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수, 목요일 밤 10시가 되면 거리가 한산해지고 TV 홈쇼핑 매출이 떨어진다는 소리가 있다.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때문이다. 수 차례 실연을 당하고 뚱뚱하다고 구박을 받아도 자신의 직업에서만큼은 자부심이 대단한, 김.삼.순. ‘빠띠시에’라는 직업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녀를 보며 “삼순이가 되고 싶다”는 2~30대 여성의 지지가 빗발치고 있다. ‘김삼순 효과’는 김삼순의 조금은 특별한 직업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김삼순의 직업은 빠띠시에(patissier). ‘제과기술자’를 뜻하는 프랑스말이다. 국내에는 생소하지만 프랑스의 경우 식빵처럼 부푼 빵을 파는 블랑제리(boulangerie)와 케익, 파이를 파는 빠띠세리(patisserie)가 구분되어 있다. 여기서 빠띠세리를 담당하는 제과기술자를 빠띠시에라고 부른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그려지는 직업 ‘빠띠시에’,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동경제과학교를 졸업하고 현장 경력을 쌓으신 후 현재 인천여성복지관에서 제과제빵기술을 가르치고 있는 이백경씨에게 빠띠시에에 대한 궁금증을 여쭈어보았다.
 
삼식이와 데이트하는 빠띠시에?
 
김삼순은 우연히 만난 레스토랑 사장 현진헌(현빈 분)으로부터 계약연애를 하자는 제안을 받게 되고 어쩔 수 없는 데이트가 틈틈이 시작되는데……
실제 빠띠시에에게 업무 시간 중 데이트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침 근무라면 새벽 5시 반까지 출근은 기본이다. 일반 제과점의 경우 오전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근무하며, 작업인원이 적은 경우 밤 9시까지 일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간중간 짬은커녕 밥도 겨우 먹을 정도라고. 빠띠시에는 기술자들 사이에서는 여느 직종보다 고강도 육체노동에 견디기 힘든 3D 업종으로 통한다. 드라마 속의 김삼순은 주말마다 맞선을 보러 다니지만, 경력을 더 쌓아야 하는 그녀의 상황을 미루어볼 때 일주일 내내 쌓인 피로에 주말에는 나가떨어질 확률이 훨씬 높다는 얘기다. 업무 틈틈이 진헌과 눈빛을 교환하며 애정 행각을 벌이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르 꼬르동 블루’만 나오면 성공 보장?

드라마 속 김삼순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명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루’에서 유학한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특별한 경력 없이 지내다가 우연히 진헌의 눈에 띄어 강북 최대의 프렌치 레스토랑 ‘보나뻬띠’에 취직하게 되는데……
실제로는 ‘르 코르동 블루’를 수료했다는 사실만으로 큰 레스토랑에 취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빠띠시에 코스를 밟았으니 이제부터는 케익을 굽겠습니다’라는 시나리오는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르 코르동 블루’를 나오든 동경제과학교를 나오든 ‘싯따(보조으이 현장용어?)’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현장의 원칙이다. 프랑스나 일본에서 배운 기술이 국내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물론 유명 학교에서 유학하고 온 사람은 출세가 빠르다. 그러나 빠띠시에 코스를 밟았든 불랑제 코스를 밟았든 현장에 들어서면 누구나 빵의 기초부터 배워야 한다. 김삼순럼 경력이 적은 기술자라면 가장 덥고 힘든 오븐 파트부터 반죽, 빵 만드는 파트를 거쳐야만 케익 파트에 도달할 수 있다. 개인별 차이가 있겠지만 모든 파트를 거치는데 2~3년 정도가 걸린다. 말단 ‘싯따’로 취직되었다면 초봉 70만원은 각오해야 한다.



빠띠시에는 모두 뚱뚱하다?

 
김삼순은 통통한 몸집을 가졌다. 머리로는 살을 빼서 근사한 남자를 만나야지 생각하지만 입에서는 ‘라떼 하나 주세요, 시럽 듬뿍 넣구요’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김삼순 역을 맡은 김선아가 실제 몸무게를 7kg이나 늘려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달콤한 케익이나 파이와 가까이 하는 빠띠시에에게 살 찔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실제 빠띠시에 중에는 보통 사람과 비슷한 체격을 가졌거나 오히려 마른 편이 많다고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거운 밀가루 포대 같은 것을 계속 날라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한다는 것도 살 붙지 않게 만드는 요인이다.
 
 
빠띠시에 중에는 싱글 여성이 많다?

김삼순은 결혼하고 싶은 서른 살의 싱글이다. 매주말이면 맞선을 보거나 결혼정보회사를 찾아간다. 자기 일에 너무 몰두하느라 결혼을 못한 것으로 비춰지기도 하는데… 실제는 어떨까?
빠띠시에는 주중에 여가 시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빠띠시에라는 직업의 커다란 단점이기도 하다. 여가 시간을 낼 수 없기에 연애할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크리스마스나 어린이날처럼 남들 다 노는 휴일에도 빠띠시에는 쉴 수 없다. 일에 몰두하다 보면 결혼이 늦어질 수는 있겠지만 특별히 빠띠시에에게 싱글 여성이 많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빠띠시에에게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김삼순이 ‘보나뻬띠’에 취직하기 전 면접을 보러 다니다가 호텔 주방에서 빠띠시에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우리에게도 그런 동경이 있는 것은 아닐까? 빠띠시에... 이름도 멋지고 웬지 깨끗한 곳에서 근사하게 일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실제 빠띠시에들도 ‘요리사보다 멋진 직업’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못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여성 빠띠시에 중에는 하고 싶어서 시작한 사람이 특히 많다고 한다. 노동 강도는 높은 데 반해 돈도, 대우도 넉넉치 못하니 그럴 수 밖에. 국내 레스토랑 중에는 ‘보나뻬띠’처럼 전문 빠띠시에를 고용하는 곳이 드물다. 번듯한 호텔에 취직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1차적으로 선호되는 작업장에 취직하지 못하면 제과업체 체인의 공장이나 크고 작은 제과점에 취직해야 한다. 의외로 일자리는 많지만 일이 힘들기 때문에 이직률이 높은 편이다. 취직하고 2~3년은 나 죽었다 생각해야 하는데 요즘에는 그런 젊은이를 보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르 코르동 블루’의 빠띠시에 코스를 밟은 김삼순의 경우 케익전문점을 내는 것 역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저도 잠깐 케이크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만, 아쉽게도 전 삼순이만큼 솜씨가 없었어요. 만들어 봤던 케이크는 울퉁불퉁했고, 쿠키는 이빨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 딱딱했거든요. 김삼순을 생각하기 시작한 그 때, 제겐 달콤함이 너무 필요했고, 그걸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제 생각에 빠띠시에였어요."<내 이름은 김삼순>의 원작자 지수현씨는 삼순의 직업으로 빠띠시에를 택한 이유에 대해 이처럼 말했다.
케익처럼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면서도 된장찌개스러운 털털함을 보여주는 김삼순. 웬만한 것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요즘 2~30대 여성에게 ‘삼순이’가 전폭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데는 드라마 속 리얼리티가 한 몫 했을 것이다. 김윤철 PD는 드라마를 만들면서 ‘일상의 디테일’을 무엇보다 중시한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우려가 드는 부분이다. 녹녹치 않은 삼십대라지만, 그 유명하다는 ‘르 코르동 블루’를 나왔다지만 직업인 삼순에게도 예상치 못한 난관과 어려움이 많았으리라. 전문직업으로서의 빠띠시에를 굉장히 홍보하면서도 직업의 현실을 디테일하게 그려내지 못하는 부분이 아쉽다. 슥슥 묘사해버리는 모양새가 요 몇 년 새 디자이너, 기자, 아나운서 등 유행처럼 번진 드라마 여주인공들의 직업군 묘사의 전철을 닮았다. 액세서리로서의 직업을 가진 여주인공들 틈에서 직업인 삼순이 더욱 ‘리얼’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그래서 힘 빠진 대한민국의 일하는 언니, 동생들에게 잔뜩 힘을 주는 캐릭터로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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