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밤 안방을 찾아드는 드라마 패션70‘s는 풍성한 화젯거리로 방영 초부터 관심을 모았다. 한국전쟁에 대한 조망, 웅장한 스케일과 TV드라마로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영상미, 그리고 70년대를 풍미했던 패션을 소재로 전개되는 두 디자이너의 치열한 경쟁 등이 바로 그것. 하지만 여러 요소 가운데 시청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은 역시 ’패션‘이다.
드라마를 통해 엿볼 수 있는 디자인의 현장과 패션쇼, 디자이너로 등장하는 장봉실-고준희-한더미의 다채로운 의상들은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드라마에서 그려진 70년대 패션 디자이너들의 일과 일상은 2005년 오늘의 모습과 얼마나 같고 또 다를까? 우리에게 친숙한 브랜드로 널리 알려져 있는 WHO.A.U의 디자이너 김유식씨를 만나 드라마와 현실을 잇는 퍼즐을 하나씩 맞추어 보았다.

 
 
장봉실 여사의 패션쇼 무대에 서게 된 준희. 피날레를 장식하는 준희가 입게 된 의상은 웨딩드레스로, 키가 작은 준희에게는 치렁치렁 길기만 한 드레스가 어울리지 않아 장봉실 여사와 재단사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치마 하단은 무릎 위 길이로, 윗부분은 어깨가 시원하게 드러나도록 조정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격식’이냐 ‘파격’이냐라는 논쟁은 패션이 ‘예술’이냐 ‘상품’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지는데...
패션이 예술인가 상품인가라는 질문은 지금도 유효한 것으로, 이에 대해 명쾌히 답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날 패션이라는 것은 ‘예술이 가미된 산업’으로, 다만 상품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는 사실이다. 한 벌의 의상에는 디자이너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첨가되어 있기 때문.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mass brand(일반 기성복 브랜드)는 실용성이 우선되는 만큼 예술이라고 보기는 더욱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작품성이 중시되는 collection(디자이너가 시즌을 앞서서 새로운 상품을 창작하여 발표하는 쇼를 말함. 보통 춘하/추동의 연 2회 실시된다)의 경우는 그와 조금 다르다.
 
드라마 속에서 한더미와 고준희는 유명 디자이너인 장봉실 여사의 앙상블에 들어가 견습생부터 한 단계씩 디자이너 수업을 밟아간다. 지금도 디자이너의 이름이 곧 브랜드인 collection 계열에서는 그런 경우가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의류회사에 ‘입사’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인 것. 이 때 입사 유형으로는 1) 의류/의상디자인 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신입사원으로 채용되는 경우 2) 해외 유학 후 실력을 인정받아 특차로 입사하는 경우 3) 해당 회사에서 주최한 대회에 입상한 후 입사하는 경우 등의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어떠한 경로로 입사하든 회사에 발을 들이자마자 직접 디자인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나의 디자인이 옷으로 제작되어 구매자에게 전달되기까지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실질적인 디자인을 해내기 어렵기 때문. 이론적 지식과 실제에는 많은 차이가 있어 통상 입사 후 1~2년 동안은 현장의 생리를 익혀야 한다.
 
 
의상의 맥을 잡는 기본 스케치에서 구체적인 디자인, 가봉, 마무리까지 모든 것을 디자이너 한 사람이 다 소화해 내는 드라마 속 인물들. 현실도 이와 같을까?
패션 산업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collection 계열이 아닌 mass brand 계열. 개인 디자이너의 이름이 아닌 브랜드를 걸고 하는 것인 만큼 디자인 구상과 의사결정 모두가 전체적인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다양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이랜드 그룹의 경우 그룹 하에 브랜드 본부가 있으며 이 본부는 세부 브랜드별로 영업부, 머천다이저팀, 디자인실 등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서 디자이너가 속하게 되는 곳은 디자인실. 이랜드 그룹의 한 브랜드인 ‘후아유’ 디자인실에는 실장, 팀장, 일반 디자이너, 소재 디자이너 등이 있어 다가오는 시즌에 맞는 테마와 컨셉에 따라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협의, 결정하게 된다.
collection 계열의 경우에도, 디자이너 한 사람이 모든 의상을 디자인하는 경우는 드물다. 실질적인 제작 과정에 다른 인력이 동참하는 것은 물론이다. 샤넬, 겐조, 앙드레 김 등의 collection을 연상해 보면 한결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수요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옷을 디자인하는 법. 준희는 자신이 디자인하고자 하는 컨셉에 맞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그 속에서 영감을 끌어낸다. 더미는 이와 조금 다르다.더미는 자기가 잘 알고 있는 자연물과 주변 환경(ex. 물미역, 동백꽃)을 떠올리며 아이디어를 잡아내는 편. 그렇다면 다른 디자이너들은, 새 옷에 가미될 개성을 어떻게 구상해내는 걸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옛 구절은 패션 디자인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의류의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하는 만큼, 디자인 자체가 특별히 새롭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 지금의 패션 디자인은 ‘재창조’ 또는 ‘응용’에 기반해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겠다는 욕심 대신, 대중들이 원하는 게 뭔지, 비슷비슷한 옷들 사이에서 내가 디자인한 옷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 무엇일지를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세계 디자이너들이 영감의 원천으로 꼽는 대표적인 아이디어 샘은 영화/연극 또는 음악. 다른 빛깔의 감성을 꾸준히 접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좋다. 패션쇼 관련 의상과 다른 브랜드의 의상이 담긴 사진 자료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음악, 미술, 무용 등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패션 역시 ‘천재성’ 또는 ‘재능’이란 단어가 자주 오르내린다. 실제로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한더미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대단한 역량의 소유자로 그려지고 있는데...
디자인과 관련된 정규 트레이닝을 받은 바 없는 더미가 일류대 졸업장은 물론 유학 경험까지 갖고 있는 준희 보다 빼어난 역량을 선보이는 모습에서 ‘역시 디자인은 재능 이었어’라는 생각을 갖게 되기 쉽다. 하지만 드라마 곳곳에서 비춰진, 옷과 디자인에 대한 더미의 ‘열정’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실에서도 열정과 노력이 재능 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천부적 소질을 타고난 천재는 차치하고서라도, 재능만 있을 뿐 열정이 없는 사람은 다소 재능이 부족하더라도 열정으로 충만한 사람을 못 따라가게 마련. 이 때 열정이란 ‘하고 싶어하는 의지’라 할 수 있다. 단지 옷이 좋아서 또는 내가 옷을 잘 입는 것 같아서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라면, 바로 지금 자신의 ‘열정 지수’를 냉정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패션 디자이너의 필요충분조건은 재능이나 흥미가 아닌 열정이므로.
패션70‘s 이전에도, 구두 디자이너가 등장한 <토마토>와 청바지 회사가 배경이 된 <로망스> 등 디자이너를 소재로 한 드라마는 꾸준히 있어 왔다.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패션쇼 무대 디렉터가 나오는 CF, 패션지 기자가 등장하는 드라마 등 패션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는 캐릭터들은 그동안 매체를 통해 쉴새없이 조명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모습은 대개 화려하고 패셔너블한 것 일색으로, 그 직업에 뒤따르는 자잘한 업무 공정과 잦은 밤샘 작업 등은 간과되기 일쑤였다.
패션70‘s에서 주인공으로 그려지는 한더미는 추운 겨울을 나야하는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목 폴라티를 개발하고 싶어 하는 한편, 더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의상을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도록 원가를 낮추고자 고민하는 디자이너다. 직업인으로서 한더미의 이런 모습들은 매우 긍정적이지만 전체적인 드라마 전개 속에서는 복잡한 가족사와 네 남녀의 사각 관계 등에 밀려 이런 면모들이 크게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한 편의 영화에서 인생의 꿈을 발견하듯이, 한 편의 드라마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그려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패션70’s로 인해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그 또한 매우 긍정적인 일일 것이다. 새콤달콤한 ’이미지‘에 현혹되지 않고 인물 하나하나가 갖고 있는 진면목에 집중할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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