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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제가 미국 쪽에서 어소시에이트 프로듀서(Associate Producer)를 맡았어요. 방금 제가 '사람과 사랑이 깃든 매니지먼트를 꿈꾼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부족하긴 하지만 그때도 시간에 충실하고 그 사람과 진실을 이야기하고 원하는 게 같을 때는 언젠가 그 사람과 다시 만났을 때 큰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왔었는데 그렇게 되었어요. 용준씨와 전화 통화를 해서 '필요한데 와라‘ 해서 이틀만에 결정하고, 미국 10년 생활 접고 한국에서 이 일을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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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을 하신건데 그 이유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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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도 정도에 편입을 하게 됐어요. 영화/방송을 전공으로 편입하게 됐는데 IMF가 터지는 바람에 학비가 다른 학교의 1/4 정도로 저렴한, 하지만 영화과와 방송과가 유명한 학교로 들어가게 됐어요. IMF 때문에 학교 다니면서 네 가지 정도의 일을 했어요. 졸업 후에는 NBC라는 방송국에서 어시스턴트 프로듀서를 하게 되었어요. 그 일을 한 후에 한국에서 오는 방송들, 드라마들 어소시에이션 프로듀서 일을 하다가 한국과 연관을 맺게 됐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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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힘이 될 때는 팬 가족들 있잖아요. 아까 영상에 보면 사람들이 저를 쫓아오잖아요. 가끔 저 혼자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그럴 경우는 쑥스럽기는 하지만 팬 가족들이 저를 알아봐주세요. 편지도 보내주시고요. 일본에서 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영화 <외출> 프로모션 때문에 일본에 갔을 때인데요.
배우는 브랜드라고 말씀드렸지만 배우는 또 사람이잖아요.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 얼만큼의 애정을 갖고서 사람 속에 있는 진짜 인간적인 면을 얼마나 보여줄 수 있는지는 뒤에 있는 사람들의 일이에요. 그래서인지 밖에 있는 분들도 용준씨의 모습을 보고서 우리를 판단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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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연예 매니지먼트 쪽에 안 좋은 선입견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을 지도 모르고 적을 지도 모르지만 여러분 자신이 이 안에 들어오실 수도 있어요. 그럴 경우 자기가 사람이라는 생각, 꿈을 가진 인간이란 생각만 하면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본다면 변화되어질 매니지먼트 업계, 엔터테인먼트 업계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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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앞으로의 미래를 본다면 이런 주먹구구식 형태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여요. 또 앞으로는 스타파워가 더 생길 거고요. 스타들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은 확실해요. 여기 DMB폰 갖고 계신 분들 있나요? 점점 새로운 미디어 영역들이 생겨나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똑같은 영화를 봐도 유명한 배우가 나온 영화를 보게 되잖아요. 컨텐츠들이 스타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유통되면, 장래에 어떤 미디어들이 발전할지 그리고 컨텐츠 산업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히 이해한 사람들만이 매니지먼트를 더 잘 경험하게 될 수 있을 거예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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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끝으로 마지막 질문 드릴게요. 영화감독 얘기를 계속 하셨는데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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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현장에서 직접 뛰는 게 낫다고 아무리 이론을 배워와 봤자 국내 연예계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나이도 있는데 어서 빨리 실무로 뛰어들어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자기 때문에도 역시 그렇지 않아요. 제가 아는 여성 매니지먼트 사장님이나 매니저분들을 봐도 배우들한테 굉장히 진실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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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찍는토크쇼'에 해당되는 글 4건
- 2005/12/25 꿈을 찍는 토크쇼 - (주)BOF 이동훈대표
- 2005/11/25 꿈을 찍는 토크쇼 - 신유진 편집장
- 2005/10/23 꿈을 찍는 토크쇼 - 김영프로듀서
- 2005/03/27 다음, 청소년 위한 '드림플래시' 프로젝트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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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수능 시험이 있었잖아요. 혹시 어제 수능 보고 오신 분 계세요? 네, 몸도 마음도 수고 많으셨어요. 그런데 사실 시험을 봤다고 해서 모든 일이 다 끝난 게 아니잖아요.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어떻게 할지가 더 고민인 거니까요. 자, 꿈을 찍는 토크쇼는 바로 그러한 고민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입니다. 다양한 선배들을 모시고 꿈과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는 자리지요. '엘르'라는 잡지 다 아시죠? 우리나라에서 긴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라이센스지로, 많은 독자수를 확보하고 있는 매체입니다. 오늘은 그 일의 핵심에 서 계신 분, '엘르' 편집장 신유진님을 만나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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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니 패션에도 관심이 있고-사실 대학 때에는 운동권이었기 때문에 패션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거든요-글쓰기에도 흥미가 있는거에요. 이 회사 계속 다니면 패션은 엿볼 수 있겠지만 사보를 만드는 건 이 회사에서 참 작은 부분이라는 판단을 내렸죠. 이 직장에서 '클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내가 원하는 일을 키워갈 수 있는 직장을 잡고 싶었어요.
행복이 가득한 집이 나오는 디자인하우스에 응모를 했고 그곳에서 나오는 다른 잡지에 구직을 했어요. 그래서 3년 동안 일했고 굉장히 많이 배웠어요. 열심히 했고. 거기에서는 본격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글도 많이 쓰고 사진도 많이 찍었습니다. 패션 화보 촬영 일을 해 본 게 굉장했죠. 모델에게 옷을 입히고 사진가와 상의해서 그림을 만들어 내는 일이 나에게 참 적성이 맞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그래서 이쪽일을 더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때 마침 디자인하우스에서 나오는 '이브'나 '행복이 가득한 집'으로 가라는 얘기가 나왔어요. 다시 생각을 해 봤죠. '행복이 가득한 집'은 패션 전문지가 아니어서 잡지 내 패션 기사의 비중이 작았고, '이브'는 문화적인 성격이 많았습니다. 다른 길을 뚫어야겠구나, 싶었어요. 소문을 막 냈죠, 패션지 일을 하고 싶다고. 그 때 '마이 웨딩'이라는 곳에서도 제의가 왔는데 면접을 가 보고 분위기를 보니까 제가 원하는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고사하고 계속 소문을 계속 냈죠. '마리끌레르'에서 연락이 왔는데 월급도 적고 대우도 더 낮아졌지만 정말 제가 원하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갔습니다. 92년 11월에 '엘르'가, 93년 5월에 '마리끌레르'가 창간됐어요. 그 때는 인터네셔널 잡지가 국내에 두 개 뿐이었기 때문에 다들 프랑스 유학파 출신들이었습니다. 제 무기는 그 유학파들보다 글을 더 잘 쓴다는 거였죠. 패션지로 시작했기 때문에 유학파나 의상학과 출신들이 많았지만 제가 그 사람들보다 글을 잘 쓴다는 자부심 덕분에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그 다음부터는 사람들이 알아보고 스카웃 제의가 오더라구요. 결정적으로 '엘르'에서 자리를 잡게 됐죠. 처음 '엘르'가 창간됐을 때부터 "이런 잡지도 있구나!" 감탄하면서,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여기서 일하면 정말 좋겠다 생각을 했었는데 마침내-'엘르'에 가게 된 셈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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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로 그 잡지에서 일하고 싶은데 거기서 일하게 되더라". 그런데 그게 그냥 된 게 아니라 신유진님께서 적극적으로 기회를 설계하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 좋지 않은 조건에서 일을 해야 했지만 내가 원하는 일이란 걸 알았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다고 하신 것. 당시로서는 치열한 갈등을 요하는 것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 때 생각하기로-나는 패션 전공이 아니잖아요. 아무리 좋아하고 재미있어해도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곳에서 잠재력을 펼치는 게 좋겠다고 생각을 했고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마리끌레르'에서 편집장과 사이가 좋지 않아 '쉬즈'라는 잡지로 가기도 했는데, 폐간이 돼서 방황을 한 적도 있어요. 그 때도 제가 홍보대행사 같은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잡지가 좋은 거에요. '쉬즈' 전 사장이 홍보사무실을 내셨대서 처음에 일을 돕다가 '이건 아니다' 해서 그만두고 있는데 '엘르'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 때 못 버텼으면 내가 원하는 잡지에 못 왔을 것 같아요. 사실 자기 능력은 자기가 제일 잘 알거든요. 조언도 중요하지만 결국 제일 잘 아는 건 자기에요. 자기가 잘하는 것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잘 판단하는 게 진로 선택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처음 '엘르'에 가서 밀라노 컬렉션에 갔어요. 사실 그 때는 예산이 없어서 투쟁한 끝에 겨우 갔는데 가서 너무 고생을 했던 거에요. 다녀 왔더니 너무 고생을 해서 하얀 머리가 생긴 거 있죠. 마리 앙뜨와네뜨가 머리가 밤 사이에 하얗게 샜대잖아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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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끼리는 '무수리'라고 해요. 공주인 줄 알고 들어갔더니 무수리더라, 그런거죠. 실제로 저희 어시스턴트 뽑을 때도 체력부터 봐요. 저희 편집부는 다 여자들인데요, 겨울 가죽 코트 스무 벌 들고 올라오는 거 보통 일 아니에요. 해외 출장 갈 때 오버차지 안 붙이려고 쪼그리고 앉아 가며 꽁꽁 매 싸고. 겉에서 보는 것처럼 화려하고 그런 직업만은 아닙니다.
이런 것도 있어요. 뷰티 기자들이 그런 얘기 많이 하는데요, 요즘 고가의 크림이 많잖아요. 아주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맞는 이벤트를 열게 되면 서울에서 하기도 하지만 되게 좋은 리조트-발리 등에서 하기도 해요. 휴식을 취하면서 할 수 있는. 덕분에 우리가 평소에 접하기 힘든 환경도 접해볼 수 있죠. 2년 전에 아베다에서 바디 크림이 하나 나왔는데 그게 카리브해에서 나는 원료로 만들었던 거에요. 그래서 카리브해에 있는 자메이카에 가서 절벽 꼭대기에 있는 소규모 방갈로 리조트에서 이벤트를 했어요. 전 세계에서 각 나라에서 한 사람씩 와서 총 12-3명이 왔습니다. 한국에서는 제가 갔구요. 거기서 바디 크림 소개 받고 마사지 받고 쉬면서 3박 4일을 쉬었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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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는- 잡지 기자가 갖는 가장 큰 매력 중의 하나는 자기가 재미있어 하는 일을 남들에게도 얘기하면서 "너도 이거 재밌지?"라고 하는 거거든요. 내가 재미있어 하는 드라마에서 뭘 봤으면 이거 재밌던데 너도 재밌지라고 독자에게 말을 거는 거죠. 일상의 모든 것들이 기사가 될 수 있는 게 매력이죠. 하지만 이게 단점이 되기도 해요. 일상이 일이 되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모든 곳이 일터인겁니다. 집에 와서 티비를 봐도 저 사람 입은 옷이 브리티시 룩이네, 엉덩이 끝이 안 좋아, 바꿔줬어야 해-하고 생각하니까요. 모든 일상이 일로 연결이 되니까 심각하지 않아서 좋을 수도 있고 그 일상이 모두 일과 연결되니까 피곤할 수도 있고. 그게 잡지의 장점이자 단점이에요.
보통 패션 에디터가 되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하냐고 물어봐요. 옷 잘입는 사람이라고 패션 기자 자격이 되는 건 결코 아닙니다. 처음 1, 2년만 잡지사에 있을 거 아니라면 글을 잘 써야해요. 무슨 팀이건, 글을 맛깔나게 잘 써야 돼요. 제가 기자들을 뽑아보면-글은 거의 타고난 거에요. 글쓰기란 건 대학 때 와서 배울 수 있는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고 써 본 사람들이 잘 해낼 수 있는 거거든요. 많이 써 본다는건 단숨에 되는 게 아니죠. 패션기자나 뷰티기자가 물건 고르고 스타일링 하는 건 배우면 돼요. 하지만 글 쓰는 건 못 배워요. 그래서 잡지사에 들어오려면 일단은 글솜씨가 있어야 돼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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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주 중요한 과정입니다. 서로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를 밥 먹으면서 수다 떨듯이 얘기하는데, 그 중에 나오는 기사가 잡지 소재의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수다의 과정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을 하고 회사에도 '우리가 떠들어도 절대 말리지 말아라'라고 얘기를 해요. 여자들이라서 가능한 것 같구요, 여자이기 때문에 좋은 점이구요. 이런 점은 아쉽죠. 조직적인 근무 시스템과는 거리를 두고 커 왔기 때문에 제 나이쯤에 중간관리자로 경영진에 들어가야 해도 그런 문화를 어색하게 느껴요. 조금은 아쉽지만 처음 시작을 할 때 여자들만 모여있는 집단에서 시작을 하는 게 나쁘지 않다라고 생각을 해요.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저희들의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우리 직업은 독특합니다. 세계의 최고급 제품들-고가의 크림, 수백만원짜리 가방, 비싼 신발들을 다 신어볼 수 있는 직업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기자들이 그 물품들을 다 사지는 않아요. 잡지사에 일하는 사람들은 이런거죠. 잘 벌어서 좋은 곳에 쓸 수도 있지만 지금 내가 불행하다면-가치관의 차이에요-무슨 소용이냐,는 겁니다. 어떻게 합리적 소비를 해서 행복감을 느낄 것인가가 일상의 관건인 거죠. 사고 싶은 고가 브랜드의 제품이 출시되었을 때, 그 제품을 손에 넣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할 때 우리는 '대체재'를 찾아내요. 이태원 어디에 가면 비슷한 이런 물건이 있어,라고. 판타지를 주는 것도 사실이에요. 값비싼 옷을 입은 모델들을 제시하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어릴 때 백설공주, 신데렐라 공주님을 동화에서 보여주듯이 이 일도 마찬가지에요. 언젠가 꾸었던 꿈을 이미지로 계속 즐기게 하는 거죠. 현실과의 구분은 분명히 이뤄진다고 봅니다. "정말 예뻐지는 게 최고야?" "말도 안 되는 의견까지 수용을 해야하는걸까?"에 있어서는 어떻게 조정을 해 내야할지 늘 고민하게 돼요. 소위 '투쟁적'으로 의견 개진을 하는 것까진 아니지만 여성이 남성들에게 의존해서 수동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거나, 사회적 편견에 얽매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 절충안을 찾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기도 하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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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5년 정도 일하다 보니 책을 쓰고 싶어요. 하나는 패션 에디터가 되는 법에 대해서 쓰고 싶구요, 또 한 가지는 이렇게 패션 쪽에서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이랑 에피소드, 패션계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에세이집처럼 내고 싶어요. 그게 일단은 가장 가까운 계획이에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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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주로 질문을 드렸는데요 이번엔 객석에서 질문할 시간을 드리도록 할게요. | ||
과는 전혀 상관 없어요. 심지어는 물리학과를 나온 분도 있어요. 저는 신문방송학과를 나왔는데 별로 도움이 안 돼요. 자기가 흥미를 갖고 있는 예술 파트나 복식사 쪽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신 전공을 그렇게 택할거면 글재주를 늘리는 게 꼭 필요할 거 같구요.
하는 일은, 저는 제 마지막 촬영이 비랑 알마니 촬영-비와 함께 갔던 건데요. 아주 중요해서 제가 같이 간 거고, 편집장은 사실 그런 현장 일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편집장 레터만 써요. 일반 패션 에디터(기자)의 일로 설명을 드릴게요. 먼저, 촬영은 글과 달라서 컨셉을 잡는 게 제일 중요해요. 요즘 매스컴에서 보면 스타일리스트라고 많이 나오잖아요. 스타일리스트도 전체적으로 촬영을 진행하는 사람이고 패션 에디터도 옷을 입혀주는 사람인데요, 에디터는 자기 기획에 맞춰서 스타일리스트를 쓰구요 스타일리스트는 진행자를 따로 두지 않아요. 예컨대 광고 촬영을 한다 그러며 스타일리스트가 맡은 건 옷을 입혀주는 역할이에요. 테이블 셋팅이나 환경까지. 패션 에디터는 PD 같은 역할이에요. 처음에 기획을 잡죠. '리틀 블랙 드레스'나 '러시안풍' 이런 게 될 수도 있지만 어떤 '스토리'가 될 수도 있어요. '런어웨이 브라이드'를 주제로 한다든가. 이런 식으로 기획부터 하는 게 에디터에요. 내가 이런 촬영을 하려면 어떤 스텝들을 구성을 해야할까. 사진가는 누구로 할까, 스토리 보드는 누구에게 맡길까, 모델은 표정과 얼굴이 어떤 사람으로 섭외할 것인가, 메이크업 아티스트까지-모든 구상과 진행을 담당하게 되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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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취재 파트가 있고 거기서 원고를 넘기면 편집국에서 제목을 뽑죠. 레이아웃 파트에서 디자인을 하구요. 그와 달리 잡지사는 편집부와 미술부가 있어요. 편집 쪽에서 주로 일을 많이 합니요. 어차피 기본 로우 데이터를 만들어 주는 것을 편집부에서 하잖아요. 일러스트를 그리거나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것 모두요. 그걸 넘겨주면 미술부에서 예쁘게 만들어주는데, 그 작업이 레이아웃을 잡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글씨체를 몇 포인트로 쓸 것인지, 무슨 색깔을 쓸 건지. 이게 편집부의 의도에 합당한가 아닌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한 번 시안이 나오면 편집부에서 판단을 하고 다시 조정을 하게 됩니다. 잡지 기자가 야근을 많이 하는 건, 원고를 다 쓰고 나서도 시선을 끌지 않으면 글이 읽히지 않기 때문에, 그림 배열이나 레이아웃에 신경을 쓰느라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칼라 교정까지 다 보기 때문에 밤을 샐 수 밖에 없죠. 잡지사마다 채용시 고려하는 경력 기준이 달라서 그 부분은 제가 뭐라고 하기가 애매하네요. 인터넷을 통해 접수된 질문을 드릴게요. 패션 에디터의 연봉은 어떤지요. 연봉은 짭니다. 저희도 명예직이라고 해요. 대기업 수준보다 적구요, 잡지사마다 달라요. 워낙 야근도 많은데 그게 수당이나 이런 거 전혀 없어요. 능력 되면 빨리빨리 가는거고 능력 안 되면 늦게까지 있는 거라 저희들끼리는 기본적으로 그런 부분에 대해 인정을 하고 있죠. 주5일 근무제인데도 한 달에 두 번은 나와요. 일이 안 끝나서. 노동량에 비해서는 보수가 적다고 생각을 해요. 하지만 월급 때문에 잡지사에 다니는 사람은 없을 거에요.
저희가 열 두 명인데요, 중앙엠엔비처럼 일년에 한 번씩 공채를 하는 곳을 두드려 보는 것이 가장 권할 만한 부분이에요. '엘르'를 원한다면, 그 주변에 계속 있어야 해요. '키키'가 됐든 중앙 엠엔비가 됐든 주변에 있어야 기회가 와요. 잡지사는 경력자를 선호하거든요. 작은 회사라도 성실히 다니며 경험을 쌓아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도 몰랐는데, '엘르'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던 거에요. 심상훈련이라고 하잖아요. 코엘류 말처럼, 진심으로 바라면 이뤄지는 거지요. 얼마 전에 만난 황현정 아나운서도 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십년 후 엄마에게 편지를 써 보기로 한 게 있었대요 고등학교 때. 그걸 얼마 전에 발견했는데 "엄마 내가 진행하는 뉴스 잘보고 있어?"라고 써 뒀더래요. 간절히 바라면 꼭 이뤄집니다. 여러분도 잊지 마세요.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숱한 고민과 어려움을 견뎌냈을 선배의 이야기를 거름 삼아 우리도 '간절히 바라고 노력해서' 자신이 꿈 꾸었던 바를 '정말로 이루어내는' 그림을 그려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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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런 책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더라고요. 소위 실용서라고 불리는 책들이요. ‘이렇게 하면 잘 살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남을 잘 설득할 수 있다' 그래도 그런 책들에서 힌트를 얻기란 굉장히 힘든 것 같아요. 오히려 선배 직업인들이 미리 헤쳐나간 길을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깊이 들여다보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이야기 손님도 그런 분들 중 한 분인 것 같아요. 날씨가 안 좋아서 그런지, 추워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오시지는 않았습니다만 오신 분들만큼은 오신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있어요.
이 분은 체구가 굉장히 작으신 분이에요. 성찰적 삶과 함께, 생동하는 현장과 사람만이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두려울 건 없다 김영 프로듀서를 소개합니다. 박수로 맞아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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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영입니다. 그 당부가 저를 향한 당부이셨군요. 크게 이야기하라는 당부요. 하하. 재단 측에서 이렇게 몰래몰래 동영상을 준비해주셨는지 몰랐어요. ‘저렇게 얘기할 때 손을 많이 썼나? 말이 안 되니까 손을 많이 썼구나. 오늘은 말을 많이 해야지' 생각했습니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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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리가 제일 어렵죠. 저에 대해서 특별히 말씀드릴 게 없는데요. 영화인이라고 보통 말씀드립니다. 저는 제가 영화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있고요. 더 나아가서 앞으로는 ‘전천후 영화인'으로 불리고자 해요. 전천후 영화인으로서 세상에 필요한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다가 죽으려고 생각합니다. (웃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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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해볼생각으로 8mm 영화 만드는 집단에 들어가게 되었고, 조한혜정 선생님과 여러 동인들의 터인 <또 하나의 문화>에서도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문화>를 만나면서 여러 모로 점점 깨지게 되었어요. 여러분들이 아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80년대 후반은 암울한 시기였지요. 그시절 나라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영화로 담던 젊은이들도 있었는데, 그런 축에서 여성의 문제를 다루던 <바리터>라는 곳이 있었어요. 현재 충무로의 변영주 감독, 김소영 교수, 홍효숙 프로그래머 등등. 모두 <바리터> 출신의 영화인들입니다. 그 후 한국영화진흥원 소속의 한국영화아카데미 8기로 들어가서 연출을 전공했어요. 다양한 경험을 쌓다가 94년에 김홍준 감독의 데뷔작인 <장밋빛 인생>이라는 영화에서 기록을 맡았습니다. 연출부 안에서는 스크립터라고도 하죠. 지금은 아니지만, 예정에는 여자들만 담당한다고 생각해서 충무로에서는 꽃이라고 불리던 일이었습니다. 영화 앞 장면에서 까만색 예쁜 목걸이가 나왔는데 그 다음 장면에서 사라졌다면 그건 옥에 티죠. 스크립터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충무로에 입문을 했습니다. 한동안 방황의 기간이 있다가... 보통 백수라고 하죠. (웃음) 97년부터 여전히 스크립터로서 시나리오가 일관성을 가지고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후반 작업을 도왔어요. 그렇게 90년대 문화의 세기를 마치면서 영화아카데미를 졸업했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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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도 하고 지내다가 2002년에 김지운 감독 작품이고 오기민(영화사 ‘마술피리'), 오정완(영화사 ‘봄') 두 분의 제작자 밑에서 여러분이 잘 아시는 <장화홍련>의 실무 프로듀서를 맡게 되었습니다. 외국에서는 ‘라인 프로듀서'라고도 불리는데요. 1년 반을 그 일을 하고 장화홍련이 6월 13일, 13일의 금요일에 개봉을 했지요. 김지운 감독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 많은 사랑을 받았지요. 한국에서도 공포영화가 잘 될 수 있구나 라는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그해 가을에 <이공>이라고, 90년대 제가 다녔던 영화아카데미가 20주년을 맞아 개막작을 준비하면서 <이공>이라는 프로젝트가 만들어졌습니다. 작년에 런칭을 하고 얼마 전에 DVD가 나왔어요. <이공>은 스무 편의 단편이 모인 옴니버스 프로젝트구요. 아실만한 감독을 포함해서 20명의 영화아카데미 졸업생 및 동문을 포함한 감독들이 만든 단편 옴니버스영화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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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영화판의 프로듀서들 중에는 소위 ‘(운동)권' 출신들이 굉장히 많으세요. 진보적으로 나가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한편으로는 학교 때 룸펜이었던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결정을 못하던 분들이 많았단 생각이 드는 거죠. 뭔가는 하고 싶은데 결정은 못하겠고. 나중에 보니까 할 말이 많았던 거죠. 저도 늘 어디선가 밑으로는 다양한 기운이 움직이고 있을 거야 생각했던 쪽이었어요. 그래서 <또 하나의 문화>에도 가게 되었던 거구요. 당시만 해도 영화판 사람들을 ‘일탈'이라고 규정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저로서도 나름대로 도약이었어요. ‘너처럼 규범적인 아이가 어떻게 영화를 할 수 있니?'라고 묻는 사람도 많았고요. 규범적으로 보이는 제 안에 말할 수 없는 열정이 있고 그걸 죽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열정, 저 그거밖에 없거든요. 사람들은 몰랐지만 저는 어렴풋이 알았죠. 그래서 용기를 내서 알아왔던 길 말고 그 길로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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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에는 여러 가지 등급이랄까요. 종류가 있습니다. 알기 쉽게 보통 얘기할 때는 제작자, 사장, 대표라고 하지요. 제작자란 말은 그 개념을 말하는 거고요. 제작사의 대표가 하는 일은 우선 어떤 영화가 있을 때 기획의 단계를 맡는 거예요. 이때는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취할 수도 있고, 감독의 아이디어가 영화로 되는 경우도 있고요. 많은 성공한 영화는 감독의 기획으로 된 것이 많은데요. 일단 투자사와 얘기를 해본 뒤 결정을 합니다. 일단 그 전에는 좀 주물럭 주물럭 매만져 둬야겠죠. 투자사에서 영화에 투자를 하는데요. 요즘은 한편에 최소 25억 그렇게 가죠. 프로듀서는 이 모든 단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좀 더 실무적으로 와 닿죠. 단편의 경우는 역할 구분이 거의 안 되어 있어요. 지금은 점점 되어가지만, 과거에는 자기 돈 오십 만원 내서 하는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큰 영화는 오십억씩 쓰잖아요. 그런 경우 감독이 연출에 전념을 할 수 있도록 상황과 재화와 창작성까지 감독과 같이 상의해서 영화를 만들어가는 역할, 그 역할이 프로듀서입니다.
<장화홍련>의 마케팅을 맡은 영화사 <봄>의 오정완 대표는 ‘프로듀서는 감독보다 반보 뒤에서 걷는 사람이다'라고 하셨어요. 물론 감독과 함께 제작자에게 의견을 낼 수도 있고, 제작자와는 당연히 사이가 좋아야 하고요. 어떻게 보면 박쥐같겠죠? 항상 그렇게 적절한 위치에서 영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프로듀서다라는 말은 굉장히 와 닿았고요. 김익상 프로듀서 같은 분은 ‘프로듀서는 검과 도 중에서 검이다. 감독이 칼날이 하나밖에 없는 도라고 한다면 프로듀서는 창작적인 부분과 함께 이재(理財)적인 감을 지닌 일종의 검과 같은 역할이다'라고 얘기했습니다. 김지운 감독의 경우는 ‘감독이 현장의 아버지라면 프로듀서는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셨죠. 제가 현실에서는 오빠와 여동생 같은 관계라고 말하기는 했었죠. (웃음) 그런 것들을 놓고 봤을 때 저는 그냥 노동자로서의 프로듀서였던 것 같아요. 주어진 일과 과제를 해결해 가고 앞으로 밀어붙이는 일을 해왔어요. 물론 프로듀서의 역할은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프로듀서에는 제작부, 제작차장, 부장, 실장, 라인 프로듀서, 슬래쉬 프로듀서, 제작자 이렇게 제작과정을 거쳐서 가는 방법. 마케팅팀의 일원으로 해서 카피 쓰는 것부터 영화 예고, 신문광고 내는 것 등을 맡은 다음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를 알고 영화를 알아서 입문하는 방법도 있어요. 최근에는 마케팅하던 출신들이 영화계에서 각광을 받거든요. 유명한 여성 프로듀서들 가운데는 유명한 마케터 출신이 많습니다. 연출의 고통을 겪은 다음에 제작자가 되는 경우도 있지요. 저와 비슷한 경우도 다소 있기는 합니다. 제 경우 프로듀서 하기 전에 가장 두려웠던 부분은 돈 관리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제가 돈 관리에 대해 모르지 않을까 했는데 하다보면 점점 알게 되고요. 장점이라 생각했던 부분은, 예전에는 연출을 하면서 영화 만드는 내용에 집중을 했다면 프로듀서가 되고 보니 시야가 굉장히 넓어졌어요. 알게 된 세상에 대해 책임도 느끼게 되고요. 단점은 다른 사람의 돈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스탭들에게 넉넉하게 해주지 못하는 점이에요. 지금까지는 스탭으로서, 동료로서 같은 편에 서 있다가 프로듀서가 되니까 깎아야 되잖아요. 제작 시스템이라든가 환경이라든가 스탭 처우 개선 문제라든가 정책 입안이라든가 압력 단체의 입장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거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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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리터>에 소속되었을 |









안녕하세요? 오늘로 꿈을 찍는 토크쇼가 열 번째를 맞았습니다. 열 번째 행사를 끝으로 우선 마감을 하게 될 것 같은데요. 처음 오신 분들이 아니신 분 손들어 보실래요? 정말로 운이 좋으신 겁니다. 오늘은 BOF 이동훈 대표님과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어볼 것 같은데요. 사람과 사랑이 깃든 연예 매니지먼트를 꿈꾸고 계십니다. 이동훈 대표님을 모시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우선 많은 분들이 오셔서 기쁘네요. 저는 현재 BOF 대표 이사를 맡고 있는 이동훈입니다. BOF는 엔터테인먼트 회사고요. 배용준, 소지섭, 심지호씨, 그 외 신인들을 매니지먼트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광고 회사도 했고요. 프리랜서로 다큐멘터리 제작도 했었고 영화 제작도 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이 많이 알고들 계시겠지만 저는 재미있고 정보 많은 잡지 '엘르'를 만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김장 열 번만 담그면 세월이 십년이라고 묘사한 수필가가 있었어요. 그런데 잡지사 기자는 일년에 열두번 책을 만들잖아요. 365일로 일년을 사는 게 아니라 열두번으로 사는 것, 그것이 잡지사 기자인 것 같습니다. 저는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는데요, 보통 편집장을 잡지사의 꽃이라고 해요. 회사에 사장, 이사, 파리 본사에 가면 또 사장, 이사- 층층이 임원들이 많지만 책 '엘르'에 들어가는 글과 사진에 대한 모든 책임은 편집장이 지게 됩니다.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자리인 셈이죠.









글을 잘 쓰는 것은 읽는 것과 직결돼요. 글이 약해서 스타일 감각 좋아도 잡지사에 끝까지 남아있지 못하는 기자들이 많아요. 팀장이 되면 후배 기자들이 어떤 방향으로 글을 쓰고 촬영할지 디렉션을 줘야하는데 자기가 못 하면 불가능하거든요. 편집장도 마찬가지구요. 그래서 감각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을 많이 읽고 쓰는 것도 중요합니다. 글이 딸리면 나가서 프리랜서 스타일리스트가 되기도 해요. 잡지사에 남고 싶다면 꼭 글을 잘 써야해요. 



안녕하세요? 김영입니다. 그 당부가 저를 향한 당부이셨군요. 크게 이야기하라는 당부요. 하하. 재단 측에서 이렇게 몰래몰래 동영상을 준비해주셨는지 몰랐어요. ‘저렇게 얘기할 때 손을 많이 썼나? 말이 안 되니까 손을 많이 썼구나. 오늘은 말을 많이 해야지' 생각했습니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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