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0일

늦잠 잘 만도 하건만 아침 6시 30분에 눈이 떠졌다. 샤워를 한 후 호텔 앞 길 건너편 공원으로 향했다. 이젠 제법 길을 잘 건너는 나 자신을 보고 흠칫 놀랐다. 처음엔 쉴 새 없이 오가는 오토바이를 뚫고 길 건널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벌써 적응했나?’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체육수업을 받는 학생들, 이 곳 학교에는 운동장이 없기 때문에 보통 공원 등지에서 체육을 한단다.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들, 기체조를 하는 젊은 여성, 요가 비슷한 걸 하고 있는 노인, 우두커니 앉아있는 할머니, 신문 팔러나온 아주머니, 손님을 기다리는 시클로와 오토바이 운전수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공원을 채우고 있었다. 가볍게 체조를 하며 나도 잠시 그들 속에서 공원의 일부분이 되었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아침식사를 한 뒤 잠시 남베트남 정권시대의 대통령 관저였던 ‘통일궁’을 들렀던 우리는 당시 남베트남 정권과 미군에 대항해 싸웠던 베트콩들의 지하요새, ‘꾸찌 터널’로 향했다. 가는 도중 대리석으로 보이는 돌로 만든 무덤을 보고 가이드에게 베트남 장례문화에 대해 묻자, “대체로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주로 절에서 장례를 치르며 3일장이다. 대부분 매장하고 있지만 조금씩 화장도 늘고 있다”고 한다. 연이어 건물 모양이 특이(전면부가 좁고 측면부가 긴 모양)한 이유에 대해 묻자,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 최대한 빨리, 그리고 많은 집을 짓기 위해 러시아 공법을 선택했기 때문. 저 공법을 사용하면 매우 빨리 집을 지을 수 있으며, 같은 면적이라도 좀 더 많은 집을 지을 수 있다. 대신 높이에는 제한을 두지 않기 때문에 천정이 매우 높으며, 이는 통풍에도 도움을 준다”고 설명해주었다. 건축업자다운 명쾌한 설명이었다.

꾸찌에 도착하니 어느새 오후 1시 40분. 15분 정도 비디오를 시청한 후 지하땅굴로 향했다. 가는 도중 갑자기 안내원이 멈춰서서 발로 나뭇잎을 쓸어냈다. “아하!” 전쟁 당시 베트콩들이 드나들었던 지하세계 입구가 나타났다. 눈짐작으로 보건대 가로 약 30~35cm, 세로 약 20~25cm 정도의 크기! ‘과연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다. 그러자 마치 보란 듯이 안내원이 그 속으로 사라졌다 이내 모습을 드러낸다.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들어가 보겠느냐?”고 손짓으로 묻기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와 허 팀장이 차례로 그 입구에 들어가보았다. 세상에... 좁아도 정말이지 너무 좁았다.



 
( 나무밑둥에 보이는 작은 구멍이 환기구 )

낑낑거리며 입구를 빠져나온 우리는 갖가지 함정을 재현해놓은 전시장을 지나 드디어 동굴로 들어섰다(이 동굴 입구와 내부는 관광객들을 위해 넓혀 놓았다고 한다). 큰 기대와 궁금증을 갖고 들어섰건만 막상 동굴 내부에 들어선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좁은 건 둘째 치고 너무 어두웠다. 겁이 날 정도였다. 그래도 어쩌랴! ‘찍새’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보이지도 않는 어둠을 향해 셔터를 눌러댔다. 그렇게 5초나 지났을까? 안내원과 허성환 팀장이 이미 멀어져있었다. ‘헉! 이런….’ 큰 소리로 앞 사람을 불러댔다. “성환 씨, 어디 있어요? 같이 가요. 성환 씨” “조금만 더 오세요. 조금만요” 잠시 뒤 허 팀장이 손에 잡히자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잠시 뒤 동굴을 빠져나와 “후아 후아” 심호흡을 하고 있으려니 가이드가 묻는다. “요번 거는 맛보기였고 진짜는 이번인데, 들어가겠느냐?” 순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언제 또 들어가 보랴…’ “가 보겠습니다” 용감하게 대답하고 두 번째 동굴을 들어섰다. 약 7~8분 뒤 동굴을 빠져나와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온 몸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숨이 계속 차올랐다. ‘겨우 10여 분간 잠시 지나온 것도 이 정도로 힘든데, 10여 년간 살면서 목숨 걸고 싸워야 했던 베트콩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독립과 자유를 위한 베트콩들의 강인하고 끈질긴 집념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가이드의 설명에 위하면 이 곳의 지질은 석회층이기 때문에 파기는 쉽지만 공기에 노출되면 단단히 굳는 성질을 지녔다고 한다. 동굴을 파는 데는 그야말로 최적지였던 것이다.





오후 1시경 점심식사를 마치고 호치민 공항으로 향하는 길, 가이드와의 마지막 대화가 이어졌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학생들을 가리키며 “베트남의 교육수준이나 환경은 어떠하냐”고 질문을 던지자, “베트남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문맹률이 매우 낮다. 배워야 산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다. 직장인들도 일과를 마친 후 야간대학에 다니거나 학원에 영어 등을 배우러 다닌다. 더운 나라여서 사람들이 게으를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매우 근면하다. 베트남 사람들의 장점을 3가지 꼽자면 첫째 근면성실하다는 것, 둘째 예의범절을 중시한다는 것, 셋째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기술과 자금만 부족할 뿐 지하자원과 풍부한 인력을 비롯해 이 나라가 가진 잠재력은 매우 크다. 향후 우리나라가 파트너쉽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할 나라이다.
사실 우리 교민들 가운데는 베트남 가정부나 운전수들을 우습게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선 안 된다. 교민들의 행동이 민간외교 아닌가?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며 장시간 열변을 토했다. “정말 중요한 말씀이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인노동자들을 마치 하인처럼 함부로 대하는 걸 본다. 말도 얼마나 함부로 하는지 모른다. 말은 못 알아들을지 몰라도 말투와 행동으로 다 느낄 수 있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교만해졌는지 모르겠다...”고 공감을 표한 후 “베트남 경제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 부정부패와 빈부격차라고 하는데, 이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느냐”고 물었다.
가이드는 즉각 “그건 바로 구조적 취약성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나라도 60~70년대 공무원들은 형편없는 처우에 놓여있었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국가재정이 열악하다 보니 베트남 공무원들의 월급수준이 사실 형편없다. 그러다 보니 생활을 위해 부정부패를 저지르지 않을 수 없다. 가령 이 나라는 속도위반에 대한 벌금이 매우 무겁다. 하지만 걸리면 대개 뇌물로 무마하는 게 보통이다. 빈부격차도 농업이 80%를 차지하고 있는 산업구조의 취약성 탓이 아닐까 싶다”고 답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호치민 공항에 다다랐다.
재빨리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이 곳 한국영사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가이드는 한숨을 내쉬며 “속된 말로 폼만 잡으려고 하지 실제로 교민을 위해 일하려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무능하다”며 짧고 굵게 질타했다. 타국살이에 응당 설움과 어려움이 많았을 터, 우리 정부가 얼마나 교민들의 고충에 귀를 기울이는 있는지 궁금한 마음에 던져본 질문이었다.

호치민 공항에 도착한 건 오후 3시 10분.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해 주셔서 고맙다.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끝으로 가이드와 헤어진 후, 오후 5시 하노이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트랙백 주소 :: http://www.daumfoundation.org/new/contents/news/trackback/385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