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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7/24 꿈을 찍는 토크쇼 - 애니메이션 감독 김준
다섯번째 토크쇼 김준 감독편은 경기도 이천 청강문화산업대학에서 열렸습니다. 여름방학 특집으로, 청소년들의 미디어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Youth Voice' 캠프 현장을 찾아간 것이지요. 미디어를 매개로 다양한 작업들을 진행 중인 청소년들과 애니메이션 감독 김준님과의 만남! 그 생생한 현장으로 지금, 들어갑니다! 개봉박두~!
안녕하십니까 김준입니다. 12년 차의 초짜 감독이에요. 제가 맡아서 진행한 작품으로는 TV 시리즈 <올림포스 가디언>, 극장판 <올림포스 가디언>, <마스크맨> 그리고 <고미의 만화 호기심 천국> 등이 있습니다. 제가 최고의 조언을 드릴 수는 없겠지만, 오늘 제가 드리는 말씀이 앞으로 여러분이 미디어 영상 제작의 길을 걷는 데에 약간의 힌트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오늘 저는 애니메이션계의 ‘현실적인' 모습들을 많이 얘기해 드릴 생각입니다. 제 얘기를 듣고 나면 실망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어요. 무언가를 꿈꿀 땐 그게 다 좋아 보이고, 저 하늘에 뜬 뭉게구름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지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지요. 오늘 이 분야에 대한 생생한 얘기를 많이 듣고 가시길 바랍니다.

제가 애니메이션 감독이 된 이유는 단 하나, 제가 즐겁기 위해서예요. 다른 미디어도 다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드는 사람이 즐거워야 보는 사람도 즐거울 수 있거든요. 일하는 과정 하나하나, 차근히 밟아가는 단계 하나하나가 다 즐거워야 합니다. 아. 정말 그게 가장 큰 것 같아요, 자, 제 소개는 이 정도로 하구요. 자세한 이야기는 진행자인 나비님과 함께 풀어가도록 할게요. 참, 제 사투리를 알아 듣기가 힘드신 분은 그 때 그 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제 진행자 나비님을 소개하겠습니다. 나비님입니다.

어째 순간 초대받은 사람과 초대한 사람이 바뀐 것 같은데요. 하하. 어떻게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었는지 많이들 궁금해할 것 같거든요. 어떻게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셨습니까?

근데 원래 이렇게 밝은 데서 합니까? 화장도 좀 떴고. (얼굴을 토닥토닥 만지며)
어떻게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었나… 일단은, 애니메이션 감독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있었습니다. 제가 애니메이션을 하겠다고 생각한 때가 1982, 3년도 즈음이에요. 월트 디즈니에서 만든 ‘환타지아'를 보고 어떻게 저런 걸 만들 수 있었을까, 싶었어요. 마침 당시 집에 나름대로 고가의 비디오 장비가 있었는데, 그림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 조차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프레임, 프레임 별로 돌려 보며 호기심을 달랬죠. 음악과 수려한 움직임들-그 때의 충격과 감동을 잊을 수가 없어요.

성인이 되어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 업계에 발을 디디기 시작했을 때에는 선배들의 눈에 들기 위해서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루 종일 복사에 심부름만 한 날이 끝도 없이 이어졌지요. 어떻게 해서든 그 곳의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땐 애니메이션 회사라곤 <은비까비의 옛날 옛적에>라든지 <배추도사 무도사>를 만들었던 회사를 비롯한 몇 군데가 전부였어요. 학교 대신 그 회사들에 출근한 날이 더 많았죠. 아… 그 시절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납니다. (눈물 짓는 흉내 ^^)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해오시면서 인내와 근성으로 몇 년을 생활하신 건데요 만들고 싶은 작품을 신나게 만들 수 있다면 좋겠지만 상황이 꼭 그렇지만은 않잖아요. 막상 감독이 되니까 예상보다 힘들었던 부분, 예상보다 즐거웠던 부분을 말씀해주세요.

처음부터 저에게 영상 제작 일이 주어지지는 않았어요. 어학을 전공한 것을 계기로 해외 마케팅 일을 맡았습니다. 우리가 아는 메이저 영화 시장보다 열 배, 스무 배 더 큰 B급 시장이 존재한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아키라>와 <공각기동대> 같은 작품만이 답은 아니겠구나, 하구요. 그 때 방향 전환을 심각하게 고려했습니다. 내가 훌륭한 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고 어느 정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시장의 논리를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겠구나, 라구요. 객관적인 분석을 해 나가면서, ‘나의 작품'보다는 불특정 대다수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을 먼저 공략해 보자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다음 일이 술술 풀린 것은 아니었지요. 여러 분도 다음에 몸을 담고 나면 느끼겠지만, 애니메이션 업계에 들어가 처음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발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요. 좋은 아이디어와 그림 실력을 갖고 있어도 처음부터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거든요. 인내를 갖고 버티는 것, 아주 간단해 보여도 가장 중요하고 힘들었던 부분입니다. 누구나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것이 있는 법인데, 사흘 나흘 내내 복사기 앞에 서서 잔심부름만 하고 있으려면 많이 힘들고 괴롭거든요. 하지만 그 시간을 견뎌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명제보다 더 크게 다가왔던 것이 인내를 갖고 오래 견뎌낸 사람이 살아남는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마음의 준비와 각오를 해두시면 좋을 것 같아요.

꿈을 접는 토크쇼로 가는 대신, 꿈을 찍는 토크쇼로 돌아오려고 노력해보겠습니다.(^^) 엄청난 좌절을 겪었을 수밖에 없었다면 작품에 대한 사고방식이나 접근 방식이 조금 변했을 것 같은데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지게 되었는지 듣고 싶어요.

일을 하며 느꼈던 또 하나의 난관은 영상 작업에 드는 자본의 문제입니다. 큰 돈이 들어가는 영상 작업에서, 그 돈을 투자한 사람들의 입김과 기대를 무시하기란 힘든 일이죠. 미디어 체계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요, 어려움은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주요 방송국을 통해 작품을 내놓으려면 까다로운 심의 규제에도 맞춰야 합니다. 문제는 국내 심의 규제가 지나치게 까다롭고 보수적이어서 만드는 사람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기가 어렵다는 점이지요. ‘우리나라 만화영화는 왜 다 똑 같은 거지?'라는 질문들을 많이 하시는데요. 바로 그런 제약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 바램 중의 하나는, 애니메이션계에 몸 담고 있는 저희 세대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그런 장벽과 제약을 낮출 수 있었으면 하는 겁니다. 다음 세대인 여러분들은 그런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러니 꿈을 접지 마시고 꿈을 쫓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애니메이션 감독이라는 직업이 어떤 일을 담당하는지 직업적인 조건과 한편의 작품이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시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애니메이션 작업 공정에 대해서 아세요?

애니메이션 감독이 꿈이라고 밝힌 한 학생: 플래쉬를 가지고 디지털 작업을 한다.

잘 아시네요. 다른 작업은 동시 진행이 가능하지만 애니메이션은 단기 진행을 한다는 점, 그게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보통 영화의 경우는 콘티의 2배수로 찍는데요, 애니메이션은 일초의 남는 시간도 없습니다. 여분의 필름이 전혀 없기 때문이죠. 영화는 로케이션 장소에 가서도 콘티가 바뀔 수 있지 않습니까? 애니메이션 단계는 초반의 기획에서 더 바뀔 수가 없어요. 한 번 결정이 되면 끝까지 가야 합니다. 즉, 애니메이션은 그 전반의 모든 것이, 일단 제가 콘티를 끝내면 그 때는 제 손을 떠난 작품이 되는 셈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작업에서는 초반에 기획을 탄탄하게 잡아두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반을 잘 잡아 두어야 제작 과정에서의 잡음과 외부의 입김도 잘 막아낼 수 있지요.

작업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뜻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잖아요. 단기적이라면 투입되는 인원은 많아야 하고 그런 공동 작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조정하는 부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그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여러분들(Youth Voice 참가자들)은 네 다섯 명씩 팀을 짜서 움직이지요? 그 중 한 사람이 감독을 맡고 있을 거구요. 제가 하고 있는 일에 있어서도 규모만 늘어난다 뿐이지 다 똑같습니다. 다섯 명이 하는 일이 오백 명의 일이 된다고 생각하시면 되요. 어느 곳에서든 팀 작업, 공동 작업은 어려움이 많습니다. 한 가지 조언을 드리자면, 팀 작업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월권'입니다. 그 사람이 감독이라면 그 사람이 결정권을 갖도록 해 주어야 하구요, 카메라를 담당하고 있다면 그 분야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발언을 가장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요. 애니메이션 산업에서는 ‘라인 프로듀서'라는 직책이 있어서 바로 그 라인 프로듀서가 작업에 참여하는 수십 혹은 수백 명의 사람들의 의견과 입장을 조절하고 컨트롤합니다. 아주 중요한 역할이지요.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영상 산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로듀서는 가장 체력 좋고 똑똑하고 일 잘하고 능력 좋은 사람이 하는 거에요. 모든 것을 조율하는 중책이니까요. 감독은 다만 작품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은 바로 PD에요. 여러분들이 혹시 감독이 되고 싶으시다면 PD부터 시작을 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직업으로서의 애니메이션 감독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수입이 발생한다는 얘기를 빼놓을 수 없잖아요. 감독님의 형편이 어떠신지 물어보는 겁니다.

사실 제가 처음 시작했을 때 월급이 50만원 정도 되었어요. 지금은 엄청 많이 올라서 70만원 정도로 시작하는데. (웃음) 그 삼중고를 이겨내시면 열 배, 스무 배를 버실 수 있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작품 많이 들어와요. 그런 게 다 수입이 됩니다. 그 수입이 적지는 않습니다.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에 대해서 이런저런 것들을 근거로 들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으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럼에도 보여지는 일말의 가능성들이 있다면?

일말의 가능성이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여건상의 어려움이 있지만, 여러분들이 있는 한 우리나라 영상 산업은 쭉쭉 앞으로 뻗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참, 한가지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여러분, 책을 많이 읽으세요. 어떤 책이든 무조건 많이요. 영상 문법, 기술 같은 것은 사회에 나간 다음에 다 배울 수 있습니다. 어차피 현장에서 사용하는 자재와 기술은 학교에서 배운 것과 크게 달라요. 기술은 어떻게든 새로 익히게 되지요. 지금 준비해야 할 것은 지식과 견문입니다. 산업에 투입이 된 후에는 그럴 시간이 없어요. 지금 하나라도 더 많이 채워 넣으시고 자신만의 실력을 쌓아가시기 바랍니다.

“살다보면 하루하루 힘든 일도 너무 많아~” 김준 감독의 지난 12년은 고달픈 유행가 가사를 닮았습니다. 서른을 앞둔 나이에 애니메이션 회사 말단으로 들어가 청소부터 복사까지 온갖 일을 도맡던 사람, 묵묵히 아무 말도 않고 백과사전을 들여다보던 사람. 그 사람이 TV 애니메이션 <올림포스 가디언>의 감독이 되었습니다. <마스크맨>의 감독이 되었습니다. 세상사 쉬운 일 뭐 있으랴만은 헝그리 정신이 드물다 말해지는 요즘, 다시 한번 보게 되는 직업인입니다. 너무 좋아서, 미칠 듯이 하고 싶어서 뛰어드는 젊음들에게 한발 먼저 내딛은 사람으로서 꿋꿋한 모델이 되겠다는 사람입니다. 김감독의 외로운 독백이 이어지던 다섯 번째 토크쇼도 이렇게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