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개척해 나가는 길, 기계로 빚어내는 예술!

 

지금 여러분이 알고 있는 직업의 가지 수는 얼마나 되나요? 대중 매체에서 소개되는 직업들, 나의 주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직업들-어쩌면 우리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생겨나는 분야 보다는 늘 듣고 보아 온 기존의 직업들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역할 모델이 되어 줄 선배가 많지 않아 그 길이 외롭고 고단할 텐데 그 난관들은 또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을까요. 새하얀 도화지에 ‘첫 발자국’을 새겨가는 기쁨 그리고 ‘개척자’로서 묵묵히 앞을 향해 혼자 나아가야 하는 어려움. 정말, 쉽지 않은 길이겠죠? 자, 오늘 드림플래시는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만끽하고 있는 ㈜플러(www.flur.co.kr)의 연구소장이신 인터랙티브 미디어 디자이너 양민하님을 만나러 갑니다.

 


'인터랙티브 미디어 디자인'. 낯설고 생소해요.

네, 많이 생소하게 들리시죠?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분야입니다. 이 일을 하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구요. 실생활에 사용되는 기술이라기 보다는 전시장에서의 ‘전시’를 통해 대중들과 만나고 있는 단계에요. 인터랙티브 미디어 디자인이 어떤 일이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는데요, 사실 말로 설명하기가 참 힘들답니다.


음. 이해가 쉽도록 예를 하나 들어 드릴게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보셨어요? 길거리 전광판이 지나가는 사람들에 맞춰 각기 다른 광고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죠?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런 거에요.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는 그래픽’을 만들어내는 작업이지요. 호칭도 아직 정확하게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인터랙티브 모션 그래픽 소프트웨어’라고 불리기도 하고 ‘소프트웨어 아트’라고 불리기도 하지요.

언제부터 인터랙티브 미디어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지난 2000년, 대학원 수업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교수님께서 수업을 하시다가 ‘존 마에다’라는 분에 대해 얘기해 주셨어요.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의 최고 권위자이신 분이죠. 그 분이 하는 작업, 그 분의 작품-모두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 길로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에 흠뻑 빠지게 되었어요. 그 작업을 위해 알아야 하는 연동 프로그램들을 하나씩 익혀나가기 시작했구요. 국내에서는 아무도 이 분야를 시작한 사람이 없었던 시절이었지요.
 


지금 하고 계신 일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을 꼽아 본다면.
내가 상상하는 것을 그래픽으로 표현해 내는 일이잖아요. 작업을 하면서 너무 즐거워요. 그게 아마 가장 큰 매력일 거에요. 이 작업을 하는 사람이 드물어서 희소 가치가 있다는 것, 내가 선두적인 위치에서 하나씩 장벽을 넘겨 나간다는 것도 이 일이 갖는 매력입니다. 그런데 그 구체적인 표현물을 만들어내기까지 밟아야 할 길이 너무 험난해요. 그렇기 때문에 결과물에 대한 만족과 보람이 더 큰 것이기도 하구요.
인터랙티브 미디어 디자인은 높은 수준의 기술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익히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요.

지금 제가 다룰 수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열 몇 개 정도 됩니다. 쉬운 것부터 하나씩 하나씩 배워나갔어요. 컴퓨터 프로그밍 언어를 익히는 과정은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워요. 복잡하고 어려워 보여도 종이 몇 장에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니까요. 완성되었다고 생각한 프로그램도 어느 한 부분의 작은 실수 때문에 수정을 요할 때가 있습니다.


지루한 과정이지만 하나씩 헤매며 알아가다 보면 어느새 그 윗 단계의 내용까지 파악하게 되요. 기본 원리에서 모든 것이 파생되기 때문이죠. 긴 시간이 소요되었고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프로그래밍 언어를 익히는 과정이 ‘어렵고 힘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 시간을 거쳤기에 상상하는 것들을 컴퓨터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청소년 시절부터 컴퓨터 작업에 흥미를 갖고 있었나요?
아! 전혀 그렇지 않아요. (웃음) 기계와는 친하지 않았습니다. 나무 조각하기, 프라모델 만들기-그런 걸 좋아했지요. 끊임 없이 뭔가 만드는 편이었어요. 프라모델 같은 경우에는, 도화지를 딱딱하게 가공해서 그걸로 로보트를 만들었죠. 문구점에서 파는 걸 사서 만드는 게 싫어서 재료부터 직접 만들었어요. 그런 것들이 제 유일한 취미였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걸로 보냈습니다. 아주 재미있었어요. 물론, 지금 하고 있는 일과도 무관하지 않아요.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밀접한 연관이 있죠. 컴퓨터와 가까워진 건 훨씬 다음의 일입니다. 군대 생활을 마치고 나서야 컴퓨터에 손을 대기 시작했으니까요.
그 때 존 마에다의 작품을 보지 않았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요.
만화를 그리고 있었을 거에요. 어릴 때부터 만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거든요. 만화 보는 걸 특별히 좋아했던 건 아니에요. 그리는 걸 좋아했죠. 만화만의 매력이요? 그런 건 아예 생각해 보질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좋았거든요. 참, 만화가가 되겠다는 꿈은 지금도 마찬가지랍니다. 좀 더 나이가 들면 다시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세계적인 공모전에서 여러 번 상을 타시기도 했는데요. 지금까지 이뤄 온 다양한 직업적 성과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어떤 일이든 시작하기 전에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하나의 작업을 한다면 그 스케쥴을 아주 상세하게 짜는 편이 좋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작업 스케쥴을 ‘분’ 단위로 짜요. 구체적인 내용들이 다 미리 계산되는 거죠. 계획을 세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일하고자 하는 분야에 대한 공부를 충실히 해 놓는 것입니다. 디자인을 예로 든다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인터랙티브 미디어 디자인에 대한 것만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과 관련된 제반 사항을 모두 파악해 놓는 수준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한 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꼼꼼하게 마무리를 해야 되요. 일을 벌이기는 쉽지만 정확하게 끝을 맺기는 힘들잖아요.
이 분야의 비전은 어떠한가요?
인터랙티브 미디어 디자이너에 대한 수요는 크게 늘어날 겁니다. 기술을 이용한 제2, 제3의 창조와 응용 폭이 무궁무진한 것이 바로 이 분야니까요. 인터렉티브 미디어는 개개인을 타겟으로 한 맞춤 광고를 가능하게 합니다. 대상의 바이오 리듬에 따른 상품 추천, 개인의 이름을 포함한 인사말 건네기 등이 모두 가능하죠. 개인적으로는, 10년 후쯤이면 이런 것들이 모두 실용화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청소년들이 인터랙티브 미디어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유념해 두었으면 좋겠어요. 디자인과 프로그래밍 능력을 고루 갖춰야 하기 때문에 이 일은 진입 장벽이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희소 가치가 높은 일이기도 해요. 앞으로 그 수요가 더 많아질 거라는 점, 가치 창출의 정도가 크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전망은 아주 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터랙티브 미디어 디자이너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주고 싶은 조언
‘상상력’. 저는 상상력을 키우는 훈련을 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책과 영화를 많이 접하는 것이 아주 좋은 방법이죠. 특히 공포 영화를 많이 보세요. 저도 개인적으로 공포 영화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공포 영화만큼 기발한 상상력이 다양하게 투여되는 장르가 없답니다. 기존의 관념과 편견을 뛰어 넘는 기상천외한 상상력. 청소년기에는 이런 것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분야와 관련된 기술을 미리 익힐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저는 제가 행복한 일만 쫓아가는 편이에요.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산’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거죠. 돈이나 명성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나이가 더 들면 다시 만화를 그릴 거에요. 내가 그려내고 싶은 세상, 내가 꿈꾸는 것들을 만화 속에 담아내는 거죠. 또 다른 바람도 있습니다. 요리와 가구 만드는 일을 취미로 계속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작은 레스토랑을 내서 내가 만든 요리, 내가 만든 가구를 한 곳에서 잘 써 보고 싶어요.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 곳을 자주 찾아주면 더 좋겠죠?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양민하님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은 “그 일이 즐거우니까요”, “내가 행복하니까요” 였습니다. ‘나는 무엇에서 행복을 느끼는가’. 간단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답하기는 생각만큼 수월하지 않습니다. 이루고자 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과 과정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자신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겠지요. 그래야 고난을 극복할 열정과 힘도 솟는 법이니까요.


아직 그 분야가 널리 알려지지 않아 조언을 구할 선배도, 함께 이 일을 해나갈 동료도 많지 않은 인터랙티브 미디어 디자인. 기계와 예술을 접목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그 일이 ‘즐겁고 행복’하기에 다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양민하님의 이야기에서 진한 여운이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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