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조와르조의 밤 (11월 27일 PM 11:00)
두위씨의 부모님 댁의 발코니에 저녁을 먹은 일행들이 저마다 편안한 자세로 자리잡았다.
나의 일정 동반자인 사카와 그의 친구 두위씨, 두위씨의 동생인 에디씨와 친구인 압둘씨, 한국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콜리스와 나, 이렇게 여섯명의 일행들은 점점 짙어지는 밤기운에 마음을 실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두위씨는 한국에서 이주노동을 하기 전에는 말레이시아의 호텔에서 근무를 했었다.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여행사업을 하고 싶어한다. 지금은 예전 호텔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를 통해 미국유람선에 취직하는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다시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다.
에디씨는 10년가량 한국에서 일을 하고 돌아왔다. 한국에서 지금의 부인을 만난 에디씨는 한국에서 낳은 아들 ‘토니’를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부른다. 식물에서 추출하는 파우더의 원재료를 납품하는 사업을 시작했지만 사업이 초기단계라 어떻게 자리를 잡게 될 지 확신이 없다. 일이 잘 되지 않더라도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압둘씨는 일행중 한국에서 일한 경험이 없는 유일한 사람이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으로 입국하기 위해 준비를 했었지만 인도네시아의 인력도입이 중단되면서 입국이 무산되었다. 두명의 아이들의 아버지인 압둘씨는 한국에서의 낭보만을 기다리고 있다.
콜리스는 한국에서 입국한 지 3개월이 조금 넘었다. 맏이인 그는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4남매의 가장 역할을 하여야만 했다. 6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국에서 일하며 2명의 여동생을 시집보내고 남동생을 대학에 보냈다. 고향에 돌아온 후 한 달이 지나 인도네시아에서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자 한국이 그리워졌다. 다시 한국에서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모두들(사업을 시작한 에디씨까지도) 또렷한 한국말로 ‘우리들은 백수’라고 말을 한다. 인도네시아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죽어서 있는 곳’이라 말을 했다.
이 문제의식이 긍정적인 힘을 가지게 될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고, 고된 노동의 경험만이 아니라 한국의 긍정적인 사회시스템에 대한 경험을 획득한 이들이 그 중심에 서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사카의 집 (11월 30일 PM 10:00)
사카는 표정이 얼굴에 잘 드러나지 않는 친구다.
사카를 만난 후 5일간 고용허가제 현지실태조사에 대한 준비 작업으로 각 지역의 조력자를 조직하는 일에 함께 동행하며 숨겨진 조력자를 찾아내 소개시켜주고, 설득하는 고된 작업을 사카는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거의 매순간 사카의 친구들이나 전혀 새로운 인물들과 동행하거나 만나고 있었다.
몇 개월 만에 만났지만 둘 만이 이야기한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말랑에 있는 사카의 집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지금까지의 일정들을 정리하기 위해 일정표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마주 했다.
표정이 없던 사카의 얼굴에 웃음이 감돈다. 사카가 대뜸 산재를 당했던 자신의 다리를 걷어보여주었다. 그리고는 다리의 회복상태에 대해 자랑스러운 듯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랬다.
사카가 나를 부르는 호칭은 ‘미스터 김’이거나 ‘선생님’이다.
그러나 사카를 나는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카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카를 만나고 나서는 나는 정말 사카가 부르는 호칭처럼 센터의 활동가 ‘미스터 김’이거나 문제를 해결해주는 ‘선생님’처럼 사카를 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카는 친구로 돌아가 이야기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일정표를 슬그머니 가방에 집어넣었다.
# 다시 수까르노 - 하따 공항 (12월 4일 PM 8:30)
일행등과 함께 도착했던 수까르노-하따 공항을 홀로 벗어나며 지난밤 첫눈이 내렸다는 한국의 풍경을 잠시 상상해본다. 이미 마음은 일상으로의 진입을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인도네시아의 14일은 이주노동자와 이주노동에 대한 구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동안 눈앞을 가리고 있던 장막을 한꺼풀 벗겨진 것 같은 느낌이다. 또한 다문화에 대한 이해는 그 문화 속에 소수자로 진입하여 커다란 주류에 적응해가는 과정을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의 힘을 느낀 순간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타문화에 소수자로 진입하여 적응하여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입장을 역지사지해볼 수도 있었던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그밖에 개인적으로 2006년에 기획하고 있는 현지실태조사에 대한 커다란 그림을 그렸다는 성과도 함께 가져올 수 있었다. 준비한 것에 비해 너무나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연수일정이었다.
일상에 사로잡힌 마음은 다시 한번 조바심을 친다.
은근히 속정 깊게 챙겨주신 김산옥 소장님과 친근한 후배처럼 살갑게 배려해 준 도정환씨, 연수팀 일행들의 뒤치다꺼리며 분위기까지 신경쓰느라 아픈 몸도 돌보지 못한 다음세대 재단의 남은지팀장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함께 하지 못해 무척이나 아쉬웠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네요.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해주신 다음세대 재단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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