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단소식
  
“드림플래시”에는 멋진 선배들의 삶, 직업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꿈을 찍는 토크쇼”, 그 달의 탐구분야로 선정된 직업들에 대한 취재기사와 정보가 담겨 있는 “직업뷰파인더”, 현장 전문가들로부터 각 분야의 실질적인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커리어 멘토링”, 선배 네티즌들이 청소년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주변 직장인을 추천하는 ‘추천! 멋진 직업인’ 등 청소년 여러분의 “꿈 만들기”를 위한 다양한 온, 오프라인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는 꿈을 찍는 “드림플래시” 프로젝트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다음세대재단은 새로운 기부 문화 창출과 사회 공헌을 위해 ㈜다음커뮤니케이션 주주, 임직원들이 스톡옵션, 주식 등을 기부해 설립한 비영리 재단으로 Media & Communication, Network, Diversity, Next Generation 분야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의 현명한 사용을 통해 가치 있는 개인들이 창의적이고 다양한 모습으로 함께 살아갈 다음세대 창조”를 사명으로 하는 다음세대재단은 건강한 미래 창조를 위한 각종 활동에 적극 지원함으로써 다음세대를 이끌어 갈 우리 젊은이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Daum카페는 최대 포털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커뮤니티 서비스로 현재까지 550만개의 카페수가 말하듯 대한민국 모든 청소년들이 매일 매일 접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장입니다.
청소년들은 숙제를 하기 위해 정보를 찾고, 좋아하는 연예인 팬카페에 가입해 가수, 배우들을 열심히 응원하고, 본인의 관심사나 취미에 따라 활발한 동호회 활동을 하며 다양한 정보를 주고 받기도 합니다.
멀기만 했던 스타들과 인터넷이라는 한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기도 하고, 인터넷 소설 카페 활동을 통해 여고생 소설가가 탄생하기도 하고, 고구려 소녀와 같이 예전에는 참여하기 어려웠던 사회 활동을 바로 카페라는 공간을 통해 꿈을 펼치고 있습니다.
Daum 카페는 청소년 스스로가 꿈을 그리고, 꿈을 키워나가는데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샤갈전 , 달리전 , 요시토모 나라전 등 최근 몇 년 사이 화제에 올랐던 큰 전시회들을 알고 있으시죠 ? 국공립 공간에서 시립 , 사설 전시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전시회가 펼쳐지고 있는 요즘 , 미술전시회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인식 또한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 큐레이터는 바로 이와 같은 미술전시회를 기획 , 조직하는 사람으로 전시와 관련된 사항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천후로 맡아 뛰는 이들이랍니다 .



큐레이터의 업무는 크게 전시 , 학예 ( 연구 ), 교육 , 홍보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 아직 그 체계가 세세히 정립되지 않은 국내에서는 이 모든 영역이 세분화되지는 않다고 해요 .
좁은 의미로서의 큐레이터는 국내에서 번역되는 용어와 마찬가지로 ‘ 학예연구사 ' 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소장품을 연구하고 그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전시를 기획 , 진행하는 것이죠 . 외국은 보통 교육은 에듀케이터 ( 교육전문가 , educator) 가 , 장물 보존은 컨서베이터 ( 작품수복보존처리전문가 , conservator) 가 그리고 전시 컨셉에 맞춰 미술품을 대여 , 구입하며 서류 작업을 맡는 사람들은 레지스트라 ( 작품의 관리 및 출납원 , registrar) 등이 담당합니다 . 하지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국내 미술관 대다수에서는 큐레이터 몇 사람이 이 모든 일을 담당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 전시회의 기획과 진행은 물론 홍보에서 교육 , 전시 관련 정산 부분까지 완결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 큐레이터와 함께 일하는 이들로는 전시 작업 자체를 전문적으로 돕는 디스플레이팀과 보험처리를 담당하는 행정팀이 있습니다 .

 
 

현재 국공립 박물관을 포함한 전국 미술관과 화랑의 큐레이터 인력은 300 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어요 .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과 대우가 높지 않은 관계로 연봉 , 직업적 처우 등에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직업으로서 큐레이터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 미술이론이나 실기를 공부한 사람들 가운데 전업작가로 매진하거나 학업을 계속하지 않을 경우 , 큐레이터는 미술계에서 전공을 살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기 때문이지요 . 그러나 인맥 위주의 채용이 많은 데다 대부분이 계약직이어서 높은 경쟁률을 뚫고 취업을 한 후에도 불안 요소가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 초봉이 연간 1000 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 진급 후에도 연봉이 2000 만원 선을 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 상대적으로 신분이 안정되고 공무원 수준의 급여도 보장 받는 전국 국공립 미술관의 큐레이터의 경우 그 모집 경쟁률이 100 대 1 을 넘습니다 . 문화관광부가 주재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시행하는 학예사 자격증 시험이 있는데 이 자격증은 말 그대로 자격증일 뿐 취업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

 
 


큐레이터는 자신이 예전에 배워서 알고 있던 지식으로 작업을 하는 것이지만 , 한편으로는 꾸준히 지식과 노하우를 개발해 나가야 하기도 합니다 .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만큼 창조적인 일 즉 , ‘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 작업은 아니지만 큐레이터의 일 역시 굉장히 ‘ 크리이티브 ( 창조적 , creative) 한 일이거든요 . 미술 기획은 다양한 작업을 수반합니다 . 작가와 대중의 욕구를 짚어내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기획을 해내야 하므로 상상력 이상의 창조력을 필요로 하지요 . 발로 뛴 만큼 , 고민하고 애쓴 만큼 나의 정보와 노하우를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습니다 . 정답도 , 사전도 없는 작업이니까요 .




작가의 작업과 작품은 굉장히 주관적인 것입니다 . 큐레이터의 시각 역시 매우 주관적인 것이구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 큐레이터 , 관람객 모두가 공감하는 작업이 있습니다 . 그것이 바로 예술과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 공감 ' 되는 그 무엇인 거죠 . 자기 시각과 판단력을 갖고 좋은 작가와 작품을 구별해내는 것 , 그리고 작가들의 작품을 엮어낼 수 있는 것 - 이것이 큐레이터의 요건이자 큐레이터가 자기 색깔 , 자기 목소리를 가져낼 수 있는 방법입니다 . 미술을 향한 애정이 기반되어야 작품을 보는 안목도 , 작가를 이해하는 시각도 생겨날 수 있어요 . 마찬가지로 미술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진정으로 관람객과 미술 발전을 위한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구요 .


전시를 기획하고 전시회를 여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큐레이터와 긴밀하게 호흡하는 사람은 바로 전시될 작품을 만든 작가입니다 . 작업에 대한 미술가들의 의지와 개성은 매우 강하답니다 . 더구나 협동 작업 보다는 개인 작업에 익숙한 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 전시에 관해 의논하고 협상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가 잦다고 해요 . 큐레이터는 이런 부분 하나하나에서 문제를 풀어가는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 작가의 입장을 존중하면서도 정기적인 일정 진행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기분 좋게 설득하고 일을 이어 나가야 하는 것이죠 . 다른 사람의 욕구와 취향을 잘 파악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

 
 

1. 학예사 자격증 취득에 관한 정보
지난 2000 년에는 학예사 자격증 제도가 생겨나 많은 이들이 이 시험에 응시하고 있어요 . 문화관광부에서 학예사 자격증 제도를 포함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을 개정하면서 학예사의 등급을 1 급 , 2 급 , 3 급 정학예사 , 준학예사로 나누고 각각의 자격요건을 정립하게 되었지요 . 2004 년부터는 국립중앙박물관 (www.museum.go.kr) 에서 그 업무를 위임 받아 시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이 자격증은 말 그대로 자격증일 뿐 이것을 취득한다고 해서 취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에요 . 그러나 큐레이터를 꿈꾸는 많은 이들이 학계사 자격증 시험에 응시 , 자격증을 취득하기 때문에 나란히 경쟁하기 위해서는 자격증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답니다 .


2. 인턴 프로그램을 통한 정식 채용
인턴 프로그램은 큐레이터 업계에 진입할 수 있는 첫걸음이자 자신의 적성이 정말 이 일과 맞는지를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 인턴 관련 정보는 www.daijin.com , www.neolook.net 에서 만나볼 수 있어요 . 미술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포털 정보 사이트로 , 모든 소식이 집결되는 곳이랍니다 . 현재 인턴 프로그램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고 볼 수 있어요 . 먼저 학교와 미술관이 연계되어 학교를 통해 인턴으로 일해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 이 경우에는 재학생들을 이어주는 프로그램이므로 외부인은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 문화예술진흥원이나 자립형 사립미술관 인턴은 , 이 곳에서 나온 공고에 응시한 인턴들에게 정부에서 지원금으로 임금이 지급되는 시스템이에요 . 마지막으로 개개의 공간별로 가나 , 성곡미술관 , 토탈미술관 등의 사립형 미술관에서 자체적으로 뽑는 인턴이 있습니다 . 미술관별로 홈페이지에 공고가 나게 되므로 꾸준히 홈페이지를 살피며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 많은 미술관이 인턴사원 (6 개월∼ 1 년 , 길게는 2 년 ) 으로 매년 2 ∼ 5 명씩 공개 채용한 뒤 이들 중에서 정식직원을 채용합니다 . 인턴 활동을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경력을 넓혀가고 , 자신에게 정말로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잘 맞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답니다 .


3. 자체 시험을 통한 국공립 박물관 채용
한편 국공립 박물관의 경우 결원이 있을 때마다 학예사를 충원하는데 이 때에는 특별채용시험을 따로 치루어 사람을 뽑게 되므로 이 시험에 합격하면 학예사로 일할 수 있습니다 . 국공립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근무하는 학예사는 ' 학예연구사 ' 로 입사하여 3.5 년의 경력을 쌓은 후 승진시험을 거쳐 ' 학예연구관 ' 으로 승진하게 돼요 . 서울 인천 대전 등 전국의 10 개 국공립 미술관들에서 부정기적으로 자리가 빌 경우에만 이와 같은 방식으로 채용을 하므로 꾸준히 정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


4. 독립 큐레이터
전시 프로젝트별로 일을 따라가는 ‘독립 큐레이터' 즉 프리랜서는 외국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케이스로 , 아직 국내에서는 활성화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 독립 큐레이터의 경우 기존의 제도권 혹은 상업 화랑이 아닌 대안공간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 대안공간은 지난 1999 년부터 생겨난 것으로 다양한 작가군의 실험적인 작품을 발굴 , 전시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 작가들이 의욕과 새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그것이 제도권의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상업적 가치를 크게 인정 받지 못할 때 더 이상 작업을 이어가기가 힘든 경우가 많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이지요 .

 
 

큐레이터를 지망하는 청소년들에게 건네는 선배의 조언입니다 . 프로젝트 스페이스 ‘ 사루비아 다방 ' 의 황신원 큐레이터님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




“ 우리나라의 교육제도가 입시 중심이라 예술 관련 교육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잖아요 . 제가 일하면서 만나는 작가들은 어린 시절부터 문학이며 음악 , 미술을 많이 찾아 다니면서 , 다방면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예술적 감성을 많이 키웠더구요 . 여행도 많이 다니고 . 같은 경치를 봐도 감성이 풍부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 감성을 많이 키웠으면 좋겠어요 . 사진도 찍어 보고 , 여행도 해 보고 . 미술에 관심 있으면 전시 많이 보러 다니면서 직접 그려보기도 하고 . 꾸준히 동기부여를 하면서 자기 스스로 기회를 잡아서 찾아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 , 미술전시감상회 같은 프로그램들이 요즘 활성화 되고 있으니 , 꼭 찾아가 보면 좋겠어요 . ”



“ 전시 기간에는 보통 작가들이 전시 공간에 와 있는답니다 . 가서 말을 걸어보세요 . 내가 어떤 작가와 친해지는 것 , 나중에 그 작가와 친해져서 작업실에 가 보는 것 - 굉장한 경험이 될 거에요 . 또 다른 측면에서 작가와 미술을 만나볼 수 있는 셈이죠 . 이런 제안도 같은 맥락인데요 , 여행을 가도 건축물이나 박물관 미술품에 관한 책을 준비해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느껴보세요 . 이 부분에 대해서는 특히 우리나라 문화재나 한국 미술 , 전통 미술부터 시작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 직접 보고 느끼는 게 중요하니까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 또한 좋구요 . 이 모든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서 감성 훈련에도 도움이 되고 미술품을 보고 읽는 식견도 넓힐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 ”



“ 큐레이터에 관심이 있어도 미술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볼 만한 곳이 그리 많지 않죠 ? 이번에 제가 몇 군데를 추천해 드릴게요 . 먼저 , 국립현대미술관 도서관이 아주 잘 갖춰져 있어요 . 온갖 화집과 잡지들이 있거든요 . 물론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 인사미술공간 , 아트센터 나비의 미디어 전문 미술관 등에는 재미난 비디오 작업들이 DVD 로 준비돼 있습니다 . 삼성 리움의 자료실 , 미술연구자료보존소 , 한국전통사진연구소에는 방대한 자료들이 있으니 개방된 자료들을 놓치지 마세요 . 일민미술관의 다큐멘터리 필름 아카이브도 잊지 마시구요 . 대부분이 서울 / 경기 지역에 있는 것들이라 아쉬움이 남지만 지역의 국공립 미술 공간에도 자료실과 청소년 관련 프로그램이 있으니 적극적으로 기회를 잡으세요 . ”

 
 
김달진미술연구소 www.daljin.com
네오룩닷컴 www.neolook.net

문화관광부 www.mct.go.kr
국립중앙박물관 www.museum.go.kr

< 큐레이터 , 그리고 미술관> 한미애 지음 , 아트블루 펴냄 , 2005
< 미술전시 기획자들의 12 가지 이야기 > 김홍희 , 박규형 , 박정욱 , 박찬응 , 박삼철 , 나선화 , 이동국 , 박혜경 , 김철효 , 김달진 , 김찬동 지음 , 한길아트 펴냄 ,
< 큐레이터는 세상을 어떻게 움직이는가 ? ( 세계적인 큐레이터 열 명에게 묻는다 )>
캐롤리 테아 지음 , 김현진 옮김 , 아트북스 펴냄 , 2003
< 큐레이터의 딜레마> 니콜라스 세로타 지음 , 하계훈 옮김 , 조형교육 펴냄 , 2000
< 큐레이터를 위한 박물관학 ( 박물관학과 박물관 업무의 이론과 실제 )>
조지 엘리스 버코 지음 , 양지연 옮김 , 김영사 펴냄 , 2001

동덕여자대학교 큐레이터 학과 www.ncurator.net
 


안녕하세요? 오늘로 꿈을 찍는 토크쇼가 열 번째를 맞았습니다. 열 번째 행사를 끝으로 우선 마감을 하게 될 것 같은데요. 처음 오신 분들이 아니신 분 손들어 보실래요? 정말로 운이 좋으신 겁니다. 오늘은 BOF 이동훈 대표님과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어볼 것 같은데요. 사람과 사랑이 깃든 연예 매니지먼트를 꿈꾸고 계십니다. 이동훈 대표님을 모시겠습니다.

나비: 영상 보니까 굉장히 바쁘세요. 얼마나 바쁘신 분인지 5분 시간을 드릴 테니 스스로 자기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우선 많은 분들이 오셔서 기쁘네요. 저는 현재 BOF 대표 이사를 맡고 있는 이동훈입니다. BOF는 엔터테인먼트 회사고요. 배용준, 소지섭, 심지호씨, 그 외 신인들을 매니지먼트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광고 회사도 했고요. 프리랜서로 다큐멘터리 제작도 했었고 영화 제작도 했었습니다.

연예 매니지먼트 대표이사를 맡고 계신다고 하셨는데요. 연예인 매니저를 상상했던 친구들이 많을 것 같아요. 연예인 매니저는 어떤 일들을 하나요?

굉장히 방대한 일들을 하죠. 배우 뒤에서는 굉장히 많은 분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원래 제가 드렸던 영상에는 배용준씨만 가득 나오는데 제가 나오는 1% 남은 컷이 어떻게 있었네요.
TV나 방송을 보게 되면 배우들 뒤로 살짝살짝 얼굴 반 내지 3분의 일 나오는 사람들이 매니저인 경우가 많아요. 배우들을 제 시간에 맞춰서 곳곳에 데리고 가는 로드 매니저, 배우의 모든 스케줄을 관리하는 스케줄 매니저도 있고요. 신인들만 담당하는 신인 매니저도 있어요. 또 매니지먼트 안에는 홍보를 담당하는 홍보 담당자도 있고,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관리를 하시는 관리 팀들도 있고, 홍보 팀 외에는 또 항상 다른 일들을 어떻게 개발해나갈까 하는 신사업 쪽 일을 맡는 분야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연예 매니지먼트사 안에는 다양한 역할들이 있고 각기 다른 일을 하고 계시는 거군요. 저희끼리 그런 농담을 했었어요. 그럼 이동훈 대표는 매니저냐 아니냐, 매니저들의 매니저니까 왕매니저 아니겠냐, 왕매니저는 매니저냐 등등. (관객 웃음)
그런데 왕매니저 아닌 매니저 일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솔직히, 없죠. 말씀드렸듯이 운전을 하기도 하고 배우가 제 시간에 갈 수 있도록 미용실이든 스타일리스트든 제 시간에 맞춰 준비해놓고 약속 시간에 정확히 갈 수 있도록 콘트롤하고 매니지하는 게 로드매니저인데 그 일을 건너뛰고 대표자리를 하고 있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 낙하산 아닌가 하실 텐데요.
근데 여러분, ‘낙하산'이란 말은 아시나요? 하하. 앞으로 더 얘기하다보면 더 아실 수 있겠죠.

그럼 낙하산의 의혹부터 제거를 해보죠. (관객 웃음)

그러면 굉장히 앞으로 가야 될 것 같아요. 시계를 앞으로 돌려서. 제가 유학생활을 했어요. BOF란 회사가 작년 4월에 생겼습니다. 1년 8개월 정도 된 신생 회사고요. 그 전에, 벌써 6년 됐네요. 드라마 <호텔리어>라고 혹시 기억하시나요?

그때 제가 미국 쪽에서 어소시에이트 프로듀서(Associate Producer)를 맡았어요. 방금 제가 '사람과 사랑이 깃든 매니지먼트를 꿈꾼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부족하긴 하지만 그때도 시간에 충실하고 그 사람과 진실을 이야기하고 원하는 게 같을 때는 언젠가 그 사람과 다시 만났을 때 큰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왔었는데 그렇게 되었어요. 용준씨와 전화 통화를 해서 '필요한데 와라‘ 해서 이틀만에 결정하고, 미국 10년 생활 접고 한국에서 이 일을 시작했죠.

미국에서 <호텔리어> 현지 작업을 같이 하시다가 배용준씨를 개인적으로 알게 됐고 좋은 인연이 되어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난 뒤에 BOF가 탄생을 했는데요. 처음부터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실 생각은 아니었잖아요? 이틀 만에 예스(yes)하기까지 고민이 장난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둥지를 옮겨 간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특히 당시 여자친구였던, 지금은 제 부인이 된 친구와의 사이를 가르는 큰일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을 하신건데 그 이유가 뭔가요?

일단은 처음에 BOF라는 회사 대표이사를 하겠다고 이 곳으로 온 것은 아니었고요. 배용준씨 사진집 프로듀싱을 하기 위해 참여했어요. 제가 영화하고 방송을 전공해서 영화나 방송, 컨텐츠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거든요. 한국에 오게 되고 2개월, 3개월 정도 지나면서 용준씨의 판단이 제가 대표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됐어요.
물론 처음부터 매니지먼트를 꿈꿨던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왜 그 자리에 있냐고 물으신다면 엔터테인먼트는 모든 분야와 연결이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광고분야에 있든, TV에 있든, 영화판에 있든 다 연결이 되어 있어요.
애플 창시자,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 졸업 연설문에서 했던 얘기가 생각나는데요. 점(dot)을 찍고 있는 동안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난 후 자기가 걸어온 점들을 이어보면 다 이어진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1년 8개월 전에 BOF를 하기로 결정하면서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인데 갑자기 매니지먼트라니 잘할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근데 만약 그때 이 방향이 아니니까 가지 말아야지 했다면 모를 수밖에 없던 것들을 이제는 알게 됐죠. 그래서 제가 꿈꾸던 것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음을 느낍니다.
엔터테인먼트는 모두 이어져있기 때문에 지금 하시는 것들 중에 쓸데없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힘든 일은 없으셨어요?

힘든 일도 많죠. 많은 분들이 사회생활이라는 자체에 대해 많이 얘기하잖아요. 학교 다닐 때 듣는 얘기들. 다른 것은 다 맞다고 치고 혹은 아니라고 쳐도 사회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은 믿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힘들어 질 수 있다는 거예요.
1년 8개월 동안 매니지먼트 일을 하면서 생각보다 사람들이 자신만의 공간 안에서 다른 영역과 부딪혔을 때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고 사랑도 부족하고 믿음이 부족해진다는 것을 느꼈어요. 믿음을 줄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도 되겠죠.
제가 매니지먼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매니지먼트 업계에만 그런 사람들이 많겠지 하실 수 있겠지만 제가 사회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봤거든요. 한국에서의 사회생활은 짧은 편이지만요. 사회생활 새내기로서 느꼈던 것이 사람이 제일 힘들다는 거예요. 일은 절대 안 힘들어요. 24시간 안 자도, 밤을 새도 안 힘들어요.

갑자기 묻고 싶은 게 많아지는데요. 길고 긴 학창시절을 보냈을 적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군대를 현역으로 가서 제대하고 미국으로 가서 1학년부터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의 꿈은, 고등학교 때는 광고를 꿈꾸었더라고요. 자본주의의 꽃인 광고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고등학교 때 영어를 진짜 좋아했는데 영어는 성적이 안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영문과를 가서 영어를 좀 부셔보려고 허허. 고등학교 때부터 ‘나는 유학간다' 생각했어요.



특출나게 공부를 아주 잘해서 누가 유학을 보내준다고 했던 것도 아니고 단지 ‘유학은 간다, 미국 간다'고만 생각했었어요. 제대하고 비디오 가게에서 6개월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복학을 해야 되는데 그때도 ‘미국은 간다'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죠.
그러던 와중에 학교에서 세미나를 갔었는데 거기서 만난 선배님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시는 거예요. 옛날 같으면 ‘와, 짜증난다' 했을 텐데 그 이야기를 듣고도 나는 무조건 유학 가야 한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삼촌이 미국에 계셨는데 갑자기 전화 오셔서 어학연수 올래?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미국에 가게 되고 비디오 가게에서 6개월 일하면서 영화를 점점더 좋아하게 되었어요. 고민하다 미국에서 영화과에 입학하고, 영화에 대해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영화에 대한 전공을 갖게 됐죠. 길어졌죠?

98년도 정도에 편입을 하게 됐어요. 영화/방송을 전공으로 편입하게 됐는데 IMF가 터지는 바람에 학비가 다른 학교의 1/4 정도로 저렴한, 하지만 영화과와 방송과가 유명한 학교로 들어가게 됐어요. IMF 때문에 학교 다니면서 네 가지 정도의 일을 했어요.
학교 랭귀지 스쿨에서 스튜던트 어드바이저(Student Advisor)를 했고 제가 잘 할 수 있었던 각 중학교, 고등학교 돌아다니면서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문화를 이야기하는 활동이니까 그것을 하게 됐고 주말, 주중에는 비디오 가게에서 일을 했고 그리고 방송 DJ도 했었어요. 그건 무료로 했던 것 같아요.
12시에서 새벽 2시까지 하는 기독교 방송이었는데 혼자서 너무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졸업 후에는 NBC라는 방송국에서 어시스턴트 프로듀서를 하게 되었어요. 그 일을 한 후에 한국에서 오는 방송들, 드라마들 어소시에이션 프로듀서 일을 하다가 한국과 연관을 맺게 됐죠.

‘미국은 간다'고 해서 가셨던 것도 그렇고 담대한 구석이 있어요. 가닥이 있다고 할까. 굉장히 담대하신 것 같은데 설계하신 길을 향해 품고 있던 계획에 대해 조마조마하거나 불안해하는 구석은 찾을 수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참 신기하죠? 그게 왜 그랬을까요? 저는 마음이 항상 편했거든요. 이 길을 가면 가는 거지 불안해하거나 떨지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거나 개인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는데 광고 일이나 매니지먼트 일을 하면서 제가 선택한 길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고요.
종착역인 영화에 대해서도 아시는 분들이 잘 없어서 왜 굳이 영화하느냐 말들을 많이 하셨는데 당시에는 50세가 되고 60세가 됐는데 영화를 했어야 했는데 못했다고 하면 아쉽잖아요. 그게 더 무섭고 두렵더라고요.
지금 당장 해야겠다 생각해서 공부하고 영화 쪽 관련된 일들, 방송일들을 했지요.

실제로 결정을 내려놓고 이게 될 건지 안 될 건지 의심 없이 나아가기는 힘든 일이잖아요. 특히나 그런 의심이 짙어지는 순간이 상황이 내 마음대로 안 될 때인데요. 결과적으로 마음대로 된 것 같기도 한데... 유학을 갈 수밖에 없던 상황이 있었잖아요.

어학연수를 가면 다니던 학교를 1년 정도 휴학할 수 있잖아요.
같은 대학 다니던 친구도 악수하면서 ‘걱정 마, 내가 휴학계 내줄테니까 랭귀지 코스 잘 하고 와라' 했어요. 미국 와서 꽤 됐는데 ‘너 한국 학교 오기 좀 힘들겠다, 너 자동 자퇴됐어' 그러는 거예요. ‘야 그걸!' 하다가 소용없다는 걸 알았어요. 끊고 가만히 누워서 ‘그럼 내가 공부를 계속 해야겠구나' 다짐했고 영화를 공부하게 됐지요.
그 친구랑은 아직도 친하니까 그때 휴학계 잊어버리길 잘했다 그런 얘기 해요. 생각해봤는데 돌이켜 보면 당시에도 어느 정도는 미국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그것까지 차단되어 버려서 이쪽으로 가야만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거죠.

나비: 우여곡절 끝에 유학을 하게 되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이번에는 혹시 기억에 남는 현장의 몇몇 장면에 대해서 듣고 싶어요. 사실 연예인 사생활 얘기보다도 더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매니저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현장에서는 매우 바빠요. 배우들이 가만히 있다면 매니저들은 정말 바빠요. 특히 배용준씨 같은 경우는 메가톤급이잖아요. 특히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사고가 일어날 정도로 심한 경우가 없지만 일본에서는 심해요. 제가 작년 11월에 갔었을 때도 다치셨던 분들이 다섯 분 정도 안전사고가 있었거든요. 매니저들은 스타들 동선 하나하나 전날 확인을 다 하고 경호원 배치하는 것까지 신경 써야 해요. 계속 전화하면서 도착하는 시간 체크하고 다른 상황 벌어질 것 없는지 체크하고 관계자들과 협의해야 하는 일들이 있지요.

작전수행이네요. 힘들지 않으세요?

그게 힘들죠. 힘들지만 한편으로는 보람이라고 할까? 괜히 뿌듯한 느낌을 가질 때가 있는데요. 다른 분들은 잘 몰라요. 저 말고 우리 매니저들이 쭉 있잖아요. 배우들과 매니저는 정말 형제같아요. 배우도 매니저들 얼마나 힘든지 알고 배우도 쉬운 게 아니거든요.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그 사람들 그 길을 걸어오기까지 제가 걸었던 길보다 더 힘든 길을 걸었던 사람도 많고요. 그토록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서로 힘이 되어주죠.

더욱 힘이 될 때는 팬 가족들 있잖아요. 아까 영상에 보면 사람들이 저를 쫓아오잖아요. 가끔 저 혼자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그럴 경우는 쑥스럽기는 하지만 팬 가족들이 저를 알아봐주세요. 편지도 보내주시고요. 일본에서 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영화 <외출> 프로모션 때문에 일본에 갔을 때인데요.
배용준씨가 팬을 가족이라고 부르시는 것은 아세요? 일본말로 가족은 ‘가족꾸'라고 하는데. 제가 마지막날 반바지에 슬리퍼 신고 반팔에 모자 쓰고 혼자 라면을 먹으러 갔어요. 근데 길을 잃어버렸어요. 지하철 지도 보면서 서 있는데 갑자기 어떤 분이 쓱 오세요. 그러더니 가족꾸, 가족꾸 하시는 거예요. 자기가 배용준 가족이라는 거예요. 꼭 접선하는 공작원 마냥. 여기로 간다고 하니까 저를 데리고 거기까지 데려다 주시더라고요.
일본에서는 가족이라는 용어를 잘 안 쓴데요. 일본 스타들도 팬들을 가족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여기 가족 계세요? 없으시구나. (관객 웃음)

또 하나 힘들 거다 생각 드는 부분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내가 보이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스타를 만들어 내기 위해 힘들게 노력하고 애쓰는 자리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마음 아프거나 상실감 들지는 않는지...

잠깐씩 들 때도 있죠. 하지만 스타들 뒤에 있는 매니저는 그 사람이 빛날 때 자기 자신도 빛나고 보람을 느끼게 되요. 여러분이 상품을 판다고 하면 상품의 모든 것을 다 알아야 되잖아요.
어떤 물질로 되어 있고 어떤 병에 들어있으며 등등을요. 배우는 그 상품의 브랜드와 같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스타들이 가는 곳과 하는 모든 일들을 거의 100% 알고 있을 때 이 사람을 완전한 브랜드로 보여드릴 수 있는 거거든요.

배우는 브랜드라고 말씀드렸지만 배우는 또 사람이잖아요.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 얼만큼의 애정을 갖고서 사람 속에 있는 진짜 인간적인 면을 얼마나 보여줄 수 있는지는 뒤에 있는 사람들의 일이에요. 그래서인지 밖에 있는 분들도 용준씨의 모습을 보고서 우리를 판단해요.
또 우리를 용준씨와 같은 사람이라고 보아주지요. 그게 저희들한테는 상당히 큰 보람이고, 앞에서 보이지는 않더라도 마음으로 느끼는 거죠.



나비: 연예인들이 속한 곳을 일컬어 연예계라고 부르잖아요. 닫힌 세계 같은 느낌이어서 낯선 사람들은 룰을 모를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요. 그래서 궁금해 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동훈 대표님 말씀대로라면 연예계가 따뜻하고 사람 냄새나고 살기 좋은 동네여야 하는데 저희가 알고 있는 소문으로는 그렇지 않거든요.

엑스파일(X-file)이 터졌을 때도 보셨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연예계에 대해 안 좋은 선입견을 갖고 계시잖아요. 1년 8개월 전에는 저도 그랬거든요. ‘매니지먼트 사장 구속' 이런 것만 나오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이 세계가 내가 갈 길이 맞는 것인가 생각도 했지만 들어와 보니 역시나 이곳도 사람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제가 감히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 세계도 180도로 바뀌는 것 같아요. 처음엔 노력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없지 않을까 생각도 했거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을 내가 변화시켜 보면 되지 않을까 해보니 10명 중에 8명은 사람 냄새나는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고요.

물론 연예 매니지먼트 쪽에 안 좋은 선입견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을 지도 모르고 적을 지도 모르지만 여러분 자신이 이 안에 들어오실 수도 있어요. 그럴 경우 자기가 사람이라는 생각, 꿈을 가진 인간이란 생각만 하면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본다면 변화되어질 매니지먼트 업계, 엔터테인먼트 업계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많을지 적을지 모르지만 편견이 있는 사람이 저였거든요. 저희 드림플래시에서 사이트를 운영하는데 인터뷰 코너를 운영하고 있어요. 근데 그때 만났던 한 매니저 분께서도 통탄스럽다는 거예요. 7시에 만나기로 약속하면 다들 9시에 오게 되고 그래서 ‘누구든지 괜찮은 사람이 들어오기만 하면 탑이 되 수 있을 겁니다' 하는 거예요. 그 매니저분의 소속 연예인도 ‘왜 우리만 일찍 가요' 물었다고 하는데 남들이 그런 생각에 동의하고 있지 않으면 계속 억울해지는 상황이 생기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랑으로 하는 일이다' 그런 말을 지키기가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들거든요.

힘들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요. 제가 서른셋인가요, 넷인가요, 다섯인가요. 서른살 이후에는 나이가 잘 생각이 안나요. 살아오면서 제가 갖고 있던 믿음은 제가 진실을 보여주면 그 사람도 언젠가는 진실을 보여줄 거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런 거에 전혀 두려움이 없었어요.
그것 때문에 상처 받아서 일 못하고 피하고 도망가고 그럴 순 없는 거잖아요. 부딪혀 보면 어쩔 수 없이 우리도 사람이기 때문에 믿음과 신뢰를 주면 안되는 일 없이 다 되는 것 같아요.

이번 크리스마스에 눈 오는 것도 한번 바래봐 주시길 바랍니다 하하. 근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힘든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편견이 적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 중에 하나가 BOF 사이트에 가보면 사회 공헌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갖고 계시잖아요. 그 부분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곳이잖아'라고 말하는 제 자신을 설득하는 데 애를 먹었거든요.

용준씨나 지섭씨나 지호씨도 그렇고 다 생각하는 것이 이 분들이 인기 있게 만들어주신 분들은 팬 가족들이란 생각이에요. 제가 월급을 받는 것도 여러분들한테서 돈을 받는 거예요. 저희들이 왜 팬들을 가족이라고 부르고 중요하게 생각하냐면 이 분들이 모아준 돈을 쓰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번 돈을 쓸데없는 데 쓰면 안되잖아요. 말씀하셨던 사회 공헌도 그렇지만 이 돈을 좋은 일에 쓸 수 있도록 계획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 말씀하신 부분들과 연관해서 인상이 강하게 남습니다. 처음 발을 들이고 나서 ‘내가 여기서 그만두면 도망가는 거다, 도망은 가지 말자, 당분간은 이 일을 해야 겠다'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한국 연예 매니지먼트 산업이 가지는 문제점이나 개인적인 판단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굉장히 개인적인 거죠. 과거에는 그냥 우연히 지나가다가 괜찮은 친구 있으면 픽업해서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고 같이 커서 돈을 벌게 되서 회사를 차리고... 이렇게 주먹구구식이었죠.
이 배우를 5년 안에는 어떻게 만들겠다, 10년 안에는 어떻게 만들겠다 이런 미래지향적 계획을 갖고 해왔던 것이 아니라 ‘이 친구 될 것 같애' 하면서 여기저기 다 넣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문제가 될 일들을 하기도 하잖아요. 그건 미래를 보지 않았다는 증거거든요. 이 순간에 이 돈을 포기하더라도 이 일을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 판단해주는 게 없었던 것들이 사실이고요.

하지만 앞으로의 미래를 본다면 이런 주먹구구식 형태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여요. 또 앞으로는 스타파워가 더 생길 거고요. 스타들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은 확실해요. 여기 DMB폰 갖고 계신 분들 있나요? 점점 새로운 미디어 영역들이 생겨나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똑같은 영화를 봐도 유명한 배우가 나온 영화를 보게 되잖아요. 컨텐츠들이 스타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유통되면, 장래에 어떤 미디어들이 발전할지 그리고 컨텐츠 산업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히 이해한 사람들만이 매니지먼트를 더 잘 경험하게 될 수 있을 거예요.



그 부분과 관련해서 한국 연예 매니지먼트 업계에 가능성이 될 만한 부분들이 보이시나요?

가능성이 많이 보이죠. 일단은 정시에 출근해서 정시에 퇴근하는 회사가 늘어난다는 것이에요.(웃음) 사실 한 두 시간 어기는 건 아무 것도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아침에는 아무도 약속을 안 잡아요. 회사에 사람들도 아무도 없고요. 그렇기 때문에 일들을 다 밤에 하고 있어요. 근데 요즘은 9시까지 출근하는 데도 있더라고요. 정시에 출근한다는 게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요즘 청소년들 중에 연예인 매니저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 친구들에게 선배로서 얘기를 들려주신다면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요?

매니저는 인내가 있어야 되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간 약속을 잘 지켜야 된다고 생각해요. 시간 약속이야말로 성실함의 척도가 아닐까요? 그리고 가슴 속에 항상 뜨거운, 뭐랄까 사랑이라고 하면 간지러울 것 같고요. 꿈을 향한 마음가짐만 흐트러지지 않는다면 정말 멋있는 매니저가 되지 않을까요?

나비: 끝으로 마지막 질문 드릴게요. 영화감독 얘기를 계속 하셨는데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신가요?

저의 앞으로의 항로요? 또 태풍을 맞았죠. 내년에 1년 8개월 동안 매니지먼트 대표로 일하던 것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영화 제작을, 이미 하고 있어요. 비보이(B-boy)들 아세요? 갬블러나 T.I.P는 아시나요? 두 팀을 데리고 올해 10월부터 다큐를 찍고 있어요. 언젠가 영화 감독으로서 다시 이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저에게 주실 건가요?

물론이죠. 그런데 아직 몇가지 고민들이 있어요. 특히 연예 매니지먼트 산업에 대한 개인적인 편견들이 완전히 무너졌다고는 볼 수 없어요. 사회 공헌 사업을 열심히 하시고 있지만 태도나 이야기들이 진심을 강하게 때리기 보다는 너무 담백하게 잘 살고 계신 것 같은 느낌을 줘서요.
그 중에서도 BOF 대표를 그만두신다는 거요. 이동훈 대표님의 입장에서도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 맞다고 보거든요. 근데 그냥 그렇게 흘러간 항로인 것처럼 보여서 말이죠. 그 결정은 쉽지 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머리 속에서 생각하면 쉬운데 사실은 어렵죠. 현실적으로 바라볼 때 BOF라는 회사의 대표는 굉장히 큰 위치에요. 생각보다 말이죠. 1년 8개월 동안 만날 수 있었던 분들이 여러 분야에서 크게 힘쓰시던 분들이었거든요. 그런데도 흔쾌히 만나주시고 식사할 수 있고 그분들의 이야기도 1:1로 만나들을 수 있었고... 근데 이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면 쉽게 만날 수 있었던 분들도 어렵게 만나야 될 테고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태어났을 때부터 없이 태어났으니까요.
가진 것, 얻은 것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들 만나서 그 사람을 알게 되고 그 사람에게 배웠다는 것이 가장 큰 재산이라고 생각해요. 그 외의 것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딴 사람에게 내주고 가는 게 힘들고 그러지는 않았어요.

이동훈 대표님의 영화감독으로서의 모습 역시 아주 기대가 됩니다. 자신의 길을 헷갈리지 않으면서도 스스로의 믿음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부분들이 감명 깊었습니다. 대담은 살짝 박수를 보내드리는 것으로 마무리할게요.

1. 저는 영화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인데요. 매니지먼트 대표가 되는 게 꿈이거든요, 대표님께서는 대표가 되는 데에 영화 감독이 발판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저는 우선 영화를 전공하고나서 매니지먼트 업계로 발을 들여놓을 생각인데요.
대표님께서는 인내라든가 열정 등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매니저를 뽑으실 때 이런 사람이면 뽑겠다 하시는 것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구체적인 사항 얘기했는데... 정시 출근이요 하하. 사실 구체적이진 않아 보이죠.
농담으로 정시 출근, 정시 출근했는데 사실은 중요한 문제예요.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는 매니저는 정말 중요하고요. 사실 이력서의 이력을 봐서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어요. 하지만 그 사람이 매니저가 되고 싶은 이유에 대해 어떻게 서술했는가를 보면 대충 알 수 있어요. 인터뷰도 중요하고요. 말씀드렸듯이 왜 매니저가 되고 싶은 지 정확하게 얘기할 줄 아는 사람을 뽑을 것 같아요. 정시에 출근하시고요.

2. ‘예술경영'이 많이 뜨고 있고 세미나 같은 것도 있어서 몇분께 여쭤봤거든요.
근데 현장에서 직접 뛰는 게 낫다고 아무리 이론을 배워와 봤자 국내 연예계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나이도 있는데 어서 빨리 실무로 뛰어들어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세게 말씀해주셨네요.
그런 말씀을 마음이 약해서 못해드린 건 아니고요.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를 드리는 건데 저는 그런 이야기들에는 반대에요. 예를 들어 영어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영어도 외국인 계속 만나서 얘기하고 미국 가보면 늘어요.
근데 수준이 절대 이 선을 못 넘어가요. 그 이상의 영어는 구사하지 못해요. 매니지먼트도 똑같아요.
이론적인 것을 알기 때문에 룰을 깨는 것과 모르고 깨는 것은 천지 차이에요. 간단한 예로 뭐가 있을까요?
영화 촬영 기법에도 여러 가지 룰이 있잖아요. 그런 법칙을 알고서 하면 ‘영화에서 복잡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했구나' 생각하지만 모르고 깨면 바보되는 거죠. 학교 교육과정도 있고 서적도 있잖아요.
공부해보면 어떻게 매니지먼트 산업이 되어 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어요.
그러면 늦게 시작했더라도 2, 3배 뛰어넘을 수 있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그 분의 말에는 저는 정반대의 입장이고.

여자기 때문에도 역시 그렇지 않아요. 제가 아는 여성 매니지먼트 사장님이나 매니저분들을 봐도 배우들한테 굉장히 진실해요.
또 추상적인 말을 썼는데,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표현력이 강하기 때문에 배우나 매니저와의 시너지 효과를 더 많이 낼 수 있더라고요. 감정이 풍부하고 그런 것 때문에 더 좋은 매니저 될 수 있는 케이스 많이 봤고요. 채정안, 한지민 그런 분들의 매니저분들이 여자분이시거든요. 보면 남자들이 갖지 못한 다른 힘을 느낄 수 있더라고요. 하십시오. 열심히 하시면 됩니다.

3. 정시 출근하고 신인들 개발하고 있는 매니저입니다. 이 대표님은 저에게는 대 선배님이시고요. 일을 하면서 하나하나의 과정들이 참 어렵다는 것을 느끼거든요. 아이들 데리고 계신 입장에서 그 동안 방향성을 잃고 가장 힘들었던 과정이 있으시다면 그런 걸 극복하려고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굉장히 어리고 젊어보이시는데요. 저희도 신인들이 있잖아요. 4명 정도가 있는데, 유혹이 많아요. 신인들이니까 어떻게 해서든 출연해야 한다는 욕심들이 있는데 종종 컨셉이 안 맞을 때가 있거든요. 컨셉이 안 맞지만 프로그램 시청률은 고정적으로 확보될 테니까 출연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친구가 있는 반면에 진짜 괜찮은데도 오디션 보면 계속 떨어지는 친구도 있어요. 그럴 때는 참 힘든데 1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런 고민들은 사라지는 편이에요. 관리도 쉽지 않지요.
특히 여자 배우들 관리하는 것은 두 배로 시간이 들고요. 그럼에도 이 친구들에 대한 믿음을 절대 잃어서는 안되요. 믿음을 저버리면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아이들이 사라져요. 힘든 마음이 생길 때도 2, 3년 후에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가는 것, 그게 낙인 것 같습니다. 좀 종교적인 느낌이 나는데요 하하.

자, 질의 응답은 이걸로 정리를 해야 될 것 같아요. 이야기 손님을 모시고서 그 분의 경험, 이야기, 가치나 신념을 전해 듣는 자리에 있게 되어서 기쁩니다. 많은 분들에게 다 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이 주는 감동이 오늘 이 자리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도록 종이비행기를 준비했어요. 대표님께서 특히나 매니저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적어주셨을 텐데요. 뭐라고 적어주셨는지 말씀해주세요.

읽어야 되는 거죠? 처음이라서. 뭐라고 썼는지도 모르겠다. 시작하기 전에 썼거든요. “조촐한 공간,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공간, 꿈을 찍는 토크쇼를 만나게 되서 좋습니다. 끝까지 뛰어서 힘들 때는 걸어서 매진하세요. 이 자리를 기억하고 열심히 살아가세요. 크리스마스 3일 전 좋은 시간 되셨으면 좋겠네요. 또 볼 날을 기리며.” 굉장히 유치하네요.

참 많은 이야기들 나눠봤는데요. 감동을 받으셨을 만한 부분이 각기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매니저를 꿈꾸시는 분들께서는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올 해도 며칠 안 남았을 텐데요. 해가 바뀌는 이 시점에서 잊어버리고 싶은 일들도 많았을 거고 기억하고 싶은 일들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기억해야 되는 일들만 기억합시다. 활기찬 새해, 꿈을 향해 더 크게 한 발짝 내딛을 수 있는, 그야말로 올해의 끝자락에서 2005년의 마지막 시간 여기서 마칠게요. 찾아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선남선녀 주인공에 힘입어 꾸준히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드라마 <가을소나기>. 지난 여름 전국을 강타했던 <내 이름은 김삼순>의 또 다른 스타, 정려원이 출연하여 더욱 화제를 모았던 프로그램이다. 이야기의 축을 이루는 윤재-연서를 각각 건축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설정하여 드라마 초반에는 ‘해비타트 집 짓기 운동’을 소재로 등장하기도 했는데.
 
 
소녀가장의 집을 손 봐주고, 친구의 신혼 집을 꾸며 주는 극중 연서의 모습은 직업으로서의 ‘인테리어 디자이너’에 대한 매력을 한껏 발산하기에 충분했다. 윤재와 인연을 맺게 된 것 역시 아쿠아리움에 떨어뜨리고 간 그녀의 첫 인테리어 포트폴리오.

드라마에서는 가녀리고 아름다운 연서의 직업으로 이미지화 된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현실은 어떤 것일까? 그 생생한 직업 이야기를 ㈜다임 오소시에이츠의 김나현 대표이사님을 통해 들어 보았다.
 
포트폴리오는 취업의 필수품?
 
취직을 위해 건축사무실을 찾아간 연서. 함께 면접을 보는 취업자들은 모두 커다란 포트폴리오 파일을 지참하고 있다.
수족관에 포트폴리오를 두고 온 연서는 “기본 준비도 없이 면접을 보러 왔냐”는 면박을 듣게 되는데….

드라마에서 그려진 대로, 포트폴리오는 취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예비 사원이 어떤 구상 스타일을 갖고 있는지,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 가장 좋은 자료가 되어주기 때문. 구직자의 입장에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라는 멘트만으로는 면접관을 설득할 수 없다는 점을 미리 파악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솜씨를 좀 더 확실히 뽐내고 싶다면 구체적으로 자신의 감각을 선보일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포트폴리오가 취업 요건의 전부는 아니다. 레쥬메(이력서)와 포트폴리오, 재학시의 성적과 추천서, 인성 등 다양한 요소들이 함께 고려되기 때문. 이 모든 데이터를 통해 면접관이 파악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이 일을 정말 하고 싶어하는가’, ‘이 일을 열심히 잘 해낼 것인가’라는 점이다.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것만큼이나 이 일에 대한 열정과 성실한 태도가 중요하다는 사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야근이 잦나요
 
같은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연서와 윤재는 사무실에 늦게까지 남는 날이 많다.
두 사람이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게 되는 계기도 어느 늦은 밤 사무실에서 일어나는데. (그렇다고 모든 사무실이 로맨스의 공간인 것은 아니랍니다!) 흔히 ‘디자이너’라는 직종에 관한 깊은 오해(?) 중의 하나가 밤을 새워 작업한다는 것인데 과연 그럴까?

 
사무실의 규모와 프로젝트에 따라 작업 유형이 많이 다른 것이 현실. 보통은 한 디자인 및 작업당 2~3달의 기간이 소요된다. 한 달 동안의 준비 작업을 거쳐 1~2개월 간 공사하는 것. 최대 3달 안에 한 작업이 끝난다고 보면 무난하다.
그러나 호텔이나 역사(각종 역)의 경우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 걸리기도 한다. 일반 오피스, 아파트, 모델하우스와 상점(shop)이 단기간에 끝나는 편.

작업이 한꺼번에 몰릴 때는 밤을 새기도 하지만 매번 밤샘 작업이 잦은 것은 아니다.
물론 계획이 변경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마지막에 연거푸 제시되는 등 여러 변수에 따라 다르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일단 결정이 끝나고 나면 시공이 빨리 이뤄지길 원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지기도 하지만 밤샘이 곧 ‘능률’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무실에서는 무리한 작업 스케줄을 짜지 않는 편이다.
 
연서’ 같은 캐릭터라면 이 직업에 딱?
 
밝고 명랑한 성격에,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따뜻한 마음씨의 주인공 ‘연서’를 보고 있노라면 ‘아,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저런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갖기 쉽다. 건축/인테리어 전문가를 볼 수 있는 <러브 하우스>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직업인들의 캐릭터도 어쩌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어떠한 자질을 갖춰야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적절할까?

심미안을 갖춘 감성적 인물 또는 집요함이 느껴지는 예술가적 캐릭터. 각종 ‘디자이너’나 예술가를 떠올릴 때 흔히 함께 짚이는 이미지들이다. 하지만 특정 직업과 꼭 맞는 특정한 성격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오히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왜, 어떻게 디자인을 하고자 하는지, 어떤 준비를 해 왔는지-라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의 자질을 꼽으라면 풍부한 창의력과 꼼꼼함, 다양한 호기심과 발 빠른 분석력 등을 들 수 있다. 하나의 공간에 색깔과 분위기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디자이너 개인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중요하게 작용을 하는데다가,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치밀함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객마다 취향과 바람이 다르므로 시시각각 트렌드를 체크하며 여러 흐름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것도 포인트. 선배들이 학창 시절 동안 풍부한 경험을 쌓을 것, 많은 곳을 여행해 볼 것을 권유하는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시야를 넓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 봄으로써 더 좋은 성과물을 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급여와 만족도, 그것이 알고 싶다
 
아름다운 주인공, 세련된 사무실. 매스컴에서 묘사되는 직업은 대개 근사하기만 하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급여와 직업적 만족도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어느 직업이나 그렇듯이 개인별, 회사별로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통상적으로는 초봉이 1500만원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고, 3년 차에 접어들면 1800만원에서 2400만원 정도의 연봉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현장에서 추가되는 현장 수당과 연말 인센티브가 있어 실질적인 연봉은 그 선을 상회하는 것이 보통. 일이 고되고 힘들어서 연차가 올라갈수록 종사자가 줄어드는 것이 현실인데, 6~7년 차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경우 3000만원에서 3500만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 이 명제가 딱 맞아 떨어지는 직업 중의 하나가 인테리어 디자이너일 것이다.
돈을 위해서 일을 한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고, 좋아해서 열심히 하다 보면 ‘돈이 되는’ 것이 이 일이기 때문.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하고 그것을 몇 달 후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즐거움. 그리고 “예전에는 불편했는데 지금은 좋아졌다”라는 고객의 만족. 즉각적인 반응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성취도가 높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인내와 끈기를 갖고 해나가야 하는 직업이기도 한 셈.

파일럿, 호텔리어, 의사 그리고 최근의 파티시에에 이르기까지 미디어에서는 매번 색다른 직업의 주인공을 내세워 ‘보는 즐거움’과 ‘아는 즐거움’을 충족시켜 준다.
실제로 크게 ‘뜬’ 드라마의 경우 주인공의 직업까지 덩달아 인기를 얻어, 미디어의 힘을 증명하기도 했는데. 중요한 것은 미디어에서 소개된 것은 ‘이미지’에 그칠 뿐, 그 직업과 관련된 현실적인 지점들이 드러나지 않아 보는 이로 하여금 직업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가 쉽다는 점이다.
각종 매체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직업군을 즐겁게 보되 현실이 꼭 그와 같지만은 않다는 것을 잊지 않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가녀린 몸매, 예쁜 미소 예쁜 옷으로 무장한 연서의 뒤에는 고객과 현장을 오가며 만족스러운 작업을 위해 치열한 하루를 사는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할 듯.
 
 

‘인어아가씨'나 ‘내 이름은 김 삼순 '같은 드라마가 나왔을 때 , ‘순풍산부인과'나 ‘안녕 , 프란체스카' 같은 시트콤이 등장했을 때 , 방송작가의 인기는 하늘을 찌릅니다 . 붕어빵 찍어내듯 똑같은 일상에 활력을 던져주는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도일 수도 있고 “나도 저것쯤 만들 수 있는데 ... ”라는 본인의 잠재력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것일 수도 있겠지요 . 어쨌든 우리가 TV,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드는 작가들을 향해 안테나를 거두지 않을 것임은 분명합니다 . 그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요 ?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인기 직종으로 자리 매김한 지는 퍽 오래되었습니다 .
‘여성들에게 좋은 직업'이라는 인식 덕에 글 솜씨 있고 끼 있는 여학생들은 한번쯤 생각해봤을 법한 직업인데요 . 방송작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단어 앞머리에 붙은 ‘방송'을 세분화해줄 필요가 있어요 .
기본적으로 방송은 TV 와 라디오로 나눠볼 수 있지요 . 최근에는 DMB 며 케이블 TV 며 뉴미디어가 하도 많이 등장해서 방송의 영역이 훨씬 넓어지기는 했지만요 . 그 중에서도 TV 는 드라마와 비드라마로 나눠볼 수 있어요 .
드라마는 우리에게 익숙한 드라마를 가리키고요 . 비드라마는 드라마가 아닌 모든 것 - 토크쇼 , 다큐멘터리 , 버라이어티쇼 , 시트콤 등등 - 을 총칭해요 .
근데 왜 하필 드라마와 비드라마로 구분하는 걸까요 ?
드라마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라면 김수현 씨나 노희경 씨 같은 작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거예요 . 우리나라 드라마 창작 시스템은 미국과 달리 1 인 창작 체제이기 때문에 한 편의 드라마는 한 명의 작가로 말해진다고 볼 수 있어요 . 따라서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지면 그 드라마의 작가는 높은 명성과 수입을 얻게 됩니다 . 비드라마는 달라요 . 비드라마 분야는 대부분 참여하여 일하는 사람이 여럿인 공동 제작 시스템이고요 . 드라마 작가처럼 대본 쓰기에만 집중한다기보다는 PD 및 스탭과 함께 초반 기획에서부터 후반작업까지를 총체적으로 아우르게 되지요 . 흔히 구성작가라고 불리는 까닭도 사정이 이렇기 때문입니다 . 라디오의 작가들 역시 TV 구성 작가와 비슷한 일을 하게 됩니다 .

 
 

TV 와 라디오를 나누어 방송작가의 업무를 살펴볼게요 . 우선 TV, 그 중에서도 구성작가들은 일종의 직급 개념을 갖고 있어요 .
처음 일을 시작하는 작가들은 자료조사원 , 보조작가 , 스크립터로 불리며 말단 일을 담당합니다 . 이후 서브 작가가 되요 , 서브 작가는 말 그대로 서브 (sub), 메인 작가를 보조하는 역할입니다 . 각각의 코너를 맡아 진행하지요 . 가장 높은 사람이 메인 작가입니다 . 메인 작가는 그 프로그램의 총괄자예요 .
작가들을 관리하고 전체적인 일정을 조율합니다 . 프로그램의 기획에서부터 모든 작업을 PD 와 조율하지요 . 다큐멘터리의 경우 꼭지를 나눌 수 없어 서브 작가를 두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

라디오 역시 똑같이 나누어지지만 그 역할이 조금씩 달라요 . 우선 막내 작가들은 사연 정리나 전화 연결 , 일반 출연자 섭외 등을 맡게 되고요 . 운이 좋으면 주말 코너 하나 둘을 맡아 실력을 내보일 수 있게 되지요 . 서브 작가가 되면 코너를 맡게 됩니다 . 요일별 코너를 담당하거나 매일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특정 코너를 담당합니다 . 메인 작가는 오프닝을 맡고요 . 클로징의 경우는 프로그램마다 다르다고 합니다 . 라디오용 드라마나 꽁트는 거의 메인 몫이고요 . 기타 전반적인 총괄 역시 메인 작가가 하게 되지요 .

라디오에서는 개편하기 한 달 전부터 다음 개편에 들어갈 프로그램의 틀을 짜는 회의를 해요 . 미리부터 준비해두는 거죠 . 어떤 코너를 할지 , 이야기하는 톤이나 방향은 어떤 식으로 갈지 , 각 코너의 길이는 어떠할지를 PD, 작가들이 모여 상의하게 됩니다 . 전반적인 내용이 결정되면 작가는 글을 쓰기 시작하고 PD 와 진행자는 프로그램 녹음에 들어갑니다 .

TV 의 버라이어티쇼 프로그램의 경우도 틀 짜는 회의를 가장 먼저 하고요 . 이후 코너에 성격을 부여하는 회의를 하면서 촬영이 필요한 장면이 있다면 야외 촬영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 작가가 촬영구성안까지 작성하는 경우가 많고요 . PD 가 촬영을 나간 동안 작가들이 각 코너에서 어떤 아이템을 채택할 지를 정해서 섭외에 들어가죠 . 섭외는 사람이든 장소든 무엇이든 그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 가능한 한 자세하게 아이템 내용에 대해 기초 취재해두는 것도 필수입니다 . 촬영팀이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면 테입을 훑는 일 역시 작가의 몫입니다 . 흔히 이러한 ‘프리뷰'를 위해 고용하는 인력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 프리뷰를 마치면 작가는 내용을 인식한 상태에서 글을 쓰고 PD 는 편집을 시작합니다 . 어떤 프로그램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고정 프로그램의 경우 1 주일 정도 제작 기간이 걸리고요 , 특집 다큐멘터리나 행사의 경우는 짧게는 1 달에서 길게는 1 년도 넘게 준비하기도 합니다 .  

 
 

2004 국정감사에서 이경숙 국회의원이 다음과 같이 소리높인 바 있어요 . “방송제작 참여인력 중 유일하게 여성지배적 직종인 방송작가가 노동권 사각지대에 있어 일을 계속 해나갈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고요 . 경력 5 년차 방송작가도 근로 계약 기간이 정해져있지 않고 4 대 보험이나 식비 , 퇴직금 , 월차수당 등은 아예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래요 . 실제 방송작가들은 6 개월에 한번씩 돌아오는 개편 즈음엔 긴장할 수밖에 없답니다 . 하루 아침에 일자리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

이런 상황을 미루어볼 때 ‘하기 나름'이란 말은 방송작가를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여요 . 자기의 능력에 따라 ,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프로그램이나 연봉이 결정되니까요 . 깜짝 놀라셨나요 ? 드라마 작가들의 역대 봉급을 떠올리신 건가요 ? 하지만 대다수의 작가들은 높은 수익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합니다 . 1~2 년차의 경우 120 만원이 조금 넘는 액수의 임금을 받게 되고요 . 8 년차부터 13 년차 정도의 중견 작가들이 한 달에 약 240 만 ~350 만원 정도의 임금을 받습니다 . 액수만 놓고 보면 다른 직업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하루 13 시간 이상 근무 , 밤샘작업까지 많은 것을 감안하면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 더군다나 일반 사무직처럼 연차 개념이 없어 경력이 높아진다고 해서 기하급수적으로 연봉이 오르지 않아요 . 그래서 나이가 들면 그만두는 사람들도 꽤 되는 편입니다 . 특히 TV 의 경우 10 년 채우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 직접 제작사를 차리거나 프로덕션으로 자리를 옮겨 ‘본부장'등의 직함을 달고 프로그램의 질을 관리해주는 일 혹은 홍보대행사 등으로 진로를 찾는 것이죠 .

그러나 보고에 따르면 방송작가들의 직업 만족도는 비교적 높은 편이에요 . 적성에 맞아야만 할 수 있는 직업이란 이야기도 있고요 . 무슨 일이든 그렇겠지만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 그리고 최선을 다한다면 인정받으면서 일할 수 있겠죠 ?

 
 

방송작가가 될 수 있는 길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어요 .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은 각 방송사의 아카데미나 방송작가협회의 연수과정을 밟는 것입니다 .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나서 혹은 학기 도중에라도 방송사에서 나와 직접 사람을 뽑아가기도 하지만요 . 물론 아카데미를 수료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에요 . 하지만 네트워크나 구직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체계적으로 전문 실무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죠 .



두 번째 길은 인맥이이에요 . ‘인맥도 능력'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어려운 일이겠죠 . 인맥이 있다고 해도 실력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란 사실을 기억하세요 .

세 번째 길은 스스로 찾는 방법이에요 . 자신이 만드는 데 참여하고 싶은 기존의 프로그램이 있다면 열심히 듣고 보세요 . 그렇게 모니터한 내용을 가상의 코너에 대한 기획안과 함께 프로그램측으로 보내보세요 . 의외로 방송작가집단 역시 좋은 작가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답니다 .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다면 1 년에 한번 있는 방송사별 드라마 작품 공모에 도전해보는 것이 좋고요 . 구인구직 사이트를 두드려보는 것도 길이 될 수 있어요 .

방송작가가 되는 데 있어서 필요한 능력은 단연 글쓰기겠죠 . 하지만 위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방송작가가 글만 쓰는 직업은 절대 아니랍니다 . ‘글을 쓰고 싶다면 순수문학을 하라'고 말하는 작가들의 말을 그냥 흘려 넘겨서는 안되겠죠 ? 체력도 중요해요 . 밤새는 날이 많고 PD, 스탭들과 함께 발품 팔아야 하며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많은 편이거든요 . 우리가 하하호호 웃으며 보는 시트콤 ! 맛깔나는 대사들과 톡톡 튀는 어록으로 가득한 드라마 ! 이런 프로그램의 뒤에는 유독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작가들이 많다고 해요 . 김수현 작가 역시 ‘ TV 는 심심할 때 보는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는데요 . 사실 TV 의 기능 중 오락 , 기분전환의 기능을 빼놓고는 이야기될 수 없겠죠 . 휴식을 위해 보는 TV 에서 줄곧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내용만을 다룬다면 누가 TV 를 보고 싶겠어요 ? 톡톡 튀는 아이디어 ,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 , 모두 방송작가의 기본입니다 .

 
 
TV 다큐멘터리 및 교양 영역에서 10년간 활발하게 활동해 오셨고 현재는 KBS 라디오의 <심야의 클래식> 방송을 맡고 계신 박나경 방송작가님과 함께 방송작가에 대한 생생한 수다를 나누어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바쁜 와중에 나오신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어요. 지금 하고 계신 일에 대해 소개 좀 부탁드려요.
네, 저는 KBS 1FM에서 <심야의 클래식>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어요. KBS 1FM 방송만의 특징인 것 같은데 생방송으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제가 꼭 현장에 있어야 될 필요는 없어요. 원고 보내고 1주일에 2~3번 정도만 방송국에 나가고 PD와 조율하고 하죠. 오늘은 일이 다 끝났어요^^
 
TV에서도 일해보신 적이 있고 라디오에서 일해보신 적도 있다고 들었어요. 일하실 때 둘 사이에 차이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저는 TV로 시작해서 라디오로 옮겨온 케이스인데요. TV는 같이 일하는 스탭들과 부딪히는 부분이 라디오보다 많은 것 같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프로듀서, 카메라맨 등등 많은 사람들과 수시로, 순간순간 협업해야 하니까요. 라디오의 경우 틀만 갖춰지면 각자 맡은 바대로 일하면 되는 데 말이죠.
 
장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PD들만 해도 월급쟁이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요즘은 들어요. 윗 사람들 있으니까 조직의 구성에 따라 원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맡아야 될 때도 생기잖아요. 작가인 저는 제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취사 선택해서 맡을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인 것 같아요. 다른 프로그램을 맡을 때 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해 가늘게나마 계속 공부할 수 있고 사람들 많이 만나고... 사회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래요.
 
보람 및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세상일에 관심을 갖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관심이 있다면 다양한 경험도 해보고 싶겠죠.
꼭 내가 직접 뛰어들지 않는다고 해도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거든요.
요즘 영상세대들은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와 세상과 부딪혀보는 방법을 많이 택하는 것 같은데요. 저는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기술은 일하면서도 충분히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니까요. 우선은 학생이니까 질적, 사회적인 자기 기반을 많이 쌓는 것이 중요해요.
책을 많이 읽고, 낯선 사람이나 사안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갖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SBS 방송아카데미, www.sbsac.co.kr
MBC 아카데미, www.mbcac.com
KBS 방송아카데미, www.kbsacademy.co.kr
SBS 구성작가협의회, www.sbswriter.com
MBC 구성작가협의회, www.mbcwriter.com
KBS 구성작가협의회, www.kbswriter.com
한국 방송아카데미 www.kbatv.co.kr
한국영상방송아카데미 www.kacademy.co.kr
한국방송작가협회 www.ktrwa.or.kr

김미라 , 고혜림 , < 방송구성작가 입문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