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단소식
  
여러분, <러브하우스>, <진호야 사랑해>라는 코너 아세요? 이런 코너들이 매주 방송될 때마다 시청자들은 잔잔한 감동과 따뜻함을 느꼈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얕은 술수나 잔꾀는 부려볼 생각도 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먼저 좇는 분이 계십니다. 기술보다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 MBC 예능국의 임정아 피디님 모시겠습니다.

서서 합니까? 벌써 앉아있네요. 하하. 여기 앉아있으니까 조명 때문에 앞이 하나도 안 보이고, 제가 그동안 연예인들에게 왜 그렇게 가혹한 행동을 했던가 후회가 밀려오네요.

먼저 인사드릴게요. 제 이름은 임정아라고 하고요. 현재 8년차 피디입니다. 좀 됐죠. 하하 저의 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음... 제가 했던 프로그램은 라는 프로그램으로 처음 시작했고요 (객석: 오~) 이야, 이 자리 아주 좋은데요. 그 다음 <신장개업> 조금 하다가 <러브하우스>를 했고, 그 다음에 <아시아 아시아>, 이번에 <진호야 사랑해>를 했습니다. 이건 잘 나가는 프로그램이었고 말하기도 창피한 프로그램도 그 외 다수 있습니다. 또 뭘 소개해야 되지요? 저 자신에 대해서...

앞으로는 어떤 프로그램을 하고 싶으세요?

저는 소개 영상을 보지 못하고 소리만 들었는데요. 약간 재수 없이 들리더라고요. (새침한 목소리로) 학창 시절에 “시험공부 하나도 안했어” 이런 것처럼 이요. 근데 저게 바로 편집의 힘이거든요. (관객 웃음) 아픈 일들이 다 잘린 상태에서, 어떻게 하다 보니 PD가 됐다고 하잖아요. 편집 정말 잘했어요. 이번 기회에 저도 이렇게 멋지게 나와 보게 되어서 기쁘고요.

사실 저는 수줍음이 되게 많아요. 주변 사람들은 별로 인정하지 않는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익숙하지 않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저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이야기들을 들었고 거기에서 힘을 얻어 PD를 하게 된 것 같기 때문이에요. 제가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는 '아, 저렇게 평범한 사람도 되는구나. 꿈이 있으면 꿈을 이룰 수 있구나‘ 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예요. 저도 굉장히 평범했고 지금 만나면 "네가 피디를?" 라고 말하는 학창시절 친구들이 많아요. 아주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서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오늘 이 자리를 통해서 아주 작은 거라도 용기를 얻어가셨으면 좋겠어요. 왜, 고 3때 이런 얘기들 하잖아요. “이번에 전교 100등이 100점 올렸대.” 그럼 우리 정말 용기를 얻잖아요. 제가 지금 굉장히 떨고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이 PD가 맞나? 왜 자기 일에 대해서 한마디 말도 못하나'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언뜻 보면 약간 언니 벌로 보이지 않아요? 하하. 말 트셔도 됩니다. 편하게 얘기해주셨으면 좋겠고요. 조명이 밝으니까 제가 말하고 침 튀는 게 다 보이네요. 하하.

앞으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자기 성향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예능이라는 틀 안에서, 제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어서 MBC에 들어온 거고요. 앞으로도 지금 하고 있는 프로그램 같은 것들을 많이 할 것 같아요. 변화하려고 많이 노력하겠지만 주제는 일관되게 가지 않을까요.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주 짧게 소개를 받아봤는데요. 본격적으로 질문을 드리기에 앞서 개인적인 궁금증입니다. 개인적으로 라디오 PD든 TV PD든 PD라는 꿈을 최소 3지망 안에 가지고 계신 분들, 손 좀 들어주시겠어요? 이야~ 많다. 용기를 많이 주셔야 되겠습니다. 각자 알아서 찾아가는 용기일까요? 하하. 임정아 PD님은 왜 피디가 되셨나요?

왜 PD가 됐냐면요. 제가 71년생인데... (객석: 오~) 앗, 여러분들과 몇 살 차이가 나는 거죠?

말씀하지 않으셨던 게 나았어요. 하하.

원래 PD들이 철이 없어서 느리게 늙긴 해요. 텔레비전은 굉장히 재미있는 매체지만, 제가 어릴 때는 PD란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는 그냥 흘러가는 거잖아요. 흘러 흘러가게 되는데 어렸을 때부터 PD가 하는 일에 대한 관심은 굉장히 많았어요. 학예회라든지 크리스마스 때 연극 같은 것을 하고 싶어서 교회를 나갔어요. 수학여행 가면 장기자랑 같은 거 하잖아요? 정말 목숨 걸고 했어요. 캐스팅도 하고 이것저것 시키고. 학교에서 스타도 좀 나오고 했어요. 하하.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 모아서 왜, 한판 벌린다고 하죠. 판을 한판 벌리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옛날이야기 듣는 것도 굉장히 좋아하고요. 대학교 가서도 학생회 활동을 많이 했어요. 학생회 활동을 많이 했던 것도 사람들 모아서 시키는 거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절대 제가 나가진 않아요. 시키는 걸 좋아하죠. 하하. 그러면서 뭔가 그런 거랑 맞는 직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회사에서 일하는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스물 넷, 다섯에 제가 하고 싶은 일이 PD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여기에 담겨 있었을 불안감을 이기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PD가 되기까지 어려웠던 점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PD, 특히 여자가 PD를 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어요. 우선 주변의 만류가 있어요. 제 때는 굉장히 심했어요. 지금은 여자 PD가 많이 들어왔지만 그때는 여자가 PD를 한다고 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하고 그랬어요. 하하하. 그런 얘기는 차라리 괜찮은데, 결정적으로 꿈을 접게까지 했던 이야기는 ‘여자 PD는 없다. 있어도 대부분 사이드 PD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PD란 직업은 여자랑 맞지 않는다.'라는 거였어요.

제가 나이가 데드라인에 딱 걸려서 올해 이거 봤다가 떨어지면 취업을 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때 당시 제가 취업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주변의 만류는 굉장한 갈등이 되었어요. ‘절대로 취업이 안 될 거다. 통과돼도 죽을 거다. 내가 아는 데 소개시켜줄 테니까 가라.' 집에 와서 고민을 살짝 했어요. 나이 얘기도 걸렸어요. 여자로서 나이가 너무 많다. 정말 이걸 못해보는 건가 생각이 들었을 때 갑자기 단순해졌어요.

저는 약간 중요한 선택을 할 때는 굉장히 단순해져요. 결과는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거거든요. 신만이 아는 거란 생각이 드는데 신도 바꿔주실 거라 생각했고, 내가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을 도전도 해보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할 거다 생각했어요. 공부 장소도 완전히 옮겼어요. 소도시에 작은 도서관으로 옮겨서 아무 얘기도 듣지 않고 저 혼자 그 상황을 즐기면서 공부했어요. 아주 즐겁게 준비를 했고 아주 좋은 결과를 얻었어요. 선배들 말과 달리 다행히 MBC는 여자 PD를 뽑아줬고 아직 살아있습니다. (관객 웃음)

MBC에는 MBC만의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예능 프로그램 같은 경우 공익적인 요소를 프로그램에 적용하는 방송사가 드물잖아요. 그 중 다수에 관여를 하셨어요. 공익성 예능 프로그램을 기획하시는 데 어떤 아이디어들이 도움이 되는 지 방송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어떠한 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고 싶거든요.

서태지가 은퇴할 때 했던 얘기가 ‘창의력이 말랐다' 였죠. PD도 가장 힘든 게 ‘짜내는 아픔'이에요. 물론 표절이라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표절을 한 적이 없어요. 아이템을 찾는다는 것이 쉽지가 않아요. 찾아도 겉돌기 쉬워요. 제 아이템은 제 생활과 매우 관련이 있어요. TV라는 매체가 대중적인 아이템과 잘 맞는다는 생각도 하고요.

귀티나게 생긴 저의 겉모습과는 달리 (객석 웃음) 나름대로 살면서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별로 부유하지 않았고 주변에는 항상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살았어요. 앞집에는 장애인이 살고 뒷집에는 미친 언니도 살고. 이 사람들에게는 볼링장을 갈 수 있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상한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제 나름대로 프로그램을 생각할 때 나의 부모, 나의 이웃을 생각하게 되고, 아이템을 개발할 때 항상 거기에 포인트를 둬요.

같은 경우는 아이를 돌보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생각해낼 수 있었던 아이템이에요. 제가 대학원 다니면서 조카들을 돌봐야 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굉장히 괴롭기도 하지만 말 못하는 아이와 성인인 나 사이에 교감이 굉장히 컸고요. 그리고 GOD가 너무나 착해서, 요즘 댄스 그룹 같지 않게 너무 착했기 때문에 가 탄생할 수 있었어요.

<러브하우스> 같은 경우는 그런 거죠. 집을 고쳐주는 프로그램이 맞아요. 그렇지만 핵심은 매직처럼 펼쳐지는 변신 같은 것보다는 ‘가족'에 있어요. 그 당시 러브하우스 했을 때가 IMF였어요. 잘 모르는 세대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때 당시 가족 해체라는 부분이 굉장히 컸어요. 저는 아무리 어려워도 가족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을 잡고 싶었어요. 하지만 예능 PD는 다른 사람들이 채널을 돌리지 않게 해야 하죠. 그 장치로 들어간 것이 인테리어에요.

<아시아 아시아>같은 경우도 메시지는 가족이지요. 이런 식으로 저는 어렸을 때 제가 경험했던 것들, 감동받았던 주제들을 많이 찾는 편이에요.

제작하시다 보면 '저거 짜고 치는 거래'라고 말해버리는 시청자들 때문에 상처도 받으셨을 것 같은데 직접적으로 접해본 적이 있는지요.

<아시아 아시아>때 그런 얘기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시각이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러브하우스>도 마찬가지죠. <육아일기> 역시 약간 위험한 선을 타는 부분이 있어요. 선발된 사람들에 대한 폄하가 굉장히 많았어요. ‘눈물을 도구로 삼는 것이 아니냐. 외국인들은 다 한국에서 나가야 된다' 그런 메일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상처도 많이 받았죠.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들이 날아올 때는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 또 과격한 표현입니다.

<아시아 아시아>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는 전국을 돌아다니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외국인 노동자라는 주제가 접근 방법이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사장님이 또 때려요, 집에 가고 싶어요' 영상 나오면서 잘려진 손 보여주면 굉장히 자극적이죠. 그게 싫었어요. 이런 것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국에 외국인 노동자 단체들이 굉장히 많아요. 다니면서 얘기를 들어봤죠. 그랬더니 이들이 그 수모를 참아낼 수 있는 이유도 모두 가족이었어요. ‘가족을 한번만 만나볼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이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관념이나 상식 때문에 변하지 않을 때, 방송이라는 매체를 이용하는 것이 최고일 수 있어요.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시사프로죠. 저는 외국인노동자들에게도 우리와 똑같은 동생이 있고 부양할 가족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가족상봉'쪽으로 갔던 거예요. ‘가족 상봉하면 문제가 해결되느냐'는 비판도 받았어요. 하지만 세상에 한방에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고 생각해요. 단 한 사람이라도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서 동등한 입장으로 볼 수 있다면... 하는 생각에서 <아시아 아시아>를 했었습니다.

프로그램 만들기 전의 과정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면, 정치적으로 올바른 다큐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다큐 안 해보세요?” 이런 질문 많이 받지 않으세요?

아아~ 저는 예능 프로 되게 좋아해요. 즐겁잖아요, 보고 있으면. 물론 TV가 여러 가지 기능을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제가 생각해볼 때 TV의 가장 좋은 기능은 즐거움을 주는 거였어요. 다양한 저의 이웃들이 돈을 들이지 않고 여가를 선용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는 TV에요. 저 또한 어려서부터 TV를 보고 굉장히 즐거워했고요. 누구나 TV를 보고서 하하하 웃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확실하게 웃겼으면 좋겠어요. TV 보면서 저녁 먹고 ‘와, 즐겁게 먹었다'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요. 사람에게 웃음을 주고 싶기 때문에 제가 을 하고 있는 모습은 상상할 수가 없어요. 저는 일도 즐겁게 하는 편이고 제 프로 역시 굉장히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가족들 다 웃을 수 있는 프로그램만 찾다 보니까 시사나 다큐는 시켜도 잘 못할 거예요.

사실 PD란 직업이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잖아요. 나는 예능국 PD지만 이런 PD도 있다 소개해 주신다면요?

자, 직업 정보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관객 웃음) PD는 세 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시사, 드라마 그리고 각종 딴따라들을 상대하고 있는 예능 PD가 있어요. 세 가지 다 너무나 판이해요. 세 개가 동일한 직업인가 할 정도에요. 그러니 한 방송국의 PD가 모두 모인는 회식은 거의 불가능하죠. 회사 안에서 단결도 안돼요. PD집단이 워낙 개성이 강한 집단인데다 방송사에 오면 개성이 막 드러나도록 만들어요. 그래야만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PD들은 정말 제각각이에요. 정상인가 싶을 정도로 제각각이고, 제가 가장 노말(normal)한 스타일이에요. 비올라 켜던 사람도 있고 운동하던 사람도 있어요. PD에 대한 고민은 적성에 맞게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이 질문이 핵심 질문일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하면 PD가 될 수 있나요?

이건 진짜 핵심 정보에요. 따끈따끈한 정보입니다. 제가 올해 심사위원으로 들어갈 뿐만 아니라 시험 문제도 내고 있어요. (쭉 둘러보며) 설마 여기 준비하는 분 계신 건 아니죠? 하하. 우선 PD 준비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거에요. 귀를 닫으세요. 나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시고 상식시험부터 차근차근 준비하세요. 사실 PD 시험이 한 달 안에 5, 6차까지 시험을 치르거든요.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가 없어요. 저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원형탈모가 생겼어요. 시험이 굉장히 길게 가는데요. 그것도 약간 이유도 있는 것 같아요.

첫 번째 시험은 상식이에요. 상식은 상식이죠. 정상적인 초등학교 과정을 거쳤으면 3개월 공부하면 누구나 다 똑같아져요. 재수에 삼수를 거듭할수록 불리하다고도 해요. 많이 떨어지는 건 2, 3, 4, 5차에서예요. 지식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시험, 그게 어려운 거잖아요. 제가 시험 보았을 때 4차 과정에서 판토마임 같은 것을 시켰던 것 같아요. 이게 얘가 무엇을 얼마만큼 잘하나 보는 게 아니라, 융통성 있게 꿀리지 않고 자기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사람인가를 보는 거예요. 태도를 보는 거죠.

드림플래쉬 관련자분들 미리 만났을 때 얘기한 적 있는데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이에요. 자신감은 그 사람 표정에서 나오게 돼 있어요. 하고 싶은 일을 목표로 정했으니까 해보겠다! 이게 자신감이에요. 최악의 경우는 떨어지는 것뿐이겠냐는 거죠. 단어들을 주고서 선택한 다음 1분 스피치를 해야 하는 문제도 있었어요. 이건 논설문 작성하는 거랑은 달라요. 하지만 이 문제가 나만 어렵겠어요. 딴 애들 똑같이 다 어려운 거잖아요. 굉장히 못해도, 똥배짱 튕기면서 자신감 있게 하는 사람이 PD에 적합한 사람이에요.

PD는 끊임없는 선택과 책임, 선택, 책임을 강요당하는 직업이에요. 이런 건 학교에서 배운 걸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2, 3, 4, 5차는 자질을 보는 문제가 주어지죠. ‘자질이 안돼나 봐요' 말씀하시는데요. 자기가 가진 자질은 자기도 몰라요. 흔히 주변 사람들의 평가로 자신의 자질이 평가되죠. ‘너는 이런 앤가봐', ‘너는 그런 것 같애' 그런 말 듣고 스스로를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신감, 똥배짱,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물불 가리지 않고 하는 자세가 중요한 거에요.

최종 시험은 양복 입으신 분들이 문제내시는 거였어요. 딱 들어갔더니 ‘나를 웃겨보세요' 하는 거예요. 진짜 머리가 하얘지면서 무슨 얘기를 할지 고민이 되는 거예. 그때 도저히 말도 안되는, 해서도 안되는 ‘참새시리즈'를 시작했어요. 타임캡슐에나 들어갈 그 이야기 말이죠. “참새가 세 마리 있었습니다. 전깃줄에 앉아있었지요” 어쩌구 저쩌구~ 달달달 떨면서 얘기를 끝냈어요.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죠. ‘면접을 망쳤구나.' 근데 사실 마음이 편했어요. 생각나는 건 참새밖에 없었으니까요. 당연 심사위원분들은 재미없어 하시죠. “그게 웃긴 얘깁니까?” 물으시는 거예요. 웃으면서 “안 웃긴가요? 하하하” 이랬죠. 그랬더니 갑자기 그거 되게 웃기다는 거예요. 그 정도로 말도 안되는 걸 물어보곤 해요. 신화와 동방신기와 ss501의 멤버 수를 더하면? 이런 문제도 있어요. PD되고 싶은 분들이 ss501이 누구야 하면 안되죠.

말도 안돼는 문제들이 나와요. 그런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를 원하는 거고, 프로그램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방송되기 까지 사건 터지고 폭풍우 불고 세트 쓰러질 때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는 단 한 사람, 결정을 내리고 방송에 꼭 내야 하는 사람을 뽑기 때문에 그래요. 절대 칼라바가 나갈 수는 다는 거죠. 세트를 다시 세우든지 폭풍우가 나오는 아이템으로 바꾸든지 선택을 해야 해요. ‘그럼 천재만이 될 수 있겠군요' 하실 수도 있는데요. 제일 중요한 건 제발 겁을 먹지 마시라는 거예요. 하고 싶은 일 하는데 왜 겁을 먹어요. 토익 성적에 너무 충격 받지 말고요. 그렇습니다 대략.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에 제작되는 기간과 진행과정은 어떠한가요?

보통 예능 프로그램은 길면 한 달, 짧으면 2주 정도 준비 기간을 가져요. 우선 작가들과 아이템 회의를 해요. 아이템이 서너개로 좁혀지면 예능 프로그램으로 현실화가 가능한 것인지 조사에 들어가요. 쉽게, 쉽게 만드는 것 같지만 조사 되게 많이 해요. 이 시간에 먹힐 것인가. 이게 과연 가능한가. 그 다음 촬영 들어가고 섭외도 하죠.

저희 하는 일의 80퍼센트가 꼬시는 일이에요. 동시에 연예인과 MC에게도 꿈을 불어넣어주는 게 중요해요. 이상을 가진 사람과 이상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굉장히 달라요. ‘네가 이거를 함으로써 이러이러한 게 좋다. 봐라!' 그러면 ‘응응, 그런 것 같다' 그러죠. ‘그렇지? 얼렁 찍어야 겠다' 그렇게 해서 팀이 꾸려지는 거예요. 카메라 감독, 조명, 오디오... 이십명이 같이 버스 타고 다니고 사후에 또 날밤 까면서 편집하고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저게 뭐야 유치하잖아!” 채널 돌리시고 그렇죠 하하.

PD가 되지 않았으면 어떤 일을 하고 계셨을 것 같아요?

한 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고요. 특출나게 공부를 잘했던 것도 아니고 대기업도 조금 안 어울리고... 다른 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되게 이상한 거 하고 있을 것 같아요.

현재 자신의 직업에 굉장히 만족한다는 얘기로 들려요. 어떤 점이 다음 생애에도 또 PD를 하고 싶도록 만드나요?

이게 정말 조심해야 할 부분인데요. 사람마다 정말 다르기 때문이에요. 직업을 잘 고르는 것도 중요한데요. 먼저 자기가 어떤 성격인가를 봐야 해요. 나는 웬만하면 모든 일을 원만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싫어하는 일을 했을 때 극단적으로 기피하는 사람인지 등등.

저 같은 경우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는 바닥이예요. 사실 PD란 직업이 저에게 즐거운 이유는 과정 자체가 코미디이기 때문이에요. 입사한 이후로 프로그램에 관해서는 단 한 번도 똑같은 일을 한 적이 없어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을 하기도 해요. 똑같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PD란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이었죠. 이런 얘기를 들으면 마냥 좋겠다 이러실 수도 있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와 책임이 동반되고요.

매일매일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고 박진감 넘칠까요? 하지만 그 일을 함으로써 못하게 되어 버리는 일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스트레스가 없나요?

친구들하고 만날 수가 없어요. “금요일날 꼭 보자” 약속만 했던 적이 수도 없어요. 그렇게 만나기로 했던 친구가 캐나다로 이민 가버린 경우도 있었어요. 전화가 와서는 캐나다에 있대요. “어, 너 거기 왜 갔니?” “이민 간다고 했잖아”해요. 그 정도로 만나기 어려워요. 물론 개인차가 있을 수도 있어요. 이를 악물로 가까스로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힘들죠. 그래서 많은 PD들이 대인관계가 없거나 파괴되고 회사 사람들끼리 놀게 되요. 한편 가족으로부터도 엄청난 이해가 있어야 해요. “난 무시하겠어, 프로니까!”라는 태도는 굉장히 잘못된 자세에요. (관객 웃음) 나름대로 노하우를 개발해보지만 어려운 점이 많아요.

앞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싶다. 이런 포부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저는 사람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좋아요. 개인적으로는 ‘아버지'라는 주제에 대해서 프로그램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요. 굉장히 추상적이잖아요? 어떻게 끌어다 써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많이 부각되는 반면 아버지는 그렇지 않거든요.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나이가 드니까 굉장히 다른 관점으로 아버지를 보게 되더라고요. 웃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어요. 가족들이 다 같이 보면서 ‘우리 아빠도 그럴까?' ‘우리 아이는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런 거에 관련된 프로를 해보고 싶어요.

이제는 여성 PD로서의 임정아 PD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얘기를 들어보면 본인의 직업에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크게 작용했는데요. 여성 PD를 바라보는 내부의 시각은 어땠나요?

처음 들어왔을 때는 여자 PD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어요. 제가 어쩌다가 <육아일기>라는 프로그램을 같이 촬영하게 됐을 땐데요. 어느 날 담당 PD가 테잎을 찍어서 살펴보더니 ‘이 아이템은 불방(방송 못함)이다' 그러는 거에요. 근데 제는 그 테입이 재미있는 거예요. 호영이가 밤에 나와서 우유 타는 장면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남자 PD들은 거기에서 아무 감흥이 없었던 거죠. 그렇게 를 맡게 되면서 여자 PD로서의 감성을 보여줬고, 그 이후로는 남자 PD들도 ‘여자 PD 쓸모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 봐요.

지금은 여자 PD들이 MBC 간판 예능 프로인 <일요일일요일밤에>에도 있는데요. 남자 PD 이상으로 일을 잘해요. 남자 PD와 여자PD가 하는 일이 상당 부분 많이 겹쳐있고요. 더 이상 방송사에서 여자 PD를 마다한다거나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평가의 기준은 프로그램이에요. 프로그램만으로 판단하는 냉혹한 사회이기 때문에 여자라서 겁먹거나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한 해에 1명 혹은 2명이 여자PD로 들어오는데 데스크들이 굉장히 좋아해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내거든요. 아이템을 개발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한 아이템을 자꾸 발굴해내는 거죠.

아직까지 성차별이라고 말해질 수 있는 부분이 있기는 있어요. 예능국 남자 PD들의 경우 출산에 대해서 이해하기는 어려운가 봐요. 여자 PD들은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면 자연스레 임신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남자 PD들은 “임신 했다고 일 못하는 거야?” 그래요. 그런 부분들은 여자 PD들이 계속 얘기를 해서 당연한 권리임을 밝혀야 할 거에요. 성차별의 부분이 체계적이라기보다는, 그냥 경험하지 못했던 부분들에서 남자들이 너무 당황한 거죠. 여자들은 끊임없이 싸워야 되는 부분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 드릴게요. 이제까지 많은 프로그램들을 해오셨는데 PD로서 앞으로의 프로그램에 거는 기대는 어떤 것인가요? 그리고 어떤 것을 이뤄보고 싶은 지에 관한 저변의 가치나 철학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저와 너무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에요. 근데 여러분들 지금 잘 듣고 있나요? 집중력이 좋아 보이기도 하고 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설마 자진 않죠? 그렇다면 너무 상처받을 것 같아요. 하하. 음... 철학은 좀 그렇고요. 저는 단순한 편이거든요. 문제가 복잡할수록 더 단순해져요. 제가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 자랐다고 했잖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빈부의 문제와 함께 커왔어요. 빈부의 상당 부분은 선택이 아니죠.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 나오고 나면 부자인지 가난한지 상관없잖아요. 그렇지만 가난한 아이들은 출발선부터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가난해서 속이 삐뚤어졌군' 이게 아니고. 뭐랄까... 가난해서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한 친구들은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데 10미터 뒤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열심히 따라오지만 결코 그 간격은 좁혀지지 않는다고 생각을 해요. 저도 약간 10미터 뒤에서 출발했어요. 맨 처음 MBC 입사했을 때 선배들이 ‘너는 어떤 CD를 소장하고 있니?' 물었거든요. 근데 저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어요. 저에게 CD를 수집한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거든요.

저에게 영상적인 상상력을 준 매체는 오로지 TV뿐이었어요. 그 격차가 쉽게 좁혀지지는 않겠지만, ‘가난한 사람들도 TV를 보면서 희망을 갖고 즐겁게 살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요. 마취적 기능으로 '야, 넌 지금 행복한 거야' 그런 건 아니지만 10미터 뒤에서 달리고 있더라도 여전히 가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저변에 깔린 생각도 그거에요. 많은 오락매체를 갖지 못한 사람도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누군가는 “뭐야 구질구질하게, 저런 프로그램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요. 그들이 마지막까지 달리기를 조금이라도 즐겁게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혼자 달리고 계신 분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달리고 계신 분입니다. 박수는 꼭 시켜야 치더라. (우뢰와 같은 박수)

1. 반갑습니다. 저는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인데요. 저는 임정아 PD님이 찍고 계신 프로그램들이 사회복지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복지적인 프로그램들이 갖고 있는 효과와 한계 그리고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지 궁금하고요. 촬영을 하실 때 관련된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사회복지적인 성격이 가장 강한 게 <러브하우스>였죠. 전적으로 사회복지사들의 도움은 받습니다. 저희가 사연을 뽑는다는 게 단순히 집이 낡았기 때문은 아니에요. 나올 만 한 사람인가가 중요하고요. 그런 과정에서 사회복지사분들의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막연한 감정만으로는 프로그램을 할 수가 없고요. 필요하면 작가들하고 세미나도 해요. 전혀 관련이 없더라도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천지차이거든요. 작가들은 싫어해요. 하하. 하지만 장애 등급 같은 거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해요. 아주 가끔 방송 타서 이득을 보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제 프로그램의 긍정적인 효과는 잘 모르겠어요. 사회적인 파급이 어떻게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중요한 건 주인공들의 삶이 많이 변화되었다는 거예요. 저는 개인적으로 애들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소년소녀가장. 아무 것도 주어지지 않은 채 방치된 아이들. 근데 얘들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약간 기가 사는 거예요. 처음 가면 십중팔구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요. 감정을 주지 않죠. 또 배신당할까봐... 자신감도 없어요. 그런데 차츰 말을 시켜보면 ‘저도 이거 한번 해보고 싶어요' 얘기하거든요. 악영향은 뭐, 제일 많이 받는 비판이 그거죠. 시청률 지상주의다, 그 사람이 제일 가난한가요? 라는 질문들... 여러 문제점들이 있는데 그런 거 생각 안 하려고요. 잘 모르겠어요 단점은

2. 저요! 안녕하세요? 저는 인천계선여고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인천에서 어렵게 왔거든요. 여기 다 어른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요. (관객 웃음) 여기 보니까 저랑 좀 비슷한 학생분들도 많이 계시거든요. 고3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데 학생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면 들려주세요. 그리고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은데요. 제가 지금은 PD 선생님을 학생의 입장으로 보지만 나중에는 선후배님으로 꼭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와! 하하. 중고등학생한테 가장 하고 싶은 얘기는요. 음... 저는 뭐든지 열심히 하면 배울 건 다 있다고 생각을 해요. 공부도 해보면 배울만한 게 있거든요. 지금 하려는 얘기는 그 얘기는 아니고요. 제가 고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이 있는데요. 지금 읽어보면 그건 일기가 아니에요. 저주에요. 고교 생활에 대한 저주. 틀에 박힌 고교생활. 근데 학교 가면 너무 얌전해요. 선생님한테 질문하고 집에 와서는 다시 저주 쓰고. 아아,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에요. 자신감을 달라고 했는데 죄송해요.

하지만 고등학교 때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첫 번째는 아무리 입시에 시달려도 독서는 꼭 하세요. 상상력의 근원은 책에서 나와요. 읽고 싶은 어떤 책이든 읽으세요. 저는 만화광이었거든요. 하루에 삼십분만이라도 자기 머리를 하고 싶은 일에 쓰게 해주세요. 단 하루 30분만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삼십분 동안 나이트 가기는 힘들잖아요. 책도 좋고 만화도 좋고 그림을 그려도 좋고, 투자를 하세요. 원래 내가 어떤 애였지 돌아보세요. 30분에다가 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지는 말고 편하고 자유롭게 자기의 30분을 가져보세요.

저는 아직도 그 습관을 갖고 있거든요. 그래서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삼십분 동안은 항상 하고 싶은 일을 해요. 하루 종일 책상 앞에 붙어 있어도 공부 잘되는 거 아니잖아요. 동기부여 받으면서 하는 거예요. 고등학교 공부가 인생의 목표가 될 수는 없어요. 나는 이걸 하고 싶은데 이것도 필요하겠지 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할 거예요.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요. 커보면 다 제 주변에 없기 때문에. 하하.

3. PD가 되면 모든 사람들이 PD 한 명만을 바라본다고 하셨잖아요. 카리스마, 리더십이 꼭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다양한 집단을 내 뜻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제가 하는 방식은, 선배가 많은 영향을 줬는데 절대 화를 내지 않는 거예요. 동기를 부여해요.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친밀하게 함으로써 저를 좋아해주길 바래요. 좋아해서 이 일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일을 많이 했었어요. 끝나고 술도 많이 먹고요. 사람들과의 친화를 중심으로 일했어요. 화가 나는 경우도 있으며, 차라리 불러서 말을 하는 편이에요.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화를 안 낸다고 해서 절대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이 되지는 않아요.

하다보면 정말 심한 경우도 있지요. 그럼 팀에서 뺄 수밖에 없지요. 그럴 땐 과감히 팀에서 뺍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그런 느낌을 받을 수도 있죠. 의외로 무섭다. 하지만 무슨 결정을 내릴 때 적절히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우스워 보이는 사람이 되기 쉽기 때문에 팀에서 제외시키는 방법을 택합니다. 강호랑 비슷한 거죠. 신의를 기본으로 하고 약속을 했는데, 몇 번의 기회를 줬는데도 나와의 신의를 깬 경우에는 함께 일을 하지 않죠. 처음에는 저를 여자로 봤거든요. ‘귀엽게 생겼네~' 그럼, ‘정말 전 귀여워요' 그랬죠. (관객 웃음) 목소리 크면 소리 질러도 되요.

4. 작가가 단순히 대본을 쓰는 직업이 아닌 줄은 알고 있었지만 PD랑 작가랑 의견 조율을 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인지는 몰랐어요. 정확히 작가의 역할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고요. 앞으로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하겠지만 정식 작가가 되기 이전에 인턴이나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방송 경험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예능 작가는 예능 PD랑 같이 운동화 신고 뛰어다니는 사람이에요. 드라마 작가는 하나의 소설을 써야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PD랑 만나서 방향같은 것을 조율을 하죠. 아주 많이 뜨게 되면 조율에서 조정으로 갑니다. (관객 웃음)

예능 작가는 폼은 좀 안 나요. 하지만 현장에서 운동화 신고 뛰어다니는 것, 그것도 좋은 것 같아요. 인턴 경험은 이상한 선입견만 갖게 될 것 같고 와서 처음 배우는 게 제일 좋아요. 차라리 그 시간에 붙을 수 있는 방법을 따로 연구하는 게 나아요. 메인 작가가 되지 않으면 힘든 속에서 느끼는 환희는 좀처럼 엿보기 어렵거든요. 드라마 작가는 좀 다르지만요. 미리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5. 대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요즘 방송사마다 학력 폐지니 연령 제한이니 말이 많잖아요.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정말 소위 스카이 출신 PD들이 많다고 들었는데요. 정말 학력 제한이나 연령 제한 없이 뽑는지 궁금하고요. 실제로 PD가 선발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라디오 작가 같은 경우는 공채해서 뽑는 식이 없잖아요. 라디오 작가나 방송 작가의 경우는 어떻게 뽑히는 지 궁금합니다.

회사에서 사람을 뽑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인데 회사가 학력 철폐를 선언한 까닭은 스카이가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 거예요. PD는 약간의 또라이 기질이 있어야 되는데 아, 물론 스카이 중에도 또라이 굉장히 많아요. (관객 웃음) 그런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고 회사는 발상의 전환을 하며 몸부림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심사할 때 보니 학력은 모두 가려있었어요. 주로 자기소개서 부분을 보게 되죠. 방송사 시험은 제로베이스에요. 이 사람이 전 단계에 몇 점을 받았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러니까 시험을 망쳤다고 머리 쥐어뜯을 필요 없고요.

작가의 경우 알음알이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요. 작가들은 대부분 프리랜서거든요. 예능국의 경우는 아이디어, 기획안을 보고 작가를 뽑습니다.

6. <라디오 PD가 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 운영자입니다. 저희가 여기 오기 전에 사회자분께 질문을 전달해달라고 부탁드렸는데요. 질문지를 한번 보시고 답변해주시고 싶은 질문에 답을 부탁드립니다.

네, 함께 오신 분들 질문은 나중에 질문 드리려고 빼두었는데요. 그 중에서 하나 고를게요. PD라는 직업에 대해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오해는 뭔가요?

(질문자에게) 라디오 PD가 되고 싶은 거에요? 자기가 라디오 PD가 되고 싶다는 것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됐어요? 나는 ‘이게 되고 싶다' 고 일찍부터 말하는 사람이 굉장히 신기했어요. 놀리는 게 아니고 정말 신기했어요.

라디오가 따뜻하고 개인적인 매체이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되고 싶어 했어요.

라디오는 아기자기하게 좋은 아이템이 많아서 TV로 갖고 와서 하는 것도 많거든요. 토크쇼 아이템은 거의 다 라디오에서 오는 거예요. 라디오 만드는 사람들이 굉장히 가족 같은 분위기거든요. 근데 여기 앞줄의 학생들. 여기 왜 왔어요? PD하면 어떤 이미지에요?

옛날에는 좋아했어요.

오늘 마음을 접은 거군요. 이럴 줄 알았어. 또 다른 것은요?

어려보여요~

신경 많이 쓰고 있어요. 심은하 메이크업 쪽으로... (관객 웃음) PD에 대해서 갖고 있는 이미지 중에 멋진 이미지는 하나도 없네요. 저는 PD는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동의를 하는데 너무 괴로운 직업이라는 건 쉽게 간과되곤 해요. 육체적인 한계들이 많고 너무너무 혹사시켜요. 체력적인 부분이 굉장히 힘들어요. 56시간동안 안잔 적도 있어요. <진호야 사랑해>의 진호가 시합을 마치고 화요일날 우리나라 들어와서 목요일날 녹화를 떴어요. 일요일날 방송을 내야 되는데 그 순간은 정말. 수명을 1, 2년 단축시키지 않았을까 해요.

PD가 반드시 즐거운 직업만은 아니에요. 굉장히 많은 인간관계들을 조율해야 해요, 굉장히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를 풀어야 해요. 중립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힘들어요. 장수하지 못할 직업 베스트 파이브로 뽑혔던데 그 정도로 스트레스가 너무너무 심해요. 그러면서 계속 자기 개발해야 되거든요. 요즘 애들은 뭘 하고 노나 살펴보고. 그래서 저는 요즘 주말에 토플 학원에 다녀요. 강남에 가서 대학생들 구경하려고요. 그렇다고 뉴욕제과 앞에 앉아있을 수는 없잖아요. 토플학원에서 뒷풀이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같이 끼고 주책 맞게. 하하.

PD, 되게 괴로운 직업이에요. 저의 어머니가 "왜 연예인들만 TV에 나오는 거니. 고생한 너도 좀 나오지" 그러실 정도에요. 가방 속에는 365일 여행 패키지가 들어있어요. 안 그러면 이도 못 닦고 양말도 못 갈아 신으니까. 농담도 많이 했어요.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하하. 그때 쉰여섯시간을 깨어있으니까 이상한 엔돌핀이 분비가 되면서 고통의 숲을 지나니까 환희와 즐거움의 공간이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하하하 웃으면서 편집을 해요. 피부도 팽팽해진 것 같고, 삶의 의욕이 솟고.

힘든 체력을 버텨낼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방송이 나갈 때에요. 편집을 마치고 피곤해서 찜질방에 간 적이 있는데, 역시나 마루에는 <엑스맨>이 장악을 하고 있더라고요. 깰 수가 없어요. 사세에서 팔십세까지 보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근데 다른 방에서 아줌마들 삼십명 정도가 <진호야 사랑해>를 보고 있는 거예요. 뒤에서 아줌마인 척 같이 보면서... 아, 아줌마가 맞죠 하하. 사람들이 웃는 것을 보니까 고통스러웠던 것들이 싹 사라져요. 사람들이 보고 즐거워하는 게 너무 즐거워요. 그런 걸로 56시간을 버티는 것 같아요. 알 수 없는 환희에요.

시간이 길지 않아서 더 많은 질문을 받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임정아 PD님과 한 시간 반 가까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눠봤는데요. 오늘도 어김없이 종이비행기를 날릴 거에요. 여기에는 임정아 PD님의 응원의 메시지가 적혀있습니다. 비행기 갖고 계시죠?

소도구는 반드시 챙깁니다. 근데 잘 쓸 걸. 너무 유치해요. 자막은 제가 직접 쓰거든요. 항상 음악을 틀어놓고 써요. 근데 아까는 음악도 없었고 아우 창피해. 꼭 읽어야 되나요? 알겠습니다. 유치하지만요. 그냥 들어주세요. 이 글을 쓴 이유는 제가 이문열씨의 <사람의 아들>이라는 책에 나온 한 구절 때문이에요. 사실 거의 기억을 못해요. 하나 인상적인 게 뭐냐면 ‘젊은이를 갉아먹는 것은 가난도 아니고 돈도 아니다. 가장 젊은이를 갉아먹는 것은 꿈을 잃는 거다'라고 읽었어요.

오늘 임정아 PD님하고 함께 한 각각의 여정을 기억하시라고 비행기를 날리겠습니다. 굉장히 구깃구깃한 것은 저희가 비행기를 접을 줄 몰라서 여러 번 시도했기 때문이에요. 자, 멀리 날리겠습니다. 앗, 비행기가 꼭 멀리 날아야되는 것만은 아니에요. 하하. 나눠가졌으니까 마음들 다 좋게 가지시고요. 오늘 토크쇼에는 이런 얘기가 굉장히 많았어요. ‘그것도 도움이 됐었어요' ‘누구를 만난 것도 도움이 됐었어요' 그런 인생을 기획하는 일이 쉽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거든요. 언제나 즐거운 임정아 PD님께 감사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동시통역사이시기도 하고요 연극배우, 방송인... 사회의 일반적인 공식을 뛰어넘어서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그 일들을 해내시는 천 가지 재주꾼, 배유정씨를 모시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앉아도 되요? ^^

안녕하십니까? 강의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요. 저는 그런 거 할 줄 모르고요. 자기소개를 하라고 해서 제 소개를 좀 말씀드릴게요. 제 이름은 배유정이라고 하고요. 저는 제 이름을 싫어합니다. 유정 낙지집, 유정 여관 등등 싫어하고요. 여러분은 자기 이름을 싫어해본 적 있나요?

음... 어떻게 소개할까 고민했는데, 일단 저는 좀 이상주의적인 면이 있어요. 그런데 다행히도 굉장히 게을러요. 이상주의자에다 부지런했으면 어디 가서 시위하고 환경운동하고 난리가 났을 거예요. 게으르기 때문에 머리 속으로 생각만 하고 환경운동연합에 회비는 내지만, 나오라고 하면 절대로 안가는 그런 사람이고요.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에요. 오늘 같은 날씨에 외출하는 거 너무 싫습니다. 그 다음에 나이를 물으면 항상 거짓말을 해요. ‘숙녀의 나이를 왜 물어봐’ 라며 빠져나가고요. 그런 걸 보면 허영심이 있는 거죠. 나이가 들어도 사람은 허영심을 버릴 수 없는 거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나를 어떻게 소개를 할까.

컨벤션(convention: 관습, 관행)이라고 하죠. 관행이나 그런 거에 욕심이 없습니다. 자기 편한 대로 사는 거죠. 이 사회가 강요해도 내가 아니면 안 해요. 관행적으로 해왔으니까 해야 한다, 그런 건 잘 안 따르는 편이에요. 대대로 해왔으니까 너도 해라 하는 것들... ‘내가 봤을 때 비합리적인데 왜 해야 하는가?’하고 반문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그런 연습을 어렸을 때부터 해왔어요. 한마디로 부모님에게 굉장히 골치 아픈, 반항아적인 기질이 있었던 거죠.

그 다음에 저는 여성입니다. 태어난 게 여자니까 여성으로서 여성의 시각을 못 벗어나요. 여성으로 태어나서 저는 기뻐요. 남자가 아니라서 굉장히 기쁩니다. 왜냐하면 남성분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남자와 여자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다른 것 같아요. 남성들은 문제해결적으로 접근을 해요. 걱정거리가 있다고 하면 입 꼭 다물고 이걸 어떻게 할까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는데, 여성은 수다로 풀어 하소연해요. 자기한테 스트레스가 되지 않도록 말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리잖아요. 상대가 교감을 해줄 때 해결되고. 정서적으로 교감을 필요로 하는 동물이거든요.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정서적 교감을 중요시하는 여성이라는 점이 위로가 되고 기쁩니다.

그리고 저는 육식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한 4, 5년 전부터 고기를 안 먹어요. 회식을 가면 괴로워요. 거창하게 말하면 철학이지만, 생각을 바꾼 거에요. 제가 동물을 죽여서 고기를 취하지 않아도 요즘은 워낙 다양한 먹거리가 있으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동물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가끔 고기가 그립습니다. 그러나 저의 믿음,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고기를 안 먹고 있습니다.

저는 고양이 엄마에요. 저희 집에 고양이 아홉 마리가 있습니다. 페르시아 고양이 같은 예쁜 고양이가 아니라 그냥 쓰레기통 옆에서 만나 데리고 오거나, 남이 버린 고양이 입양을 해서 키워요. 그렇게 버려진 고양이를 입양하다 보니까 많아졌어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어 눈 주위가 다 부어요. 그래서 오늘도 다 부어서 나왔습니다.

저는 별로 도덕적인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불법 운전의 여왕이랄까. 속도위반 무지하게 합니다. 제가 낸 범칙금으로 조그만 골목 하나쯤 닦았으리라 생각하고요. 거짓말도 많이 하고. 사람을 배반도 해봤어요. 고무신 거꾸로 신은 적도 있어요. 제가 굉장히 도덕적이고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살다보니까 굉장히 많은 잘못을 하더라고요. 아주 편안하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권위적인 거 안 좋아하고요. 조직 정말 싫습니다. 그래서 제가 몇 년 전까지 직장이 없이 프리랜서로 일을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마음이 약간 약해지는 순간, 2년 전에 이대 전임으로 들어갔어요. 그래서 매우 허덕이고 있습니다. 곧 쫓겨나지 않으면 제 발로 나온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결, 위생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릴 때 손톱검사 하잖아요. 근데 패스에요. 얼굴이 하얗고 그래서. 성격은 털털해요. 여러분들 만난다고 하니까 차려입고 나온 거예요. 동네에서 마주치면 아무도 못 알아봐요.

왜 자기 소개를 하는데 이렇게 장황하게 얘기를 하냐면, 보통 자기소개 좀 해봐 하면 ‘저는 이대 영문과를 몇 년에 졸업하고’ 이렇게 나와요. ‘그건 이력서에 있는 얘기니까 자기의 이야기를 해봐요.’하면 거기에 대해서 준비들이 안 되어 있어요. 그래서 자기소개를 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거예요.

여러분들은 웃으시겠지만 제가 받는 가장 많이 받는 오해가, ‘MBC에서 시사프로 진행하고 하니까 제가 굉장히 똑똑하고 완벽주의자고 까다로울 것이다’하는 거예요. 근데 가장 먼 이야기거든요. 그게 미디어가 조작해낸 이미지일 뿐이에요. 사실 저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겁니다.

이렇게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이력서에 나온 것, 언론이 조작해낸 이미지가 아니라 진짜 내 소개를 해주고 싶었던 거예요. 고등학생, 대학생 이런 분들이 모였다고 들었는데 대학 입시 들어가서 ‘자기소개 좀 해봐’ 그랬을 때 한번 다시 생각해보세요. 이력서에 나와 있는게 여러분일까요? 여러분들은 그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측면이 있는 입체거든요. 어느 학교, 몇 년 이상의 여러분이 있거든요. 저는 장황하게 말했지만 여러분들이 앞으로 자기소개 할 때 ‘어떤 게 나의 본질인가’라는 생각을 먼저 하셨으면 해요. 15분 다 됐습니까? 아 5분 남았어요. 큰일 났다.(하하)

학부에서는 전혀 상관없이 심리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통역을 공부했어요. 사실 동시통역사란 말은 없어요. “국제회의 통역사”예요. 동시통역은 통역의 종류 중 하나에요. 순차통역, 동시통역 등등이 있는데, 동시통역이라는 말이 익숙하니까 이름이 붙은 거예요.

통역사로 일을 하다가 좀 싫증이 났어요. 통역사로 자신이 생기고 경제력도 생기니까 학사편입을 해서 연극영화과로 갔어요. 한양대 연극영화과로 편입을 해서 연극 공부를 2년을 했어요. 그래서 국립극단에 들어가서 2년을 있었고, 대학로에서 연극을 잠깐 했고,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호주 방송에서 영어 모노드라마를 한 게 기사가 나서 라디오에 게스트로 초대됐어요. 그러다가 PD에게 전격 캐스팅이 돼서 방송을 시작한 거예요.

많이 받은 질문이 자신을 어떤 직업으로 소개하느냐 인데요. 연극계에 가서는 배우입니다. 배우 협회에 등록되어 있는 배우에요. 통역에서는 연극하고 방송하는 게 아무런 프리미엄이 안 돼요. 제가 순차통역이면 사인해달라고 해요. 그럼 주빈인 연사들이 싫어해요. 통역계에서는 단순통역사.

나비씨가 소개할 때 영화배우라고 하셨는데 제발 좀 빼주시면 안될까요? 제가 영화에 한번 출연해서 굉장히 수모를 당했는데요. KBS에서 영화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돌발 퀴즈가 지나가는 거예요. 지금도 잊지 못할 수모의 순간이었어요. ‘우리나라 3대 여배우가 아닌 것은?’ 강수연, 이미숙, 이미연, 4번 배유정. 그거 가지고 두고두고 놀림 받고 있어요. 저 영화 딱 한편밖에 안했거든요. 저희 아버지도 영화 다 끝나고서도 못 알아보셨어요. 영화배우란 애기 안했으면 좋겠어요. 연극으로만...

자, 15분 됐나요? 앞으로의 계획 이야기는 나중에 할게요. 감사합니다. 들어주셔서.

(배유정씨 얼굴을 포스트잇으로 표현한 작품을 보며)

원체 바쁘셔서... 오늘도 낮에 계속 밖에서 스케줄이 있으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강의가 부담스럽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렇게 잘 말씀해주시다니.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고 박수를 한번 드리겠습니다. 예, 저희가 영화배우란 이야기를 일부러 넣으려고 그랬다기 보다는...(하하하).

여러분, 저도 방송 쪽에 종사를 하지만 방송에 나온다고, 지면에 활자화된다고, 진실은 아닙니다. 새겨두셔야 합니다.

배유정씨에 대한 편견을 벗고 진실을 들어보는 시간을 갖고요. 이건 제 개인적인 욕심입니다만 뒤에 이 작품, 본인을 살짝 쪼금이라도 닮지 않았습니까?

(바라보며) ^^;;

원래는 사진이었는데 픽셀이 너무 커서... 자, 딴 짓 안하고 질문 하죠.

전위예술로 표현된 제 얼굴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몇 배나 부지런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배유정씨의 청소년기가 궁금합니다.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라고 자기소개 때 말씀을 드렸고요. 게으른데 제가 좋아하는 거에만 부지런하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물론 두루 성실한 분도 계시겠지만.

청소년기에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외국에 나갔어요. 조기 영어 그런 거 없었을 때고, ABCD는 중학교 들어가서 배웠거든요. 이태리 로마로 가서 중학교 1학년 수업을 하는데, 정말 아무 것도 못 알아듣겠는 거예요. 그 당시에는 유럽에 동양인도 없었어요. 버스타면 사람들 다 쳐다보고. 사춘기가 시작된 중학교 1학년 나이니까 고개도 못 돌리고 숙이고 다녔어요.

일단 말을 못하니까 학교에서 바보죠. 성격도 어두워졌어요. 스스럼없이 누구에게 다가가서 친구하자 이런 성격 절대 아니거든요. 밝지 못한 성격인데 말도 못하지, 외국 애들이지, 하니까 성격이 어두워지고 더 비뚤게 나갔어요. 잘하는 게 있어서 칭찬을 받아도 그것도 기껍게 들리지가 않는 거예요. ‘진심의 칭찬이 아닐 거야.’하며 그대로 못 받아들였죠.

제가 그림은 좀 그렸어요. 선생님이 잘 그렸다며 미술가를 해도 되겠다고 했는데 그것도 좋게 들리지 않는 거예요. 그때 선생님한테 굉장히 혼났어요. ‘애가 왜 이렇게 삐딱하냐, 칭찬을 해줘도 저렇게 나오고.’ 어머니가 점점 걱정을 하기 시작하고,

물론 학교에 남아서 따로 과외를 받고, 그렇게 1년이 지났는데. 왜, 1년만 갖다오면 영어는 다 된다고 하잖아요? 천만의 말씀. 유치원생 때, 초등학교 2학년 때는 돼요. 쓰는 단어가 몇 개 안되기 때문에. 문장의 구조도 매우 간단하고. 제 동생은 5학년으로 들어갔는데, 저보다 훨씬 친구도 빨리 사귀고 말도 빨리 텄어요. 그런데 저는 너무 힘든 거예요.

1년쯤 되니까 숙제는 뭔지 알겠는데도 자신감은 여전히 없는 거예요. 1년이 지나고 여름방학이 석 달인데, 어머니가 선생님한테 ‘얘가 영어를 좀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숙제를 주십시오.’라고 했어요. 저희 어머니가 영문과 출신이신데, 방학도 없이 딱 잡아놓고 앉혀서 매일매일 숙제만 시켰어요. 석달을 하루도 안 빼놓고 했죠. 개학을 하고 첫 번째 시간이 문법을 도해하는 시간이었어요. 나는 밥 먹고 그것만 했잖아요? 반에서 내가 제일 잘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해서 친구도 사귀고, 긍정적인 시각도 갖게 되고... 그런 전환기가 있었어요. 제가 그거 안했으면 로마에서 삐딱 소녀로 자랐을 거예요.


그렇게 3년 반쯤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한 가지 좋은 거는 시내버스를 탔는데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는 거예요. 여러분 그 느낌 모르죠? 그 해방감. 내가 익명의, 여러 명 중의 하나가 된거죠. 남들이 볼 때는 10대 소녀가 버스 탔는데 뭐가 특이하겠어. 거기 이태리는 모든 눈동자가 나를 보거든요. ‘내 나라가 좋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외교관 자녀들이 외국 사는 거 싫어하는 사람 되게 많아요. 마이너리티(minority: 소수자)가 돼보는 게 어떤 지 잘 알거든. 문화적 상대주의에 눈을 일찍 뜬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 후 한국에 나왔는데 교복을 입는 거예요. 외국에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화장하고 머리 맨날 고데하고 그러는데, 한국에서는 바로 날라리로 찍혀서 요주 인물이 되요. 하여튼 그러니까 얼마나 문화충격이었겠어. 그때가 70년대 말이었거든요. 80년도에 고등학교 2학년으로 들어갔는데 서슬 퍼런 군사정권이었고. 학교에 가면 교문에서 딱 잡는 거야. 머리를 땋는 게 3개로 나와야 되는데 머리가 짧아서 2개가 됐었거든. 그러면 교문에서 푸르고 다시 땋고 들어가요. 참고로 저 예고 나왔어요.

또 나에게 충격은 공부 잘하는 모범생들은 전학 온 학생하고 친구를 안 해요. 공부는 못해도 ‘어머 너 외국서 살다왔구나’ 친하게 해주는 애들이 있어요. 너무 고마운 마음에 이 친구들과 같이 광화문에 가서 라면도 먹고 떡볶이도 먹고 그랬어요. 근데 그 첩보가 바로 교무실로, 그 다음 엄마 귀에 들어갔죠. ‘내가 떡볶이 집에 가서 떡볶이 먹는데 왜 선생님이 걱정할 일이야? 학교 끝난 이후의 생활은 선생님 간섭하지 마요’ 이렇게 못되게 나가는 거죠.

그 뒤 모의고사를 봤어요. 모의고사는 국영수만 보잖아요? 제가 책은 좀 읽었기 때문에 국어는 따라가고, 영어도 되었고, 수학도 좀 해서 성적이 좀 잘나왔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성적이 나오니까 친구가 물갈이가 되데? 반장, 부반장 하던 친구들이 ‘이리와 친구 해줄게’ 이런 분위기고. 선생님도 나를 다르게 보고. 근데 나는 예민하기 때문에 그게 너무 싫었어요. 이런 걸로 사람을 평가를 하나? 그래서 맨날 놀던 친구들이랑 놀고. 그러니까 학교생활이 좋았겠어요? 안 좋지. 억압적으로 느껴지고.

미술을 했는데 그것도 문제였어요. 윤성자 선생님이라고 유학 갔다 오셨는데, 그 선생님한테 미술을 배웠어요. 선생님하고 비 오면 집안에서 유화를 그리고, 비 안 오면 선생님은 데생하고 우리는 수채화 그리고 그랬어요. 선생님이 미대 가봐라 해서 예고를 지원했는데 우리나라 입시에 딱 그게 있어요. 학교마다 스타일이 있어서... 소묘도 딱 그렇게 가르치는 거야.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랑 너무 다른 거야.

학교 그렇지, 선생님도 성적으로 학생들 재단하고, 교우 관계 간섭하지... 그나마 위안이 그림 그리는 건데, ‘너가 뭘로 갈 거냐? 응용 미술로 갈 거냐? 회화과로 갈 거냐?’ 그림도 다른 걸 그려야 된다고 하고, 너무너무 답답하죠. 학교 시절, 고등학교 시절, 꿈 많은 학창 시절 너무 미화하곤 하는데, 나는 사춘기가 너무 싫었고요. 한국 와서도 고생했었고, 사춘기는 안 돌아가고픈 시기예요.


청소년기가 답답한 게 뭐냐면 머리는 크고 조숙해서 자기 나름의 가치관은 있는데, 힘은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부모님에게 의존해야 하고. ‘나 이렇게 안할래.’ 그러면 아버지는 ‘네가 내 집에 있는 한, 내 밥을 먹는 한, 내 맘대로 해’ 딱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그래서 저도 집을 나간다고, 몇 번이나 부모님과 갈등했어요. 저희 아버지가 굉장히 권위적인 분이세요. 고집 세고. 지금은 부모님이 연로해지시니까 화해가 되더라고요.

청소년은 어떻게 보면 가장 힘이 없는 집단이에요. 예민하고 순수해서 어른들보다 꿈이 뚜렷한데, 현실은 나를 조그만 틀에 가둬놓거든요. 요즘은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도 하더라만, 저희 때는 그럴 기회도 없었어요. 내가 원하지 않는 걸 바라는 사람들 틈에서 사니까 괴롭죠. 저는 늙는 게 좋아요. 사람들이 청춘 그립다, 돌아가고 싶다 하는데 저는 20대도 너무 싫었고. 대학 가면 바뀔 줄 알아요? 비슷해요. (청중 웃음) 아직까지도 여러분들이 기득권을 잡는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오죽하면 10대 때 소원이 마흔이 되는 거였거든요. 지금 마흔이 됐거든요. 너무 좋아요.(흐믓)

‘열다섯 때 영어는 띄었고요’가 아니라서 너무 다행스럽지 않아요? 갑갑한 시절이 많았고 지금 나이가 들어서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갑갑하고 충분히 방황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충분히 해내시잖아요. 남들이 하지 않는 걸해서 오는 불안감. 보통은 따라가 주는데 그게 아닌 선택을 하는 사람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불안감 같은 것은 없었나요?

불안감은 항상 있죠. 연극하는 동안 돈은 못 벌잖아요. 집에서 다 반대했죠. 통역사로 잘 하고 있는데 뭐 하러 그걸 다 버리냐고. 연극은 배고픈 직업인데 뭐 하러 하느냐. 통역사는 프리랜서기 때문에 일을 안 하면 고객이 다 떨어져 나가요. 20대 후반에 통역사로 돈을 좀 벌어놨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의존 안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던 건데, 연극을 하면 부모님에게 또 손 벌리게 될까봐 불안했죠. 그때 불안감을 극복하고 일을 했던 건, 의지가 강해서 그런 게 아니고 워낙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이에요.

아무 비전도 없고 보장도 없지만 하고 싶은 거에 대한 희열, 그거에 모든 걸 거는 거예요. 무계획, 무모한 성격이라고 하는 게 딱 맞는데,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그거 때문이기도 해요. 사람들이 부지런해서, 일욕심이 많아서 라고 얘기하는데 그거 아니라니까요.

무모하다고 하셨는데 용감한 성격이시거든요.

무식하니까 용감한 거에요.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안했을 거예요. 저는 공연 보는 걸 좋아했어요. 무대도 화려하니까 멋져 보였죠. 문학을 좋아하니까 희곡도 많이 읽었거든요. 미술 했으니까 무대 미술에도 관심이 많고. 저는 연극배우랑 말 한번 해본 적도 없었어요. 요즘 같으면 좀 알아보고 했을 거예요. ‘연극하는 사람에게 벌이는 어때요?, 캐스팅은 어떻게 하나요?’하고. 아무 것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했어요.

방송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라디오를 안 듣고 자란 세대에요. 저는 10대 때 테이프만 듣던 세대고 외국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라디오도 들어본 적이 없고. 당시 저를 발탁했던 PD 부인이 모니터링을 해주는데, 하는 말이 ‘여보, 이 사람은 방송을 안 들어본 사람 같애.’라고 했대요. 몰랐기 때문에 했던 거죠. 진행이 뭐 그러냐고 욕도 많이 먹었어요. TV방송을 시작할 때는 제가 해서 망신당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영화 음악 진행하면 영화는 보여주나요?’ 물었더니 다 공짜래요. 어 나 영화 좋아하니까 좋다, 그래서 한 거라니까요. (하하)

용감한 선택을 해오셨다고 하셨는데 아무리 몰라도 내 나이는 알잖아요. 어떤 사람은 광고에도 나왔는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이런 말도 했는데 아무래도 한국은 더 심하게 20대는 뭐할 나이, 30대는 뭐할 나이, 이런게 굉장히 분명한데 ‘어떤 나이에 무엇을 하는 것’이 굉장히 달랐을 것 같거든요,

저를 가르치는 사람이 저보다 어려도 무조건 선생님이에요. 제가 뭘 배우러 가서 ‘내가 너보다 나이는 많거든’ 이건 아니거든요. 내가 가르침을 받으러 갈 때는 ‘인도해주세요’하면서 매달리는 거예요. 저 연극영화과 들어갔을 때, 만 열아홉 친구들과 함께 공부했어요. 저는 학생이 된다는 기분에 룰루랄라 하면서 다니고. 연극했던 동기들이 권해효, 유오성... 또 있어 하여튼. 밖에는 선생님 소리 듣고 통역사 대접받지만 안에서는 누가 날 알아줘요. 내가 '배우겠습니다' 들어가면 사람들도 그렇게 받아들여요.

저희 아버지 얘기 해드릴까요? 예순이 다 되셔서 용산에 컴퓨터 학원에 등록했어요. 새벽 4시면 눈뜨시는데, 모르는 걸 물어보고 싶어서 선생님 일어나는 시간 기다리다가 7시에도 전화를 해요. ‘어 난데 말야 이거 어떻게 하는거야.’ 그렇게 열의를 보이는 만학도 학생을 누가 밉다고 하겠습니까. 이제 저희 아버지는 간단한 프로그래밍도 하시고, 조립한 컴퓨터를 자신이 업그레이드를 해가면서 쓰세요. 그런 마음가짐이 중요한 거 같아요. 맨날 지금 들어가서 될까 그런 건 여러분들의 기우(杞憂: 쓸데없는 걱정을 이르는 말)예요.

내 나이대가 아닌데 들어간 사람은 필요가 있어서 들어간 거잖아요. 내가 지금 대학 나이를 놓쳤는데 지금 대학에 들어가야 겠다고 생각하면 들어가는 거예요. 그냥 시간 때우러 오는 학생하고 그 사람하고 비교했을 때 누가 더 열심히 하겠어요? 나는 만학도들이 훨씬 더 유리하다고 생각해요.

안정된 직업? 여러분들은 지금 그런 생각을 하시면 안 돼요. 지금은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요. 옛날에는 인생 참 웃기는 게 '한 우물을 파야지' 그 소리 많이 들었고요. ‘한 가지도 못하니까 여기저기 다니는 거 아니야’ 이런 소리 들었는데, 사회가 바뀌니까 ‘멀티태스킹(multitasking: 다중처리, 동시에 여러 가지 작업을 하는 것을 말함)에 강하다’ 그런 소리 나와요.

50대 통역사들 아직 현역으로 일해요. 그리고 다들 젊게 사세요. 하지만 몸도 젊지 마음도 젊은데 할 일은 없고, 굉장히 힘들어져요. 오랫동안 자기가 스스로 단련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해요. 경제력도 생각안할 수 없어요. 인구가 자꾸 감소하고, 저출산 국가잖아요. 그러니까 점점 살기 어려워지죠. 나중에 여러분들 밑에 있는 사람들이 내준 연금으로 살아야 되는데, 지금 10만원 내는데 나중에 2, 3만원 밖에 못 받을지도 모른다고 다들 그거 걱정해요.

제 2, 3의 커리어도 생각해야 되요. 어린 사람들하고 다시 배워야 되거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는 시대가 올 거고 당연히 그렇게 마음을 먹어야 된다고 봐요.

제 2의 커리어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매우 필요한 조언이었던 것 같은데요. 조금 다른 애기 해볼게요. 여러 가지 영역에서 일을 하는데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특히 극단에서도 일을 하셨는데 극단은 성차별이나 권위적인 구조가 심하다고 들었는데요.

여성의 정체성, 작용했죠. 왜냐하면 부모님이 굉장히 독특한 교육을 하셨어요. 딸만 둘인데, 결혼해라, 시집가서 잘 살아라 그런 얘기를 한번도 안하셨어요. 여자도 경제력을 가져야 된다. 여자도 배운 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된다, 이런 말씀만 하시고. 나중에 엄마한테 왜 결혼하란 말은 안하셨어요? 그랬더니 ‘난 당연히 할 줄 알고 안했는데.’하시더라고요.

저는 학구적인 타입이 절대 아니에요. 활동적이고 밖에서 일하는 걸 좋아하는데. 대학교 4학년 때까지 열심히 연애를 하고 무지하게 실연하고. 사회에 나갈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더라고요. 그 당시만 해도 대기업에 여성들이 진출을 하면 대졸 사원들도 커피 심부름 시키고 중요한 일은 안 시키는 분위기였어요. 영어로 이라고 하죠. 지금도 통역 나가보면 최고경영자 혹은 여성 임원들은 없어요.그 당시에는 더 심했죠. 조직은 위계질서가 강하고 수직적이고 남성적인 성격이 강했어요. 그래서 프리랜서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여성의 정체성이 한번 작용을 한 거고. 속으로 ‘여성도 남성과 권리면에서 동등해야지’ 생각하지만, 내가 이런 이상을 가지고 있으면 페미니스트로 나서야 되지만 비겁하기 때문에 프리랜서로 탁 빠진 거죠.


통역사로 일하는데 여성이 불리하지 않아요. 외국은 남자 통역사가 많은데, 유독 일본과 한국만 여성 통역사가 많아요. 우리나라에서는 남자들이 통역대학원을 나와도 다 취직을 해버려요. 프리랜서만 해도 보장된 직업이 아니었거든요. 가장으로서 생계를 유지하기에 적합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가끔 테크니컬한 통역을 할 때 남자들을 보내달라는 주문을 해요. 그럼 없는데요 하죠. (웃음)

연극에서 사실은 성차별이 롤(role:역할)적인 면에서는 있을 수 없어요. 문제는 극작가들이죠. 굉장히 심각한 고뇌의 인물을 연기할 때 남자를 써요. 햄릿이 남자거든요. 그런 거는 남자가 해요. 여성의 역할 자체가 조연이라든가 청순가련이 대부분이죠. 세상에서 가장 매력 없는 역할이 오필리아(햄릿에 나오는 여주인공)예요. 오필리아는 정말 운명에 휘둘리고 가장 주체가 없는 역이에요. 사실은 왕비가 인간적 갈등과 고뇌가 더 많아요. 왕비가 사실은 더 매력적인 역인데, 흔히 오필리아라고 생각을 하지요. 역할 자체에서 오는 어떤 극에서의 무게감, 이런 게 여성 역할에 많이 안주어지는 부분이 있어요.

극단 내에서는 모르겠어요. 제가 막내로 들어갔을 때는 여성만 두 명 뽑았기 때문에. 극단에서 선후배 관계는 굉장히 따지는데 성차별적인 그런 건 좀 열려있어요. 연극하시는 분들이 순수하고 개방적이에요. 너무 디스플린(discipline: 규율, 기강?) 없는 게 탈이죠. 열려있고 따뜻하고 양성평등적인 면이 많다고 봐야죠.

통역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어요. 네이버 검색을 해봤더니 ‘통역사가 되고 싶어요’ 라는 질문에 답변이 ‘리스닝이 반입니다’, ‘단어도 뭐도 다 중요하지만, 저도 6학년인데 통역사 준비하고 있습니다.’고 나오더라고요. 굉장히 깜짝 놀랐는데 답변자 의견 달기 부분에 ‘여러분이 뭔가 잘 모르시나본데 동시통역사는요...............신입니다’라고 나오더라고요. 통역사란 직업에 대해서 좀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주시려면 많은 초등학생(?)에게 도움을 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 통역대학원에 온 학생들을 보면, ‘왜 왔어요 딴 거 하세요’라고 얘기해요. 솔직히 전문직이가 사회적 위상, 지위도 인정을 받지만, 진짜 솔직하게 까놓고 이야기하면 보수가 적어요. 통역사는 ‘사’자 리스트에서 가장 하단에 있다고 보시면 되요. 의사, 변호사, 회계사... 이런 분들은 만약 자기가 변호사면 소송건을 맡고, 굉장히 고액이 걸려있으면 탄력적으로 수입이 들어와요. 의사는 병원을 어떻게 경영을 하느냐에 따라서 탄력적으로 설계를 할 수가 있어요. 약사도 가능하죠. 자기 밑에 보조 약사를 두고 늘릴 수 있는 거죠.

통역사는 내가 현장에 직접 나가야 돼요. 누구를 대신 보낼 수 없어요. 일반인이 의뢰한 통역이나 대통령이 의뢰한 통역이나 액수도 똑같아요. 6시간까지 얼마. 똑같아요. 통역사가 버는 수입은 최대 일년에 얼마, 이렇게 딱 정해져 있어요. 제 때는 여성들에게 열린 직업이 몇 없었어요. 그래서 통역사가 매력적인 직종이 될 수 있었어요. 몇 없으니까. 지금은 여성들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훨씬 많아요. 수익적인 면에서도. 통역사는 화려하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은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음에도 하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외국어를 잘하시는 분들이 통역사하려고 많이 생각하시는데요. 동시통역 같은 경우는 영어도 외국인 정도로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만, 그건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고요.

가장 요구하는 것은 논리적인 사고, 이해력 이예요. 굉장히 다양한 분야를 두루 하잖아요. 오늘은 IT, 내일은 통일연구원에서 한국 대북 정책, 그리고 그 다음날은 전혀 다른 통역을 해요. 그래서 다른 분야의 텍스트를 굉장히 빨리빨리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요. 보통 언어에 치중을 하고 목숨을 거는데 논리적인 사고, 순발력과 이해력이 더 필요해요. 사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것과 매우 다릅니다. 우리말을 잘해야 해요. 영어 잘하는 교포, 우리 학교 오면 졸업을 안 시켜줘요. 영어도 뛰어나게 구사하면서 논리적, 이해력, 순발력 그 요건을 맞추기가 사실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대학원 올 수준이면 그 동네에서는 영어하면 그 사람, 학교에서 영어하면 그 사람, 하던 사람들이 와요. 그런데 영어만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저는 사실은 영어보다 중국어를 권하고 싶습니다. 중국의 부상을 생각하면. 중국어의 중요성을 무시 못 합니다. 하지만 중국어가 됐든 영어가 됐든, 영어는 열심히 할 필요가 있어요. 영어를 발판으로 뭐든 할 수 있거든요. 해서 손해 볼 일 없다는 거죠. 그런데 통역사가 되기 위한 요건을 맞추려면 그거 갖고는 안 된다는 거죠.

통역사들끼리 얘기하면 ‘타고나야 한다.'는 말을 해요. 사실 전문직 중에 많은 부분이 그래요. 70%는 타고난 사람, 30%는 학교에서 가르친 것. 통역이 전혀 체질에 안 맞는 사람이 많아요. 영어도 잘하고 통역도 잘 하는데 이게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야 되는 거잖아요. 순차통역을 한다면 연사가 말을 하고 그걸 필기를 하고 1~2분이 경과된 다음에 이야기를 하는 건데. 남의 말을 토씨 하나 안 빼놓고 얘기하려니 스트레스가 굉장히 가해지는 거예요. 동시통역은 부스라고 해서 조그만 나무 박스가 있어요. 나비씨가 여기서 이야기를 하면 헤드셋으로 듣고 동시에 통역을 해요. 그러면 대중 앞에 나오는 게 아니고, 대중을 대변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럼 조금 낫죠.

통역사 1~2년 하다가 그만 두는 사람도 많아요. 언어적 적성, 논리적 머리, 이해력, 순발력이 있어야 돼요. 사람들 앞에서 퍼블릭 스피킹(public speaking: 말 그대로 공중, 대중을 상대로 말하는 것. 연설, 웅변 등을 말함)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사람. 저희들이 그런 거 매우 강조해요. 연사가 말하면 통역사가 그에 못지않은 설득력으로 딱 잡아줘야 되거든요. 그런데 자기가 목소리가 작거나 하면 그 사람의 말 자체는 전달이 될지 몰라도, 서브 텍스트(sub-text: 문장의 숨은 의미?)랄까, 열정 이런 건 전혀 전달이 안 되고 여과되어 버리는 거죠. 그런 것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동시 통역사까지 될 수 있는 게 쉽지가 않은 거예요. 그러나 영어 공부는 광범위하게 하시면 좋습니다.

통역사 그렇게 멋진 직업 아니에요. 돈도 조금 벌고. 저희는 호텔에서 많이 일해요. 맨날 이 호텔에서 저 호텔로, 힐튼, 하얏트... 일주일 내내 도니까 화려해 보이지만, 연사들은 레드 카펫 밟고 올라오는데 저희는 종업원들 다니는 곳으로 다녀요. 통역 부스 들어가서 음지에서 양지를 그리며 일을 하고. 돈도 얼마나 많이 드는지 몰라요. 바쁘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호텔에서 밥을 먹어야 하거든요. 그러면 정말 지출이 엄청 많아져요. 솔직히 통역사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거든요. 통역이 안 되면 아무 것도 전달되는 내용이 없으니까. 아무나 불러서 써도 되는 줄 알고 대접 안 해줘요.

그러나 통역사가 나쁜 직업은 아니에요. 장점도 많아요. 자유롭고, 그것도 또 프리랜서가 다 그렇지만 일주일에 나흘만 일하고. 하지만 7, 8, 9월 팍 쉬고 외국 여행 같은 건 힘들어요. 고객 관리를 해야 되거든요. ‘어 배유정씨 연락 안 되네’하며 내 역할이 내 동료 경쟁자에게 가게 되는 거예요. 프리랜서들이 거의 다 그렇지만 사실 통역사들은 불안해서 여행 못 다녀요. 충성스런 고객 베이스를 갖고 있는 사람이나 여행 다니고 하지. 장단이 있어요.

통역사에 대해 혹 직접 질문을 던지고 싶으시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디지털 고등학교 일학년 박지훈이라고 하는데요. 유년기나 청소년기 때 꿈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 지금의 직업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질문이 뭐냐면요. 미래 계획이 뭐냐 하고, 어렸을 때의 꿈이 무엇이었느냐 이건데. 이런 자리 오면 통역사가 꿈이었고, 열심히 코피 터지도록 공부해서 통역사가 되었다며 귀감이 되는 이야기를 해줘야 되는데요. 저는 그 목표가 없어서 방황을 했어요.

자기가 목표가 있으면, 목표 의식이 있으니 갈 길이 나오고 하는데, 저는 그게 없어서, 저희 어머니가 저를 의지 박약아라고 하셨어요. 내 마음대로 끌리는 대로 이것저것 해보니까 그림도 그려보고 노래도 해보고. 그래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1학년이라고 하셨는데 본인은 뭐 되고 싶은 게 있어요?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기획자. 게임 기획자가 되고 싶거든요.

박지훈군은 굉장히 운이 좋은 거에요. 게임기획자가 되고 싶다면 게임 방송도 열심히 보고 직접 게임도 할 거고 할 텐데 저는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꿈이 없는 경우가 많다니까요. 그런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답답하죠? 근데 그것도 괜찮다는 거예요, 몇 년을 살았다고 ‘내가 원하는 건 이거야!’라고 할 수 없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예요. 나는 통역은 그냥 했지만, 연극은 제가 목표의식을 가지고 했어요. 연극 공부하는 동안 신이 나고 정말 재미있었어요. 다른 공부할 때는 정말 재미없었거든요. 운이 좋아서 졸업을 한 거지.

사실은 오랫동안 뭘 하고 싶은지를 못 찾았어요. 서른 넘어서야 ‘이거 하고 싶다’하고 발견한 게 연극이에요. 만약 지금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른다, 갑갑하다’ 그럼 당연하다고 생각하세요. 내 짝은 있는데 왜 나는 없지 하면, 나를 조금 더 열어놓고 인생 경험 두루두루 해봐야지...하고.

인생에서의 불확실성은 평생 가져가는 거라고 봐요. 10대, 20대에서 끝나는 게 아니죠. 현재 위치에서 인생에서 확신을 가지냐? 그건 아니에요. 어렸을 때는, 빨리 결정 안하면 안 되는데 왜 가고 싶은 과가 없지, 남들은 다 어떤 기업을 목표로 하는데 나는 왜 없지? 그때는 인생의 길이 그거밖에 없는 줄 알고 답답했는데 지금은 여유가 조금 있어요. 다른 선택도 있고 대안도 있다는 걸 지금은 아니까. 제가 너무 방황을 했기 때문에. 하나로 정한 게 없었기 때문에 더 다양한 일을 해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변호사가 되어야지 했으면 고시 공부만 했겠지만, ‘이것도 재미있네!’ 하다보니까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방송 쪽에 관심이 많은, 10대보다는 조금 편해진 나이고요. 오늘 이야기를 해주신 게 인생의 불확실성에 대한 부분, 살아오면서 ‘나는 이것, 이것, 이것을 해보다 보니까 싫어져서, 하고 싶은 게 생겨서 바라보는 위치다‘라는 말씀을 들었는데요.

저희같이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이미 일가를 이루었다고 보입니다. 남들이 보는 성공에 서셨다고 생각하거든요. 다 전문직종인 분야에서 남들이 인정할 만한 커리어를 쌓으실 수 있었던 데에는 배유정님만의 특별한 부분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이해가 안가서 질문을 드리는 겁니다. 운 좋게 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무언가....

저한테는 ‘거짓말 하시는 거죠' 라고 들리는데요?

제가 쉽게, 쉽게 이야기를 하는데.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어요. 여러 가지 해보니까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어요. 통역대학원 1학년 때 공부를 열심히 안했어요. 마음을 먹고 들어간 게 아니었잖아요. 제가 2학년 때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죠. 제가 뒤쳐져있다는 걸 깨달아서 2학년 여름 방학 때부터 <배짱이 클럽>을 형성했어요. 그때부터는 죽어라 공부한 거죠. 제 성격이 그래요. 계획을 세워서 공부하는 스타일이고, 굉장히 인텐시브(intensive: 집중적으로)하게 공부했던 부분이 있었어요. 통역대학원 학생들은 고등학교 3학년하고 똑같아요. 10시, 11시 반에 집에 가고 주말도 없고 방학도 없어요. 그런 수련의 기간 다음에 전문직종이 탄생하는 거죠.

그리고 또 방송은, 방송도 일가를 이루셨다고 해서 제가 씩 웃었잖아요.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바라봤을 때처럼 방송도 여러 개를 하고, 통역사로도 여러 가지 회의를 나가고 했으니까 탄탄하게 안정적이구나 하시는데요. 그런 안정감이라는 건 평생 오지 않는 거 같아요. 성공한 사람이 가장 불안해요. 그리고 저 방송에서 일가 이룬 사람 아니에요. 방송인으로서 굉장히 일을 많이 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통역이나 사회를 더 많이 보기 때문에 방송은 EBS <시네마 천국>만 해요.

여성으로서 방송일 한다는 거 굉장히 어려워요. 우리나라에서는 노련한 여성 앵커들에게 설 자리 주지 않아요. 저는 MC로 출발했고 좀 더 독특한 제 영역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분야에서는 생명이 긴 거예요. 황금 방송 시간대 여자 아나운서들 같은 경우 계속 교체되고, 밑에서 후배들 자꾸 올라오죠.

기업체들 같은 경우에 통역사들 비행기 태워서 데리고 갈 때 이코노미 좌석 타고 가면 안 되겠느냐 하면, 어떤 후배는 ‘이코노미 타고 가겠습니다’ 해요. 그러면 데리고 가요. 저는 ‘저 사람 아니면 안 되겠다’ 그걸 아는 기업에서 저를 쓰죠. 예산 가지고 빠듯한 기업은 저를 안 써요. 싸게 노동을 공급할 수 있는 통역사들 써요. 그렇다고 제 위치가 공고하냐? 절대 아니에요. 성공이 안정을 의미하는 거 절대로 아니에요. ‘성공 = 불안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결혼하면 안정적이라고 하죠. 요즘 이혼율이 얼마나 높은 줄 알아요? ‘불안정이 보통이다’ 라고 생각해야지, 안 그러면 스트레스 받아요.

제가 여러 가지 커리어를 쌓았지만 하나도 쉬운 일이 없었어요. 제가 아침에 SBS 아침방송을 3년 반 하는데 목 뒤에 통증이 너무 심해서 앉아있을 수가 없었어요. 새벽에 일어나서 분장하고 나가야 하거 때문에 건강이 너무너무 나빠졌어요. 아침 방송 하는 사람들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정말 힘든데 견디는 방법은 생각을 바꾸는 거예요. 저의 비결은 낙천적인 성격이에요. 안될 일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저는 연기자였던 게 도움이 많이 되요. 순간 최면을 거는 거예요. 매번 새 거 보는 것처럼. 아침 방송 찍으면 똑같은 주제, 똑같은 지방, 똑같은 특색음식... 그래도 ‘아 저런 게 있구나, 새로운 걸 발견하는 게 즐겁다’ 그런 자기 착각 속에 빠지는 거예요. 힘든 거는 힘들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는 거죠.

통역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움직이지 않아요. 물론 30분씩 교대를 해요. 그러나 30분간 쉴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 맥락을 알아야만 다음 30분 동안 계속 갈 수 있거든요. 쉬지 않고 계속 들어줘야 해요. 심포지움 끝나고 나면 완전히 녹초가 되요. 모두 스트레스고 힘들다고 생각하면 진절머리가 나죠. 너무 재미없고.

그러나 항상 나는 통역사여서 재미난 면을 계속 찾을 수 있어요. 신지식들이 저를 경유해서 나가잖아요. 지식의 최전선에 있는 거죠. 뉴스에 나오는 거도 전날 내가 통역한 거고, 매일매일 새로운 걸 알게 되니까 너무 즐거운 거죠. 그런 마음가짐, 일종의 최면, 그런 게 필요해요. 연극 공부한 게 방송에도 많은 도움이 되요. 연기, 자기 최면. 연기할 때는 다른 인물이 되어야 하잖아요. 그런 것들이 저한테는 방송, 연극, 통역이 시너지랄까. 상대적으로 전환되었던 부분이 있어요.

너무 여러 마리의 토끼를 잡은 사람을 보면 놓친 토끼는 없습니까?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죠. 모든 일이 쉽지 않았음에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낙천적으로 자기 최면 걸어 여기까지 오신 것 같아요. 배유정님께서 오늘 오신 여러분들께 하나의 메시지를 적어왔습니다. 그 메시지가 뭔지 한번 들어볼게요.

이거 못 날리면 오늘 말한 거 다 소용없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운문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산문적인 사람입니다.

때로는 젊음도 버거울 수 있습니다. 내일은 또 다른 태양이 뜹니다. 힘내라 힘!

배유정씨가 비행기를 내리며 토크쇼 막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