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12일(토) <섬처녀, 또 섬에 가다!!>
어젯밤에 살짜기 내리던 비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굵은 장대비로 내렸다.
우울한 아침을 맞이 한 나는 사실 하롱베이 투어가 내키지는 않았다.
큰 섬(제주) 바닷가 마을에서 자란 내가 또 섬으로 가야한다는
사실에 은근슬쩍 연수일정에 하롱베이를 뺏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 ^^*
그러나 나와 달리 기대감으로 바다를 바라볼 일행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함께 따라 나섰다.
하룻동안 전세 낸 유람선을 타고 출발하니,
빗방울을 맞으며 쪽배로 과일을 파는 어린 행상들이 보인다.
달리는 유람선을 끝까지 쫓아오며 과일을 파는 아이의 강매를
거절못한 누군가가 과일을 샀다.
비를 맞으며 띠엔궁(天宮)이라는 석회동굴로 갔다.
동굴 입구로 가니 온갖 색깔의 조명기구가 굴 여기저기를 비추고 있어 신비함이 더 커진다.
석회수가 흘러 내리다가 굳은 종유석,
동물 모양의 종유석,
맑은 샘물을 이룬 조그만 석회연못,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종유석 천장이 기이하고 아름다웠다.
제주의 용암동굴인 만장굴과는 다른 느낌이다.
베트남인들의 삶을 석회동굴에 빗댄다면, 제주인의 투박한 삶은 현무암질 만장굴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거친 땅에서 온 제주인이 하롱베이 천궁(띠엔궁)에 서니,
오묘한 조화가 일어나는 것 같다.
천궁(띠엔궁)을 나오니 비가 더 거세진다.
배를 타고 하롱만의 3000여개의 섬 중에 주로 여행객들이 다니는 몇개의 섬 주위로 유람을 갔다.
완만한 섬의 능선과 기이한 섬의 모습에 딴 세상에 온 듯하다.
'용이 내려온 곳'이란 뜻으로 지은 '하롱'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곳이다.
유람선이 지나가는 곳곳에 어시장도 보이고 야채와 과일을 파는 행상도 보인다.
한국에서 비싸다는 다금바리가 이곳에선 2만원~3만원선에서 먹는단다. 입맛이 돌지만, 선상에서 떠주는 회를 먹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점심식사후에 졸음으로 몰려온다.
체면불구하고 1시간여를 의자에 누워자니 벌써 하롱만이란다.
마지막으로 배 갑판에 올라 타이타닉에 나온 여자주인공(케이트윈슬렛)이 갑판에서 양손을 벌리고 정면의 바람을 맞던 장면을 흉내내 보았다.
디카프리오 같은 남자가 내 뒤에 든든하게 지켜주는 것같은 착각을 하면서.....
북동부 지역인 하롱베이에서 하노이로 가는 길에,
가이드는 박닝(Bac Nhin)이라는 전통가요가 유명한 지역을 소개해 주었다. 설이 끝난 후 한달정도 축제(전통씨름, 사람장기)를 하고 있기에 베트남인들의 정서와 전통문화를 알고자 한다면 그곳을 꼭 들리라는 말을 한다.
우리가 외국인들에게 민속촌을 소개하듯이 말이다.
하노이에 있는 동안, 운전을 담당해준 로이 아저씨의 권유에 따라 현지인들이 자주 애용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
이곳에 사는 한국인과 여행객을 자주 대하는 로이에게 한국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한국인들은 끼리끼리만 지낸다.
마음을 열고 베트남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살았으면 좋겠다. 당신들은 그들과 다른 것 같다. 우선 친절하고 우리 문화와 베트남사람들을 깊이 이해하려고 하는 것 같아 좋다" 라며 말했다.
로이아저씨의 관점으로 한국인의 이미지를 들으니,
이곳 한국인과 비슷한 양상으로 사는 한국내 영어권나라의 외국인들이 생각이 난다.
씁쓸했지만, 우리를 통해 다른 한국인을 경험한다는 로이아저씨의 말에 희망을 갖는다.
식사후, 호암끼엠 호수에서 10년간 한국에서 근로자로 있다가
베트남으로 들어온지 몇달 안된 정수씨와 그 친구들을 만났다.
고선생님이 계신 상담소에서 베트남리더로 있으면서 우여곡절을 함께 경험한 동지란다.
하노이에 도착한 첫날 호텔현관에서 두분이 얼싸안고 좋아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두 분은 떨어져 있는 게 싫은 지 오는 날부터 연속으로 죽장 만나고 있다. 끈끈한 정으로 희노애락을 함께 경험한 동지를 만나나 회포를 푸는 모습이 싫지 않다.
잔잔한 호수를 보며 호수옆 호프집에서 그들의 만남을 지켜보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러나, 장시간 한국에서 생활해오다 베트남현지에 와서 겪는 문화충격과 가족들과의 갈등은 들으면서 참 안타까웠다.
시간이 지나면 풀릴 일인가?....
돌아온 근로자들이 본국 생활에 정착하는 것을 돕고, 그들이 가진 고급 기술과 인적자원들을 활용하는 데 베트남 정부가 나섰으면 하는 아쉬움들이 있다.
돌아온 근로자들 중에는 현지 한국기업에 들어가 다시 일하는 분들도 있단다.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정수씨는 한국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정수씨를 보면 민간외교사절단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행 일정의 끝이 다가오나보다.
웬지 온 몸이 흐물흐물해진다.
여자들은 일찌감치 호프집에서 나왔다.
호숫가를 산책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너무 다정하게 서있는 연인들의 행태(?)를 보면,
'이곳이 사회주의 국가인가?'라는 의문점을 갖는다.
호치민에 도착한 첫날에 식당근처에 있는 공원에서 서로 밀착되어 끈적끈저하게 서로를 쳐다보던 연인들의 모습에 너무 당황했었는데, 하노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부러워서 그런가보다.
이미 젊은이들에게는 선열들이 피값으로 지켜낸 사상보다
자기의 감정에 충실한 각자의 욕구가 중요한 듯하다.
호암끼엠 호수의 달빛아래에서 하노이사람들을 바라보며,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밤을 나는 그렇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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