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11일 하노이에서 우리 일행의 가이드를 맡은 사람은 괴짜라고 해도 큰 손색이 없는 재미있는 유학생이었다. 상당수 베트남 유학생들은 돈에 구애받는 일 없이 가정부까지 두고 살 정도이며, 구매가치가 높은 탓에 오히려 한국보다 용돈을 더 많이 쓰고 산다고 하는데, 이 친구는 베트남 ‘평민’들이 즐겨먹는 길거리 음식을 즐기고 ‘평민’들의 교통수단인 오토바이를 늘 타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유람을 즐기는, 그 과정에서 베트남어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는 그야말로 평민화(?)된 유학생이었다. “베트남이 좋아서 여기서 살려고 한다”는 이 친구는 “많은 한국인들이 베트남에 와서 매춘이나 만취소동 등 추태를 보이는가 하면, 기분에 따라 돈을 펑펑 쓰면서 물가도 많이 올려놓는다”며 “이로 인해 최근 베트남 정부가 한국인에 대한 각종 비자발급에 있어 까다롭게 굴고 있다. 제발 한국인들이 좀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했다. 베트남을 이해하려고 찾아간 우리에게는 베트남을 사랑하고 그 문화에 동화되어 살려는 그가 좋은 선생이 될 듯 했다. 호치민에 이어 하노이에서도 좋은 가이드를 만나게 되어 참 다행이었다. 오전 시내관광 일정을 취소하고 결혼이민여성의 가정을 방문하기로 한 우리 일행은 하노이 동쪽 100km에 위치한 항구도시 하이퐁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우리 일행과 가이드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하노이 신시가지에 짓고 있는 20여평 아파트 가격이 10만불 가까운데 비해, 시골에서 올라와 하노이 평민식당에서 일하는 아이들의 초봉은 월 10만동(한화 약 7,000원) 정도이며 경력이 많이 쌓일지라도 50만동(한화 약 33,000원)을 넘지 않는다는 이야기, 가난한 시골여성들이 도시에 올라와 화류계에 취직하는 일도 많다는 이야기, 베트남에서 가장 낙후된 중부는 기후도 나쁘고 자원이나 노동인력도 부족하며 생활기반시설 또한 매우 취약하다는 이야기, 베트남의 노사관계는 사장과 말단직원이 편하게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매우 평등하다는 이야기, 대학을 다니거나 뚜렷한 직장이 있으면 군대에 가지 않지만 전쟁 등 유사시에는 온 국민이 전투태세를 갖출 자세를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 프랑스나 미국에 대한 적대감정은 거의 없으나 같은 사회주의 형제국이면서도 1979년에 영토분쟁을 일으켜 침략했던 중국에 대해서만큼은 적대감정이 매우 크다는 이야기, 언젠가 자신이 한 베트남 대학생에게 베트남전 당시 참전했던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해한다. 당시 너희 나라는 미국의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시는 힘이 없어서 강대국의 침략전쟁의 들러리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말을 듣고 너무나 부끄러웠다는 이야기, 베트남은 전쟁을 하도 많이 겪은 탓으로 미래보다는 현재를 중시하는 가치관을 갖고 있으며 이로 인해 소비성향이 매우 강하다는 이야기, 최근에는 공개처형을 자제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약밀수나 집단강간과 같은 반인륜범죄에 대해서는 공개처형을 실시했다는 이야기,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베트남에서 어렵지 않게 북한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한국인들이 많이 오기 시작하면서 최근에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는 이야기, 베트남 전통혼례는 매우 복잡하지만 최근 도시에서는 대개 큰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신랑신부가 각 테이블마다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는 정도로 간소하게 치르고 있다는 이야기... 오후 1시경, 우리 일행은 하이퐁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 “여기까지 와서 어제 저녁처럼 한국음식을 먹기는 싫다. 보통 사람들이 즐겨찾는 평민식당으로 안내해달라”고 부탁하자, 가이드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베트남에 오면 베트남식에 적응하려고 하는데 유독 한국인들은 한국식을 고집한다”면서, “내가 안내한 관광객들 가운데 한국식당을 거부하고 베트남 현지식당으로, 그것도 고급현지식이 아닌 오리지널 평민식당으로 안내해달라고 요청한 사람은 여러분이 처음”이라며 “운전사 로이 씨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지만 되려 기분이 너무 좋다면서 기꺼이 평민식당으로 안내해주겠다고 한다”고 했다. 덕분에 우리는 베트남 연수일정 중 가장 맛있는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제주도에 시집와 살고 있는 결혼이민여성의 집으로 향했다. 베트남에 간다는 소식을 들은 이 여성이 윤명희 간사님에게 “가족들에게 선물을 전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늙은 아버지를 비롯한 언니와 오빠, 동생과 조카 등 많은 가족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방금 밥을 먹고 온 지라 너무 배가 불러서 몇 번이나 그만 내오시라고 했지만, 가족들은 연신 ‘넴’(월남쌈)과 과일 등을 가져왔다. 한국에 간 지 3년이 다 되어가는 그리운 딸을 대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마련한 그 음식을 어찌 마다할 수 있으랴...! ![]() ![]() ![]() ![]() ![]() 하지만 정작 불편했던 것은 음식이 아니었다. 가족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그 딸이 잘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적잖은 다문화가정들이 서로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없이 막연한 기대와 환상 속에 허풍쟁이 중개업자들에게 이끌려 결혼했다가 큰 마음의 상처를 입고 실패하듯, 사실 그녀 또한 결혼생활에 실패한 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 마음을 힘들게 했다. 그렇게 약 1시간 동안 환대를 받은 우리 일행은 딸에게 전해달라는 물건들 한 보따리를 받은 후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 ![]() ![]() ![]() ![]() 오후 3시경 하롱베이에 일찍 가 봤자 할 일이 없다기에 하이퐁 시내에서 느긋하게 사람구경을 즐기다가 하롱베이로 향했다. 저녁을 먹고 호텔에 들어온 우리 일행은 모두 스카이라운지에 올라가 자정이 넘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다 잠자리에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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