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로부드르 (11월 23일 PM 4시 50분)

보로부드르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바세계가 펼쳐 보여진다. 내가 서있는 곳이 열반이라 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날(日)수도 헤아리기 어려운 오랜 옛날 이곳에서 수행했을 승려의 마음을 짐작해본다. 탑돌이를 하 듯 수십리를 돌고 돌아 이곳 정상에 이르렀을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온몸을 감싸는 바람을 맞으며 발아래 풍경을 바라보기도 하였을 터였다. 발아래 세상을 바라보며 세상을 벗어난 해탈을 꿈꾸었을까, 아니면 고통 받는 중생들의 구제에 안타까워했을까.

세상을 발아래 두면 황제의 그것과 같은 호연지기가 생겨나기도 하였을 것인데, 일체의 욕망에서 자유로워야 하는 승려의 마음을 오히려 어지럽히지나 않았을까. 아니면 그 또한 마음공부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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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부드르를 내려오려는 중, 안산지역 인도네시아 공동체의 사무국장을 맡았던 ‘로니’씨를 만나게 되었다. 일면식도 없었던 사이인지라 서로를 알아보기도 어려웠지만 우리일행과의 로니씨 일행은 약속이나 한 듯 자연스럽게 조우하였다. 로니씨는 고용허가제실태조사를 할때 인도네시아 현지실태에 대한 정보와 자료를 보내준 고마운 조력자였었다.

2억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이렇듯 마주하게 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불가의 인연을 실감하는 순간이었고, 보로부드르의 법력이 가져다준 값진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조코씨의 차안 (11월 25일 AM 10:30)

조코씨와 부인 카니씨와 함께 솔로 시내에 나가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 길을 걷고 있는 두 분의 여성을 보고는 차를 세웠다.

“미스터 김, 우리 엄마 언니하고 언니 딸이예요.”

조코씨의 이모와 이종사촌여동생은 차에 올라탔고, 카니씨는 살갑게 그들을 반겼다. 이모님은 덤덤하지만 따뜻하게 카니씨와 조코를 대했다.

조코씨는 마을을 지나 옆의 마을까지 이모님일행을 모셔다주고는 다시 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바라보는 동안, 그러니까 이모님이 차에 타고 이야기를 나누고 조코씨는 차를 몰아 이모님일행을 모셔다주는 그 동안의 과정을 바라보는 동안 내안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이 덤덤하고 일상적인 풍경 속에 갑작스럽고도 새삼스럽지만 강렬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조코씨와 카니씨는 더 이상 내 머리 속에 존재하는 추상적인 이주노동자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내가 알고 있던 이들의 삶은 그들 삶의 전체의 1/10도 되지 않았다. 비로소 이들부부가 이주노동자라는 추상적 계급을 벗어난 구체적인 생활인으로 느껴졌다. 이주노동을 하는 동안 개별자로 존재했던 이들이 어떤 이의 아들로, 딸로, 누나와 동생으로 구체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러자 5년 동안의 고된 이주노동을 마치고 든든하게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짊어져가고 있는 조코씨 부부의 모습이 더더욱 미더워보였다.



#수라바야행 버스 (11월 26일 PM 8:40)

사카를 만나러 가는 길. 조코씨 부부는 처음에 기차를 타고 수라바야로 가라고 권했지만 기차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 버스를 타고 수라바야로 향했다.

버스에 올라 출발을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버스에 올라탄 상인들은 먹을거리며 책등을 권했었다. 특히 책을 권하던 아주머니는 인도네시아어를 모르는 한국사람이라고 이야기해도 인도네시아 사람이 확실하다며 책을 강매하려했다.

버스가 출발하고 홀로하는 여행의 기분을 잠시나마 만끽하던 나는 인도네시아의 무더운 날씨와 좁고 딱딱한 버스좌석에 이내 지쳐버렸다.

처음에 표 값을 흥정하던 사람은 수라바야까지 4시간이면 도착한다 했었지만 6시간이 지나도 수라바야라고 쓰여진 표지판도 보이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버스 체험을 두고 ‘시간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느끼게 된다’ 고 하신 김형준 교수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신 것인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참고 인내하여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그 시간들은 일분 일초가 지루하고 좀이 쑤셔 견딜 수 없을 것 같지만, 어떤 때는 그 모든 시간이 아주 짧게 느껴지도 하는, 이 버스는 계속 달리고 나는 계속 이곳에 앉아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황혼 녘, 버스에 오른 거리의 악사는 구슬픈 노래를 부르고 열려진 버스 뒷문에는 차장이 무표정하게 기대어 서 있었다. 

7시간 30분에 지난 후 나는 수라바야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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