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KJAKARTA, BAGUS SEKALI!!(족자카르타, 정말 좋아요!!)

2005. 11. 24.

5번글에 이어..

  이제 말리오보로 거리로 나갈 시간!! 사실 나는 그곳 이름 조차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남팀장님이 가르쳐 주셨다.ㅋㅋ 말리오보로 거리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그중에 제일 많았던 것은 바로 오토바이!!! 한국에 있을 때는 인도네시아에 이렇게 많이 오토바이가 있는줄 몰랐다. 오토바이가 많은 나라 하면 베트남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말리오보로 거리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티셔츠와 기념품들을 파는 조그마한 상점들이 즐비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를 일본사람으로 착각하고 ‘곤니찌와’인사를 하고 자신들의 가게로 들어와 보라고 손짓을 했다. 그들에게 SAYA ORANG KOREA!! 나는 한국인 입니다.라고 말하면 바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ㅋㅋ 역쉬 장사 하는 사람들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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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오토바이!! 이 많은 오토바이는 전부 일본의 혼다와 스즈끼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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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여성들은 오토바이를 탈때도 ‘질밥’을 쓰고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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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상점들 - 물건을 쳐다 보고 있으면 주인이 가격을 부른다. 예상외로 높은 가격을.. 머뭇거리면서 살듯말듯한 표정을 지으면 반을 깍는다. 그래도 높은 가격.. 그냥 가버리면 따라온다. 정말 싼 가격을 부르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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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악사 - 이분은 시각장애우였다. 대나무로 만든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말리오보로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조그마한 플라스틱 통을 바닥에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많은 장애우들이 있었다. 이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인도네시아 정부. 아직 할일이 많은 인도네시아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말리오보로 거리를 지나 점심식사를 했다. 인도네시아 전통 뷔페식당!! 맛있는 점심을 하고 호텔로 왔다. 드디어!! 아침부터 기다리던 알리가 도착했다. 너무너무 반가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알리는 나를 만나기 위해 6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왔다고 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났다고 하니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집에서 걸어서 버스정류장까지 30분, 버스정류장에서 쁘로와때띠 터미널까지 2시간, 쁘로때띠에서 솔로까지 2시간, 솔로에서 족자카르타까지 1시간 30분!! 총 6시간의 여정. 나를 만나기 위해 알리는 이렇게 고생을 했다. 눈물 나도록 미안했고 고마웠다.

  알리는 나에게 소중한 친구다. 내가 이주노동자를 돕는 일을 시작했을때 제일 처음 만난 친구가 바로 알리였고, 통역을 도와주던 우띠라는 친구가 귀환 했을 때부터는 나와 함께 인도네시아 친구들의 고충을 통역해 주었고, 많은 시간 동안 우리의 운동을 지지해주며 함께 해온 친구기 때문이다.

  알리와의 반가움을 잠시 접고 잠시 평가모임(?!)을 가졌다. 이 시간 이후로부터 산옥샘, 기돈샘하고 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산옥샘은 공항으로 마중나오셨던 분의 집으로 가시고 기돈샘은 솔로와 수라바야로 가신다고 했다. 3박 4일 짧은 기간 동안 두 분께 이주노동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배웠기 때문에 더 함께 하고 싶었지만 개인 일정상 아쉽지만 이별(??)할 수 밖에 없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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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모임. 한국에서 다시 만나요 산옥샘, 기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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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가 사준 코코넛 과자



  평가회의가 끝나고 피곤해 하는 알리와 도띠를 위해 잠시 방으로 향했다. 알리는 한국에서는 맛 볼수 없는 과일 ‘살랏’과 코코넛 과자를 주면서 얼른 먹어보라고 한다. 잊지않고 선물을 준비해준 알리. 눈물이 핑 돌았다. 힘들고 짜증날 법한 6시간의 여정을 마다않고 한번도 와보지 못한 족자카르타로 오면서 친구를 위해 선물까지 준비한 알리.“TERIMA KASIH BANYAK. ALI" (정말 고마워요. 알리!) 아직도 살랏과 코코넛 과자를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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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와 동생 도띠


  호텔에서 잠시 쉬다가 알리와 함께온 도띠의 부탁으로 오전에 다녀온 말리오보로 거리로 나갔다.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는 개인일정. 나는 알리가 있어 무척 든든했다. 현지인 통역 가이드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니 정말 걱정 없이 말리오보로 거리를 돌아다녔다. 알리와 맨 처음 한일은 무슬림 여성들이 머리에 쓰는 질밥을 사는 것이었다!!. 인도네시아로 오기 전날 새벽까지 함께 했던 맘착한(?) 자원활동가 선생님과 가장 좋은 질밥을 사다 주겠다고 약속했었기 때문이다. ㅋㅋ 주인이 연두색 질밥을 추천해 주었다.  질감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알리 말로도 이 가게에서 가장 좋은 질밥이란다. 오케이 바로 낙찰! 100,000루피아란다. 가장 좋다는 말에 흥정도 않하고 바로 샀다. 내가 질밥을 사는 광경을 지켜보던 많은 여성들은 나를 보며 계속 웃어 댄다. ㅋㅋㅋ 사실 인도네시아에서는 남자가 질밥을 여자에게 사주지 않는 다고 한다. 질밥은 여자들이 알아서 사는 것이라고 알리가 말해 주었다.

  말리오보로 거리를 구경하고 마타하리 쇼핑몰 맥도날드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서 알리와 귀환한 친구들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하나같이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모두 일자리가 없어 그냥 놀고 있다는 말이었다. 알리 뿐만아니라 우띠, 수나리오, 떠꾸 등 스마랑과 솔로 근처의 귀환한 모든 친구들이 직업이 없다고 한다. 우띠는 결혼까지 했는데도 직업이 없어 아내가 벌어온 돈으로 10명의 대가족이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벌어온 돈은 이미 가족의 생활비로 지출된 상태라 초기 자금이 없어 새롭게 사업을 시작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저임금을 받아가며 고생하고 싶지도 않아 다들 집에서 놀고 있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이주노동자와 함께 해온 2년 동안 나는 귀환한 친구들을 위해 무엇을 했고, 무엇을 말해 주었으며, 무엇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는가!

  새벽을 맞을 때까지 귀환과 재정착에 대한 고민을 알리와 함께 했다. 물론 뽀족한 결론은 없다. 그러나 희망 섞인 알리의 마지막 말이 떠오른다. “이제부터 여기 있는 친구들과 함께 모여 생각하면서 함께 일하고 싶어요. 한국 갔다 왔는데 다시 가난하게 살기 싫어요” 알리는 나에게 한국에 가면 스마랑 근처로 귀환 준비중인 한국에 있는 친구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알려달라면서 무슨 일이든 한번 해보고 싶다고 걱정하지 말라며 밝은 웃음을 지어 주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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