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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기억 속에 남겨진 몽골


기억 속에 남겨진 몽골은 밝은 회색이다. 그 회색빛은 아직은 밝게 빛나지 못한 몽골의 꿈이 현실과 뒤섞인 빛깔이기도 하다. 신자본주의 라는 거대한 세계적 물결에 합류하고 있는 몽골, 그리고 그 안에서 새롭게 몽골의 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는 거대한 흐름을 감지하면서 7일간의 몽골을 뒤로하고 떠난다.



어느 곳이든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 그리고 저마다 다른 환경과 차이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와 삶의 방식을 만들어 가는 것, 이러한 것들이 문화적 차별로 보여 지는 것이 아니라 차이로 인식되는 경험, 나는 이것을 눈으로 보며 체감하고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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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승 탑에서 바라본 울란바트르



이와 관련해서, 잊혀지지 않는 곳이 있다면 도시 한 외곽에 위치한 나랑톨자흐 시장, 이 곳의 이미지는 너무나 강하게 남아있다. 휴일이면 평균 10만 명 이상이 이 시장을 이용한다는 내용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보면, 나랑톨자흐 시장은 몽골의 삶의 방식이나 문화를 총체적으로 담아 놓은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몽골 사회의 바닥경제를 짐작하고 몽골 사람들의 취향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 바로 나랑톨자흐 시장이 그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몽골 특유의 한파가 몰아치는 대도 그곳은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하다. 사람들이 가장 치열하게 살아가는 곳, 나랑톨자흐 시장 그 곳에서 또 다른 몽골의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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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톨자흐 시장,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300원정도의 입장료가 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몽골의 이미지는 거칠면서 넓고 부드럽다. 드넓은 초원 속에 파묻혀 있는 넓은 힘, 도심 속에서 꿈틀거리는 거칠고 부드러운 힘이 내가 본 몽골의 두 표정이다.

나는 몽골이 이러한 두 표정을 지키면서 자신들의 독특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를 기원해본다.

9. 귀환한 외국인 노동자와의 만남


출발 하루를 앞두고, 한국에서 귀환한 외국인 노동자 한 분을 만나기로 하였다. 이미, 몽골에 오기 전에 약속된 것이기도 하고, 다시 돌아온 그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궁금한 터였다. 대부분 귀환한 이주 노동자들이 본국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고 일을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내심 걱정이 들기도 했다.



호텔 로비에서 아침 10시에 만나기로 한 사람은 호기씨.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여름 이었다. 임금을 받지 못하여 센터로 찾아온 그는 제법 한국말을 할줄 알았고 생김새도 마치 한국 사람과 너무나 흡사했다. 말을 하지 않고 있으면 영락없이 한국인으로 착각할 정도이다. 그 이후로 그는 다른 몽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었고, 어떤 문제가 있으면 센터로 그들과 함께 찾아오곤 했다.



호기씨를 만나면, 어기씨 가족을 만날 참이었다. 몽골에 오기 전 어기씨는 자신의 집에 꼭 들러달라는 부탁을 나에게 했다. 특별한 부탁을 한 것은 아니지만, 가족에 대한 이러저러한 안부와 형편을 눈으로 보고 와달라는 듯 했다. 호기씨가 어기씨 아버님과 미리 통화를 했는데, 막상 어기씨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문이 닫혀있었다. 집안에는 어기씨의 어린 아이만이 홀로 집을 지키고 있었다. 문을 밖에서 잠그고 나갔기 때문에 안에서는 열수 없다는 얘기를 아이가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호기씨와 나는 밖으로 나와서 베란다로 나온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아이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고, 어쩔 수 없이 호기씨와 나는 그의 형님 댁으로 향했다. 전할 물건도 있었기에 어기씨의 가족을 만나야만 했다. 형님 댁도 마찬가지로 사는 형편이 좋아보지 않았다. 도심 변두리에 위치하고 있는 아파트는 너무 오래되어서 마치 슬럼가에 위치한 낡은 아파트와 다르지 않게 보였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어기씨의 한국생활에 대한 안부를 전해주었다. 마침, 일을 하러 나가는 터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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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빈부격차를 엿볼 수 있는 아파트



나를 만난 호기씨는 인테리어 일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몽골에서 가장 돈벌이가 되는 것 중 하나가 건축인데 건축과 관련된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그가 귀환한지가 수개월이 지났는데도 막상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다소 걱정이 들었다. 호기씨에게 “한국에서 돌아온 친구들이 본국에서 일자리를 잡고 일을 하고 있는가?”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국에서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임금차가 5배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이주 노동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들은 한국으로 다시 와서 일을 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노동의 가치가 다르다는 것을 맛본 그들에게 자국에서 일자리를 잡고 일하기란 쉬운 결정이 아니다. 호기씨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일을 했으면 하는 말을 언 듯 내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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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기씨의 형님과 동생


호기씨가 개인적인 일로 일정보다 일찍 헤어져야 했다. 그의 얼굴에는 미안한 마음이 역력하다. 아무튼, 귀환한 외국인 노동자 친구를 몽골에서 만난 것만으로도, 그리고 그들에 대한 대략적인 분위기를 현지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 만 으로도 소중한 경험을 한 듯 하다.

7. 에르덴죠 사원과 간단사원


하르호름의 아침은 매섭게 부는 바람과 함께 시작되었다. 아침식사는 서양식과 몽골식이 뒤섞인 간단한 음식으로 제공되었다. 우리 일행은 몽골 최초의 불교사원이라 불리 우는 에르덴조 사원으로 향하였다. 켐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 초원위에 세워진 사원은 너무나 이색적이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너른 초원만이 펼쳐져 있는 곳에. 저런 사원을 짓기 위해서 어디서, 어떻게 건축자재들이 조달되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에르덴조 사원은 무엇보다, 사원에 들어서기 전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원을 바라보면 마치 작은 성채를 연상케 한다. 외부와 구별을 하기 위해 세워진 높은 담장들 사이사이에는 108개의 불탑이 담 사이를 이어주고 있다. 흰색을 띈 모습은 짙푸른 하늘과 바로 이어지는 듯 하다. 청명한 하늘아래 바라다 보이는 에르덴조 사원의 자태는 그대로 뛰어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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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덴조 사원, 108개의 불탑



안으로 들어서자, 한국불교사원에서 볼 수 있는 대웅전이라 할 만한 사원이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양편으로 두개의 사원이 중앙 사원을 보좌해주고 있다. 우리 일행은 그 곳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불교적 예술품들과 불상들은 여는 불상처럼 위엄을 자랑하고 있다.



에르덴조 사원은 세계 유네스코에 지정된 세계적인 사원에 속한다. 그런데 그 이름에 걸맞게 대접을 잘 못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정리되지 않은 주변 환경과 남루하게 보일정도의 내부 모습들은 과연 이것이 세계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1586년경에 세워진 에르덴조 사원이 당시의 라마교 위엄을 나타내는 상징적 메카였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거센 풍파와 세속의 때에 그대로 노출된 이 사원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전해지고 있는 것 같다. 한 적한 사원을 거닐고 있는 스님들의 표정도 옛 모습 그대로인 듯 역사의 흔적이 그들의 표정 속에 그대로 담겨져 있는 듯 하다. 에르덴조 사원의 이미지는 나에게 소박, 섬세, 그리고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표정들이다.

반면, 울라바트르 도심 속에 자리하고 있는 간단사원은 에르덴조의 모습과는 또 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다는 것. 그 사람들은 무엇인가 자신들의 소원을 빌기 위해 그 사원을 열심히 찾아와 기도를 하는데, 그 기도하는 방식이 여는 방식과는 다르다. 라마교의 특징이기도 하겠지만, 아래위로 고정된 원통을 한쪽 방향으로 돌리면서 기도를 하는 모습이다. 그 원통에는 라마교의 경전 구절이 새겨져 있는데, 이러한 풍경은 에르덴조 사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이용해서 무엇을 빌고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간단사원의 특색 중에 하나는 불상이 입상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대웅전이라고 할 만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불상은 좌불이 아니고, 이십 미터가 넘어 보이는 거대한 입상으로 우뚝 서 있다. 조금은 어두 껌껌한 중앙 자리에 홀로 서 있는 모습이 다소 낯설고 어색하게 보인다.  간단사원의 불상은 왠지 집속에 갇혀있는 듯 애처롭게 보일 정도다. 이것은 나의 편견이기도 하겠지만, 에르덴조의 좌상과 간단사원의 입상은 그 처지와 표정이 사뭇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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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 둘려 쌓인 간단사원


초원의 한 복판에 있는 에르덴조 사원이 여유와 느긋함, 경건함이 엿보인다면, 도심 속에 있는 간단사원은 분주함, 사람들의 때 묻은 욕구들이 불상 앞에 모아지는 듯 하다. 어느 나라든 도심 속에 위치한 종교적 건물들은 이러한 모습이 역력해 보인다. 늘 그래왔다던 것처럼, 종교의 순수성은 인간의 탐욕 앞에 얼룩을 남기면서 혼탁해지고 세속화 된다. 간단사원의 분주함과 세속적 냄새는 나로 하여금 종교가 잘못된 세속화의 발걸음을 빌어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보게 한다.

8. 문화의 차이, 빠스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는 단어 빠스, 잊고 싶어도 그 이미지가 너무나 강렬하고 의미 깊은 말이라서 나는 이 말을 아직도 품고(?) 있다.



하르호름에서 이틀째, 우리 일행은 몽골의 전통 유목생활을 이어가는 한 가정을 찾아가기로 했다. 이미, 우리를 안내할 몽골 아주머니가 오셨고, 그 분과 함께 그곳으로 향하였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특별히 없는 듯 보였다. 그저 초원을 달리면서 어디쯤 있을까. 대략적으로 가늠해가며 찾아가는 듯 하다. 자동차 길이 거칠게 놓여있지만, 운전하시는 야요씨는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다. 한 참을 길 없는 길을 달리다가 마침내 한 유목 가정을 발견하였다. 바로 우리는 저곳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드넓은 초원 한 복판에 고독하게 서 있는 게르, 그리고 그 곳 사람들, 몽골을 직접적으로 느껴 볼 수 있는 유일한 곳.



날씨는 제법 싸늘하고, 하늘은 잿빛 얼굴로 찡그리고 있다. 맨 손을 내놓고 다니기에는 너무나 바람이 거세고 차다. 그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양떼들은 마른 풀을 뜯고 있다. 게르 안에 들어서자 이색적인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유주를 담아놓은 통들, 그리고 나담 축제에서 우승한 매달과 사진들이 멋들어지게 중앙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갖가지 소박하게 정리해놓은 살림살이들이 자리에 맞게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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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유주는 나의 더부룩한 속을 풀어주었다.



우리들을 친절하게 맞이해준 주인집 아주머니는 얼굴이 둥근데다가 양쪽 볼이 불그스름하게 올라있다. 전형적인 몽골 유목민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아저씨들도 같은 모습이다. 함께 모여서 사진을 찍을 때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일행과 어울린다. 그들은 그곳에서 몇 년 씩 살아간다고 한다. 가축 떼들이 다른 곳으로 움직일 때면 그들도 함께 새로운 초원으로 떠난다고 한다. 그들의 삶의 중심에는 가축이 있었고 가축의 자연스런 흐름과 더불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게르를 중심으로 빠스가 지천에 널려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아무렇지 않게 다가온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손으로 만지기도 하고, 중요한 재료로도 쓰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게르 뒤편에는 마른 빠스가 가득 쌓여있는데, 올 겨울을 나기에는 충분 하리 만큼 모아져 있다.



빠스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똥’이란다. 그런데 그 똥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무 쓸데  없는 똥이 아니라 겨울을 나려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연료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빠스는 가축 떼들이 놓은 마른 배설물을 일컫는다. 잘 마른 배설물은 게르 중앙 안에 설치된 난로 안에서 훈훈한 열을 내면서 추위를 몰아내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난로 위에는 유목민들이 먹을 음식을 끓여 먹을 수 있도록 하니, 유목민들에게 빠스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생활의 재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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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나기 위해 모아놓은 연료, 빠스




추운겨울을 나게 하는 빠스는 몽골 유목민들에게는 일반적이지만, 이방인들에게는 그들의 생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적 코드임에 틀림없다. 똥을 그렇게 소중하게 다루는 사람들, 현대 문명에서 찾아보기 드문 이색적인 풍경이 아닌가.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다루지 않고 그에 걸 맞는 자리와 역할을 찾아 주는 유목민들, 그들이 초원에서 살아가기 위한 삶의 지혜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대접할 줄 아는 소박한 그들의 태도이다. 아마도, 올 겨울도 그들은 빠스로 추운 겨울을 훈훈하게 지낼 것이다. 

5. 문명을 나누는 전신주와 화물차

울란바트르에서 하르호름으로 가는 긴 여정 속에서 함께 따라다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전신주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이기는 하지만, 도시에서 보는 전신주와 대 초원길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전신주는 남다르게 보인다. 전신주의 생김새가 나의 눈을 사로잡는다. 초원 위에 세워진 전신주는 나무통을 이용해서 만든 것인데, 바로 땅바닥과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멘트 기둥을 땅에 먼저 세우고 그 기둥에 튼튼하게 쇠줄로 묶은 형태이다. 왜 그렇게 설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전신주 나무통을 그대로 땅에 세우면 짐승들이 갉아 먹을까봐 저런 모양으로 세우는 것’ 일거라는 얄팍한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외형적으로 보면, 몽골 초원의 전신주는 보통 전신주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몽골 초원에서 만나게 된 전신주는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대초원에 검은 나무통이 전깃줄을 매달고 즐비하게 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기도 하지만, 저것을 통해서 도시의 문명이 그 먼 시골 마을 까지 전달된다는 생각이 들자, 인간이 갖고 있는 문명의 욕구라는 것이 얼마나 집요하게 작용하는지 느끼도록 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초원위에 세워진 전신주는 도시에서 본 전신주와는 다르게 소박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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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에너지를 나르는 전신주



문화와 문명이 전달되는 소통으로써의 매체는 전신주뿐만이 아니다. 어디선가 낡은 트럭을 이따금씩 보게 되는데, 우리 일행을 가이드 하는 빌렉씨의 말에 의하면, ‘러시아제 트럭’이라고 한다. 그 트럭을 통해서도 도시와 시골은 서로의 문화와 문명을 소통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수단임에 틀림없다.



울란바트르에서 하르호름으로 가는 길에 차량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주 가끔씩 한두 대씩 지나가는 정도인데, 그 중 러시아제 트럭은 독특한 이미지와 의미를 주면서 내 기억에서 살아난다.



6. 음식, 문화코드의 바로미터 

오전 10시30분경에 울란바트르를 떠난 우리 일행은 무려 8시간이 넘게 달려와서야 하르호름에 도착하였다. 하르호름의 정취는 고즈넉하다. 이미 밤이 내려앉은 마을은 행인들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마을은 주로 나무로 만든 판자집이 제법 질서를 지키면서 자리하고 있고, 골목길은 널찍하고 시원스럽다. 13세기 이곳이 몽골제국의 수도라기에는 너무나 초라하게 보인다. 칭키스칸의 옛 정취와 기상은 지난 역사 속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것일까.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게르 캠프장에서 우리 일행은 짐을 풀었다. 이곳에서 우리일행은 이틀 밤을 지내고 떠날 참이다. 장시간 여행을 한터라 피곤도 하지만, 식욕은 당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후에 준비될 몽골식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 저녁 메뉴는 허르헉. 몽골에 오기 전부터 음식에 대한 걱정을 내심하고 이었다. 입맛이 맞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개인적으로 준비한 것이 고추장이다.



나라별로 음식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리고 맛과 향 또한 그러하다. 그마만큼 음식은 그 나라의 특성을 담아내는 문화적 코드라고 해도 좋을 듯싶다.  어떤 음식을 먹는 가에 따라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도 그것을 따라가게 마련이고, 일반 가정집에서도 먹는 음식에 따라 집안 냄새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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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전통음식 허르헉


2박을 묵게 될 게르에 처음 들어서자 음식냄새가 그대로 코 속으로 들어왔다. 우유냄새와 고기 냄새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냄새 같은데, 걱정해왔던 거와는 달리 큰 문제는 없었다. 내가 생각하기론 겨울 난방을 위해 피워놓은 장작 난로의 냄새가 게르안에 밴 음식냄새를 다소 가시게 하는 듯 하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한 곳에 모였다. 마침내 준비된 음식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보기만 해도 푸짐해 보인다. 양고기로 만든 음식인데, 숯불에 구은 듯한 훈제 냄새가 약간씩 나면서 양고기 특유의 냄새는 거의 나지 않는다. 허르헉은 몽골전통음식인데, 일반 사람들이 자주 먹는 음식은 아니라고 벨렉씨가 친절하게 이야기 해준다. 그리고 허르헉 음식이 나오면서 손바닥만한 뜨끈뜨끈한 검은 돌 몇 개가 함께 등장했다. 그 돌은 허르헉을 만들면서 불속에 넣었다가 꺼낸 것이라고 하는데, 기름이 반질반질 묻어 있는 듯 하면서도 냄새는 나지 않는다. 벨렉씨의 말에 의하면 그 돌의 온기가 사람에게 너무 좋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자 우리 모두는 열심히 그 돌을 손바닥에 넣고 비벼댄다. 그리고 허르헉, 양고기를 손으로 잡고 맛나게 뜯어 먹는다. 그날 밤 우리 모두는 허르헉을 뱃속에 넣고 몽골초원에서의 첫 밤을 무사히 지냈다.

. 몽골, 낯선 곳으로의 출발

인천공항에서 몽골항공기의 정비관계로 예정된 시간보다 출발이 지연되었다. 내심 예상 되었던 것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밤은 점점 깊어져가고 우리 일행은 약간의 긴장과 초조함을 애써 외면하려고 했지만 표정은 굳어져갔다. 그 막연히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지나자, 비행기는 몽골, 낯선 곳으로 향하였다.



우리 일행을 처음으로 맞이한 것은 몽골의 차가운 겨울바람이었지만, 3시간 넘게 우리를 기다리며 맞이해준 빌렉씨와 아요씨의 넉넉한 마음만은 따스하게 다가왔다. 한 시간 가량 차를 타고 지나서야 몽골의 수도 울란바트르로 진입하였다. 도시는 깊은 잠을 자고 있었고 간간히 보이는 불빛이 이곳이 도심임을 알려 주었다. 이른 새벽, 1시가 넘어서야 호텔에 도착한 우리 일행을 맞이한 것은 그리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숨을 쉬기 힘들 정도의 매연이었다. 이 매연의 정체는 무엇일까? 가벼운 의문을 품고, 아침부터 시작되는 일주간의 낯선 몽골여행을 기대하며 몽골의 첫 밤을 보냈다.



2. 하르호름, 그 길을 가기 전에

울란바트르 아침은 스산해 보인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은 얼굴을 옷깃 속으로 넣은 채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인다. 거리를 활보하는 미니버스 봉고는 어딘가 어색한 표정으로 가득채운 사람들을 태우고 목적지로 향한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도시 거리를 누비고 다녀서 그런지 사람들, 그리고 낯설게 앉아있는 건물들, 자동차들 모두가 겨울을 겸손히 대하는 듯 하다.



우리 일행은 하르호름으로 출발하기 전에 시내에 있는 슈퍼에 들러 먹을 간식을 사가지고 출발하기로 했다. 슈퍼 앞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제법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공중전화인데, 부스 안에 전화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일반전화기를 들고 있는 풍경 이었다. 전화선이 없는 무선 전화기. 몽골 사람들은 전화요금을 주고 자연스럽게 전화선 없는 전화기를 이용하고 있었다. 일명, 몽골용 공중무선전화기 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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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시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공중전화기

 울란바트르 시내를 서서히 빠져나가면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도시 경계지점에 우뚝 서 있는  화력발전소였다.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도시를 덥고 있었다. 그 희뿌연 연기가 울란바트르의 공기를 오염시키는 주범이었던 것이다. 지난밤에 케케한 냄새를 냈던 주범이기도하다. 울란바트르 사람들은 그것을 감내하면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너무나 당연시 여기며 살아가는 것일까? 어떤 특별한 대책이나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초기 산업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일이기도 하다. 이미 선진국은 그러한 경험을 거쳐 온 셈이니 당연히 여길 만도 하다. 몽골의 문명이기를 움직이게 하는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분명한데, 어쩐지 씁쓸한 생각이 스쳐간다.



몽골도 여는 나라와 다르지 않게 세계화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움직임을 시대의 흐름이라고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현실이 그리 녹녹치 않다. 거대한 자본의 흐름이 몽골의 순수한 자연을 훼손하고, 몽골 사회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으니, 그리 반갑게 맞이할 일만은 아니다. 정작 그들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드는 의문과 걱정이 앞서게 된다. 아니면 알면서도 경제적인 가난을 넘어서기 위해 약간의 고통을 겪고 감내하는 것일까. 다만, 이러한 판단은 그들 스스로가 내릴 일이지만, 못내 드는 나의 생각은 안타깝게만 다가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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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문명의 원동력 화력발전소



그래서 그런 것일까. 도시는 화려하지만 그 속에 움직이는 흐름은 우울하기만 하다. 도시의 생리를 경험하고 있는 수많은 이들이 그 우울증을 경험하면서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으니, 소비문화의 현란한 유혹은 우리 모두를 깊은 늪 속으로 유인한다. 결국, 이러한 소비문화를 빠르게 가동되도록 하는 것이 산업구조인데, 몽골의 울란바트르도 그 길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초기 단계에 있지만, 울란바트르는 거리에 여기저기 서 있는 허름한 건물들처럼 위태위태해 보인다. 다만, 나는 이것이 가벼운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3. 드넓은 초원으로 접어들다



우리 일행은 울란바트르를 뒤로 하고 하르호름으로 출발했다. 하르호름을 가는 길에 대하여 들은 것은 길이 험해서 장시간 동안 가기가 무척이나 고생스럽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 정보는 너무나 잘못된 정보였다. 초원을 가로지르며 길게 나 있는 길은 아스팔트가 깔려 있었고, 다만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것이 흠이었지만, 차량으로 장시간 동안 가더라도 별 어려움 없는 길이다.



하르호름으로 가는 길로 점점 들어설수록 날씨는 가을의 상큼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울란바트르 도시에서 느끼는 회색 빛 하늘과는 너무나 달라 보인다. 하늘은 짙푸르렀고 땅을 덮은 초원은 황금들판처럼 반짝인다. 나지막한 잡풀들은 억새지 않았고 부드러운 솜털처럼 낮게 앉아 바람을 즐기고 있다. 어떻게 한 나라 안에 이렇게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할 정도로 울란바트르의 도시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 몽골의 멋은 바로 이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 이유도 바로 이 맛을 보려고 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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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몽골 초원은 황금비단을 깔아 놓은 듯 하다.

우리가 몽골로 출발하기 전에 들었던 말들이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몽골의 겨울은 너무나 춥기 때문에 볼 것이 없다’느니, ‘여름에 가야 몽골의 제 멋을 볼 수 있다’느니... 이러한 말들이 얼마나 맹랑한 소리인지 드넓은 대초원을 보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 다만, 우리가 느끼는 것은 초원의 색깔의 차이일 뿐. 겨울에는 누런 황금색의 중후한 색조를, 여름에는 녹색의 생기발랄한 색조를. 계절에 따라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일 뿐 다른 것은 없다. 이것이 몽골 대초원이 주는 멋이기도 하다.



4. 고독한 초원의 지킴이

초원을 가로지르는 길을 한 참 동안 달리다보면 시간의 흐름이나 개념이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단지, 초원에 내리쬐는 햇빛의 표정을 보고 짐작할 뿐이다. 광활한 초원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유로운지 모른다. 그곳에서 유유히 거닐며 풀을 뜯고 있는 양, 소, 말, 낙타의 무리를 보면 시간은 한갓 인간이 만들어 놓은 족쇄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가축 떼에게는 땅의 경계가 없다. 주인 없이도 그들 나름대로의 질서와 흐름을 알고 있다. 흐름 속에 자신들을 맞기며 시간으로부터 탈출한 것이다. 길옆으로 보이는 양, 말, 낙타, 소 떼들이 초원의 자유로움을 유일하게 맛보며 살아가는 듯 하다.



지루할 정도로 먼 길을 가다보면, 만나는 또 한 친구가 있다. 간간이 나타나는 길옆의 마을들은 마을이라기 하기에는 너무나 허름하면서도 소박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 소박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고독하면서도 의젓한 개를 만나게 된다. 여느 개들과는 다르게 몽골의 개는 낯선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하되 소란을 떨지 않는다. 우리 일행이 잠시 쉬기 위해 멈췄던 그곳에서 우리를 맞이한 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그 개들이었다.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참으로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점잖고 의연하게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경박하게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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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원의 개는 낯선 사람을 낯설게 맞이하지 않는다.


몽골의 초원을 유지하고 지키는 것은 오히려 사람보다는 그 곳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양, 소, 낙타, 말, 개 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니, 더 분명히 말하자면, 그들이 몽골의 대초원을 지키고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게한 주인공들이 아닌가. 초원길을 달리다 보면,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가축 떼가 더욱 친숙하게 다가온다. 이것 또한 몽골의 초원이 품고 있는 멋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조금은 별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장시간을 가다보면 인간의 생리적인 현상 앞에 직면하게 된다. 길가와는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대소변을 해결할 수 있는 허름한 화장실 비슷한 것을 만들어 놓았다. 주인도 없고,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익명의 화장실. 우리 일행은 문명인답게(?) 화장실을 찾아갔다. 마음 같아서는 대초원에 그대로 방료해도 되는 것을... 그래도 문화인(?)이라는 코드를 품고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그러지 못한 것이다. 화장실의 구조는 아주 간단했다. 땅을 깊게 파고 널빤지와 벽을 만들어 안을 보지 못하게 하고, 그 위로 지붕을 비스듬히 올려놓았다. 그리고 사람이 올라서서 볼일을 볼 수 있도록 널빤지를 살짝 올려놓았다. 잘못하면, 볼일을 보다가 널빤지가 부러지는 경우에는 그대로 떨어지는 구조이다. 혹이라도 이러한 초절전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급하다고 덥석 들어가지 말고 한 번쯤 살펴볼 일이다.

제5일 : 아름다운 테를지, 준비된 실장님!(2005. 11. 4. 금)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테를지를 가는 날이다. 사진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을 많이 보았던 터라 과연 어떨지 기대가 되었다. 계절이 겨울이니 사진에서 보았던 모습들과는 많이 다르겠지 하면서도 어서 빨리 가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라호름에 갈 때 울란바타르를 벗어나자마자 마을이 드물어지고 평원이 곧 나타났던 것과는 달리 테를지 입구까지는 중간중간 마을이 꽤 보였다. 게르에다 판자 울타리를 한 집들로 이루어진 마을들이다. 울란바타르에서 30~40분 정도 걸린다는데 시내에 가까워서 울란바타르로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가면서 기사 아저씨와 빌렉씨는 무엇이든 알려주려고 애를 쓰신다. 군대가 있던 막사, 석탄광산, 공동묘지 등 그냥 지나쳤으면 모를 것들을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테를지 입구가 시작되는 곳에 나무로 지어진 다리가 있는데 그 위에서 보이는 강과 숲이 어우러진 모습은 정말 너무도 아름다웠다.

다시 한 번, 봄여름의 풍광을 머릿속에 떠올려본다.

조금 더 가니 몽골전통의상 델을 입은 남자와 말 한 마리, 낙타 두 마리가 보인다.

기사 아저씨에게 잠깐 내리자고 하여 가보니 관광객에게 돈을 받고 낙타를 태워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겨울이라 오가는 관광객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하루 종일 허허벌판에서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보통일이 아닐 것 같았다. 어쨌든 우리 일행도 낙타를 타 보기로 하였다.

몽골에만 있다는 혹이 두 개 달린 쌍봉낙타!

말은 못 탔어도 낙타만은 타보리라 속으로 자꾸 다짐을 한다. 앞에 있는 혹을 꽉 잡으면 덜 무서울 것 같았다.

낙타가 앉아 있을 때 두 개의 혹 사이에 올라앉으면 낙타가 뒷다리 앞다리를 차례로 세우며 일어난다. 일어날 때 얼마나 무섭던지... 그래도 걸을 때는 혹을 끌어안고 있으니 훨씬 덜 무서웠다. 생각해 보면 무서울 게 하나도 없는데 나는 왜 그렇게 바보 같이 무서움을 잘 타는지 모르겠다. 정영남 선생님은 말 타기도 낙타도 아주 재밌고 여유롭게 즐기며 타는 것 같아 부러웠다.

낙타가 원래 순한 동물인지 눈빛이 너무 순해 보인다. 



“낙타를 탔다!”

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조금 더 가니 언덕 아래로 그림 같은 집들이 보인다. 말 그대로 그림 같은 집들이 시야에 가득 들어오는데 너무나 이쁘다.

기사 아저씨는 며칠 사이 우리들과 낯가림이 사라졌는지 스스로 묻지 않는 말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고 빌렉씨는 열심히 통역을 해주었다.

테를지는 울란바타르에 가까워서 여름 휴가철이면 테를지에서 텐트도 치고 휴양시설에 머물기도 하면서 울란바타르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흰 말의 젖은 간이 안 좋은 사람에게 특효라는 속설이 있어서 여름철에 테를지에 흰 말의 젖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리고 거북바위, 진짜 거북이 같다!

우리의 ‘준비된 실장님!’

즉석사진을 찍어주신댄다.

거북바위 앞에서 각각 즉석 독사진을 찍었다.

“이네게레~!”(치~즈, 김~치, 스마일 등, 사진 찍을 때 미소를 지으라는 몽골말)

찍은 사진들을 서로서로 돌려보니 모두 너무나 행복한 표정들이다.

내내 그러하시길……



NGO 방문 일정 때문에 서둘러 울란바타르로 향했다.

제4일 : 해돋이와 홈스테이(2005. 11. 3. 목)

채 동이 트지 않은 어두운 새벽길을 나서다. 게르에서의 2박을 따뜻하게(?) 보내고 울란바타르로 돌아가는 길이다. 시시각각 뿌-염하게 밝아지는 하늘을 보며 해돋이를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잔뜩 품고서… (해돋이를 본 게 언제였더라, 고등학교 때 불국사로 수학여행가서 토함산에서 해뜨기를 기다리다가 김빠진 해돋이를 본 게 고작이었구나).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놓칠세라 차를 세워 달라 했다.

가슴이 후련해진다.

(모름지기 여행자는 모든 걸 ‘플러스 알파화’ 하는 건 아닐까.

이런 정도의 해 뜨는 장면은 한국에서도 어느 동산에 가든지 얼마든지 볼 수 있을 텐데 하는 김빠지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대학시절 엠티 때 날 새운 새벽, 교회에서 중고등부 학생들과 수련회 갔을 때의 이른 아침, 해돋이는 아니더라도 이 정도의 광경은 익히 보아오지 않았던가 하는, 들뜬 감상을 가라앉히려는 괜한 자제가 ‘여기가 몽골이라고 감상을 오버하지 말자’는 생각을 잠깐 떠올리게도 했으나……)

바다 같기도 하고 넓고 낮게 보이는 산 같기도 하고 부드러운 언덕 같기도 한 곳에서 해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을 때,

여행자의 들뜬 감상으로 감격하기도 했다.



해 뜨는 장면도 그렇거니와 아침결의 냄새가 시원하고 알싸하고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하다.

한편 비장한 느낌도 동시에 떠오른다.



해뜨는 모습을 보면서 외국인노동자 지원단체 활동가로서의 다짐과 각오도 새롭게 다져보았다. 몽골로 향하기 전 그 동안의 활동에 대한 자괴감, 활동가로서 정체성의 혼란, 일상의 고단함 등으로 심한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출발하면서 몽골에 다녀오는 동안 그간의 활동에 대한 내 모습들을 정리하고 향후 활동에 대한 각오들을 정비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중압감도 가졌었다. 일정이 어떠하든지 스스로 내면적인 ‘연수 프로그램’을 갖자고 다짐을 하며 출발하지 않았던가.



울란바타르에 도착해서 훼밀리 식당에서 한국음식을 먹었다. 늦은 점심이라 배도 고팠고 며칠 만에 한국음식을 먹는 것이 너무 좋아서 어느 것을 먹을까 심사숙고하여 동태찌게를 주문했다. 서울에서 먹었던 동태찌게처럼 국물 맛도 시원하고 만족스럽다. 빌렉씨의 말로는 한국에 다녀온 몽골사람들이 한국식당에서 식사하는 걸 좋아한단다. 몽골 음식보다 약간 비싸지만(4천~5천원)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한국식당에서 음식을 사먹는다고 한다.

식사 후에 간단사원, 역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 수흐바타르 광장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도심에 있는 간단사원에는 사람들이 꽤 많이 붐빈다. 시골에서 온 여행객같이 보이는 사람도 많고 학생들, 노인들, 다양한 사람들이 후르드를 돌리며 소원을 비는 모습, 사원 안에 시주를 하고 절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 야외촬영을 하는 듯한 신부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사원 안에서는 역시 사진촬영을 하려면 5천 투그릭을 내야 했다. 역시 한 사람이 대표로 촬영키로 하고, 나는 건성으로 불상에 초점을 맞춰보았는데 어느 틈에 관리인이 다가와서 5천 투그릭을 내라고 한다. 정말 사진 찍지 않았다고 카메라를 켜서 이미 촬영한 내용을 보여주니 알았다며 물러났다.

역사박물관에서는 설명해주는 안내인이 있었다. 처음부터 돌아가면서 전부 설명을 하는데 너무 피곤해서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며 둘러보기가 힘들어, 붙여져 있는 영어설명을 보며 자유롭게 둘러보았다. 문화수업 자료로 쓸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모든 전시품이 유리장안에 들어 있어서 사진효과가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 고대 문화재부터 현대의 뉴스까지 전시가 돼 있었는데 몽골역사에 대해 더 자세히 공부하고 왔다면 좋았겠다는 뒤늦은 후회가 들기도 했다.

역사박물관을 나서니 중고등학생인 듯한 학생들이 무리지어 있었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문을 잡아주어서 “바에르흘라!” 인사했더니 “감사합니다!”고 한국말로 답을 하면서 겸연쩍은 듯 왁자하게 웃는다. 표정들이 밝고 환하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몽골 청소년들이 한류 스타들을 좋아해서 한국가요 콘테스트도 열린다는 것을 보았는데 과연 한국에 대한 관심이 대단한가 보다.

자연사 박물관을 둘러보고 난 다음 간 수흐바타르 광장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고, 평일 저녁나절인데 넓다싶은 광장에 사람이 많은 것이 신기했다. 자연사 박물관을 들어갈 때 관람시간이 끝났다고 안 들여보내려고 해서 빌렉씨가 뭐라 얘기하니까 들어갈 수 있었는데 나오면서 관람시간표를 보니 동절기에는 오후 4시 30분까지로 돼 있었다. 아마도 퇴근 시간이 이르니 사람들이 저녁시간에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라호름에서 새벽에 출발해서 그랬는지 몸이 무지 피곤했다.

호텔로 돌아가 좀 쉬고 오늘 밤은 빌렉씨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기로 했다.

빌렉씨는 한국에서 4년 정도 일을 했는데 모은 돈으로 울란바타르 시내에 아파트를 사서 영국으로 유학 간 언니의 아들과 딸을 돌보며 살고 있다고 했다. 호텔에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있는 아파트로 갔다. 지은 지 20년 정도 됐다는데 겉보기에는 꽤 낡아보였다. 빌렉씨 말로는 오래됐어도 튼튼하게 지어져 비싼 아파트라고 한다. 사회주의 이후에 지어진 아파트는 날림으로 지어진 것들이 많다고 한다. 빌렉씨는 자기 아파트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진 듯 한참 설명을 하였다.

몽골에서는 거실을 포함해서 방수를 가지고 몇 칸짜리 아파트라고 구분한다고 한다. 방이 두 개에 거실 부엌과 목욕탕이 있었다. 방은 그리 크지 않은데 세간이 단출해서인지 넓어 보였다. 목욕탕도 부엌살림도 너무나 간소하다. 식사를 조리하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고 사다가 먹는다고 한다.

늦은 시간에 도착했는데 아이들이 자지 않고 있었다. 낮에는 빌렉씨 친구가 함께 있다가 저녁을 먹이고 돌아갔다고 한다.

7살 남자아이와 5살 여자아이인데 밤늦게 찾아온 방문객에게 낯설어하는 내색을 숨기지 않고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가지고 간 학용품과 인삼초콜릿을 주었는데 별로 좋아하는 내색도 없이 이모 뒤로 숨기만 한다. 말이 안 통하니 뭐라 말 붙일 수도 없어서 손이라도 잡아보려고 다가갔으나 몸을 뒤로 뺀다. 다음날 아침이면 조금 나아지겠지 하며 거실로 나왔다.

빌렉씨가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새벽까지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다. 특히 한국에서 일하다가 귀국한 몽골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몽골에 돌아오고 나서는, 고향을 그리워하듯이 한국에 대해 많이 그리워한다고 한다. 같은 아파트 아래층에도 한 아주머니가 있는데 한국에 다녀온 사실을 몰랐을 때는 별로 친하지 않았는데 한국에 갔다 왔다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 자주 만나서 한국에 대한 얘기도 하고 한국음식도 같이 먹으러 가곤 한다고 했다. 우리 상담소를 통해 알게 된 친구들과도 자주 만나서 맨날 한국 얘기만 한다고 한다(뭐가 그렇게 그리울까, 힘들게 일하면서도 차별받고 월급 떼이고, 다치고 그런 친구들이 많은데 그래도 한국이 그리울까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런데 대부분 귀국하고 나서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벌어온 돈을 까먹고 사는 친구들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빌렉씨는 한국에서 우리 단체를 알게 된 것이 꽤 충격이었다고 했다. 몽골의 시민단체들은 명목은 있으나 한국의 시민단체들과 성격이 많이 다르다고 했다. 빌렉씨 생각에는 몽골의 시민단체들은 정부쪽과 많이 가깝다고 생각하며 거의 외국에서 지원을 받는데 그 기금의 사용에 대해서 의혹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자신도 공부하고 준비하여 한국의 시민단체 활동가 같은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제3일 : 코담배와 반탄(2005.11.2.수)

코담배와 반탄

아침에 숙박 장소인 게르에서 출발하려고 나서는데 일행이 타고 갈 차량 앞에 방물장수가 전을 펼쳐놓았다. 여러 가지 물건들 중 여성용 코담배(실제로 담배를 넣지는 않고 향료 가루 등을 넣어 소지하였다가 서로 인사를 나눌 때 교환하여 냄새를 맡고 돌려준다고 하고, 몽골 설날인 차강사르 때에도 새해 인사로 코담배를 서로 교환한다고 하는데, 부의 정도에 따라 코담배 용기가 천차만별이고 어떤 코담배를 가졌느냐가 부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고 한다)가 눈에 들어왔다. 호리병 모양의 옥으로 보이는 듯한 모습에 금속으로 용의 무늬가 씌워져 있었고 앙증맞은 뚜껑도 예뻤다. 사고 싶은 마음이 들어 흥정에 들어갔다. 2만 투그릭을 달라고 한다. 망설이고 있자니 스스로 값을 내린다. 결국은 1만 투그릭까지 내려 불렀다. 값을 깍는 데는 도무지 젬병인 내가 반이나 에누리한 값에 산다는 게 신이 나서 얼른 샀다. 사고 보니 정말 잘 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내 것이라고 생각하니 흥정할 때보다 코담배가 더 신기하게 보이고 더 이쁘게 보인다. 일행들도 모두 잘 샀다고 추어주니 마음마저 뿌듯해졌다(그러나 일행 중 한 명에게 두고두고 괴롭힘을 당할 줄 이때는 미처 몰랐다).



에르덴조 사원에 도착했다.

몽골문화수업을 준비하면서 사진을 여러 번 보고 몽골강사들에게 설명도 수차례 들었는데 과연 百聞이 不如一見이다.

우선 사방을 둘러싼 탑들이 108개라는데 참으로 아름답다. 높은 곳에서 108개 탑의 둘레 전체를 앵글에 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자면 저 멀리 보이는 구릉까지 올라가야 할 것 같고 카메라도 망원렌즈가 필요할 것이니 생각으로 그칠 수밖에……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나라 사찰에 비긴다면 불국사 정도의 사원일 텐데 겨울이라 그런지 방문객도 별로 없고 한산하다. 하기사 울란바타르에서 7시간이나 걸리니 몽골사람들이라도 자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일행도 일박을 해야 올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일정을 짤 때 고민을 하였으니……

문화적인 감수성이 없어서 그런지 사원 전체가 밖에서 볼 때와는 달리 황량한 느낌이 든다. 건물외관은 퇴락한 모습이고 사원 뜰도 거칠다.

하라호름이 징기스칸 시대의 수도였고 그 중심에 있었던 사원이고 오늘날까지 보존돼 있다면 우리나라 같으면 복원이다 뭐다 해서 화려하게 치장을 했을 텐데…… 이렇게 낡은 상태로 그대로 둔 것이 진정한 보존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복원사업에 드는 예산 때문에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몇 개의 사원 건물을 둘러보는 중에 가장 인상적인 곳은 스님들이 공부하는 건물이었다. 동승인 듯한 승려들이 차를 마시며 경전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실지로 공부를 하는 것인지 관람객들이 구경을 해서 그런지 열심히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한마디 말이라도 건네 보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냥 눈이 마주치는 대로 웃기만 했다. 어제까지는 몰랐는데 오늘 몽골 사람들과 얼굴을 대하고 물건을 사고 하는데 진작 몽골말 좀 배워둘 걸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렇게 많은 몽골 외국인노동자들을 상담하고 만나고 했으면서 ‘샤인베이노’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는 게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지고 게을렀다는 자책까지 든다.

모두 둘러보고 나오니 마당에 방물장수들이 10여 명도 넘게 줄지어 서 있다. 바람도 불고 쌀쌀하기도 한데 관람객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장을 펼쳐놓고 있는 게 마음이 쓰였다. 게르에서 출발하기 전에 보았던 방물장수의 물건들보다 종류도 훨씬 다양하고 많다.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신난다. 사고 싶은 게 무지 많았지만 문화수업재료로 쓸 후르드(돌리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사원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설치돼 있는데 이것은 휴대용 모형인 듯하다) 하나만 샀다. 일행들도 심사숙고하며 흥정을 하여 코담배 등을 샀다. 그런데 아뿔싸! 내가 오전에 숙소에 온 방물장수한테 샀던 것과 너무도 흡사한, 더 좋아 보이는 코담배를 7천 투그릭에 샀다는 것이 아닌가(이후 두고두고 약 올리는 통에 배 아파 죽는 줄 알았다).



숙소인 게르에 돌아와서 점심식사로 맛있는 반탄을 시원하게 먹었다. 반탄은 밀가루와 다진 소고기로 만든 스프 같았다. 몽골사람들이 술 먹은 다음날 속풀이용으로 많이 먹는다고 한다. 한국에 가서 우리 수겸이에게 만들어 주어도 잘 먹을 것 같아 조리방법을 물어두었다. 물이 끓으면 밀가루 푼 것과 소고기 다진 것을 넣고 저으며 소금으로 간을 하면 끝이라고 한다. 너무 맛있어서 빌렉씨에게 ‘맛있어요’를 몽골말로 가르쳐 달라고 했다. “새흥 허르드승!”



고소공포증?

드디어 유목민의 게르를 찾아간다. 말도 타 볼 것이다!

길인가 싶은 평원을 자동차가 달린다. 운전 기사는 이 넓은 벌판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가는 걸까. 건물도 나무도 도로표지판도 없는데 목적지를 향해 신나게 달린다. 물론 비포장이어서 흔들리는 차의 요동이 재밌다. 게르에 도착하니 안주인인 듯한 분이 약간 어색하게 그러나 반가워하는 느낌이 들게 우리를 맞는다. 의사소통이 안 되니 묵묵히 행동으로만 대접한다. 따끈한 수테차, 마유주 등을 차례로 권한다. 마유주는 정말 막걸리와 비슷하다. 그러나 아주 많이 먹어야 취기가 돌겠다.



게르 밖을 나서니 발 디딜 틈 없이 또-o 천지다. 몽골 말로는 빠스라고 했다.

빠스 없는 곳을 골라 딛는 일이 불가능하다.  염소 빠스, 양 빠스…… 마치 콩 멍석 같다.

말 타는 시간, 일행들은 모두 호기롭게 말 타기를 시작했다.

말 타는 것에 지레 무서운 생각이 들었으나 몽골에 와서 말도 한번 못타고 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하며 용기를 내어 말위에 올라앉았으나 말이 발자국을 떼니 간이 오그라붙는 것 같아 얼른 내려달라고 하였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한테는 말 위도 높은 곳이다!



말고삐를 잡아주는 목부(혹은 목동?)들의 표정에서 외국인을 대하는 어색스러움과 친밀감을 동시에 느낀다. 말 한마디 서로 나누지 못하지만 호감으로 대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같이 사진을 찍자고 청하니 착하고 기분 좋은 느낌의 미소가 얼굴에 번진다.

언어와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낀다.

말로 소통하지 않아도 통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손짓으로 눈빛으로 행동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도 하다. 그러나 말이 아니면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외국인노동자들은 소통의 어려움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소통의 어려움으로 문제를 풀지 못해 상담소를 찾아와 도움을 청한다.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보면 쌍방의 입장이 다름과 시각의 차이와 사실에 대한 오해는 언어 소통의 어려움으로 해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