자동차의 매연, 각 가정에서 나오는 석탄 연기 등이 섞여서 울란바타르의 공기를 메케하게 만들고 있었다. 밤이 되면 더욱 심해져서 시내 중심가에서는 호흡하기도 힘이 들었다.
2005년 11월 5일
예정된 일정을 마치고 자유 일정이 주어졌다.
한국에서 일하던 중 산재사고로 1년 넘게 입원치료중인 에르까의 아이들을 만났다. 수줍어서 반가움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엄마인 길데씨가 전해주라던 예쁜 새 옷과 선물 편지 등을 전해주었다. 새 옷을 입고 엄마 아빠에게 보여주겠다고 사진을 찍고 편지를 쓰고 하는 모습에 나도 며칠 떨어져 있던 아이들이 생각났다. 며칠 떨어져 있는 내 마음도 이런데 1년 넘게 아이들을 보지 못한 길데씨의 마음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적셔졌다.
막노동판에서 열심히 일하다 고국으로 돌아가면 못했던 공부를 하겠다던 아모라도 만났다. 다행히 귀국 후 얼마 되지 않아서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회사에 취직해서 열심히 살고 있었다. 나를 만나던 날도 서울과의 팩스를 주고받느라고 무척 바빠 보였다. 내년에는 경영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교에도 다닐 거라고 한다. 오랫동안 이주노동자로 살았기 때문에 귀국해서도 많이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열심히 사는 아모라의 안정된 모습에 안도감이 들었다.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의 상태로 상담소와 연결되어 1년 넘게 한국에서 치료를 받고 귀국했지만 안타깝게 하늘나라로 간 빔바의 가족들도 만나보았다. 빔바의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셨다. 아마도 빔바가 생각났던 모양이다. 빔바의 딸 솝따도 만났다. 엄마를 닮아서 너무 예뻤다. 다행스럽게 엄마를 잃은 상처를 이겨내고 밝게 자라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스러웠다. 빔바의 어머니께서 주섬주섬 선물을 싸주시며 다음에 몽골에 꼭 다시 오라는 말씀에 마음이 뭉클했다. 자고가면 안되겠냐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짧은 기간 동안의 만남이었지만 한국에서 생활하다 돌아간 노동자들과 가족들을 만나면서 그들을 모두 이해할 수 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아픔과 기쁨을 조금이라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2005년 11월 6일
아쉬운 몽골방문을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에서 우리를 보내며 눈물을 흘리던 빌랙씨의 모습이 마음을 편치 않게 했다. 오랜 한국 생활 때문인지 몽골에 귀국해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며칠 후에 한국에 있는 에르까와 길데를 만나서 아이들의 사진과 편지를 전해주고 기쁨을 같이 했다. 몇 가지 배운 몽골말을 확인해가며 내가 본 몽골의 모습과 내가 가본 곳, 먹어본 음식 등을 설명하면서 그들과 좀 더 가까워짐을 느꼈다. 이렇게 조금이라도 그들의 문화와 접해봄으로 그들을 더욱 사랑할 수 있고 그들의 모습을 이해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다음세대재단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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