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정도를 날아 하노이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저녁을 먹고 호텔로 향했다. 가슴이 두근거려왔다. 이주노동을 마치고 귀국한 베트남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약속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자주 만났어도 가슴 한 번 뛰지 않더니….’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걸었더니 이미 아래층 커피숍 밖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한 걸음에 달려 내려간 나는 너무 흥분한 탓에 엉뚱한 사람들을 보고 달려들 뻔했다. ‘어, 아니네’ 당황하는 순간, 옆에서 정수 씨(본명은 ‘황틴틴’이지만 한국에 있을 때는 ‘김정수’라는 이름을 사용했음)가 “고 사무국장님!”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이야! 정수 씨...”. 우리 둘은 한참을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사실이지 눈물이 글썽일 정도로 반가운 친구였다. 이어서 선남 씨(한국에 있을 때는 ‘정선남’이라는 이름만 사용했으며 이번에 만나서야 진짜 이름을 들었는데 잘 생각이 나지 않음)가 달려왔다. “와! 선남 씨” 우리는 또다시 서로를 부둥켜안고 재회의 감격을 나누었다. 정수 씨 아내인 투이 씨도 수줍게 웃으며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왔다. “잘 지냈어요? 베트남에 오더니 더 예뻐지셨는데요” 하고 농담을 건네며 손을 잡아주었다. 정수 씨와 선남 씨 등은 경남 지역 베트남 이주노동자 교포회 임원으로 활동하며 오랫동안 정을 쌓아온 친구들이었다.




(필자 옆으로 투이, 정선남, 앞에 V를 한 이가 김정수이다)


일행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다함께 택시 2대를 나누어 타고 가까이에 있는 ‘떠이 호수(서호)’로 향했다. 아름다운 야경과 시원한 바람을 즐기러 나온 수많은 젊은 남녀들이 눈에 띄었다. 호숫가 한 식당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귀국 이후 어떻게 지냈는지, 오래 떨어졌던 가족과의 재회가 어떠했는지,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등에 대해 그야말로 정겨운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정수 씨는 하노이에서 동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항구도시 하이퐁에 조선회사를 설립하려고 준비 중인 한국 기업가를 돕고 있었고, 선남 씨는 삼촌과 함께 가스 배달업을 하고 있었다. 한편 정수 씨와 투이 씨는 한국에서 만나 결혼한 후 같이 귀국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7년간 가족과 떨어져 홀로 이주노동을 해 온 선남 씨는 2년 전 아버지 병환 때문에 급히 귀국했으나 워낙 오래 떨어져 있던 탓에 아내나 아이들과의 관계 적응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사실 아직도 가족들과 관계가 원만치 않다’는 정수 씨의 귓속말 때문에 더 자세히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결국 이주노동으로 인한 오랜 헤어짐이 가족들과의 관계를 약화시키거나 병들게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참으로 마음 아픈 현실이었다. 자정이 다 되어갈 무렵, 식당을 나온 우리들은 이틀 후 다시 만나기로 하고 호텔 앞에서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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