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에게 영화를 ‘들려주다’
화면해설 영화 만든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해마다 수십 편의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영화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대중문화 장르다. 물론 소리에 의지해 영화를 감상하기도 하지만 대사가 없이 음악만 흐르거나 화면으로만 보이는 장면에서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감수해야 한다.

이처럼 영화관람에 어려움을 겪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화면해설영화. 지난 1998년 설립 이래 시각장애인들의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해 온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관장 최동익)이 ‘다음세대재단’과 ‘CJ엔터테인먼트’사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다.

이번에 선보인 화면해설영화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마파도>, <살인의 추억>, <위대한 유산>, <태풍>, <우리 형>, <너는 내 운명>, <키다리아저씨>, <가발>, <내 남자의 로맨스>, <어깨동무>, <지구를 지켜라> 등 모두 12편. 한 장의 DVD에 모두 담겨 있다. 화면해설영화란 대사가 없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성우가 일일이 해설을 달아주는 것. 가령, 영화 속 배경이 지하철로 바뀌면 ‘지하철 안’이라는 설명과 함께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주인공에게 무관심한 승객들의 모습과 썰렁한 분위기까지 자세히 묘사한 내레이션이 흐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시작단계이지만 장애인복지가 발달된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일반화된 기법. 미국은 화면해설용 프로그램들만 모은 케이블 방송 채널이 따로 있을 정도다. 1990년대부터 화면해설영화를 선보인 일본 역시 지금은 국내영화 뿐 아니라 외국작품들까지 다양한 장르를 제작하고 있다.

화면해설영화 제작을 주관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의 한승진 복지사는 ‘그동안 시각장애인이 공식적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장애인 영화제 출품을 위해 별도로 만든 작품 정도였다’며, ‘일반 개봉영화는 저작권이나 음원 사용권 등의 문제 때문에 불법복제가 아니면 사실상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화면해설영화 제작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매우 반가운 소식’이라고 한다.

“그동안 화면해설영화를 만드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제작비용과 음원 사용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저희의 아이디어를 들은 ‘다음세대재단’이 소외계층에 대한 문화다양성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자금을 지원해 주었고, 음원 및 저작권 문제는 CJ엔터테인먼트의 도움으로 쉽게 해결이 되었어요. 물론 처음 하는 작업이라 여러 모로 힘들었지만 시각장애인들의 반응이 매우 좋아 보람을 느낍니다.”

화면해설영화 제작에 소요된 기간은 총 6개월. 지난해 말 기획을 끝내고 올 1월부터 실무 작업에 들어 가 7월 13일에 완성작을 내놓았다. 어려움도 많았다. 무엇보다 영화 장면에서 설명할 부분을 추려내 녹음한 뒤 다시 하나하나 편집을 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했다.

화면해설용 원고를 써 줄 작가와 읽어 줄 성우를 찾는 데만도 몇 달이 걸렸다. 한승진 복지사는 ‘다행히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며 수고료 한 푼 받지 않고 흔쾌히 나서 준 작가와 성우 분들, 그리고 여러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후반 작업이 수월하게 진행되었다’며 제작을 도와 준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이번에 만든 DVD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국의 복지관 및 기관 198곳에 배포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누어 드리지 못하는 대신 언제든지 화면해설영화를 들을 수 있는 웹 사이트를 오픈했습니다.”

‘앞으로는 영화 제작 단계에서부터 화면 해설이 들어가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것이 한승진 복지사를 포함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측의 바람. 올 하반기에는 또 다른 영화 12편이 담긴 DVD가 출시될 예정이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이 화면해설영화 출시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시청회에 참가했던 박세근 씨는 “화면해설영화 덕분에 영화에서 얻는 감동과 재미가 다른 때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라며, 특히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아주 재미있게 들었다고 했다.

“그동안 가끔 극장에서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대사가 없는 장면에서는 어떤 공간인지, 어떤 상황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참 답답했어요. 다음 장면하고도 연결이 잘 되지 않아 전체 흐름을 잡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죠. 화면해설영화는 성우의 해설 덕분에 그런 장면이 나올 때 상상을 할 수 있어 좋아요. 대강 어떤 그림인지 머릿속에 그릴 수 있기 때문에 영화를 이해하기도 쉬워졌어요.”

앞으로 영화를 자주 들을 것이라면서, ‘이제는 시각장애인들에게도 영화가 친숙한 문화생활이 될 것 같다’고 화면해설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자료제공 = 아산사회복지재단) [글 최선희 자유기고가/사진 이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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