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스안 (11월 21일 AM 11: 40)
인천공항으로 달리는 버스 안.
시선은 차창 밖을 향하고 있지만 풍경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진 통화 덕에 휴대전화의 배터리는 벌써 바닥났고, 온 신경을 업무에 쏟아내고 나니 마음 짬을 내기도 쉽지 않다.
풍경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잠시나마 이 땅을 벗어나기 위해 2주 가까운 시간을 업무정리에 쏟아 부었지만,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사람사이의 일’인지라 마지막까지 떠나는 발길을 붙잡는다.
모든 일에 떠남을 준비하는 일이 그 일에서 꼭 절반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잘 떠나는 일이 새로운 만남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준비라는 생각도 함께 머리 속에 머문다.
# 수까르노 - 하따공항 (11월 21일 PM 8:40)
입국비자를 받기위해 줄을 선 우리일행이 보는 앞에서 한국승객들이 비자를 빨리 받기위해 인도네시아 출입국직원들에게 돈을 건넸다. 그 직원은 돈을 가지고 유유히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고, 곧이어 돈을 건넨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우선하여 비자를 받고 입국심사대를 향했다. 그 풍경을 바라보는 일행들의 반응은 같은 듯 달랐다. 추한 한국인의 모습에 강한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인도네시아의 부패지수에 대해 충격을 받은 사람도 있고, 외국에 나와서도 ‘회장님, 사장님’을 찾으며 위계를 찾고, 그 위계의 하위에 있는 사람이 자질구레한 뒤치다꺼리를 하면 ‘회장님, 사장님’으로 불리우는 위계의 상위를 점한 사람들은 뒷짐을 지고 모른 척 체신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촌극 보듯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 등 각자의 개성에 따른 반응의 차이가 느껴졌다.
인도네시아에서의 일정을 함께 하며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차이뿐만 아니라 일행들의 개성차이가 만들어낼 그림이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첫날과 둘째날 숙소인 크라운그랜드 호텔
# 호텔로비 (11월 22일 PM 8:30)
한국인 가이드와 함께한 자카르타에서의 하루일정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호텔방에서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도 나의 머릿속에는 인도네시아가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생각, 아니 인도네시아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하루동안 동행한 한국인 가이드는 한국인 일반의 눈으로 목도한 인도네시아를 우리 앞에 펼쳐보여 주었다. 부패에 찌든 나라, 극심한 빈부의 차가 존재하는 모순된 나라, 그 나라를 구성하는 낮은 의식수준의 국민들... 마치 이들에게는 희망이란 존재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나는 발견해야만 했다. 오늘 하루가 지나가기 전에 내가 인도네시아에서 찾은 희망의 증거를 발견해야만 속이 풀릴 것 같았다. 이주노동운동의 현장 활동가들인 우리일행이 운동의 희망을 발견해서 돌아가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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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사람에게서 연유한다.
비행기로 머나먼 수라바야에서 자카르타까지 배웅을 나온 인도네시아 친구 ‘사카’일행을 호텔로비에서 만났다. 산재로 다리를 다쳐 1년 가까이 치료를 받다가 2005년 겨울에 인도네시아로 돌아온 동갑내기 친구 ‘사카’는 검게 그을린 얼굴로 나타나 머쓱해 한다. 더욱 단단해진 느낌이다. 사카와 동행한 두위씨와 수나르미씨 또한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서 일을 하다가 입국한 사람들이었다. 굳게 잡는 손아귀에서 따뜻함과 강인함이 전해져 왔다.
쇼파에 앉아 나눈 짧은 대화들. 그러나 그 짧은 만남에서 그들의 삶의 의지를 읽는다.
그리고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각국 이주노동자들의 면면이 떠올랐다.
자본에 볼모를 잡힌 그들의 꿈들은 많은 경우 허망하게 끝이 나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본의 횡포에 가장 도전적인 사람들이었다. 유순하고 수동적이지만 가장 도전적인 이주노동이라는 선택을 한 사람들. 그들의 순한 열정과 용기에 항상 고개가 숙여졌었다.
희망은 사람에게서 연유한다.
사카일행을 보내며 혼란스러운 머리 한 켠에 조심스레 희망을 챙겨 넣는다.
젊은 인도네시아 친구들, 그들이 가진 삶에 대한 도전과 열정이 언제고 그들만큼 젊은 나라 인도네시아를 세상에서 가장 공정하고 평등한 나라로, 아름다운 열정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 사는 나라로 만들 것이다. 그런 희망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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