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아침에 눈을 떠보니 하늘이 잔뜩 찌푸려있었다. 3천여개의 섬들이 모여 천혜의 절경을 이루고 있다는 하롱베이 유람을 앞두고 이게 웬 하늘의 심술이란 말인가…. 유람선 타러 가는 길, 아예 비까지 쏟아졌다. 하지만 참 절경은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절경이 아니겠는가. 나름대로의 운치와 멋을 즐기기로 마음을 바꿔먹고 유람선에 올랐다. 과연 ‘동양의 3대 절경 중 하나’라는 하롱베이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우리나라 절경지 중 하나인 거제도에서 2년간 살면서 눈이 상당히 높아진 터였으나, 하롱베이의 아름다움 앞에서는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몇날 며칠 둘러봐도 다 볼 수 없다는 하롱베이를 겨우 4시간 정도 둘러본 우리는 오후 1시 30분 경 하노이로 향했다. 하노이까지는 약 4시간!

물소를 끌고 가는 농부, 논에서 잡초나 해충들을 잡아먹으며 놀고 있는 오리들, 길 옆 언덕에서 풀을 뜯어먹는 황소들, 주유하는 동안 바람쐬러 나온 우리들에게 손을 흔들어대는 천진난만한 아이들, 가래같이 생긴 농기구로 연신 논물을 퍼내며 일하는 농부들, 공터에서 공을 차며 노는 아이들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가이드의 이런저런 이야기도 계속 이어졌다. 베트남의 가장 큰 명절은 ‘설날’(음력)이고 ‘추석’(음력)은 어린이 축제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7월 15일(음력)에는 우리나라 ‘칠월칠석’과 같은 축제가 열리고 이외에도 여러 지역축제가 있다는 이야기, 농업 국가이기 때문에 도로 주행 중 소가 지나가면 차가 서주어야 한다는 이야기, 베트남인들은 살 타는 것도 싫어하고 살을 보여주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토지 소유권은 국가에게 있으나 사용권은 사고 팔 수 있으며 사용권 한도가 50년이지만 연장도 가능하다는 이야기, 국가가 쌀을 거의 수매하는데다 물가를 많이 통제하기 때문에 생필품 가격은 잘 오르지 않지만 서비스업의 경우는 통제가 힘들다보니 물가가 높을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서비스업에 종사하려고 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이야기, 아파트나 빌라의 매매는 외관 건축만 마무리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며 내장은 집주인이 직접 고르고 꾸며서 마감한다는 이야기, 하롱베이에서 하노이로 가는 길에 있는 ‘박리’라는 도시는 베트남 전통가요의 고장이며, 사람으로 장기를 두는 축제로도 유명하다는 이야기, 고려 고종 13년(1226년) 베트남에서 쫓겨나 3,600여km를 헤매다 서해안 옹진반도의 화산에 뿌리를 내린 후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된 이용상이 바로 베트남 왕자였으며 이 때문에 화산 이씨는 베트남에 오면 내국인 대접을 받는다는 이야기...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4시간을 달려 5시 20분경 호텔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여장을 풀고 하노이 시내에 있는 또 다른 오리지널 평민식당을 찾아 식사를 즐긴 후, 호안끼엠 호수로 향했다. 정수 씨와 저녁 8시에 만나기로 약속한 터였다.

오토바이와 차량,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북적이는 거리였지만 운 좋게도 우리 일행은 정수 씨를 금방 발견했다. 선남 씨는 일이 바빠서 나오지 못했고, 대신 귀국한 지 얼마 안 되는 녹광 씨와 러이 씨가 함께 나와 있었다. 녹광 씨는 그새 턱수염을 길러 하마터면 못 알아볼 만큼 변해있었다. “신짜우, 잘 지냈습니까? 언제 그렇게 수염을 길렀어요? 못 알아볼 뻔 했잖아요. 멋진데요” 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눈 우리들은, 호안끼엠 호수 야경을 즐기기 위해 오토바이 택시 등을 불러타고 호숫가를 2바퀴 돈 뒤 2층에 있는 작은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녹광 씨는 한국에서 약 5년 동안 일했으며, 러이 씨는 근 4년 정도 일하다가 지난 8월에 함께 귀국한 친구들이다. 두 사람 모두 아직 일자리를 잡지 못했으며, 녹광 씨는 자기 집을 짓는 중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돌아와 보니 고향이 너무 많이 변해있어서 어리둥절했단다. 아직 총각인 러이 씨는 “빨리 결혼해야죠?” 라는 질문에 웃음으로 답했고, 아이가 2명인 녹광 씨는 다행히 가족과 잘 적응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오토바이로 호텔까지 바래다 준 친구들에게 “이제는 여기에서 자리 잡고 열심히 행복하게 사시라”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헤어졌다. 시계는 벌써 밤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왼쪽 두 번째가 녹광, 오른쪽 두 번째가 러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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