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8일 오전 11시 30분경, 급히 호텔로 돌아갔다. 시내에서 가까운 호텔로 옮기게 된 것이다. 오후 1시 호치민 교외에 위치한 한국의 해외투자기업을 방문하기로 약속한 탓에 시간이 없어 점심은 대충 과자로 때워야 했다. 시내를 빠져나가는 길, 베트남 생활 13년차인 가이드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베트남에서 가장 싼 건 임금이다. 농산물 값도 싸다. 길거리 음식의 경우 1달러면 2명이 먹을 수 있다. 의류나 모자 등도 매우 싸다. 그러나 나머지 물가는 한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비싸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나 자신의 경우 1달 고정생활비가 3,000~4,000달러 정도 든다. 안 믿으실지 모르지만, 월세와 학비, 학원비, 식생활비, 고용인 급료 등을 충당하자면 그 정도 드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한 가지 직업만 가져선 살 수 없고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해야 한다. 베트남 서민의 경우에는 1달 생활비가 집세, 식비 등을 합쳐 최소 약 100달러 정도 필요하다. 그런데 제조업체 여공들의 임금이 약 60~70달러 정도다. 그러니 싸구려 자취방에서 3~4명씩 함께 생활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 그렇게 빠듯한 살림살이 속에서 오토바이들은 어떻게 산 거냐?” “3,000불 정도 하던 오토바이 가격이 최근 중국산 수입으로 600~700달러로 떨어졌다. 그래도 큰 돈임에는 틀림없다. 내 생각엔 개방정책 이후 지하에 묻어놓았던 돈들을 슬금슬금 꺼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보트피플, 이주노동 등으로 해외에 나가있는 이들로부터 송금된 돈으로 구매하는 것 같다. 어쨌거나 이 곳은 대중교통이 열악하기 때문에 오토바이는 필수적이다. 오토바이 없는 남자는 여자들이 쳐다보지도 않는 게 현실이다.” 간간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호치민 교외에 위치한 「ASTRO (SAIGON) Co.,LTD」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30분경. 영화배우 뺨치게 잘생긴 한국인 지사장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정광민(?)(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사장! 13년째 베트남에 살고 계시단다. 이 회사가 만드는 키플링 캐주얼백이 꽤 유명한 모양이었다. 서울에 있는 키플링코리아는 사무실만 가지고 있을 뿐, 제조는 모두 여기서 이루어지며 전량 수출한다고 했다. 시간이 없어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여러 가지 현지 사정을 접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질문 1. 인근에 한국기업이 얼마나 있는가? / 호치민 주변에는 외국투자기업이 매우 많은데 이 중 한국기업은 약 600개 정도이며 대부분 노동집약산업이다. 하노이 쪽은 중공업 분야가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질문 2. 회사 근무조건은 어떤가? / 80년대 초반 한국의 봉제공장에서는 근무환경이 열악했을 뿐 아니라 구타 등도 심심찮게 일어났었다. 거기에 비하면 이 곳은 노동의 천국에 가까울 정도로 근무환경이나 복지후생 등이 뛰어나다. 특히 외국기업의 경우 정부의 규제가 상대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물론 초기에는 극소수 한국기업에서 사소한 구타 등의 문제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대체로 외국기업들은 임금이나 근무환경이 뛰어나다. 우리 회사의 경우 7시 30분에 출근해서 오후 4시 30분까지 7시간 30분(식사 시간 1시간, 오전 오후 휴식 15분씩) 정도 일하는데, 기본급은 45불에서 숙련도에 따라 100불까지 지급한다. 잔업도 있으나 주 60시간을 넘길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당부 드리고 싶은 점은 이곳의 근로조건을 임금비교만으로 단순히 평가하면 안 된다는 것. 노동조건이나 근로환경, 복지후생 등에서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질문 3. 베트남 노동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 한국인들보다 우수한 이들이 있다. 사무실 근로자의 80%가 현장에서 뽑아올 정도로 똑똑하다. 문제는 사용자들이 그들의 능력을 제대로 개발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의 노동의 질이 높다. 남자들은 소위 의리가 부족한 반면에 여자들은 섬세한데다 의지도 강하다. 처음에는 책임회피 경향이 강했지만 점차 책임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질문 4. 입사경쟁이 심할 것 같다? / 그렇지 않다. 오는 대로 받는다. 오히려 인력 구하기가 어렵고 올해 초부터 인력난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인구에 대비해 외국기업 등 기업의 수가 많기 때문이다. 복지수준이나 임금수준이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볼 때 반경 200Km 정도 떨어진 시골로의 이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질문 5. 혹시 스트라이크가 있는가? / 있지만 심각하지는 않다. 대개 식사에 대한 불만이나 잔업에 대한 불만 등이며 스트라이크의 형태는 주로 태업이다. 질문 6. 한국기업에 대한 이미지는 어떻다고 보는가? / 좋지 않다고 본다. 인력개발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저임금을 목적으로 한 이전투자였던지라 현지인들에게는 임금착취를 위한 투자로 비춰지고 있다. 한편 일본기업의 경우는 단호히 자르긴 하지만 평상시에는 다독이는 한편, 한국기업의 경우는 자르진 않지만 속된 말로 갈구기 때문에 인심을 얻기 어려운 스타일이다. 질문 7. 내수를 위한 투자기업도 있는가? / 98%가 수출을 위한 투자기업이다. 내수를 위한 기업은 2% 미만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물론 대우 자동차의 경우는 베트남을 비롯한 인도차이나 반도 진출의 교두보 마련을 위한 투자였지만, 아직은 베트남의 GNP 자체가 매우 낮기 때문에 내수를 위한 투자는 힘든 게 사실이다. 호치민은 이미 98년도에 1,000불을 넘어섰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GNP는 500불 정도이다. 내수확대의 기점은 전체 1,000불 정도에 이를 때라고 예상한다. 다만 부동산 투자개발은 붐이 일고 있다. 외국인이나 내국인 상류층을 겨냥한 건축이 많다. 중국에 투자했던 자금들이 베트남으로 넘어오는 경우도 많다. 중국은 외국기업 등을 단시간에 망하게 하는 스타일이라면, 베트남은 야곰야곰 빼먹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좀도둑은 있어도 대도는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질문 8. 노무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 현지인 관리자들을 이용한다. 우리 회사의 경우는 현지인 관리팀과 이사회까지 구성되어 있다. 물론 최종결정은 대표인 내가 하지만 대개 현지인 이사회의 결정을 존중한다. 사실 베트남인들은 매우 합리적인 사고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협의를 통해 합리적인 노무관리가 가능하다. 초기 한국기업이 노무관리에 실패했던 이유는 독단적으로 끌고 가려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마친 후 잠깐 공장을 둘러보았는데 작업공간이 매우 넓고 쾌적한 것에 내심 놀랄 정도였다. 견학을 마친 후 사장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서둘러 차에 올랐다. ![]() ![]() 호치민에 있는 전쟁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최근 베트남 정부는 노동집약이 아닌 기술집약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러나 한국기업은 대개 봉제산업일 뿐... 일본은 국가적 차원에서 기술산업 분야 기업투자를 지원하고 있다. 상호간 관세가 매우 낮거나 아예 없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이다. 대우도 바로 이것을 노리고 투자한 것이다. 중국보다는 투자환경이 매우 좋은 편”이라는 가이드의 부연설명이 곁들여졌다. 전쟁박물관에 도착한 건 오후 3시 20분경. 월남전 참전군인 혹은 직계가족 등 미국인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고 했다. 참혹했던 월남전 당시의 광경을 사진과 모형 등으로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후유장애로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후대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전시되고 있어, 견학 내내 가슴 한 구석이 아프게 저려왔다. ![]() ![]() ![]() ![]() 오후 5시 30분. 호치민 중심거리에 자리한 호텔에 여장을 푼 우리 일행은 피곤함도 잊은 채 근처 벤탄시장으로 나들이를 나갔다. 각종 수공예품과 옷, 가방, 과일, 신발 등이 즐비한 벤탄시장은 미로처럼 복잡했다. 그러나 그 안에 펼쳐진 시장상인들과 손님들의 활기찬 모습은 보기만 해도 흥겨웠다. ![]() ![]() 약 1시간 가량 시장구경을 마친 우리 일행은 여경순 선생님의 소개로 호치민국립대학 사회인문과학부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는 김병식 교수님을 만났다. 김 교수님은 정말 친화력이 대단한 분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교수라고 하면 왠지 거리감을 갖게 마련인데, 이 분은 특유의 유머와 꾸밈없는 행동으로 모두를 편안하게 만들 줄 아는 멋진 분이었다. ![]() ![]() “꼭 대접하고 싶다”며 호치민에서 제일 좋은 레스토랑으로 안내해주신 교수님은 호치민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상황을 간략히 소개해주었다. “호치민 거주한인들은 약 2만명인데, 이 중 15%가 주재원이나 자영업투자자들이고, 나머지 중 상당수는 일종의 탈출구로써 이곳에 거주”하고 있단다. 한편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다문화가정(국제결혼가정) 문제가 나오자, 김 교수님은 “한국인과 결혼하려는 여성들에게 한국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함과 동시에, 결혼대행업체를 영사관이나 학회 등을 통해 철저히 인증한 후 허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베트남은 가족주의, 형제애, 효도 등 우리나라와 문화적으로 유사한 측면이 많아 시골 사람들만이 아니라 소수민족들까지도 한국으로 시집가려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에 알려진 대로 베트남 여성들이 순종적인 스타일이라는 인식은 큰 오해임을 강조하셨다. 베트남은 모계사회 경향이 짙으며 이혼율도 미국에 육박할 정도라는 것이다. “종종 베트남에 온 한국인이 베트남 여성과 결혼해서 사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인 남편이 꼼짝 못한다”면서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만 보더라도 여성들은 괜찮지만 남성들은 대개 초라한 행색이지 않으냐?”며 웃으신다. 혹시 한국에서 이주노동을 마치고 귀환한 이들이 대개 무슨 일을 하는지 아시느냐고 물었더니 “보통 서비스 업종, 가령 호텔이나 레스토랑 종업원 등에 근무하며, 일부는 한국기업의 통역자로도 일하는 걸로 안다. 어쨌거나 이주노동에서 귀환한 이들의 모습이 향후 이민자들의 질을 좌우하기 때문에 그들의 귀환이 성공적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한편 한국 다녀온 사람들이 한국 좋다고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이셨다. 연이어 “향후 베트남에서 전망이 밝은 분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최근 베트남 투자업종이 기계부품제작 등의 경중공업 분야로 바뀌고 있다”면서 “실제 베트남은 석유와 지하자원, 천연자연환경, 인력 등 모든 것이 풍부하다. 국가 전체적으로 8%에 가까운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고 호치민의 경우는 17%에 달하고 있다. 다만 부정부패와 빈부격차가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하였다. 한편 김 교수님은 한국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관심은 매우 높아지고 있는 데 비해, 영사관조차 한국문화를 알리는 문화원을 설립한다거나 언어를 가르칠 수 있는 정규교육 과정을 마련하지 않고 있어, 결국 무자격 학원들만 우후죽순 격으로 늘고 있다며 한탄하셨다. 그렇게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둘째날 밤이 깊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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