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처음 만나게 된 지난 3 월 29 일이었습니다 .

열명 남짓한 아이들의 사뭇 진지한 표정과 함께 첫 수업이 진행되었고 제가 진행하는 영상 수업에 빠지지 않는 < 사진 읽기 그리고 말하기 > 는 아무런 차질 없이 마무리 되었죠 .

지나고 생각해 보니 . 몇몇 아이들은 다른 교육 대상자들 ( 또래의 아이들을 포함한 모든 연령대의 ) 과는 확연하게 차별되는 재미있는 상상력과 그에 못지않은 이야기 마무리 능력을 가진 것 같더군요 .

모든 게 계획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 나름 큰 시련이 바로 다음 시간에 닥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2 차시 수업 때 아이들이 보여준 건 ‘ 집중력 없음 ' ‘ 간혹 예의도 없음 ' ‘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음 ' 이었고 다시 돌아보니 딱딱한 수업 내용 , 아이들과의 소통 부족 , 그리고 교사의 이해력 결핍 등 자책으로 연결되었습니다 .

아이들이 특별히 관심을 보였던 수업이 있습니다 .

첫번째 . 지정된 음악을 몇번씩 듣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수업은 그 전과는 다르게 뛰어난 집중력을 유지한 채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 다들 재미있어 하고 가끔은 다른 이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기도 하더군요 . 만들어 낸 이야기의 앞뒤가 맞지 않고 지나치게 엉뚱하거나 비관적이란 사실은 접어 놓고 일단은 아이들이 < 움직였다 > 라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



무엇이 아이들을 움직이게 했을까 ?

두번째 . 수업 당시의 기분을 몇개의 단어로 표현하도록 하고 합의된 하나의 재료 ( 그날 수업에서는 파란색의 커다란 휴지통이 쓰였습니다 ) 를 앞에 두고 디지털 카메라로 10 컷의 사진을 찍도록 했습니다 .( 여기까지는 모두들 열심히 따라왔지만 그 다음부터는 그리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 사실 , 30 분 쯤 지난 뒤에 둘러보니 수업 참여 학생 절반이 밖으로 나갔더군요 .) 자신이 찍은 사진과 써 놓은 단어들을 조합한 후 감정에 따라 이미지를 재해석하게 하려는 의도였지만 흐름이 끊기는 바람에 더 이상의 수업 진행은 무리였습니다 .


자신의 이야기 . < 나의 상상력 > 에 대하여 말하기는 좋아하지만 . 그것들을 조합하거나 < 설명 > 하게 하려는 의도가 매번 실패한걸 보면 디딤돌 아이들은 < 복잡한 건 싫어한다 > 라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듯 합니다 .

일반 공교육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 일단 수업은 진행 되어야 한다 > 라는 개념이 약한 반면 , 우리 디딤돌 아이들은 < 재미 >, < 볼꺼리 >, < 해볼만한 만만한 것 > 들은 ‘ 이건 일도 아니야 ' 라며 뚝딱 해치워 냅니다 . 그것도 아주 흥겹게 말이죠 .

하지만 매 수업마다 연결성을 갖지 못하고 단지 일회성의 재미만을 준다면 그것 또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매번 체험식 수업을 들여오고 보고 , 만들고 , 웃고 즐기는 것 보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 가져갈 > 무엇이 필요한 상황이었죠 . 미디어 수업 ( 사진이든 영상이든 아니면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라도 ) 을 향한 지속적인 관심과 그것으로 시작해서 어찌 되었든 하나의 결과물을 볼 수 있는 것 , < 난 좀 특별해 > 라고 심어 줄 만한 그것이 필요했습니다 .

얼마 뒤에는 유스보이스센터 임대 장비가 들어 오는 상황이었고 재단측에서는 < 장비관리규정 > 을 만들어 달라고 하시더군요 .

문득 , 임대한 장비를 관리 / 감독 하는 규정이 아니라 우리 디딤돌학교에서 유스보이스센터 장비가 갖게 되는 그 특별함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 장비관리규정 > 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디딤돌 아이들에게 설명했습니다 . ‘ 고마우신 분들이 ... 고급 장비를 대여해 주었고 그 장비를 3 년간 잘 사용하게 되면 ( 관리를 잘 한다기 보다 자주 , 유용한 곳에 쓴다는 의미에서 ) 천만원대의 장비들이 디딤돌 학교 소유가 된다 ' ‘ 너희들이 잘 하면 후배들 또한 좋은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 라고 말이죠 . 예상보다 뜨거웠던 호응은 < 계단시험 > 에 통과한 사람만이 자유롭게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는 설명 이후에는 엄청난 환호로 바뀌더군요 :)

일종의 장비 사용 자격 시험인 < 계단시험 > 은 ...

1) < 디딤돌 > 이라는 학교 이름과 관련하여 ....

2) 한 계단 한 계단 차근차근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보편적 진리를 투영해서 만든 이름입니다 .

3) 한 계단 / 열 한 계단 / 오오 계단 / 구구 계단 이렇게 네개로 구분했고 각각의 계단 마다 장비를 빌리거나 사용할 수 있는 정도가 틀립니다 .

4) < 계단시험 > 을 볼 수 있는 자격은 ... 각 계단 시험 직전까지 수업의 80 퍼센트 이상을 참석해야 하며 묻고 쓰는 시험 보다는 자유롭게 창조하고 그것을 설명하려고 하는 노력을 평가의 기준으로 봅니다 . 물론 그 안에는 장치 사용 능력을 평가하는 항목도 빼놓을 수 없구요 .

이렇게 만들어진 규정과 시험에 대한 이야기는 금새 아이들의 분위기를 바꿔 놓더군요 . 예를 들면 . < 계단시험 > 발표 후 첫 수업에서 잠시 이야기 해주었던 < 화소 -pixel>. 최모군은 계산기까지 두드려가며 화소 계산을 하고 . 김모군은 처음으로 ( 적어도 제 수업 시간중에는 ) 메모를 했고 다음 수업 때 , 얼마나 외웠던지 화소의 의미 그리고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기계적인 수치들까지 줄줄 외우더군요 ,

작은 발상 전환이 . 큰 변화로 다가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 감격스럽기까지 하더군요 .

계획되었던 모든 장비들이 학교에 들어왔고 두 대의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

< 보자 . 그리고 말걸자 >

디딤돌 학교는 지저분 합니다 . 없는 것이 많아 텅텅 비어지만 그 와중에도 참 지저분 합니다 . 어쩌면 그 지저분함 속에서 < 역사 > 를 읽어 낼 법도 하지만 그럴 여지 없이 그냥 지저분 합니다 . 제가 내린 결론은 . 우리 디딤돌인들은 < 둘러보기 > 에 익숙치 않다는 겁니다 . 내가 생활하는 공간 - 그것이 집이든 학교든 -. 마주하고 있는 여러 현실들 . 그리고 사람들 . 

수정구 태평동 모숯불갈비 2 층 . 80 여평의 디딤돌학교에 몇개월씩 드나들었지만 . 지난 미술 시간에 썼던 재료들 조차 치울 생각이 없습니다 . 끔찍한 또는 알뜰한 개인사는 있지만 기억의 교집합이 가능한 공간에 대한 역사는 희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래서 선택한 수업이 . < 놀이도구 > 인 카메라를 주고 이곳저곳 < 다시 볼 수 >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 일곱장의 사진을 찍고 이야기 만들어 보기 > 수업입니다 .



단 두번의 수업으로는 부족한 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들은 어느새 사각형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 함께하는 공간 > 이 눈에 들어왔나 봅니다 . 어떤 구도로 찍었는지를 이야기 한다기 보다 왜 찍었는지 이때 이 사람은 어떤 일을 하고 있었고 어떤 반응을 보였으며 이 물건은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 작지만 아주 큰 변화가 생긴거죠 .

그리고 , 매 수업마다 한 사람 앞에 한 장 또는 두 장의 사진을 추천 받아 한달에 한번씩 인화하여 흰색 페인트로 마무리 되어 있는 학교 내벽에 붙이기로 했습니다 .

아이들과의 약속대로 지난 수업 동안 찍은 사진들과 김결이 6 개월 간 찍은 디딤돌 사진 103 장을 인화했습니다 . 하드보드지 몇 장과 벽에 붙일 수 있는 도구를 구입해서 < 사진벽 > 을 만들기로 한거죠 .,

하지만 사진만 붙어 있는 벽은 금새 일상으로 유턴하기 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 이것 역시 아이들의 자발적인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이야기 또는 꾸미기가 되어야 지속적인 작업을 할 수 있겠다는 결론이었습니다 .

본래 계획했던 순서대로라면 사진을 붙이게 될 디딤돌학교의 공간을 둘러보게 하고 그 공간을 이해하고 읽어내는 것이 우선이지만 서론이 길어지자 늘어지는 아이들의 반응 때문에 서둘러 이야기 구성 작업을 먼저 했습니다 . 103 장의 사진을 돌려 보고 각자 마음에 드는 ( 그것이 어떤 이유든 상관 없이 / 선택한 이유는 말해야 합니다 ) 사진 세 장을 고르고 펼쳐 놓은 하드보드지 위에 먼저 한 사람이 자신이 고른 사진 중 한 장을 내려 놓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 그리고 그 뒤에 붙일 수 있을만한 < 이야기 있는 사진 > 을 자기가 가진 사진 중에 선택해서 연결하는 거죠 . 21 장을 연결하는 아주 난이도 높은 구성이었지만 꽤 잘해나가는 아이들이 대견스럽더군요 ,



완성된 < 이야기벽지 > 를 붙이기 전 드디어 우리의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했다는 말 시작을 알렸습니다 . 다들 동감하는 분위기였고 사뭇 비장한 각오를 얼굴 가득 보여주기도 하더군요 :)

단순히 사진이 붙어 있는 벽이 될 뻔한 공간이 기억과 경험이 살아 있는 이야기 벽으로 살아나는 순간이었습니다 .

앞으로 많은 시간을 < 보다 , 말하다 > 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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