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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로 꿈을 찍는 토크쇼가 열 번째를 맞았습니다. 열 번째 행사를 끝으로 우선 마감을 하게 될 것 같은데요. 처음 오신 분들이 아니신 분 손들어 보실래요? 정말로 운이 좋으신 겁니다. 오늘은 BOF 이동훈 대표님과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어볼 것 같은데요. 사람과 사랑이 깃든 연예 매니지먼트를 꿈꾸고 계십니다. 이동훈 대표님을 모시겠습니다.

나비: 영상 보니까 굉장히 바쁘세요. 얼마나 바쁘신 분인지 5분 시간을 드릴 테니 스스로 자기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우선 많은 분들이 오셔서 기쁘네요. 저는 현재 BOF 대표 이사를 맡고 있는 이동훈입니다. BOF는 엔터테인먼트 회사고요. 배용준, 소지섭, 심지호씨, 그 외 신인들을 매니지먼트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광고 회사도 했고요. 프리랜서로 다큐멘터리 제작도 했었고 영화 제작도 했었습니다.

연예 매니지먼트 대표이사를 맡고 계신다고 하셨는데요. 연예인 매니저를 상상했던 친구들이 많을 것 같아요. 연예인 매니저는 어떤 일들을 하나요?

굉장히 방대한 일들을 하죠. 배우 뒤에서는 굉장히 많은 분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원래 제가 드렸던 영상에는 배용준씨만 가득 나오는데 제가 나오는 1% 남은 컷이 어떻게 있었네요.
TV나 방송을 보게 되면 배우들 뒤로 살짝살짝 얼굴 반 내지 3분의 일 나오는 사람들이 매니저인 경우가 많아요. 배우들을 제 시간에 맞춰서 곳곳에 데리고 가는 로드 매니저, 배우의 모든 스케줄을 관리하는 스케줄 매니저도 있고요. 신인들만 담당하는 신인 매니저도 있어요. 또 매니지먼트 안에는 홍보를 담당하는 홍보 담당자도 있고,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관리를 하시는 관리 팀들도 있고, 홍보 팀 외에는 또 항상 다른 일들을 어떻게 개발해나갈까 하는 신사업 쪽 일을 맡는 분야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연예 매니지먼트사 안에는 다양한 역할들이 있고 각기 다른 일을 하고 계시는 거군요. 저희끼리 그런 농담을 했었어요. 그럼 이동훈 대표는 매니저냐 아니냐, 매니저들의 매니저니까 왕매니저 아니겠냐, 왕매니저는 매니저냐 등등. (관객 웃음)
그런데 왕매니저 아닌 매니저 일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솔직히, 없죠. 말씀드렸듯이 운전을 하기도 하고 배우가 제 시간에 갈 수 있도록 미용실이든 스타일리스트든 제 시간에 맞춰 준비해놓고 약속 시간에 정확히 갈 수 있도록 콘트롤하고 매니지하는 게 로드매니저인데 그 일을 건너뛰고 대표자리를 하고 있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 낙하산 아닌가 하실 텐데요.
근데 여러분, ‘낙하산'이란 말은 아시나요? 하하. 앞으로 더 얘기하다보면 더 아실 수 있겠죠.

그럼 낙하산의 의혹부터 제거를 해보죠. (관객 웃음)

그러면 굉장히 앞으로 가야 될 것 같아요. 시계를 앞으로 돌려서. 제가 유학생활을 했어요. BOF란 회사가 작년 4월에 생겼습니다. 1년 8개월 정도 된 신생 회사고요. 그 전에, 벌써 6년 됐네요. 드라마 <호텔리어>라고 혹시 기억하시나요?

그때 제가 미국 쪽에서 어소시에이트 프로듀서(Associate Producer)를 맡았어요. 방금 제가 '사람과 사랑이 깃든 매니지먼트를 꿈꾼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부족하긴 하지만 그때도 시간에 충실하고 그 사람과 진실을 이야기하고 원하는 게 같을 때는 언젠가 그 사람과 다시 만났을 때 큰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왔었는데 그렇게 되었어요. 용준씨와 전화 통화를 해서 '필요한데 와라‘ 해서 이틀만에 결정하고, 미국 10년 생활 접고 한국에서 이 일을 시작했죠.

미국에서 <호텔리어> 현지 작업을 같이 하시다가 배용준씨를 개인적으로 알게 됐고 좋은 인연이 되어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난 뒤에 BOF가 탄생을 했는데요. 처음부터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실 생각은 아니었잖아요? 이틀 만에 예스(yes)하기까지 고민이 장난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둥지를 옮겨 간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특히 당시 여자친구였던, 지금은 제 부인이 된 친구와의 사이를 가르는 큰일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을 하신건데 그 이유가 뭔가요?

일단은 처음에 BOF라는 회사 대표이사를 하겠다고 이 곳으로 온 것은 아니었고요. 배용준씨 사진집 프로듀싱을 하기 위해 참여했어요. 제가 영화하고 방송을 전공해서 영화나 방송, 컨텐츠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거든요. 한국에 오게 되고 2개월, 3개월 정도 지나면서 용준씨의 판단이 제가 대표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됐어요.
물론 처음부터 매니지먼트를 꿈꿨던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왜 그 자리에 있냐고 물으신다면 엔터테인먼트는 모든 분야와 연결이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광고분야에 있든, TV에 있든, 영화판에 있든 다 연결이 되어 있어요.
애플 창시자,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 졸업 연설문에서 했던 얘기가 생각나는데요. 점(dot)을 찍고 있는 동안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난 후 자기가 걸어온 점들을 이어보면 다 이어진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1년 8개월 전에 BOF를 하기로 결정하면서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인데 갑자기 매니지먼트라니 잘할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근데 만약 그때 이 방향이 아니니까 가지 말아야지 했다면 모를 수밖에 없던 것들을 이제는 알게 됐죠. 그래서 제가 꿈꾸던 것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음을 느낍니다.
엔터테인먼트는 모두 이어져있기 때문에 지금 하시는 것들 중에 쓸데없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힘든 일은 없으셨어요?

힘든 일도 많죠. 많은 분들이 사회생활이라는 자체에 대해 많이 얘기하잖아요. 학교 다닐 때 듣는 얘기들. 다른 것은 다 맞다고 치고 혹은 아니라고 쳐도 사회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은 믿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힘들어 질 수 있다는 거예요.
1년 8개월 동안 매니지먼트 일을 하면서 생각보다 사람들이 자신만의 공간 안에서 다른 영역과 부딪혔을 때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고 사랑도 부족하고 믿음이 부족해진다는 것을 느꼈어요. 믿음을 줄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도 되겠죠.
제가 매니지먼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매니지먼트 업계에만 그런 사람들이 많겠지 하실 수 있겠지만 제가 사회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봤거든요. 한국에서의 사회생활은 짧은 편이지만요. 사회생활 새내기로서 느꼈던 것이 사람이 제일 힘들다는 거예요. 일은 절대 안 힘들어요. 24시간 안 자도, 밤을 새도 안 힘들어요.

갑자기 묻고 싶은 게 많아지는데요. 길고 긴 학창시절을 보냈을 적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군대를 현역으로 가서 제대하고 미국으로 가서 1학년부터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의 꿈은, 고등학교 때는 광고를 꿈꾸었더라고요. 자본주의의 꽃인 광고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고등학교 때 영어를 진짜 좋아했는데 영어는 성적이 안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영문과를 가서 영어를 좀 부셔보려고 허허. 고등학교 때부터 ‘나는 유학간다' 생각했어요.



특출나게 공부를 아주 잘해서 누가 유학을 보내준다고 했던 것도 아니고 단지 ‘유학은 간다, 미국 간다'고만 생각했었어요. 제대하고 비디오 가게에서 6개월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복학을 해야 되는데 그때도 ‘미국은 간다'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죠.
그러던 와중에 학교에서 세미나를 갔었는데 거기서 만난 선배님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시는 거예요. 옛날 같으면 ‘와, 짜증난다' 했을 텐데 그 이야기를 듣고도 나는 무조건 유학 가야 한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삼촌이 미국에 계셨는데 갑자기 전화 오셔서 어학연수 올래?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미국에 가게 되고 비디오 가게에서 6개월 일하면서 영화를 점점더 좋아하게 되었어요. 고민하다 미국에서 영화과에 입학하고, 영화에 대해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영화에 대한 전공을 갖게 됐죠. 길어졌죠?

98년도 정도에 편입을 하게 됐어요. 영화/방송을 전공으로 편입하게 됐는데 IMF가 터지는 바람에 학비가 다른 학교의 1/4 정도로 저렴한, 하지만 영화과와 방송과가 유명한 학교로 들어가게 됐어요. IMF 때문에 학교 다니면서 네 가지 정도의 일을 했어요.
학교 랭귀지 스쿨에서 스튜던트 어드바이저(Student Advisor)를 했고 제가 잘 할 수 있었던 각 중학교, 고등학교 돌아다니면서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문화를 이야기하는 활동이니까 그것을 하게 됐고 주말, 주중에는 비디오 가게에서 일을 했고 그리고 방송 DJ도 했었어요. 그건 무료로 했던 것 같아요.
12시에서 새벽 2시까지 하는 기독교 방송이었는데 혼자서 너무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졸업 후에는 NBC라는 방송국에서 어시스턴트 프로듀서를 하게 되었어요. 그 일을 한 후에 한국에서 오는 방송들, 드라마들 어소시에이션 프로듀서 일을 하다가 한국과 연관을 맺게 됐죠.

‘미국은 간다'고 해서 가셨던 것도 그렇고 담대한 구석이 있어요. 가닥이 있다고 할까. 굉장히 담대하신 것 같은데 설계하신 길을 향해 품고 있던 계획에 대해 조마조마하거나 불안해하는 구석은 찾을 수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참 신기하죠? 그게 왜 그랬을까요? 저는 마음이 항상 편했거든요. 이 길을 가면 가는 거지 불안해하거나 떨지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거나 개인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는데 광고 일이나 매니지먼트 일을 하면서 제가 선택한 길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고요.
종착역인 영화에 대해서도 아시는 분들이 잘 없어서 왜 굳이 영화하느냐 말들을 많이 하셨는데 당시에는 50세가 되고 60세가 됐는데 영화를 했어야 했는데 못했다고 하면 아쉽잖아요. 그게 더 무섭고 두렵더라고요.
지금 당장 해야겠다 생각해서 공부하고 영화 쪽 관련된 일들, 방송일들을 했지요.

실제로 결정을 내려놓고 이게 될 건지 안 될 건지 의심 없이 나아가기는 힘든 일이잖아요. 특히나 그런 의심이 짙어지는 순간이 상황이 내 마음대로 안 될 때인데요. 결과적으로 마음대로 된 것 같기도 한데... 유학을 갈 수밖에 없던 상황이 있었잖아요.

어학연수를 가면 다니던 학교를 1년 정도 휴학할 수 있잖아요.
같은 대학 다니던 친구도 악수하면서 ‘걱정 마, 내가 휴학계 내줄테니까 랭귀지 코스 잘 하고 와라' 했어요. 미국 와서 꽤 됐는데 ‘너 한국 학교 오기 좀 힘들겠다, 너 자동 자퇴됐어' 그러는 거예요. ‘야 그걸!' 하다가 소용없다는 걸 알았어요. 끊고 가만히 누워서 ‘그럼 내가 공부를 계속 해야겠구나' 다짐했고 영화를 공부하게 됐지요.
그 친구랑은 아직도 친하니까 그때 휴학계 잊어버리길 잘했다 그런 얘기 해요. 생각해봤는데 돌이켜 보면 당시에도 어느 정도는 미국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그것까지 차단되어 버려서 이쪽으로 가야만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거죠.

나비: 우여곡절 끝에 유학을 하게 되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이번에는 혹시 기억에 남는 현장의 몇몇 장면에 대해서 듣고 싶어요. 사실 연예인 사생활 얘기보다도 더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매니저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현장에서는 매우 바빠요. 배우들이 가만히 있다면 매니저들은 정말 바빠요. 특히 배용준씨 같은 경우는 메가톤급이잖아요. 특히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사고가 일어날 정도로 심한 경우가 없지만 일본에서는 심해요. 제가 작년 11월에 갔었을 때도 다치셨던 분들이 다섯 분 정도 안전사고가 있었거든요. 매니저들은 스타들 동선 하나하나 전날 확인을 다 하고 경호원 배치하는 것까지 신경 써야 해요. 계속 전화하면서 도착하는 시간 체크하고 다른 상황 벌어질 것 없는지 체크하고 관계자들과 협의해야 하는 일들이 있지요.

작전수행이네요. 힘들지 않으세요?

그게 힘들죠. 힘들지만 한편으로는 보람이라고 할까? 괜히 뿌듯한 느낌을 가질 때가 있는데요. 다른 분들은 잘 몰라요. 저 말고 우리 매니저들이 쭉 있잖아요. 배우들과 매니저는 정말 형제같아요. 배우도 매니저들 얼마나 힘든지 알고 배우도 쉬운 게 아니거든요.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그 사람들 그 길을 걸어오기까지 제가 걸었던 길보다 더 힘든 길을 걸었던 사람도 많고요. 그토록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서로 힘이 되어주죠.

더욱 힘이 될 때는 팬 가족들 있잖아요. 아까 영상에 보면 사람들이 저를 쫓아오잖아요. 가끔 저 혼자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그럴 경우는 쑥스럽기는 하지만 팬 가족들이 저를 알아봐주세요. 편지도 보내주시고요. 일본에서 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영화 <외출> 프로모션 때문에 일본에 갔을 때인데요.
배용준씨가 팬을 가족이라고 부르시는 것은 아세요? 일본말로 가족은 ‘가족꾸'라고 하는데. 제가 마지막날 반바지에 슬리퍼 신고 반팔에 모자 쓰고 혼자 라면을 먹으러 갔어요. 근데 길을 잃어버렸어요. 지하철 지도 보면서 서 있는데 갑자기 어떤 분이 쓱 오세요. 그러더니 가족꾸, 가족꾸 하시는 거예요. 자기가 배용준 가족이라는 거예요. 꼭 접선하는 공작원 마냥. 여기로 간다고 하니까 저를 데리고 거기까지 데려다 주시더라고요.
일본에서는 가족이라는 용어를 잘 안 쓴데요. 일본 스타들도 팬들을 가족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여기 가족 계세요? 없으시구나. (관객 웃음)

또 하나 힘들 거다 생각 드는 부분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내가 보이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스타를 만들어 내기 위해 힘들게 노력하고 애쓰는 자리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마음 아프거나 상실감 들지는 않는지...

잠깐씩 들 때도 있죠. 하지만 스타들 뒤에 있는 매니저는 그 사람이 빛날 때 자기 자신도 빛나고 보람을 느끼게 되요. 여러분이 상품을 판다고 하면 상품의 모든 것을 다 알아야 되잖아요.
어떤 물질로 되어 있고 어떤 병에 들어있으며 등등을요. 배우는 그 상품의 브랜드와 같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스타들이 가는 곳과 하는 모든 일들을 거의 100% 알고 있을 때 이 사람을 완전한 브랜드로 보여드릴 수 있는 거거든요.

배우는 브랜드라고 말씀드렸지만 배우는 또 사람이잖아요.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 얼만큼의 애정을 갖고서 사람 속에 있는 진짜 인간적인 면을 얼마나 보여줄 수 있는지는 뒤에 있는 사람들의 일이에요. 그래서인지 밖에 있는 분들도 용준씨의 모습을 보고서 우리를 판단해요.
또 우리를 용준씨와 같은 사람이라고 보아주지요. 그게 저희들한테는 상당히 큰 보람이고, 앞에서 보이지는 않더라도 마음으로 느끼는 거죠.



나비: 연예인들이 속한 곳을 일컬어 연예계라고 부르잖아요. 닫힌 세계 같은 느낌이어서 낯선 사람들은 룰을 모를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요. 그래서 궁금해 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동훈 대표님 말씀대로라면 연예계가 따뜻하고 사람 냄새나고 살기 좋은 동네여야 하는데 저희가 알고 있는 소문으로는 그렇지 않거든요.

엑스파일(X-file)이 터졌을 때도 보셨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연예계에 대해 안 좋은 선입견을 갖고 계시잖아요. 1년 8개월 전에는 저도 그랬거든요. ‘매니지먼트 사장 구속' 이런 것만 나오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이 세계가 내가 갈 길이 맞는 것인가 생각도 했지만 들어와 보니 역시나 이곳도 사람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제가 감히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 세계도 180도로 바뀌는 것 같아요. 처음엔 노력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없지 않을까 생각도 했거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을 내가 변화시켜 보면 되지 않을까 해보니 10명 중에 8명은 사람 냄새나는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고요.

물론 연예 매니지먼트 쪽에 안 좋은 선입견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을 지도 모르고 적을 지도 모르지만 여러분 자신이 이 안에 들어오실 수도 있어요. 그럴 경우 자기가 사람이라는 생각, 꿈을 가진 인간이란 생각만 하면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본다면 변화되어질 매니지먼트 업계, 엔터테인먼트 업계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많을지 적을지 모르지만 편견이 있는 사람이 저였거든요. 저희 드림플래시에서 사이트를 운영하는데 인터뷰 코너를 운영하고 있어요. 근데 그때 만났던 한 매니저 분께서도 통탄스럽다는 거예요. 7시에 만나기로 약속하면 다들 9시에 오게 되고 그래서 ‘누구든지 괜찮은 사람이 들어오기만 하면 탑이 되 수 있을 겁니다' 하는 거예요. 그 매니저분의 소속 연예인도 ‘왜 우리만 일찍 가요' 물었다고 하는데 남들이 그런 생각에 동의하고 있지 않으면 계속 억울해지는 상황이 생기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랑으로 하는 일이다' 그런 말을 지키기가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들거든요.

힘들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요. 제가 서른셋인가요, 넷인가요, 다섯인가요. 서른살 이후에는 나이가 잘 생각이 안나요. 살아오면서 제가 갖고 있던 믿음은 제가 진실을 보여주면 그 사람도 언젠가는 진실을 보여줄 거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런 거에 전혀 두려움이 없었어요.
그것 때문에 상처 받아서 일 못하고 피하고 도망가고 그럴 순 없는 거잖아요. 부딪혀 보면 어쩔 수 없이 우리도 사람이기 때문에 믿음과 신뢰를 주면 안되는 일 없이 다 되는 것 같아요.

이번 크리스마스에 눈 오는 것도 한번 바래봐 주시길 바랍니다 하하. 근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힘든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편견이 적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 중에 하나가 BOF 사이트에 가보면 사회 공헌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갖고 계시잖아요. 그 부분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곳이잖아'라고 말하는 제 자신을 설득하는 데 애를 먹었거든요.

용준씨나 지섭씨나 지호씨도 그렇고 다 생각하는 것이 이 분들이 인기 있게 만들어주신 분들은 팬 가족들이란 생각이에요. 제가 월급을 받는 것도 여러분들한테서 돈을 받는 거예요. 저희들이 왜 팬들을 가족이라고 부르고 중요하게 생각하냐면 이 분들이 모아준 돈을 쓰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번 돈을 쓸데없는 데 쓰면 안되잖아요. 말씀하셨던 사회 공헌도 그렇지만 이 돈을 좋은 일에 쓸 수 있도록 계획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 말씀하신 부분들과 연관해서 인상이 강하게 남습니다. 처음 발을 들이고 나서 ‘내가 여기서 그만두면 도망가는 거다, 도망은 가지 말자, 당분간은 이 일을 해야 겠다'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한국 연예 매니지먼트 산업이 가지는 문제점이나 개인적인 판단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굉장히 개인적인 거죠. 과거에는 그냥 우연히 지나가다가 괜찮은 친구 있으면 픽업해서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고 같이 커서 돈을 벌게 되서 회사를 차리고... 이렇게 주먹구구식이었죠.
이 배우를 5년 안에는 어떻게 만들겠다, 10년 안에는 어떻게 만들겠다 이런 미래지향적 계획을 갖고 해왔던 것이 아니라 ‘이 친구 될 것 같애' 하면서 여기저기 다 넣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문제가 될 일들을 하기도 하잖아요. 그건 미래를 보지 않았다는 증거거든요. 이 순간에 이 돈을 포기하더라도 이 일을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 판단해주는 게 없었던 것들이 사실이고요.

하지만 앞으로의 미래를 본다면 이런 주먹구구식 형태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여요. 또 앞으로는 스타파워가 더 생길 거고요. 스타들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은 확실해요. 여기 DMB폰 갖고 계신 분들 있나요? 점점 새로운 미디어 영역들이 생겨나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똑같은 영화를 봐도 유명한 배우가 나온 영화를 보게 되잖아요. 컨텐츠들이 스타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유통되면, 장래에 어떤 미디어들이 발전할지 그리고 컨텐츠 산업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히 이해한 사람들만이 매니지먼트를 더 잘 경험하게 될 수 있을 거예요.



그 부분과 관련해서 한국 연예 매니지먼트 업계에 가능성이 될 만한 부분들이 보이시나요?

가능성이 많이 보이죠. 일단은 정시에 출근해서 정시에 퇴근하는 회사가 늘어난다는 것이에요.(웃음) 사실 한 두 시간 어기는 건 아무 것도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아침에는 아무도 약속을 안 잡아요. 회사에 사람들도 아무도 없고요. 그렇기 때문에 일들을 다 밤에 하고 있어요. 근데 요즘은 9시까지 출근하는 데도 있더라고요. 정시에 출근한다는 게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요즘 청소년들 중에 연예인 매니저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 친구들에게 선배로서 얘기를 들려주신다면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요?

매니저는 인내가 있어야 되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간 약속을 잘 지켜야 된다고 생각해요. 시간 약속이야말로 성실함의 척도가 아닐까요? 그리고 가슴 속에 항상 뜨거운, 뭐랄까 사랑이라고 하면 간지러울 것 같고요. 꿈을 향한 마음가짐만 흐트러지지 않는다면 정말 멋있는 매니저가 되지 않을까요?

나비: 끝으로 마지막 질문 드릴게요. 영화감독 얘기를 계속 하셨는데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신가요?

저의 앞으로의 항로요? 또 태풍을 맞았죠. 내년에 1년 8개월 동안 매니지먼트 대표로 일하던 것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영화 제작을, 이미 하고 있어요. 비보이(B-boy)들 아세요? 갬블러나 T.I.P는 아시나요? 두 팀을 데리고 올해 10월부터 다큐를 찍고 있어요. 언젠가 영화 감독으로서 다시 이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저에게 주실 건가요?

물론이죠. 그런데 아직 몇가지 고민들이 있어요. 특히 연예 매니지먼트 산업에 대한 개인적인 편견들이 완전히 무너졌다고는 볼 수 없어요. 사회 공헌 사업을 열심히 하시고 있지만 태도나 이야기들이 진심을 강하게 때리기 보다는 너무 담백하게 잘 살고 계신 것 같은 느낌을 줘서요.
그 중에서도 BOF 대표를 그만두신다는 거요. 이동훈 대표님의 입장에서도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 맞다고 보거든요. 근데 그냥 그렇게 흘러간 항로인 것처럼 보여서 말이죠. 그 결정은 쉽지 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머리 속에서 생각하면 쉬운데 사실은 어렵죠. 현실적으로 바라볼 때 BOF라는 회사의 대표는 굉장히 큰 위치에요. 생각보다 말이죠. 1년 8개월 동안 만날 수 있었던 분들이 여러 분야에서 크게 힘쓰시던 분들이었거든요. 그런데도 흔쾌히 만나주시고 식사할 수 있고 그분들의 이야기도 1:1로 만나들을 수 있었고... 근데 이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면 쉽게 만날 수 있었던 분들도 어렵게 만나야 될 테고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태어났을 때부터 없이 태어났으니까요.
가진 것, 얻은 것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들 만나서 그 사람을 알게 되고 그 사람에게 배웠다는 것이 가장 큰 재산이라고 생각해요. 그 외의 것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딴 사람에게 내주고 가는 게 힘들고 그러지는 않았어요.

이동훈 대표님의 영화감독으로서의 모습 역시 아주 기대가 됩니다. 자신의 길을 헷갈리지 않으면서도 스스로의 믿음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부분들이 감명 깊었습니다. 대담은 살짝 박수를 보내드리는 것으로 마무리할게요.

1. 저는 영화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인데요. 매니지먼트 대표가 되는 게 꿈이거든요, 대표님께서는 대표가 되는 데에 영화 감독이 발판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저는 우선 영화를 전공하고나서 매니지먼트 업계로 발을 들여놓을 생각인데요.
대표님께서는 인내라든가 열정 등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매니저를 뽑으실 때 이런 사람이면 뽑겠다 하시는 것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구체적인 사항 얘기했는데... 정시 출근이요 하하. 사실 구체적이진 않아 보이죠.
농담으로 정시 출근, 정시 출근했는데 사실은 중요한 문제예요.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는 매니저는 정말 중요하고요. 사실 이력서의 이력을 봐서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어요. 하지만 그 사람이 매니저가 되고 싶은 이유에 대해 어떻게 서술했는가를 보면 대충 알 수 있어요. 인터뷰도 중요하고요. 말씀드렸듯이 왜 매니저가 되고 싶은 지 정확하게 얘기할 줄 아는 사람을 뽑을 것 같아요. 정시에 출근하시고요.

2. ‘예술경영'이 많이 뜨고 있고 세미나 같은 것도 있어서 몇분께 여쭤봤거든요.
근데 현장에서 직접 뛰는 게 낫다고 아무리 이론을 배워와 봤자 국내 연예계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나이도 있는데 어서 빨리 실무로 뛰어들어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세게 말씀해주셨네요.
그런 말씀을 마음이 약해서 못해드린 건 아니고요.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를 드리는 건데 저는 그런 이야기들에는 반대에요. 예를 들어 영어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영어도 외국인 계속 만나서 얘기하고 미국 가보면 늘어요.
근데 수준이 절대 이 선을 못 넘어가요. 그 이상의 영어는 구사하지 못해요. 매니지먼트도 똑같아요.
이론적인 것을 알기 때문에 룰을 깨는 것과 모르고 깨는 것은 천지 차이에요. 간단한 예로 뭐가 있을까요?
영화 촬영 기법에도 여러 가지 룰이 있잖아요. 그런 법칙을 알고서 하면 ‘영화에서 복잡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했구나' 생각하지만 모르고 깨면 바보되는 거죠. 학교 교육과정도 있고 서적도 있잖아요.
공부해보면 어떻게 매니지먼트 산업이 되어 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어요.
그러면 늦게 시작했더라도 2, 3배 뛰어넘을 수 있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그 분의 말에는 저는 정반대의 입장이고.

여자기 때문에도 역시 그렇지 않아요. 제가 아는 여성 매니지먼트 사장님이나 매니저분들을 봐도 배우들한테 굉장히 진실해요.
또 추상적인 말을 썼는데,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표현력이 강하기 때문에 배우나 매니저와의 시너지 효과를 더 많이 낼 수 있더라고요. 감정이 풍부하고 그런 것 때문에 더 좋은 매니저 될 수 있는 케이스 많이 봤고요. 채정안, 한지민 그런 분들의 매니저분들이 여자분이시거든요. 보면 남자들이 갖지 못한 다른 힘을 느낄 수 있더라고요. 하십시오. 열심히 하시면 됩니다.

3. 정시 출근하고 신인들 개발하고 있는 매니저입니다. 이 대표님은 저에게는 대 선배님이시고요. 일을 하면서 하나하나의 과정들이 참 어렵다는 것을 느끼거든요. 아이들 데리고 계신 입장에서 그 동안 방향성을 잃고 가장 힘들었던 과정이 있으시다면 그런 걸 극복하려고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굉장히 어리고 젊어보이시는데요. 저희도 신인들이 있잖아요. 4명 정도가 있는데, 유혹이 많아요. 신인들이니까 어떻게 해서든 출연해야 한다는 욕심들이 있는데 종종 컨셉이 안 맞을 때가 있거든요. 컨셉이 안 맞지만 프로그램 시청률은 고정적으로 확보될 테니까 출연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친구가 있는 반면에 진짜 괜찮은데도 오디션 보면 계속 떨어지는 친구도 있어요. 그럴 때는 참 힘든데 1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런 고민들은 사라지는 편이에요. 관리도 쉽지 않지요.
특히 여자 배우들 관리하는 것은 두 배로 시간이 들고요. 그럼에도 이 친구들에 대한 믿음을 절대 잃어서는 안되요. 믿음을 저버리면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아이들이 사라져요. 힘든 마음이 생길 때도 2, 3년 후에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가는 것, 그게 낙인 것 같습니다. 좀 종교적인 느낌이 나는데요 하하.

자, 질의 응답은 이걸로 정리를 해야 될 것 같아요. 이야기 손님을 모시고서 그 분의 경험, 이야기, 가치나 신념을 전해 듣는 자리에 있게 되어서 기쁩니다. 많은 분들에게 다 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이 주는 감동이 오늘 이 자리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도록 종이비행기를 준비했어요. 대표님께서 특히나 매니저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적어주셨을 텐데요. 뭐라고 적어주셨는지 말씀해주세요.

읽어야 되는 거죠? 처음이라서. 뭐라고 썼는지도 모르겠다. 시작하기 전에 썼거든요. “조촐한 공간,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공간, 꿈을 찍는 토크쇼를 만나게 되서 좋습니다. 끝까지 뛰어서 힘들 때는 걸어서 매진하세요. 이 자리를 기억하고 열심히 살아가세요. 크리스마스 3일 전 좋은 시간 되셨으면 좋겠네요. 또 볼 날을 기리며.” 굉장히 유치하네요.

참 많은 이야기들 나눠봤는데요. 감동을 받으셨을 만한 부분이 각기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매니저를 꿈꾸시는 분들께서는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올 해도 며칠 안 남았을 텐데요. 해가 바뀌는 이 시점에서 잊어버리고 싶은 일들도 많았을 거고 기억하고 싶은 일들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기억해야 되는 일들만 기억합시다. 활기찬 새해, 꿈을 향해 더 크게 한 발짝 내딛을 수 있는, 그야말로 올해의 끝자락에서 2005년의 마지막 시간 여기서 마칠게요. 찾아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꿈을 찍는 토크쇼 아홉번째 행사를 함께 할 나비라고 합니다.

어제 수능 시험이 있었잖아요. 혹시 어제 수능 보고 오신 분 계세요? 네, 몸도 마음도 수고 많으셨어요. 그런데 사실 시험을 봤다고 해서 모든 일이 다 끝난 게 아니잖아요.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어떻게 할지가 더 고민인 거니까요. 자, 꿈을 찍는 토크쇼는 바로 그러한 고민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입니다. 다양한 선배들을 모시고 꿈과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는 자리지요.

'엘르'라는 잡지 다 아시죠? 우리나라에서 긴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라이센스지로, 많은 독자수를 확보하고 있는 매체입니다. 오늘은 그 일의 핵심에 서 계신 분, '엘르' 편집장 신유진님을 만나봅니다.
박수로 초대할게요.

반갑습니다. 매번 저희가 참 색다른 얘기를 나눴거든요. 오늘도 또 빛깔이 다른 얘기들이 오고가지 않을까 기대해 보는데요. 신유진 편집장님의 자기 소개로 먼저 시작을 해 볼까요.

반갑습니다. 여러분이 많이 알고들 계시겠지만 저는 재미있고 정보 많은 잡지 '엘르'를 만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김장 열 번만 담그면 세월이 십년이라고 묘사한 수필가가 있었어요. 그런데 잡지사 기자는 일년에 열두번 책을 만들잖아요. 365일로 일년을 사는 게 아니라 열두번으로 사는 것, 그것이 잡지사 기자인 것 같습니다. 저는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는데요, 보통 편집장을 잡지사의 꽃이라고 해요. 회사에 사장, 이사, 파리 본사에 가면 또 사장, 이사- 층층이 임원들이 많지만 책 '엘르'에 들어가는 글과 사진에 대한 모든 책임은 편집장이 지게 됩니다.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자리인 셈이죠.

네, 편집장으로서의 신유진에 대한 자기 소개를 해 주셨는데요. 열 두 권의 잡지가 한 달에 한 권씩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궁금해하는 친구들이 또 많을 것 같습니다.

첫 5일 정도는 기획 아이템을 찾는답시고 빈둥빈둥 지내요. 그 후 열흘은 사람들도 만나고 패션쇼도 다니고 인터뷰도 하면서 보내구요. 그 후 열흘 동안은 원고를 쓰면서 초췌해져가다가 마지막 5일은 정말 폐인이 됩니다. 야식을 쌓아놓고 뱃살을 불려가면서 밤샘 작업을 해나가는 거죠.

참 힘든 과정인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즐겁게 일하시는 것 같아요. 한 달에 5일은 사람이 아닌 몰골로 살면서도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그 일의 매력은 뭘까요?

아무리 막내 기자라고 해도 주어진 아티클(기사)에 대해서는 기자가 책임을 져요. 기획안이 결정되고 나면 취재를 해 오고 사진을 찍는 건 그 담당 기자의 몫이거든요. 자기의 권한 하에서 성과물을 내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게 참 큰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성격상 장기 계획에 능한 편은 아니라서... 한 가지 일을 한결같이 장기간 동안 해나가야 하는 일에 능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참 좋은 일이에요. 욕심과 애착도 많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글을 보고 의견을 얘기할 거 아녜요.
열심히 하지 않으면 금새 티가 납니다. 열심히 일하고 피드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해요.

처음부터 편집장으로 시작하시지는 않았을텐데요. 편집장이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셨는지요.

처음에는 제가 원하던 직장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대학 때 너무 놀았거든요. 그런데 그 직장에 들어간 걸 계기로 잡지에 흥미를 느끼게 됐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잡지가 지금처럼 이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누가 누구랑 사귀네, 결혼했네, 암을 치료했네 하는 스캔들 잡지나 주부 잡지가 대부분이었거든요.

그런데 기업체 홍보실에 들어가서 사보를 만들면서 아 다른 종류의 잡지들도 있구나를 알게 됐어요.
'행복이 가득한 집'이 그 때 처음 발간되었습니다. 주부를 대상으로 해도 스캔들성 기사는 없는 참 품위 있는 잡지였어요. 글 써 본 건 초등학교 때 독서감상문으로 상 몇 번 받은 것 밖에 없던 제가 글쓰기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죠.
그 회사가 다니기는 참 편했었고 제가 혼자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권한도 굉장했지만, 새로운 선택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자신이 다니는 회사를 잘 평가해 보는 게 중요하거든요.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곳인가,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곳인가 등등.

제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니 패션에도 관심이 있고-사실 대학 때에는 운동권이었기 때문에 패션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거든요-글쓰기에도 흥미가 있는거에요. 이 회사 계속 다니면 패션은 엿볼 수 있겠지만 사보를 만드는 건 이 회사에서 참 작은 부분이라는 판단을 내렸죠. 이 직장에서 '클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내가 원하는 일을 키워갈 수 있는 직장을 잡고 싶었어요.

행복이 가득한 집이 나오는 디자인하우스에 응모를 했고 그곳에서 나오는 다른 잡지에 구직을 했어요. 그래서 3년 동안 일했고 굉장히 많이 배웠어요. 열심히 했고. 거기에서는 본격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글도 많이 쓰고 사진도 많이 찍었습니다. 패션 화보 촬영 일을 해 본 게 굉장했죠. 모델에게 옷을 입히고 사진가와 상의해서 그림을 만들어 내는 일이 나에게 참 적성이 맞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그래서 이쪽일을 더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때 마침 디자인하우스에서 나오는 '이브'나 '행복이 가득한 집'으로 가라는 얘기가 나왔어요. 다시 생각을 해 봤죠. '행복이 가득한 집'은 패션 전문지가 아니어서 잡지 내 패션 기사의 비중이 작았고, '이브'는 문화적인 성격이 많았습니다. 다른 길을 뚫어야겠구나, 싶었어요. 소문을 막 냈죠, 패션지 일을 하고 싶다고. 그 때 '마이 웨딩'이라는 곳에서도 제의가 왔는데 면접을 가 보고 분위기를 보니까 제가 원하는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고사하고 계속 소문을 계속 냈죠.

'마리끌레르'에서 연락이 왔는데 월급도 적고 대우도 더 낮아졌지만 정말 제가 원하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갔습니다. 92년 11월에 '엘르'가, 93년 5월에 '마리끌레르'가 창간됐어요. 그 때는 인터네셔널 잡지가 국내에 두 개 뿐이었기 때문에 다들 프랑스 유학파 출신들이었습니다. 제 무기는 그 유학파들보다 글을 더 잘 쓴다는 거였죠. 패션지로 시작했기 때문에 유학파나 의상학과 출신들이 많았지만 제가 그 사람들보다 글을 잘 쓴다는 자부심 덕분에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그 다음부터는 사람들이 알아보고 스카웃 제의가 오더라구요. 결정적으로 '엘르'에서 자리를 잡게 됐죠. 처음 '엘르'가 창간됐을 때부터 "이런 잡지도 있구나!" 감탄하면서,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여기서 일하면 정말 좋겠다 생각을 했었는데 마침내-'엘르'에 가게 된 셈입니다



"정말로 그 잡지에서 일하고 싶은데 거기서 일하게 되더라". 그런데 그게 그냥 된 게 아니라 신유진님께서 적극적으로 기회를 설계하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 좋지 않은 조건에서 일을 해야 했지만 내가 원하는 일이란 걸 알았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다고 하신 것. 당시로서는 치열한 갈등을 요하는 것이었을 것 같은데요.

'마이 웨딩'에서 일할 때, '마리끌레르'에서 일할 때, '보그'에서도 제의가 왔었어요. 사표까지 썼다가 번복한 일이 있지요. 제가 패션기자로 정말 크고 싶었으면 거기로 갔어야 맞는데, 그 때도 생각을 했어요. 나의 성격과 어디가 더 잘 맞는가. 내 성향과 어디가 더 잘 맞는가. 고민은 그 두 번이 가장 많았죠.

그 때 생각하기로-나는 패션 전공이 아니잖아요. 아무리 좋아하고 재미있어해도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곳에서 잠재력을 펼치는 게 좋겠다고 생각을 했고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마리끌레르'에서 편집장과 사이가 좋지 않아 '쉬즈'라는 잡지로 가기도 했는데, 폐간이 돼서 방황을 한 적도 있어요. 그 때도 제가 홍보대행사 같은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잡지가 좋은 거에요. '쉬즈' 전 사장이 홍보사무실을 내셨대서 처음에 일을 돕다가 '이건 아니다' 해서 그만두고 있는데 '엘르'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 때 못 버텼으면 내가 원하는 잡지에 못 왔을 것 같아요. 사실 자기 능력은 자기가 제일 잘 알거든요. 조언도 중요하지만 결국 제일 잘 아는 건 자기에요. 자기가 잘하는 것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잘 판단하는 게 진로 선택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중요하고 핵심적인 말씀을 해 주신 것 같은데요. '엘르'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참 드라마틱한 얘기 같아요. '엘르'에서 처음 연락 왔을 때의 감동, 거기에 책상이 놓였을 때의 감동이 궁금합니다.


사실 들어가기 참 힘들었어요. 포트폴리오를 홍콩으로 보내고 거기서 다시 본사로 보내서 채용이 됐죠. 서울에서 '오케이'했어도 홍콩이나 파리에서 안 된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참 조마조마 했습니다. '엘르'에 처음 왔을 때 그 전에 받던 대우, 월급보다 못 받는 조건에서 왔어요. 그것 때문에 조금 감흥이 떨어지긴 했었어도, 제가 좋아하는 '엘르' 잡지들이 사무실에 모두 구비되어 있잖아요. 슬라이드로 그 옛 잡지들을 나란히 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감격했죠. 제 자리가 입구에서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곳이라 낯선 사람들에게 늘 얼굴 내보여야 되고 피곤했는데도 마냥 좋았어요.

처음 '엘르'에 가서 밀라노 컬렉션에 갔어요. 사실 그 때는 예산이 없어서 투쟁한 끝에 겨우 갔는데 가서 너무 고생을 했던 거에요. 다녀 왔더니 너무 고생을 해서 하얀 머리가 생긴 거 있죠. 마리 앙뜨와네뜨가 머리가 밤 사이에 하얗게 샜대잖아요.
전 그걸 믿어요. 그 때 고생해서 생긴 이 흰머리, 지금도 안 없어지고 그대로 있거든요.

이런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멀리서 동경하면서 봤을 때의 그 세계와 인사이더가 되어 봤던 이 세계가 다를 수 있잖아요. 멋져 보였던 패션기자 일이 몇 년 지나고 보니 별로더라, 하는 순간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많죠. 처음에 '엘르' 보면서는 이 사람들 어떤 사람들일까 참 궁금했는데 와서 보니까 유학파도 아니고 다들 평범했구요, 겁 먹을 필요 없구나 싶었어요. 또 한편으로는 스트리트 패션에 나오듯 뾰족 구두 입고 행사장에 거만하게 앉아있는 것만 생각했는데 그 밑에서는 발이 안 보일 정도로 바쁜 걸음을 걷더라구요.

우리끼리는 '무수리'라고 해요. 공주인 줄 알고 들어갔더니 무수리더라, 그런거죠. 실제로 저희 어시스턴트 뽑을 때도 체력부터 봐요. 저희 편집부는 다 여자들인데요, 겨울 가죽 코트 스무 벌 들고 올라오는 거 보통 일 아니에요. 해외 출장 갈 때 오버차지 안 붙이려고 쪼그리고 앉아 가며 꽁꽁 매 싸고. 겉에서 보는 것처럼 화려하고 그런 직업만은 아닙니다.

그래도 기자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어떤 것들도 있죠?

제 나이 또래에서 겪어보기 힘들 많은 일들을 겪어보게 돼요. 신유진이 아니라 '엘르' 편집장 신유진이기 때문에 행사장, 패션쇼에서 유명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어요. 알마니나 나오미 캠벨, 랑꼼 창립자 손녀딸 같은. 내가 그냥 신유진이었으면 하기 힘든 얘기들을 '엘르 코리아' 신유진이기 때문에 인터뷰해낼 수 있죠. '엘르'라는 이름을 얻고 억세스 할 수 있는 정보, 억세스 할 수 있는 사람, 이게 이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무수리 활동을 열심히 하고 나면 받을 수 있는 보상이 잉런거죠.

이런 것도 있어요. 뷰티 기자들이 그런 얘기 많이 하는데요, 요즘 고가의 크림이 많잖아요. 아주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맞는 이벤트를 열게 되면 서울에서 하기도 하지만 되게 좋은 리조트-발리 등에서 하기도 해요. 휴식을 취하면서 할 수 있는. 덕분에 우리가 평소에 접하기 힘든 환경도 접해볼 수 있죠. 2년 전에 아베다에서 바디 크림이 하나 나왔는데 그게 카리브해에서 나는 원료로 만들었던 거에요. 그래서 카리브해에 있는 자메이카에 가서 절벽 꼭대기에 있는 소규모 방갈로 리조트에서 이벤트를 했어요. 전 세계에서 각 나라에서 한 사람씩 와서 총 12-3명이 왔습니다. 한국에서는 제가 갔구요. 거기서 바디 크림 소개 받고 마사지 받고 쉬면서 3박 4일을 쉬었죠.

'엘르 코리아'의 기자이고 편집장이기 때문에 남들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맛보신 건데요. 동시에 어떤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할 때에는 조금 후회도 되지 않나요

그런거죠. 취재거리가 있으면 놓치지 말아야 하잖아요.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 내 소개를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언제든 망설이게 되는 일이거든요. 물론 타이틀이 있으니까 큰 힘이 되긴 하지만 유명인을 만나려고 스무 명이 서 있고 그 중에 나만 한국인일 때! 내 말이 여기서 잘 통할까, 하는 두려움이 있죠. 15년이 지난 지금도 쉽지 않은 일이에요. 낯선 사람에게 가서 나 여기 기잔데 얘기 좀 할 수 있어?라고 묻는 거, 지금도 힘든 일이에요.

또 한가지는- 잡지 기자가 갖는 가장 큰 매력 중의 하나는 자기가 재미있어 하는 일을 남들에게도 얘기하면서 "너도 이거 재밌지?"라고 하는 거거든요. 내가 재미있어 하는 드라마에서 뭘 봤으면 이거 재밌던데 너도 재밌지라고 독자에게 말을 거는 거죠. 일상의 모든 것들이 기사가 될 수 있는 게 매력이죠. 하지만 이게 단점이 되기도 해요. 일상이 일이 되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모든 곳이 일터인겁니다. 집에 와서 티비를 봐도 저 사람 입은 옷이 브리티시 룩이네, 엉덩이 끝이 안 좋아, 바꿔줬어야 해-하고 생각하니까요. 모든 일상이 일로 연결이 되니까 심각하지 않아서 좋을 수도 있고 그 일상이 모두 일과 연결되니까 피곤할 수도 있고. 그게 잡지의 장점이자 단점이에요.

대단한 열정이 있으니까 일과 일상이 다 즐겁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제 구체적으로 일 얘기를 해 봤으면 좋겠어요. 편집장이란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담당하고 총괄하나요.

모든 일을 총괄하는 게 실제로 에디터의 일이에요. 잡지사 마다 부서 구성의 차이가 있는데요-'행복이 가득한 집'은 인테리어 파트와 스타일 파트가 있어요. 스타일 파트 내에 뷰티와 패션이 있고. 인터내셔널 패션지를 기준으로 소개해 보자면 패션팀, 뷰티팀, 피쳐팀으로 나뉘어져요. 리빙은 패션이나 피쳐로 가는데 헬스 같은 거고. 각자 하는 일들은 약간 달라요. 피쳐 파트는 인터뷰, 문화, 일상, 사회 전반, 심리, 사랑, 릴레이션쉽을 다르는 것. 패션은 말 그대로 패션과 관계된 모든 것-패션계 인사 인터뷰, 트렌드 분석, 히트 아이템 발굴, 스튜디오 촬영 등을 진행하죠. 뷰티팀은 헬스와 피트니스를 같이 다루는데 예뻐지는 것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룹니다. 에디터는 각 부서의 일이 잘 돌아가도록 총 지휘하는 사람이라고 보시면 되구요.

보통 패션 에디터가 되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하냐고 물어봐요. 옷 잘입는 사람이라고 패션 기자 자격이 되는 건 결코 아닙니다. 처음 1, 2년만 잡지사에 있을 거 아니라면 글을 잘 써야해요. 무슨 팀이건, 글을 맛깔나게 잘 써야 돼요. 제가 기자들을 뽑아보면-글은 거의 타고난 거에요. 글쓰기란 건 대학 때 와서 배울 수 있는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고 써 본 사람들이 잘 해낼 수 있는 거거든요. 많이 써 본다는건 단숨에 되는 게 아니죠. 패션기자나 뷰티기자가 물건 고르고 스타일링 하는 건 배우면 돼요. 하지만 글 쓰는 건 못 배워요. 그래서 잡지사에 들어오려면 일단은 글솜씨가 있어야 돼요.

글 쓰는 건 못 배운다, 타고 난다-에 어떤 친구들은 철렁했을 것 같은데, 배울 수 있어요. (웃음) 너무 겁 먹지는 마시구요. 히트 아이템을 고르는 것도 주요 업무라고 하셨느데요. 너무 바쁘다 보면 요즘 트렌드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못 따라 갈 것 같거든요?
그 경향이나 파악을 어떻게 해내시는지요. 노하우를 알려주세요.

일단은 감각은, 늘 날카롭게 날이 서 있어야 돼요. 그래야 빨리빨리 주변의 트렌드를 흡수하게 되죠. 나이가 젊고 왕성할 때 감각이 날카롭게 유지가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나이가 들면 그런 감각들은 둔해지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빨리 읽을 수가 있으니까요. 사람들의 얘기를 끌어내는 것, 여러 사람들에게 얘기를 듣고 듣다보면 나오는 공통분모를 엮어내서 내 아이디어로 발전시켜 내는 것-그 부단한 노력이 감각 유지의 비결이죠.

여성이라는 성이 직업을 결정하고 그 이후에 수행하고 직업인으로서 살아가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데요. 신유진 편집장님의 경우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여자라서 직장 생활에서 걸린 건 사실 하나도 없었어요. 아까 잡지사가 왜 좋으냐고 물어봤는데요, 그런 점에서 여성들에게 참 권하고 싶은 직장이에요. 소위 '여고 분위기', 말하자면 질투라거나 떼로 몰려다니는 분위기만 조성되지 않으면 참 이상적인 직장입니다. 저희 마감할 때 분위기는 대학 서클 같아요요. 츄리닝에 두꺼운 안경 쓰고 게맛살 뜯어 먹으면서. 그러다 갑자기 드라마 얘기도 했다가 남자친구 얘기도 했다가 그러죠.

그건 아주 중요한 과정입니다. 서로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를 밥 먹으면서 수다 떨듯이 얘기하는데, 그 중에 나오는 기사가 잡지 소재의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수다의 과정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을 하고 회사에도 '우리가 떠들어도 절대 말리지 말아라'라고 얘기를 해요. 여자들이라서 가능한 것 같구요, 여자이기 때문에 좋은 점이구요. 이런 점은 아쉽죠. 조직적인 근무 시스템과는 거리를 두고 커 왔기 때문에 제 나이쯤에 중간관리자로 경영진에 들어가야 해도 그런 문화를 어색하게 느껴요. 조금은 아쉽지만 처음 시작을 할 때 여자들만 모여있는 집단에서 시작을 하는 게 나쁘지 않다라고 생각을 해요.

그야말로 여성이 주도적으로 어떤 일을 해나가고 주체의 위치에서 일을 해나가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으로 패션, 뷰티와 관련된 것을 다룰 때 여성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는 외면적인 것으로 규정되는 듯한 흐름에 맞춰가는 데 대한 갈등도 있을 것 같은데요. 여성이기 때문에 아름답기만 해야 하는 어떤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 신념 있고 사회인으로서 중심 있는 인물 사이의 충돌이 있을 거 같습니다.

충돌이 발생해요. '엘르'를 좋아하는 부분도 바로 이건데, 그 시작부터가 다른 매체와는 다릅니다. 곧 '엘르 파리'가 창간 60주년을 맞게 되는데요, 이 잡지가 생겨난 배경에 그 의의가 있죠. 다만 고가의 옷이 아닌, 합리적이고 똑똑한 여자들을 위한 기성복을 알리기 위한 매체를 내자-라는 것이 창간 의도였거든요. 패션 보다 피쳐 기사가 많은 것도 옷이 아닌 감성을 여성들과 교감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저희들의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우리 직업은 독특합니다. 세계의 최고급 제품들-고가의 크림, 수백만원짜리 가방, 비싼 신발들을 다 신어볼 수 있는 직업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기자들이 그 물품들을 다 사지는 않아요. 잡지사에 일하는 사람들은 이런거죠. 잘 벌어서 좋은 곳에 쓸 수도 있지만 지금 내가 불행하다면-가치관의 차이에요-무슨 소용이냐,는 겁니다. 어떻게 합리적 소비를 해서 행복감을 느낄 것인가가 일상의 관건인 거죠. 사고 싶은 고가 브랜드의 제품이 출시되었을 때, 그 제품을 손에 넣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할 때 우리는 '대체재'를 찾아내요. 이태원 어디에 가면 비슷한 이런 물건이 있어,라고.

판타지를 주는 것도 사실이에요. 값비싼 옷을 입은 모델들을 제시하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어릴 때 백설공주, 신데렐라 공주님을 동화에서 보여주듯이 이 일도 마찬가지에요. 언젠가 꾸었던 꿈을 이미지로 계속 즐기게 하는 거죠. 현실과의 구분은 분명히 이뤄진다고 봅니다.

"정말 예뻐지는 게 최고야?" "말도 안 되는 의견까지 수용을 해야하는걸까?"에 있어서는 어떻게 조정을 해 내야할지 늘 고민하게 돼요. 소위 '투쟁적'으로 의견 개진을 하는 것까진 아니지만 여성이 남성들에게 의존해서 수동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거나, 사회적 편견에 얽매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 절충안을 찾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기도 하지요.



끝으로 한가지만 더 질문을 드려볼게요. 신유진 편집장님이 스스로 계획하고 있는 나의 미래에 대해 질문을 드리고 싶거든요.

제가 기획하고 있는 제 미래요. 잡지는 '엘르'가 마지막일 것 같아요. '엘르'가 융통성이 많아서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언제든 수용해 주기 때문에, 굳이 새 잡지사에 가고 싶진 않아요.

이제 15년 정도 일하다 보니 책을 쓰고 싶어요. 하나는 패션 에디터가 되는 법에 대해서 쓰고 싶구요, 또 한 가지는 이렇게 패션 쪽에서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이랑 에피소드, 패션계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에세이집처럼 내고 싶어요. 그게 일단은 가장 가까운 계획이에요.

제가 주로 질문을 드렸는데요 이번엔 객석에서 질문할 시간을 드리도록 할게요.

1. 조금 더 구체적으로 에디터의 일을 말씀해 주세요. 촬영을 직접 하시는건지도 궁금하구요. 어떤 과를 가야하며 준비를 어떻게 하는지도 자세히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과는 전혀 상관 없어요. 심지어는 물리학과를 나온 분도 있어요. 저는 신문방송학과를 나왔는데 별로 도움이 안 돼요. 자기가 흥미를 갖고 있는 예술 파트나 복식사 쪽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신 전공을 그렇게 택할거면 글재주를 늘리는 게 꼭 필요할 거 같구요.

글을 잘 쓰는 것은 읽는 것과 직결돼요. 글이 약해서 스타일 감각 좋아도 잡지사에 끝까지 남아있지 못하는 기자들이 많아요. 팀장이 되면 후배 기자들이 어떤 방향으로 글을 쓰고 촬영할지 디렉션을 줘야하는데 자기가 못 하면 불가능하거든요. 편집장도 마찬가지구요. 그래서 감각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을 많이 읽고 쓰는 것도 중요합니다. 글이 딸리면 나가서 프리랜서 스타일리스트가 되기도 해요. 잡지사에 남고 싶다면 꼭 글을 잘 써야해요.

하는 일은, 저는 제 마지막 촬영이 비랑 알마니 촬영-비와 함께 갔던 건데요. 아주 중요해서 제가 같이 간 거고, 편집장은 사실 그런 현장 일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편집장 레터만 써요.

일반 패션 에디터(기자)의 일로 설명을 드릴게요. 먼저, 촬영은 글과 달라서 컨셉을 잡는 게 제일 중요해요. 요즘 매스컴에서 보면 스타일리스트라고 많이 나오잖아요. 스타일리스트도 전체적으로 촬영을 진행하는 사람이고 패션 에디터도 옷을 입혀주는 사람인데요, 에디터는 자기 기획에 맞춰서 스타일리스트를 쓰구요 스타일리스트는 진행자를 따로 두지 않아요. 예컨대 광고 촬영을 한다 그러며 스타일리스트가 맡은 건 옷을 입혀주는 역할이에요. 테이블 셋팅이나 환경까지. 패션 에디터는 PD 같은 역할이에요. 처음에 기획을 잡죠. '리틀 블랙 드레스'나 '러시안풍' 이런 게 될 수도 있지만 어떤 '스토리'가 될 수도 있어요. '런어웨이 브라이드'를 주제로 한다든가. 이런 식으로 기획부터 하는 게 에디터에요. 내가 이런 촬영을 하려면 어떤 스텝들을 구성을 해야할까. 사진가는 누구로 할까, 스토리 보드는 누구에게 맡길까, 모델은 표정과 얼굴이 어떤 사람으로 섭외할 것인가, 메이크업 아티스트까지-모든 구상과 진행을 담당하게 되죠.

2. 에디터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후에 노력해서 자신의 꿈을 가다듬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평소에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

지난 7월에 '에스티 로더'의 부사장이자 창업자의 손녀인 사람과 인터뷰를 한 일이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12명의 기자가 왔어요. 정말 부담되요 그럴 땐. 말을 잘 못하거나 에티튜드가 세련되지 못하면 정말 저 뿐만 아니라 엘르는 물론이고 한국에 대한 오해를 심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미지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써요. 꼭 그 자리에 적절한 차림을 하고, 그 사람에 대해 미리 조사를 하고. 화제거리가 떨어지지 않게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쭈볏거리지 않고 대화에 끼어드는 것은 물론이구요. 영어로 질문을 주고 받는 것도 큰 일인데요, 아름답고 멋진 호텔에서 밤을 보냈지만 전 밤새 영어 질문지만 외웠어요. (웃음)

3. 잡지 페이지 레이아웃은 어디서 잡나요. 신문사 편집국에서 일한 경험이 후에 도움이 될지요.

신문은 취재 파트가 있고 거기서 원고를 넘기면 편집국에서 제목을 뽑죠. 레이아웃 파트에서 디자인을 하구요. 그와 달리 잡지사는 편집부와 미술부가 있어요. 편집 쪽에서 주로 일을 많이 합니요. 어차피 기본 로우 데이터를 만들어 주는 것을 편집부에서 하잖아요. 일러스트를 그리거나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것 모두요. 그걸 넘겨주면 미술부에서 예쁘게 만들어주는데, 그 작업이 레이아웃을 잡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글씨체를 몇 포인트로 쓸 것인지, 무슨 색깔을 쓸 건지. 이게 편집부의 의도에 합당한가 아닌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한 번 시안이 나오면 편집부에서 판단을 하고 다시 조정을 하게 됩니다. 잡지 기자가 야근을 많이 하는 건, 원고를 다 쓰고 나서도 시선을 끌지 않으면 글이 읽히지 않기 때문에, 그림 배열이나 레이아웃에 신경을 쓰느라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칼라 교정까지 다 보기 때문에 밤을 샐 수 밖에 없죠. 잡지사마다 채용시 고려하는 경력 기준이 달라서 그 부분은 제가 뭐라고 하기가 애매하네요.

인터넷을 통해 접수된 질문을 드릴게요. 패션 에디터의 연봉은 어떤지요.

연봉은 짭니다. 저희도 명예직이라고 해요. 대기업 수준보다 적구요, 잡지사마다 달라요. 워낙 야근도 많은데 그게 수당이나 이런 거 전혀 없어요. 능력 되면 빨리빨리 가는거고 능력 안 되면 늦게까지 있는 거라 저희들끼리는 기본적으로 그런 부분에 대해 인정을 하고 있죠. 주5일 근무제인데도 한 달에 두 번은 나와요. 일이 안 끝나서. 노동량에 비해서는 보수가 적다고 생각을 해요. 하지만 월급 때문에 잡지사에 다니는 사람은 없을 거에요.

잡지사에서 사람을 뽑을 때 어떤 면을 주로 보는지요.

먼저 체력을 보구요. 두 번째로는 그 사람이 얼마나 적극적이고 성실한가를 봐요. 성실성이 정말 주요한데요, 어시스트나 인턴 과정을 3개월 동안 견뎌 내는 사람들이 참 없어요. 시작할 때엔 다 할 것처럼 얘기하고 나지만 하다가 도중에 도망가는 친구들도 많아요. 제가 개인적으로 보는 부분은, 긍정적인가-라는 것. 여러분이 잡지를 볼 때 쉬려고 보잖아요. 위안을 찾거나 재미를 찾고 싶을 때 가벼운 마음으로 보죠. 그런데 시각이 부정적인 기자면 글에 당연히 나타나요. 그런 식으로 사물과 사회를 보기 때문에 기획안을 낼 때에도 꼭 그런 주제를 내요. 그래서 세상을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외국어를 잘 하는가, 글을 잘 쓰는가, 감각적인가,도 기본적으로 봅니다. 공채를 자주 보진 않아요. 빈자리가 나야 사람을 뽑는데 빈자리가 나지 않으니까. 그게 5년이 되기도 한답니다.

저희가 열 두 명인데요, 중앙엠엔비처럼 일년에 한 번씩 공채를 하는 곳을 두드려 보는 것이 가장 권할 만한 부분이에요. '엘르'를 원한다면, 그 주변에 계속 있어야 해요. '키키'가 됐든 중앙 엠엔비가 됐든 주변에 있어야 기회가 와요. 잡지사는 경력자를 선호하거든요. 작은 회사라도 성실히 다니며 경험을 쌓아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 마지막으로 편집장님이 여러분에게 전하는 응원의 메시지가 씌여진 종이비행기를 객석으로 날려볼텐데요. 먼저 메시지를 읽어주시죠.

"마음 깊이 간절히 바라면 꼭 이루어 집니다. 스스로 마음 속에 에디터가 되는 모습을 늘 그려보세요. 그러면 어느새 그 일에 다가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저도 몰랐는데, '엘르'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던 거에요. 심상훈련이라고 하잖아요. 코엘류 말처럼, 진심으로 바라면 이뤄지는 거지요. 얼마 전에 만난 황현정 아나운서도 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십년 후 엄마에게 편지를 써 보기로 한 게 있었대요 고등학교 때. 그걸 얼마 전에 발견했는데 "엄마 내가 진행하는 뉴스 잘보고 있어?"라고 써 뒀더래요. 간절히 바라면 꼭 이뤄집니다. 여러분도 잊지 마세요.


어떤가요?
엘르 코리아 신유진 편집장님의 이야기를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는 사이, 우리는 화려하고 멋있기만 한 패션계 직업인이 아닌 성실하고 치열한 자세로 자신을 일궈간 선배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찾아낸 다음에는 적극적으로 꿈을 현실로 끌어내는 길을 밟아가는 것! 비단 패션지 에디터 뿐만 아니라 그 어느 직업이라도 공통적으로 해당될 중요한 조언이 아니었나 싶어요.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숱한 고민과 어려움을 견뎌냈을 선배의 이야기를 거름 삼아 우리도 '간절히 바라고 노력해서' 자신이 꿈 꾸었던 바를 '정말로 이루어내는' 그림을 그려보아요.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 동안 자기의 영역에서 독자적이고 창의적으로 살아오신 선배 직업인들과 조용한 자리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어봤는데요. 이번에도 저희에게 운 좋은 힌트를 주실만한 이야기 손님을 모셨습니다. 우선 지금까지 일곱 번의 행사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어왔는지 영상으로 준비했습니다.

요즘 그런 책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더라고요. 소위 실용서라고 불리는 책들이요. ‘이렇게 하면 잘 살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남을 잘 설득할 수 있다' 그래도 그런 책들에서 힌트를 얻기란 굉장히 힘든 것 같아요. 오히려 선배 직업인들이 미리 헤쳐나간 길을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깊이 들여다보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이야기 손님도 그런 분들 중 한 분인 것 같아요. 날씨가 안 좋아서 그런지, 추워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오시지는 않았습니다만 오신 분들만큼은 오신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있어요.

이 분은 체구가 굉장히 작으신 분이에요. 성찰적 삶과 함께, 생동하는 현장과 사람만이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두려울 건 없다 김영 프로듀서를 소개합니다. 박수로 맞아주세요.

안녕하세요? 김영입니다. 그 당부가 저를 향한 당부이셨군요. 크게 이야기하라는 당부요. 하하. 재단 측에서 이렇게 몰래몰래 동영상을 준비해주셨는지 몰랐어요. ‘저렇게 얘기할 때 손을 많이 썼나? 말이 안 되니까 손을 많이 썼구나. 오늘은 말을 많이 해야지' 생각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감기 기운이 있어서 목이 안 좋아요. 근데 목소리 너무 침착하셔서 제가 침착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 5분간 시간을 드릴 테니까 자기 소개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런 자리가 제일 어렵죠. 저에 대해서 특별히 말씀드릴 게 없는데요. 영화인이라고 보통 말씀드립니다. 저는 제가 영화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있고요. 더 나아가서 앞으로는 ‘전천후 영화인'으로 불리고자 해요. 전천후 영화인으로서 세상에 필요한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다가 죽으려고 생각합니다. (웃음)

가장 궁금해 할 질문 열 가지를 준비해 봤는데요. 소개를 워낙 짧게 하시니까 바로 질문으로 들어가야 될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력을 말씀해주시면 어떨까 생각이 들어요.

저는 대학에서는 인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저는 제가 영화인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인문학도였다는 사실에도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역사학을 전공했는데, 역사의식에 대한 느낌만을 가지고 있다가, 1년 휴학의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그때 영화를 만났어요. 그 전에도 영화는 알고 있었지만 이때 처음 만났다고 할 수 있지요. 유럽의 예술영화 때문이었습니다. 언젠가 유럽의 예술영화를 보고나서 영화감독과 함께 이런 식으로 질의응답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만든 사람이 어떤 의도로 만들었고 관객들과 어떻게 공유하고자 하는지 등등. 그때 감독이 했던 말보다도 그런 자리 자체가 매우 충격적이었어요. 지금은 흔하지만, 저에게는 나름의 전환기였지요.

영화를 해볼생각으로 8mm 영화 만드는 집단에 들어가게 되었고, 조한혜정 선생님과 여러 동인들의 터인 <또 하나의 문화>에서도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문화>를 만나면서 여러 모로 점점 깨지게 되었어요.

여러분들이 아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80년대 후반은 암울한 시기였지요. 그시절 나라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영화로 담던 젊은이들도 있었는데, 그런 축에서 여성의 문제를 다루던 <바리터>라는 곳이 있었어요. 현재 충무로의 변영주 감독, 김소영 교수, 홍효숙 프로그래머 등등. 모두 <바리터> 출신의 영화인들입니다.

그 후 한국영화진흥원 소속의 한국영화아카데미 8기로 들어가서 연출을 전공했어요. 다양한 경험을 쌓다가 94년에 김홍준 감독의 데뷔작인 <장밋빛 인생>이라는 영화에서 기록을 맡았습니다. 연출부 안에서는 스크립터라고도 하죠. 지금은 아니지만, 예정에는 여자들만 담당한다고 생각해서 충무로에서는 꽃이라고 불리던 일이었습니다. 영화 앞 장면에서 까만색 예쁜 목걸이가 나왔는데 그 다음 장면에서 사라졌다면 그건 옥에 티죠. 스크립터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충무로에 입문을 했습니다. 한동안 방황의 기간이 있다가... 보통 백수라고 하죠. (웃음) 97년부터 여전히 스크립터로서 시나리오가 일관성을 가지고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후반 작업을 도왔어요. 그렇게 90년대 문화의 세기를 마치면서 영화아카데미를 졸업했죠.

2000년부터는 영화판이 많이 바뀌었는데요. 예전 충무로에는 토착자본으로 영화를 만들었어요. 집 팔고 뭐 팔아서 결국 망하기도 하는. 그러다가 대기업이 들어왔지만, 당시는 한국 영화가 쾌거를 이루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많이 망했죠. 그 후 2000년은 금융 자본이 들어오던 시기예요. 한국영화의 시스템화를 고민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유학 갔다 돌아온 사람들이 영화를 하면서, 자생적으로 영화를 만들어 보자는 움직임이 생겼어요. 그때 마침 제가 영화 조감독을 그만뒀지요. 회사에 몸담고 영화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2000년, 2001년은 그냥 그렇게 지나갔어요.

방송도 하고 지내다가 2002년에 김지운 감독 작품이고 오기민(영화사 ‘마술피리'), 오정완(영화사 ‘봄') 두 분의 제작자 밑에서 여러분이 잘 아시는 <장화홍련>의 실무 프로듀서를 맡게 되었습니다. 외국에서는 ‘라인 프로듀서'라고도 불리는데요. 1년 반을 그 일을 하고 장화홍련이 6월 13일, 13일의 금요일에 개봉을 했지요. 김지운 감독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 많은 사랑을 받았지요. 한국에서도 공포영화가 잘 될 수 있구나 라는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그해 가을에 <이공>이라고, 90년대 제가 다녔던 영화아카데미가 20주년을 맞아 개막작을 준비하면서 <이공>이라는 프로젝트가 만들어졌습니다. 작년에 런칭을 하고 얼마 전에 DVD가 나왔어요. <이공>은 스무 편의 단편이 모인 옴니버스 프로젝트구요. 아실만한 감독을 포함해서 20명의 영화아카데미 졸업생 및 동문을 포함한 감독들이 만든 단편 옴니버스영화입니다.

두 가지 질문을 더 드리고 싶어요. 하나는 하도 질서정연하게 말씀해주셔서 1학년 졸업하면 2학년 가고 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사실은 아닌 거잖아요. 직업의 맵(map)을 자발적으로 그리신 건데 남들과 다른 코스일 수 있던 부분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나요? 스크립터 지내시다가 조연출, 총괄 프로듀서 하시다가... 그야말로 많은 영역을 넘나드시다보니 제가 머리가 복잡하거든요. (웃음) 영화프로듀서란 직업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길눈이 굉장히 어두워요.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인데 안 갖고 있죠. 조금 앞에서 헤매고 있으면 ‘같이 앞으로 갑시다' 이런 얘기도 할 수 있는 거고요. 저는 졸업하기 전 대학 생활의 후반을 영화하는 사람들 쫓아다니는 일로 보냈어요. 아까 말씀드렸지만 80년대 후반은 각자가 입장을 찾길 바라는 시대였거든요. 저는 다양성이란 말을 들을 때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는데 ‘너는 어느 쪽이야? 뭐가 될 거야?'라는 질문들이 밀려왔고요. 저는 계속 회색인이었어요.

현재 영화판의 프로듀서들 중에는 소위 ‘(운동)권' 출신들이 굉장히 많으세요. 진보적으로 나가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한편으로는 학교 때 룸펜이었던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결정을 못하던 분들이 많았단 생각이 드는 거죠. 뭔가는 하고 싶은데 결정은 못하겠고. 나중에 보니까 할 말이 많았던 거죠. 저도 늘 어디선가 밑으로는 다양한 기운이 움직이고 있을 거야 생각했던 쪽이었어요. 그래서 <또 하나의 문화>에도 가게 되었던 거구요. 당시만 해도 영화판 사람들을 ‘일탈'이라고 규정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저로서도 나름대로 도약이었어요. ‘너처럼 규범적인 아이가 어떻게 영화를 할 수 있니?'라고 묻는 사람도 많았고요. 규범적으로 보이는 제 안에 말할 수 없는 열정이 있고 그걸 죽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열정, 저 그거밖에 없거든요. 사람들은 몰랐지만 저는 어렴풋이 알았죠. 그래서 용기를 내서 알아왔던 길 말고 그 길로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가 매 순간이 기로였던 시대였다면 지금 같은 경우는 약간은 다른 맥락에서, 룸펜인 것을 허용하지 않는 시대인 것 같아요. 또 다른 의미에서 기로에 설 수밖에 없는 시대인 것 같은데요. 현실적인 측면으로 눈을 돌려서 영화 프로듀서의 직업의 세계를 살펴볼까요?

프로듀서는 엊그제도 어디선가 말씀을 드렸는데요. 우선 질문을 하나 드릴게요. 프로듀스라는 단어가 뭐죠? (객석: 생산하다요~) 예, 맞습니다. 생산하다, 만들다, 제조하다. 이런 얘기죠. 프로듀서는 무언가를 창조적으로 만들어내는. 거기에다 'er'이 붙었으니까요. 크게 보면 그렇고요. 프로듀서는 실무적으로 감독이 연출에 전념하기 위해서 판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멋있게 말하면 창작자가 창작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상황과 환경을 또 창조해내는 사람이고요.

프로듀서에는 여러 가지 등급이랄까요. 종류가 있습니다. 알기 쉽게 보통 얘기할 때는 제작자, 사장, 대표라고 하지요. 제작자란 말은 그 개념을 말하는 거고요. 제작사의 대표가 하는 일은 우선 어떤 영화가 있을 때 기획의 단계를 맡는 거예요. 이때는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취할 수도 있고, 감독의 아이디어가 영화로 되는 경우도 있고요. 많은 성공한 영화는 감독의 기획으로 된 것이 많은데요. 일단 투자사와 얘기를 해본 뒤 결정을 합니다. 일단 그 전에는 좀 주물럭 주물럭 매만져 둬야겠죠. 투자사에서 영화에 투자를 하는데요. 요즘은 한편에 최소 25억 그렇게 가죠.

프로듀서는 이 모든 단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좀 더 실무적으로 와 닿죠. 단편의 경우는 역할 구분이 거의 안 되어 있어요. 지금은 점점 되어가지만, 과거에는 자기 돈 오십 만원 내서 하는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큰 영화는 오십억씩 쓰잖아요. 그런 경우 감독이 연출에 전념을 할 수 있도록 상황과 재화와 창작성까지 감독과 같이 상의해서 영화를 만들어가는 역할, 그 역할이 프로듀서입니다.



그런 식의 설명을 들으면 프로듀서가 곧 영화인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김영 PD님께서 프로듀서로서 일하실 때는 주로 어떤 역할을 담당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 개인적인 역할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우선 다른 분들의 말씀을 인용해보면요. 제가 <장화홍련>에서 라인 프로듀서의 일을 했을 땐데요. 라인 프로듀서의 일은 일을 하기 위해서 스탭(staff)을 모으고 휘하의 스탭을 관장하는 거예요.

<장화홍련>의 마케팅을 맡은 영화사 <봄>의 오정완 대표는 ‘프로듀서는 감독보다 반보 뒤에서 걷는 사람이다'라고 하셨어요. 물론 감독과 함께 제작자에게 의견을 낼 수도 있고, 제작자와는 당연히 사이가 좋아야 하고요. 어떻게 보면 박쥐같겠죠? 항상 그렇게 적절한 위치에서 영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프로듀서다라는 말은 굉장히 와 닿았고요. 김익상 프로듀서 같은 분은 ‘프로듀서는 검과 도 중에서 검이다. 감독이 칼날이 하나밖에 없는 도라고 한다면 프로듀서는 창작적인 부분과 함께 이재(理財)적인 감을 지닌 일종의 검과 같은 역할이다'라고 얘기했습니다. 김지운 감독의 경우는 ‘감독이 현장의 아버지라면 프로듀서는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셨죠. 제가 현실에서는 오빠와 여동생 같은 관계라고 말하기는 했었죠. (웃음) 그런 것들을 놓고 봤을 때 저는 그냥 노동자로서의 프로듀서였던 것 같아요. 주어진 일과 과제를 해결해 가고 앞으로 밀어붙이는 일을 해왔어요. 물론 프로듀서의 역할은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처음부터 영화 프로듀서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잖아요. 생각했던 일을 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기대도 못했던 일을 하시게 됐던 경우도 많을 것 같거든요. 판에 발을 들이기 전과 영화 현장의 각기 다른 포지션에 있으면서 바라본 프로듀서의 역할이 남다를 것 같은데요. 전과 후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감독을 먼저 하고 나서 프로듀서의 일을 하고 싶었는데 프로듀서 일이 먼저 왔어요. 역시 인생이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는 연출을 할 거고요.

프로듀서에는 제작부, 제작차장, 부장, 실장, 라인 프로듀서, 슬래쉬 프로듀서, 제작자 이렇게 제작과정을 거쳐서 가는 방법. 마케팅팀의 일원으로 해서 카피 쓰는 것부터 영화 예고, 신문광고 내는 것 등을 맡은 다음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를 알고 영화를 알아서 입문하는 방법도 있어요. 최근에는 마케팅하던 출신들이 영화계에서 각광을 받거든요. 유명한 여성 프로듀서들 가운데는 유명한 마케터 출신이 많습니다. 연출의 고통을 겪은 다음에 제작자가 되는 경우도 있지요. 저와 비슷한 경우도 다소 있기는 합니다.

제 경우 프로듀서 하기 전에 가장 두려웠던 부분은 돈 관리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제가 돈 관리에 대해 모르지 않을까 했는데 하다보면 점점 알게 되고요. 장점이라 생각했던 부분은, 예전에는 연출을 하면서 영화 만드는 내용에 집중을 했다면 프로듀서가 되고 보니 시야가 굉장히 넓어졌어요. 알게 된 세상에 대해 책임도 느끼게 되고요. 단점은 다른 사람의 돈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스탭들에게 넉넉하게 해주지 못하는 점이에요. 지금까지는 스탭으로서, 동료로서 같은 편에 서 있다가 프로듀서가 되니까 깎아야 되잖아요. 제작 시스템이라든가 환경이라든가 스탭 처우 개선 문제라든가 정책 입안이라든가 압력 단체의 입장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거죠.

저는 개인적으로 항상 여성정체성이라는 것이 일과 직업과 생활과 어떻게 연결이 되나 하는 문제에 관심이 있거든요. 굳이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환경에서 일하지 않더라도 성적 정체성은 고유의 기능을 하는 것 같거든요. 여성프로듀서로서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저의 짧은 역사를 볼 때 처음에는 잘 모르고서 뭔가 숨통을 트여주게 하는 얘기들이 있는 곳으로 마음이 끌려서 왔는데요. 제가 학교, 집, 학교, 집만 오가고 공부만 해서 사람들이 쟤는 그냥 시집갈 거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저는 <또 하나의 문화> 사람들을 만난 것을 후회하지 않아요. 규범에서 벗어나서 너무나 자유로워졌거든요.

<바리터>에 소속되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