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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5/10/23 꿈을 찍는 토크쇼 - 김영프로듀서
  2. 2005/09/28 꿈을 찍는 토크쇼 - 임정아 PD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 동안 자기의 영역에서 독자적이고 창의적으로 살아오신 선배 직업인들과 조용한 자리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어봤는데요. 이번에도 저희에게 운 좋은 힌트를 주실만한 이야기 손님을 모셨습니다. 우선 지금까지 일곱 번의 행사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어왔는지 영상으로 준비했습니다.

요즘 그런 책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더라고요. 소위 실용서라고 불리는 책들이요. ‘이렇게 하면 잘 살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남을 잘 설득할 수 있다' 그래도 그런 책들에서 힌트를 얻기란 굉장히 힘든 것 같아요. 오히려 선배 직업인들이 미리 헤쳐나간 길을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깊이 들여다보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이야기 손님도 그런 분들 중 한 분인 것 같아요. 날씨가 안 좋아서 그런지, 추워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오시지는 않았습니다만 오신 분들만큼은 오신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있어요.

이 분은 체구가 굉장히 작으신 분이에요. 성찰적 삶과 함께, 생동하는 현장과 사람만이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두려울 건 없다 김영 프로듀서를 소개합니다. 박수로 맞아주세요.

안녕하세요? 김영입니다. 그 당부가 저를 향한 당부이셨군요. 크게 이야기하라는 당부요. 하하. 재단 측에서 이렇게 몰래몰래 동영상을 준비해주셨는지 몰랐어요. ‘저렇게 얘기할 때 손을 많이 썼나? 말이 안 되니까 손을 많이 썼구나. 오늘은 말을 많이 해야지' 생각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감기 기운이 있어서 목이 안 좋아요. 근데 목소리 너무 침착하셔서 제가 침착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 5분간 시간을 드릴 테니까 자기 소개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런 자리가 제일 어렵죠. 저에 대해서 특별히 말씀드릴 게 없는데요. 영화인이라고 보통 말씀드립니다. 저는 제가 영화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있고요. 더 나아가서 앞으로는 ‘전천후 영화인'으로 불리고자 해요. 전천후 영화인으로서 세상에 필요한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다가 죽으려고 생각합니다. (웃음)

가장 궁금해 할 질문 열 가지를 준비해 봤는데요. 소개를 워낙 짧게 하시니까 바로 질문으로 들어가야 될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력을 말씀해주시면 어떨까 생각이 들어요.

저는 대학에서는 인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저는 제가 영화인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인문학도였다는 사실에도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역사학을 전공했는데, 역사의식에 대한 느낌만을 가지고 있다가, 1년 휴학의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그때 영화를 만났어요. 그 전에도 영화는 알고 있었지만 이때 처음 만났다고 할 수 있지요. 유럽의 예술영화 때문이었습니다. 언젠가 유럽의 예술영화를 보고나서 영화감독과 함께 이런 식으로 질의응답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만든 사람이 어떤 의도로 만들었고 관객들과 어떻게 공유하고자 하는지 등등. 그때 감독이 했던 말보다도 그런 자리 자체가 매우 충격적이었어요. 지금은 흔하지만, 저에게는 나름의 전환기였지요.

영화를 해볼생각으로 8mm 영화 만드는 집단에 들어가게 되었고, 조한혜정 선생님과 여러 동인들의 터인 <또 하나의 문화>에서도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문화>를 만나면서 여러 모로 점점 깨지게 되었어요.

여러분들이 아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80년대 후반은 암울한 시기였지요. 그시절 나라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영화로 담던 젊은이들도 있었는데, 그런 축에서 여성의 문제를 다루던 <바리터>라는 곳이 있었어요. 현재 충무로의 변영주 감독, 김소영 교수, 홍효숙 프로그래머 등등. 모두 <바리터> 출신의 영화인들입니다.

그 후 한국영화진흥원 소속의 한국영화아카데미 8기로 들어가서 연출을 전공했어요. 다양한 경험을 쌓다가 94년에 김홍준 감독의 데뷔작인 <장밋빛 인생>이라는 영화에서 기록을 맡았습니다. 연출부 안에서는 스크립터라고도 하죠. 지금은 아니지만, 예정에는 여자들만 담당한다고 생각해서 충무로에서는 꽃이라고 불리던 일이었습니다. 영화 앞 장면에서 까만색 예쁜 목걸이가 나왔는데 그 다음 장면에서 사라졌다면 그건 옥에 티죠. 스크립터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충무로에 입문을 했습니다. 한동안 방황의 기간이 있다가... 보통 백수라고 하죠. (웃음) 97년부터 여전히 스크립터로서 시나리오가 일관성을 가지고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후반 작업을 도왔어요. 그렇게 90년대 문화의 세기를 마치면서 영화아카데미를 졸업했죠.

2000년부터는 영화판이 많이 바뀌었는데요. 예전 충무로에는 토착자본으로 영화를 만들었어요. 집 팔고 뭐 팔아서 결국 망하기도 하는. 그러다가 대기업이 들어왔지만, 당시는 한국 영화가 쾌거를 이루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많이 망했죠. 그 후 2000년은 금융 자본이 들어오던 시기예요. 한국영화의 시스템화를 고민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유학 갔다 돌아온 사람들이 영화를 하면서, 자생적으로 영화를 만들어 보자는 움직임이 생겼어요. 그때 마침 제가 영화 조감독을 그만뒀지요. 회사에 몸담고 영화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2000년, 2001년은 그냥 그렇게 지나갔어요.

방송도 하고 지내다가 2002년에 김지운 감독 작품이고 오기민(영화사 ‘마술피리'), 오정완(영화사 ‘봄') 두 분의 제작자 밑에서 여러분이 잘 아시는 <장화홍련>의 실무 프로듀서를 맡게 되었습니다. 외국에서는 ‘라인 프로듀서'라고도 불리는데요. 1년 반을 그 일을 하고 장화홍련이 6월 13일, 13일의 금요일에 개봉을 했지요. 김지운 감독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 많은 사랑을 받았지요. 한국에서도 공포영화가 잘 될 수 있구나 라는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그해 가을에 <이공>이라고, 90년대 제가 다녔던 영화아카데미가 20주년을 맞아 개막작을 준비하면서 <이공>이라는 프로젝트가 만들어졌습니다. 작년에 런칭을 하고 얼마 전에 DVD가 나왔어요. <이공>은 스무 편의 단편이 모인 옴니버스 프로젝트구요. 아실만한 감독을 포함해서 20명의 영화아카데미 졸업생 및 동문을 포함한 감독들이 만든 단편 옴니버스영화입니다.

두 가지 질문을 더 드리고 싶어요. 하나는 하도 질서정연하게 말씀해주셔서 1학년 졸업하면 2학년 가고 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사실은 아닌 거잖아요. 직업의 맵(map)을 자발적으로 그리신 건데 남들과 다른 코스일 수 있던 부분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나요? 스크립터 지내시다가 조연출, 총괄 프로듀서 하시다가... 그야말로 많은 영역을 넘나드시다보니 제가 머리가 복잡하거든요. (웃음) 영화프로듀서란 직업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길눈이 굉장히 어두워요.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인데 안 갖고 있죠. 조금 앞에서 헤매고 있으면 ‘같이 앞으로 갑시다' 이런 얘기도 할 수 있는 거고요. 저는 졸업하기 전 대학 생활의 후반을 영화하는 사람들 쫓아다니는 일로 보냈어요. 아까 말씀드렸지만 80년대 후반은 각자가 입장을 찾길 바라는 시대였거든요. 저는 다양성이란 말을 들을 때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는데 ‘너는 어느 쪽이야? 뭐가 될 거야?'라는 질문들이 밀려왔고요. 저는 계속 회색인이었어요.

현재 영화판의 프로듀서들 중에는 소위 ‘(운동)권' 출신들이 굉장히 많으세요. 진보적으로 나가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한편으로는 학교 때 룸펜이었던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결정을 못하던 분들이 많았단 생각이 드는 거죠. 뭔가는 하고 싶은데 결정은 못하겠고. 나중에 보니까 할 말이 많았던 거죠. 저도 늘 어디선가 밑으로는 다양한 기운이 움직이고 있을 거야 생각했던 쪽이었어요. 그래서 <또 하나의 문화>에도 가게 되었던 거구요. 당시만 해도 영화판 사람들을 ‘일탈'이라고 규정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저로서도 나름대로 도약이었어요. ‘너처럼 규범적인 아이가 어떻게 영화를 할 수 있니?'라고 묻는 사람도 많았고요. 규범적으로 보이는 제 안에 말할 수 없는 열정이 있고 그걸 죽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열정, 저 그거밖에 없거든요. 사람들은 몰랐지만 저는 어렴풋이 알았죠. 그래서 용기를 내서 알아왔던 길 말고 그 길로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가 매 순간이 기로였던 시대였다면 지금 같은 경우는 약간은 다른 맥락에서, 룸펜인 것을 허용하지 않는 시대인 것 같아요. 또 다른 의미에서 기로에 설 수밖에 없는 시대인 것 같은데요. 현실적인 측면으로 눈을 돌려서 영화 프로듀서의 직업의 세계를 살펴볼까요?

프로듀서는 엊그제도 어디선가 말씀을 드렸는데요. 우선 질문을 하나 드릴게요. 프로듀스라는 단어가 뭐죠? (객석: 생산하다요~) 예, 맞습니다. 생산하다, 만들다, 제조하다. 이런 얘기죠. 프로듀서는 무언가를 창조적으로 만들어내는. 거기에다 'er'이 붙었으니까요. 크게 보면 그렇고요. 프로듀서는 실무적으로 감독이 연출에 전념하기 위해서 판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멋있게 말하면 창작자가 창작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상황과 환경을 또 창조해내는 사람이고요.

프로듀서에는 여러 가지 등급이랄까요. 종류가 있습니다. 알기 쉽게 보통 얘기할 때는 제작자, 사장, 대표라고 하지요. 제작자란 말은 그 개념을 말하는 거고요. 제작사의 대표가 하는 일은 우선 어떤 영화가 있을 때 기획의 단계를 맡는 거예요. 이때는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취할 수도 있고, 감독의 아이디어가 영화로 되는 경우도 있고요. 많은 성공한 영화는 감독의 기획으로 된 것이 많은데요. 일단 투자사와 얘기를 해본 뒤 결정을 합니다. 일단 그 전에는 좀 주물럭 주물럭 매만져 둬야겠죠. 투자사에서 영화에 투자를 하는데요. 요즘은 한편에 최소 25억 그렇게 가죠.

프로듀서는 이 모든 단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좀 더 실무적으로 와 닿죠. 단편의 경우는 역할 구분이 거의 안 되어 있어요. 지금은 점점 되어가지만, 과거에는 자기 돈 오십 만원 내서 하는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큰 영화는 오십억씩 쓰잖아요. 그런 경우 감독이 연출에 전념을 할 수 있도록 상황과 재화와 창작성까지 감독과 같이 상의해서 영화를 만들어가는 역할, 그 역할이 프로듀서입니다.



그런 식의 설명을 들으면 프로듀서가 곧 영화인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김영 PD님께서 프로듀서로서 일하실 때는 주로 어떤 역할을 담당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 개인적인 역할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우선 다른 분들의 말씀을 인용해보면요. 제가 <장화홍련>에서 라인 프로듀서의 일을 했을 땐데요. 라인 프로듀서의 일은 일을 하기 위해서 스탭(staff)을 모으고 휘하의 스탭을 관장하는 거예요.

<장화홍련>의 마케팅을 맡은 영화사 <봄>의 오정완 대표는 ‘프로듀서는 감독보다 반보 뒤에서 걷는 사람이다'라고 하셨어요. 물론 감독과 함께 제작자에게 의견을 낼 수도 있고, 제작자와는 당연히 사이가 좋아야 하고요. 어떻게 보면 박쥐같겠죠? 항상 그렇게 적절한 위치에서 영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프로듀서다라는 말은 굉장히 와 닿았고요. 김익상 프로듀서 같은 분은 ‘프로듀서는 검과 도 중에서 검이다. 감독이 칼날이 하나밖에 없는 도라고 한다면 프로듀서는 창작적인 부분과 함께 이재(理財)적인 감을 지닌 일종의 검과 같은 역할이다'라고 얘기했습니다. 김지운 감독의 경우는 ‘감독이 현장의 아버지라면 프로듀서는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셨죠. 제가 현실에서는 오빠와 여동생 같은 관계라고 말하기는 했었죠. (웃음) 그런 것들을 놓고 봤을 때 저는 그냥 노동자로서의 프로듀서였던 것 같아요. 주어진 일과 과제를 해결해 가고 앞으로 밀어붙이는 일을 해왔어요. 물론 프로듀서의 역할은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처음부터 영화 프로듀서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잖아요. 생각했던 일을 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기대도 못했던 일을 하시게 됐던 경우도 많을 것 같거든요. 판에 발을 들이기 전과 영화 현장의 각기 다른 포지션에 있으면서 바라본 프로듀서의 역할이 남다를 것 같은데요. 전과 후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감독을 먼저 하고 나서 프로듀서의 일을 하고 싶었는데 프로듀서 일이 먼저 왔어요. 역시 인생이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는 연출을 할 거고요.

프로듀서에는 제작부, 제작차장, 부장, 실장, 라인 프로듀서, 슬래쉬 프로듀서, 제작자 이렇게 제작과정을 거쳐서 가는 방법. 마케팅팀의 일원으로 해서 카피 쓰는 것부터 영화 예고, 신문광고 내는 것 등을 맡은 다음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를 알고 영화를 알아서 입문하는 방법도 있어요. 최근에는 마케팅하던 출신들이 영화계에서 각광을 받거든요. 유명한 여성 프로듀서들 가운데는 유명한 마케터 출신이 많습니다. 연출의 고통을 겪은 다음에 제작자가 되는 경우도 있지요. 저와 비슷한 경우도 다소 있기는 합니다.

제 경우 프로듀서 하기 전에 가장 두려웠던 부분은 돈 관리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제가 돈 관리에 대해 모르지 않을까 했는데 하다보면 점점 알게 되고요. 장점이라 생각했던 부분은, 예전에는 연출을 하면서 영화 만드는 내용에 집중을 했다면 프로듀서가 되고 보니 시야가 굉장히 넓어졌어요. 알게 된 세상에 대해 책임도 느끼게 되고요. 단점은 다른 사람의 돈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스탭들에게 넉넉하게 해주지 못하는 점이에요. 지금까지는 스탭으로서, 동료로서 같은 편에 서 있다가 프로듀서가 되니까 깎아야 되잖아요. 제작 시스템이라든가 환경이라든가 스탭 처우 개선 문제라든가 정책 입안이라든가 압력 단체의 입장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거죠.

저는 개인적으로 항상 여성정체성이라는 것이 일과 직업과 생활과 어떻게 연결이 되나 하는 문제에 관심이 있거든요. 굳이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환경에서 일하지 않더라도 성적 정체성은 고유의 기능을 하는 것 같거든요. 여성프로듀서로서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저의 짧은 역사를 볼 때 처음에는 잘 모르고서 뭔가 숨통을 트여주게 하는 얘기들이 있는 곳으로 마음이 끌려서 왔는데요. 제가 학교, 집, 학교, 집만 오가고 공부만 해서 사람들이 쟤는 그냥 시집갈 거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저는 <또 하나의 문화> 사람들을 만난 것을 후회하지 않아요. 규범에서 벗어나서 너무나 자유로워졌거든요.

<바리터>에 소속되었을 때,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어서 다큐멘터리 조연출 인터뷰를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소개받은 인터뷰였는데 연결해줄 선배가 저를 딱 보시자마자 푸하하하 웃으시면서 “여자였어? 다 좋은데 남자도 데리고 가라. 꼭 남자랑 같이 가” 하는 거예요. 학교는 그런 걸 잘 못 느끼게 했는데 사회 첫발을 내딛는 순간에 그런 일이 있으니까 굉장히 충격적이더라고요. ‘그건 또 용납할 수가 없지!' 하면서 혼자 갔어요. 아니나 다를까 라디오국에서도 웃으면서 “남자랑 와”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결국은 남자 동료들한테 일자리를 소개하고 남자 셋, 여자 하나가 지원을 했고 남자 하나, 여자 하나가 됐어요.

첫 질문이 그거였어요. “결혼은 어떻게 할래?” “제가 알아서 합니다.” 건방지게 생각하셨나 봐요. 방송 조연출은 굉장히 바쁘거든요. 머리도 안 감고 짐도 들고 3개월이 지났는데 딱 부르시는 거예요. '네가 오래 못 버티고 나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잘 견디더라. 내 딸이 너처럼 될까 걱정 된다' 그러시더라고요. 그때부터 마음이 통하는 상사와 AD로 지냈어요. 그때가 스물다섯, 여섯 그랬죠. 사실 여자 AD라는 게 굉장히 힘든 위치에요. 다들 팔짱 끼고 얼마나 잘 하나 보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저는 만약 아침 6시에 촬영이 있다 하면 1시간 일찍 나와서 방금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어요. 내가 남을 깨워야지 남이 나를 깨우면 안 되겠죠. ‘성실이 기본이다'라고 생각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시절이 있었고요. 많은 사람들이 ‘너는 현장에 안 어울려' 했지만 저는 이미 현장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고요.

제가 영화인이라고 자연스럽게 말씀드릴 수 있는 상황에서 영화판은 여성들이 자유롭게, 성차별 별로 느끼지 않고 자신의 능력과 노력과 아이디어, 밀어붙이기, 체력으로 - 남는 건 체력 밖에 없습니다 - 나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여성 일꾼들이 들여야 될 노력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찾아보시거든요. 검색도 하고 인터뷰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 여자 드라마 PD가 없었는데 어떤 분이 최초로 여성 드라마 PD가 되셨대요. 근데 같이 일하는 남자들이 견뎌 내지를 못하는 거예요. 결국은 그 PD를 ‘미스 리'라고 불렀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MBC 예능국의 임정아 PD같은 경우도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에 첫 번째로 투입되셨던 여자분이셔서 힘을 북돋아주는 얘기를 많이 남겨주고 가셨거든요.

저도 고민이 많다 보니까 ‘유일한 전략은 싸가지 없게 구는 거다'라고 결론을 냈는데요. ‘제가 알아서 합니다'처럼 때론 이런 식으로 싸가지 없이 구는 게 작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렇게 상냥하고 친절하고 온화하신 분이 어떻게 이런 식의 전략이 가능한가 생각도 드네요.

적나라하게 ‘영화란 나에게 이런 것이다'라는 김영 프로듀서님의 생각을 전달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현장 이야기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주문한 거였고요. ‘공론장'으로서의 영화 만들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 ‘영화판에서 그녀를 모르면 간첩', ‘네트워크의 중심에 그녀가 있다' ‘굉장히 넓고 셀 수 없이 많은 발을 가졌다' 그런 소문들을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발은 보시다시피 두 개고요. 사이즈는 235라고 얘기하는데요. (웃음) 사실 이런 얘기 많이 하세요. 친한 제작자 분이랑 부산에서 만났는데 ‘제일 발 넓은 사람이 남자 중에는 OOO고 여자 중에서는 너래매?' 그러는 거예요. 사실은 대학 때도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남자 중에선 누구고 여자 중에선 저라고. 그래서 대통령 출마하란 얘기는 20년 전부터 들은 셈이죠. 근데 정말 사실이 아니고요. 알고 보면 전 그렇게 많은 사람을 알고 있지 않아요. 단지 변화하지 않으려고 생각해요. 기억을 못한다는 것은 관심이 없어서인 건 아닌 것 같지만, 관심이 있고 기억을 하는 한은 변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위치가 변하면 이전의 사람들을 기억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그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일부러 기억하지 않으려고 한다든가, 관점에 따라서 사람 대하는 게 달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사실 카메라 앞에 있는 분들은 잘 기억을 못해요. 대신 스탭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았고요. 여자들 사이에서 구인구직이 필요한 경우 문자를 좍 돌립니다. 예를들어 영화제 프로그램 팀장 자리를 구한다라며 조건을 달죠. 성별, 나이 딱 달고 좍 쳐요. 그러면 사방에서 또 문자를 막 쏴줘요. 영화 <엠마>의 주인공 엠마가 자기 머리는 잘 못 깎잖아요. 대신 매치매킹은 잘 시켜주잖아요. 저는 저를 엠마라고 부르는데 세상에 도움이 된다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움직이는 잡 코리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그런 얘기도 들려오는데 앞으로는 어디로 튀실 계획이신지 궁금합니다.

제가 이번에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요. 잠깐 유예기간 비슷한 시간을 갖고 싶어요. 사실 학교에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학교는 제게 휴식의 공간이거든요. 학교는 정말 순수해요. 제 입장에서는 사회생활 하면서 잠도 못 자고 본의 아니게 경쟁하다가 학교에서 패러다임이 바뀌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좋거든요. 내년부터는 현장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지난주부터 어떤 좋은 프로젝트의 프로듀서로 일을 해볼까, 이전부터 꿈꿔왔던 감독의 길을 걸을까 고민하고 있는데요. 연말까지는 고민을 끝내서 좀 더 달라진 모습으로 만나 뵙게 될 것 같아요.

끝으로 영화 관련한 직업을 찾아보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백만 개 이렇게 나오잖아요. 영화감독이 되든, 프로듀서가 되든, 배우가 되든 현장 주변에 있기를 희망하는 친구들이 많을 텐데 끝으로 어떤 얘기를 던져주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여기 오신 분들 대다수가 젊은 분들이신데요. 여러분만한 시간에, 어느 가을날에 속된 말로 ‘자뻑'이라고 하죠, 어떤 충일감으로 스스로에게 매우 감탄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더라고요. 특별히 할 줄 아는 것도 없고요. 젊다는 사실 하나밖에 없었어요. 근데 이상하게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있더라고요. 뭘 해도 재미있게 할 것 같고 정말 가진 게 많은 나이인 것 같고. 그때 영화를 하겠다고 결정했던 것 같거든요.

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있어요. 솔직히 말해서 계획한대로 되는 거 하나도 없어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여러분들 기분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예전에 누가 이렇게 말해주면 기분 좋았거든요. 열심히 사는 것 같아 보인다면, 그렇게 봐주셨다면 순간순간 충실히 사시고요. 무엇보다 후회하지 않으시려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셔야 됩니다. 저의 부모님들은 아주 반대는 안 하셨지만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폄하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 거에 굴복하지 마시고요. 좋아하는 일은 안 되도 후회하지 않죠. 좋아하지도 않는 일 하다가 안 되면 정말 후회하겠죠. 먼저 좋아하는 일을 찾은 다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수 한번.

1. 안녕하세요? 유스보이스(Youth Voice)에 참가했던 장재영이라고 합니다. 김영 프로듀서님의 한계가 어디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문자를 보내잖아요. 저는 꼭 1분 안에, 그리고 끝까지 답장을 합니다. 상대방이 ‘제발 좀 그만 하세요' 그러는데. (웃음) 전 텍스트 세대에요. 문자를 자주 보내고 그것도 꽉 채워서 보냅니다. 근데 그런 제가 토크쇼 전날 밤에 손이 마비가 됐어요. 통증도 없었어요. 문자질, 젓가락질, 펜 쓰는 거 등등 디테일한 작업이 안 됐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점점 마비가 풀리더라고요. 이제 아시겠죠? 건강. 건강은 끝까지 갑니다. 건강만 하면 못하는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운동하세요. 얼마 안 남았습니다. (웃음)

인터넷에서 김은형씨께서 이런 질문을 전해달라고 부탁하셨는데요. 영화프로듀서에게 꼭 필요한 자질과 미리 어떤 과정을 준비해야 하는지 여쭤봐 달라고 하셨네요.

그건 다른 분의 말씀을 인용할게요. 엠케이픽처스의 심재명 대표가 하신 말씀인데요. 프로듀서에게는 ‘영화에 대한 열정, 사람 많이 아는 것 - 저의 유일한 덕목이죠 -, 약간의 이재(理財)에 대한 감각'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한편 다양한 프로듀서들이 있죠. 만약 상업 영화에서 일하겠다고 하면 상업 영화에 대한 판단력이 있어야할 거고요. 제 생각에는 인문학 출신의 영화인들이 많았는데 시대가 빨리빨리 변하다 보니까 영상과 관련된 인접분야의 공부가 영화인이 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직접 영화 현장에서 출발하는 부분도 있겠고, 계속 공부하는 부분도 있겠고요. 그런 쪽의 전공을 하시다가 영화 프로듀서가 되기 위한 전문적인 학교 공부를 하는, 반직업적이고 반교육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연락주시면 네다섯 군데 정도의 학교를 소개하겠습니다.

이젠 잡코리아를 넘어서 학교까지 연결해드린다고 하십니다. (웃음)

커미션 없구요. 일대일로 답변 드리겠습니다.

끝으로 한마디 부탁을 드렸죠. 여러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으신 말씀을 비행기에 적어달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비록 비행기는 한대밖에 준비를 못했지만 비행기에 담긴 메시지는 같이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최 측에서 말씀하시길 이 부분이 리허설이 필요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셨는데 한번 펼쳐볼까요? 근데 펼치면 제가 다시 접을 수 있을까요? (객석 웃음) 별 내용은 없지만요. 살아가면서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고 느껴지더라도 스스로를 끝까지 믿으시라는 그런 말씀을 넣었습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오늘 김영 PD님과 함께 한 토크쇼 여덟 번째 자리는 이쯤에서 마무리할까 해요. 어떤 것도 계획된 대로 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말씀이 인상 깊었습니다. 지금까지 함께 해주신 이 자리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러브하우스>, <진호야 사랑해>라는 코너 아세요? 이런 코너들이 매주 방송될 때마다 시청자들은 잔잔한 감동과 따뜻함을 느꼈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얕은 술수나 잔꾀는 부려볼 생각도 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먼저 좇는 분이 계십니다. 기술보다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 MBC 예능국의 임정아 피디님 모시겠습니다.

서서 합니까? 벌써 앉아있네요. 하하. 여기 앉아있으니까 조명 때문에 앞이 하나도 안 보이고, 제가 그동안 연예인들에게 왜 그렇게 가혹한 행동을 했던가 후회가 밀려오네요.

먼저 인사드릴게요. 제 이름은 임정아라고 하고요. 현재 8년차 피디입니다. 좀 됐죠. 하하 저의 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음... 제가 했던 프로그램은 라는 프로그램으로 처음 시작했고요 (객석: 오~) 이야, 이 자리 아주 좋은데요. 그 다음 <신장개업> 조금 하다가 <러브하우스>를 했고, 그 다음에 <아시아 아시아>, 이번에 <진호야 사랑해>를 했습니다. 이건 잘 나가는 프로그램이었고 말하기도 창피한 프로그램도 그 외 다수 있습니다. 또 뭘 소개해야 되지요? 저 자신에 대해서...

앞으로는 어떤 프로그램을 하고 싶으세요?

저는 소개 영상을 보지 못하고 소리만 들었는데요. 약간 재수 없이 들리더라고요. (새침한 목소리로) 학창 시절에 “시험공부 하나도 안했어” 이런 것처럼 이요. 근데 저게 바로 편집의 힘이거든요. (관객 웃음) 아픈 일들이 다 잘린 상태에서, 어떻게 하다 보니 PD가 됐다고 하잖아요. 편집 정말 잘했어요. 이번 기회에 저도 이렇게 멋지게 나와 보게 되어서 기쁘고요.

사실 저는 수줍음이 되게 많아요. 주변 사람들은 별로 인정하지 않는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익숙하지 않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저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이야기들을 들었고 거기에서 힘을 얻어 PD를 하게 된 것 같기 때문이에요. 제가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는 '아, 저렇게 평범한 사람도 되는구나. 꿈이 있으면 꿈을 이룰 수 있구나‘ 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예요. 저도 굉장히 평범했고 지금 만나면 "네가 피디를?" 라고 말하는 학창시절 친구들이 많아요. 아주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서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오늘 이 자리를 통해서 아주 작은 거라도 용기를 얻어가셨으면 좋겠어요. 왜, 고 3때 이런 얘기들 하잖아요. “이번에 전교 100등이 100점 올렸대.” 그럼 우리 정말 용기를 얻잖아요. 제가 지금 굉장히 떨고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이 PD가 맞나? 왜 자기 일에 대해서 한마디 말도 못하나'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언뜻 보면 약간 언니 벌로 보이지 않아요? 하하. 말 트셔도 됩니다. 편하게 얘기해주셨으면 좋겠고요. 조명이 밝으니까 제가 말하고 침 튀는 게 다 보이네요. 하하.

앞으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자기 성향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예능이라는 틀 안에서, 제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어서 MBC에 들어온 거고요. 앞으로도 지금 하고 있는 프로그램 같은 것들을 많이 할 것 같아요. 변화하려고 많이 노력하겠지만 주제는 일관되게 가지 않을까요.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주 짧게 소개를 받아봤는데요. 본격적으로 질문을 드리기에 앞서 개인적인 궁금증입니다. 개인적으로 라디오 PD든 TV PD든 PD라는 꿈을 최소 3지망 안에 가지고 계신 분들, 손 좀 들어주시겠어요? 이야~ 많다. 용기를 많이 주셔야 되겠습니다. 각자 알아서 찾아가는 용기일까요? 하하. 임정아 PD님은 왜 피디가 되셨나요?

왜 PD가 됐냐면요. 제가 71년생인데... (객석: 오~) 앗, 여러분들과 몇 살 차이가 나는 거죠?

말씀하지 않으셨던 게 나았어요. 하하.

원래 PD들이 철이 없어서 느리게 늙긴 해요. 텔레비전은 굉장히 재미있는 매체지만, 제가 어릴 때는 PD란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는 그냥 흘러가는 거잖아요. 흘러 흘러가게 되는데 어렸을 때부터 PD가 하는 일에 대한 관심은 굉장히 많았어요. 학예회라든지 크리스마스 때 연극 같은 것을 하고 싶어서 교회를 나갔어요. 수학여행 가면 장기자랑 같은 거 하잖아요? 정말 목숨 걸고 했어요. 캐스팅도 하고 이것저것 시키고. 학교에서 스타도 좀 나오고 했어요. 하하.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 모아서 왜, 한판 벌린다고 하죠. 판을 한판 벌리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옛날이야기 듣는 것도 굉장히 좋아하고요. 대학교 가서도 학생회 활동을 많이 했어요. 학생회 활동을 많이 했던 것도 사람들 모아서 시키는 거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절대 제가 나가진 않아요. 시키는 걸 좋아하죠. 하하. 그러면서 뭔가 그런 거랑 맞는 직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회사에서 일하는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스물 넷, 다섯에 제가 하고 싶은 일이 PD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여기에 담겨 있었을 불안감을 이기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PD가 되기까지 어려웠던 점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PD, 특히 여자가 PD를 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어요. 우선 주변의 만류가 있어요. 제 때는 굉장히 심했어요. 지금은 여자 PD가 많이 들어왔지만 그때는 여자가 PD를 한다고 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하고 그랬어요. 하하하. 그런 얘기는 차라리 괜찮은데, 결정적으로 꿈을 접게까지 했던 이야기는 ‘여자 PD는 없다. 있어도 대부분 사이드 PD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PD란 직업은 여자랑 맞지 않는다.'라는 거였어요.

제가 나이가 데드라인에 딱 걸려서 올해 이거 봤다가 떨어지면 취업을 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때 당시 제가 취업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주변의 만류는 굉장한 갈등이 되었어요. ‘절대로 취업이 안 될 거다. 통과돼도 죽을 거다. 내가 아는 데 소개시켜줄 테니까 가라.' 집에 와서 고민을 살짝 했어요. 나이 얘기도 걸렸어요. 여자로서 나이가 너무 많다. 정말 이걸 못해보는 건가 생각이 들었을 때 갑자기 단순해졌어요.

저는 약간 중요한 선택을 할 때는 굉장히 단순해져요. 결과는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거거든요. 신만이 아는 거란 생각이 드는데 신도 바꿔주실 거라 생각했고, 내가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을 도전도 해보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할 거다 생각했어요. 공부 장소도 완전히 옮겼어요. 소도시에 작은 도서관으로 옮겨서 아무 얘기도 듣지 않고 저 혼자 그 상황을 즐기면서 공부했어요. 아주 즐겁게 준비를 했고 아주 좋은 결과를 얻었어요. 선배들 말과 달리 다행히 MBC는 여자 PD를 뽑아줬고 아직 살아있습니다. (관객 웃음)

MBC에는 MBC만의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예능 프로그램 같은 경우 공익적인 요소를 프로그램에 적용하는 방송사가 드물잖아요. 그 중 다수에 관여를 하셨어요. 공익성 예능 프로그램을 기획하시는 데 어떤 아이디어들이 도움이 되는 지 방송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어떠한 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고 싶거든요.

서태지가 은퇴할 때 했던 얘기가 ‘창의력이 말랐다' 였죠. PD도 가장 힘든 게 ‘짜내는 아픔'이에요. 물론 표절이라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표절을 한 적이 없어요. 아이템을 찾는다는 것이 쉽지가 않아요. 찾아도 겉돌기 쉬워요. 제 아이템은 제 생활과 매우 관련이 있어요. TV라는 매체가 대중적인 아이템과 잘 맞는다는 생각도 하고요.

귀티나게 생긴 저의 겉모습과는 달리 (객석 웃음) 나름대로 살면서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별로 부유하지 않았고 주변에는 항상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살았어요. 앞집에는 장애인이 살고 뒷집에는 미친 언니도 살고. 이 사람들에게는 볼링장을 갈 수 있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상한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제 나름대로 프로그램을 생각할 때 나의 부모, 나의 이웃을 생각하게 되고, 아이템을 개발할 때 항상 거기에 포인트를 둬요.

같은 경우는 아이를 돌보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생각해낼 수 있었던 아이템이에요. 제가 대학원 다니면서 조카들을 돌봐야 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굉장히 괴롭기도 하지만 말 못하는 아이와 성인인 나 사이에 교감이 굉장히 컸고요. 그리고 GOD가 너무나 착해서, 요즘 댄스 그룹 같지 않게 너무 착했기 때문에 가 탄생할 수 있었어요.

<러브하우스> 같은 경우는 그런 거죠. 집을 고쳐주는 프로그램이 맞아요. 그렇지만 핵심은 매직처럼 펼쳐지는 변신 같은 것보다는 ‘가족'에 있어요. 그 당시 러브하우스 했을 때가 IMF였어요. 잘 모르는 세대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때 당시 가족 해체라는 부분이 굉장히 컸어요. 저는 아무리 어려워도 가족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을 잡고 싶었어요. 하지만 예능 PD는 다른 사람들이 채널을 돌리지 않게 해야 하죠. 그 장치로 들어간 것이 인테리어에요.

<아시아 아시아>같은 경우도 메시지는 가족이지요. 이런 식으로 저는 어렸을 때 제가 경험했던 것들, 감동받았던 주제들을 많이 찾는 편이에요.

제작하시다 보면 '저거 짜고 치는 거래'라고 말해버리는 시청자들 때문에 상처도 받으셨을 것 같은데 직접적으로 접해본 적이 있는지요.

<아시아 아시아>때 그런 얘기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시각이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러브하우스>도 마찬가지죠. <육아일기> 역시 약간 위험한 선을 타는 부분이 있어요. 선발된 사람들에 대한 폄하가 굉장히 많았어요. ‘눈물을 도구로 삼는 것이 아니냐. 외국인들은 다 한국에서 나가야 된다' 그런 메일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상처도 많이 받았죠.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들이 날아올 때는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 또 과격한 표현입니다.

<아시아 아시아>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는 전국을 돌아다니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외국인 노동자라는 주제가 접근 방법이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사장님이 또 때려요, 집에 가고 싶어요' 영상 나오면서 잘려진 손 보여주면 굉장히 자극적이죠. 그게 싫었어요. 이런 것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국에 외국인 노동자 단체들이 굉장히 많아요. 다니면서 얘기를 들어봤죠. 그랬더니 이들이 그 수모를 참아낼 수 있는 이유도 모두 가족이었어요. ‘가족을 한번만 만나볼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이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관념이나 상식 때문에 변하지 않을 때, 방송이라는 매체를 이용하는 것이 최고일 수 있어요.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시사프로죠. 저는 외국인노동자들에게도 우리와 똑같은 동생이 있고 부양할 가족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가족상봉'쪽으로 갔던 거예요. ‘가족 상봉하면 문제가 해결되느냐'는 비판도 받았어요. 하지만 세상에 한방에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고 생각해요. 단 한 사람이라도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서 동등한 입장으로 볼 수 있다면... 하는 생각에서 <아시아 아시아>를 했었습니다.

프로그램 만들기 전의 과정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면, 정치적으로 올바른 다큐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다큐 안 해보세요?” 이런 질문 많이 받지 않으세요?

아아~ 저는 예능 프로 되게 좋아해요. 즐겁잖아요, 보고 있으면. 물론 TV가 여러 가지 기능을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제가 생각해볼 때 TV의 가장 좋은 기능은 즐거움을 주는 거였어요. 다양한 저의 이웃들이 돈을 들이지 않고 여가를 선용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는 TV에요. 저 또한 어려서부터 TV를 보고 굉장히 즐거워했고요. 누구나 TV를 보고서 하하하 웃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확실하게 웃겼으면 좋겠어요. TV 보면서 저녁 먹고 ‘와, 즐겁게 먹었다'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요. 사람에게 웃음을 주고 싶기 때문에 제가 을 하고 있는 모습은 상상할 수가 없어요. 저는 일도 즐겁게 하는 편이고 제 프로 역시 굉장히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가족들 다 웃을 수 있는 프로그램만 찾다 보니까 시사나 다큐는 시켜도 잘 못할 거예요.

사실 PD란 직업이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잖아요. 나는 예능국 PD지만 이런 PD도 있다 소개해 주신다면요?

자, 직업 정보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관객 웃음) PD는 세 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시사, 드라마 그리고 각종 딴따라들을 상대하고 있는 예능 PD가 있어요. 세 가지 다 너무나 판이해요. 세 개가 동일한 직업인가 할 정도에요. 그러니 한 방송국의 PD가 모두 모인는 회식은 거의 불가능하죠. 회사 안에서 단결도 안돼요. PD집단이 워낙 개성이 강한 집단인데다 방송사에 오면 개성이 막 드러나도록 만들어요. 그래야만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PD들은 정말 제각각이에요. 정상인가 싶을 정도로 제각각이고, 제가 가장 노말(normal)한 스타일이에요. 비올라 켜던 사람도 있고 운동하던 사람도 있어요. PD에 대한 고민은 적성에 맞게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이 질문이 핵심 질문일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하면 PD가 될 수 있나요?

이건 진짜 핵심 정보에요. 따끈따끈한 정보입니다. 제가 올해 심사위원으로 들어갈 뿐만 아니라 시험 문제도 내고 있어요. (쭉 둘러보며) 설마 여기 준비하는 분 계신 건 아니죠? 하하. 우선 PD 준비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거에요. 귀를 닫으세요. 나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시고 상식시험부터 차근차근 준비하세요. 사실 PD 시험이 한 달 안에 5, 6차까지 시험을 치르거든요.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가 없어요. 저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원형탈모가 생겼어요. 시험이 굉장히 길게 가는데요. 그것도 약간 이유도 있는 것 같아요.

첫 번째 시험은 상식이에요. 상식은 상식이죠. 정상적인 초등학교 과정을 거쳤으면 3개월 공부하면 누구나 다 똑같아져요. 재수에 삼수를 거듭할수록 불리하다고도 해요. 많이 떨어지는 건 2, 3, 4, 5차에서예요. 지식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시험, 그게 어려운 거잖아요. 제가 시험 보았을 때 4차 과정에서 판토마임 같은 것을 시켰던 것 같아요. 이게 얘가 무엇을 얼마만큼 잘하나 보는 게 아니라, 융통성 있게 꿀리지 않고 자기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사람인가를 보는 거예요. 태도를 보는 거죠.

드림플래쉬 관련자분들 미리 만났을 때 얘기한 적 있는데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이에요. 자신감은 그 사람 표정에서 나오게 돼 있어요. 하고 싶은 일을 목표로 정했으니까 해보겠다! 이게 자신감이에요. 최악의 경우는 떨어지는 것뿐이겠냐는 거죠. 단어들을 주고서 선택한 다음 1분 스피치를 해야 하는 문제도 있었어요. 이건 논설문 작성하는 거랑은 달라요. 하지만 이 문제가 나만 어렵겠어요. 딴 애들 똑같이 다 어려운 거잖아요. 굉장히 못해도, 똥배짱 튕기면서 자신감 있게 하는 사람이 PD에 적합한 사람이에요.

PD는 끊임없는 선택과 책임, 선택, 책임을 강요당하는 직업이에요. 이런 건 학교에서 배운 걸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2, 3, 4, 5차는 자질을 보는 문제가 주어지죠. ‘자질이 안돼나 봐요' 말씀하시는데요. 자기가 가진 자질은 자기도 몰라요. 흔히 주변 사람들의 평가로 자신의 자질이 평가되죠. ‘너는 이런 앤가봐', ‘너는 그런 것 같애' 그런 말 듣고 스스로를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신감, 똥배짱,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물불 가리지 않고 하는 자세가 중요한 거에요.

최종 시험은 양복 입으신 분들이 문제내시는 거였어요. 딱 들어갔더니 ‘나를 웃겨보세요' 하는 거예요. 진짜 머리가 하얘지면서 무슨 얘기를 할지 고민이 되는 거예. 그때 도저히 말도 안되는, 해서도 안되는 ‘참새시리즈'를 시작했어요. 타임캡슐에나 들어갈 그 이야기 말이죠. “참새가 세 마리 있었습니다. 전깃줄에 앉아있었지요” 어쩌구 저쩌구~ 달달달 떨면서 얘기를 끝냈어요.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죠. ‘면접을 망쳤구나.' 근데 사실 마음이 편했어요. 생각나는 건 참새밖에 없었으니까요. 당연 심사위원분들은 재미없어 하시죠. “그게 웃긴 얘깁니까?” 물으시는 거예요. 웃으면서 “안 웃긴가요? 하하하” 이랬죠. 그랬더니 갑자기 그거 되게 웃기다는 거예요. 그 정도로 말도 안되는 걸 물어보곤 해요. 신화와 동방신기와 ss501의 멤버 수를 더하면? 이런 문제도 있어요. PD되고 싶은 분들이 ss501이 누구야 하면 안되죠.

말도 안돼는 문제들이 나와요. 그런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를 원하는 거고, 프로그램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방송되기 까지 사건 터지고 폭풍우 불고 세트 쓰러질 때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는 단 한 사람, 결정을 내리고 방송에 꼭 내야 하는 사람을 뽑기 때문에 그래요. 절대 칼라바가 나갈 수는 다는 거죠. 세트를 다시 세우든지 폭풍우가 나오는 아이템으로 바꾸든지 선택을 해야 해요. ‘그럼 천재만이 될 수 있겠군요' 하실 수도 있는데요. 제일 중요한 건 제발 겁을 먹지 마시라는 거예요. 하고 싶은 일 하는데 왜 겁을 먹어요. 토익 성적에 너무 충격 받지 말고요. 그렇습니다 대략.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에 제작되는 기간과 진행과정은 어떠한가요?

보통 예능 프로그램은 길면 한 달, 짧으면 2주 정도 준비 기간을 가져요. 우선 작가들과 아이템 회의를 해요. 아이템이 서너개로 좁혀지면 예능 프로그램으로 현실화가 가능한 것인지 조사에 들어가요. 쉽게, 쉽게 만드는 것 같지만 조사 되게 많이 해요. 이 시간에 먹힐 것인가. 이게 과연 가능한가. 그 다음 촬영 들어가고 섭외도 하죠.

저희 하는 일의 80퍼센트가 꼬시는 일이에요. 동시에 연예인과 MC에게도 꿈을 불어넣어주는 게 중요해요. 이상을 가진 사람과 이상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굉장히 달라요. ‘네가 이거를 함으로써 이러이러한 게 좋다. 봐라!' 그러면 ‘응응, 그런 것 같다' 그러죠. ‘그렇지? 얼렁 찍어야 겠다' 그렇게 해서 팀이 꾸려지는 거예요. 카메라 감독, 조명, 오디오... 이십명이 같이 버스 타고 다니고 사후에 또 날밤 까면서 편집하고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저게 뭐야 유치하잖아!” 채널 돌리시고 그렇죠 하하.

PD가 되지 않았으면 어떤 일을 하고 계셨을 것 같아요?

한 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고요. 특출나게 공부를 잘했던 것도 아니고 대기업도 조금 안 어울리고... 다른 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되게 이상한 거 하고 있을 것 같아요.

현재 자신의 직업에 굉장히 만족한다는 얘기로 들려요. 어떤 점이 다음 생애에도 또 PD를 하고 싶도록 만드나요?

이게 정말 조심해야 할 부분인데요. 사람마다 정말 다르기 때문이에요. 직업을 잘 고르는 것도 중요한데요. 먼저 자기가 어떤 성격인가를 봐야 해요. 나는 웬만하면 모든 일을 원만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싫어하는 일을 했을 때 극단적으로 기피하는 사람인지 등등.

저 같은 경우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는 바닥이예요. 사실 PD란 직업이 저에게 즐거운 이유는 과정 자체가 코미디이기 때문이에요. 입사한 이후로 프로그램에 관해서는 단 한 번도 똑같은 일을 한 적이 없어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을 하기도 해요. 똑같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PD란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이었죠. 이런 얘기를 들으면 마냥 좋겠다 이러실 수도 있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와 책임이 동반되고요.

매일매일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고 박진감 넘칠까요? 하지만 그 일을 함으로써 못하게 되어 버리는 일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스트레스가 없나요?

친구들하고 만날 수가 없어요. “금요일날 꼭 보자” 약속만 했던 적이 수도 없어요. 그렇게 만나기로 했던 친구가 캐나다로 이민 가버린 경우도 있었어요. 전화가 와서는 캐나다에 있대요. “어, 너 거기 왜 갔니?” “이민 간다고 했잖아”해요. 그 정도로 만나기 어려워요. 물론 개인차가 있을 수도 있어요. 이를 악물로 가까스로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힘들죠. 그래서 많은 PD들이 대인관계가 없거나 파괴되고 회사 사람들끼리 놀게 되요. 한편 가족으로부터도 엄청난 이해가 있어야 해요. “난 무시하겠어, 프로니까!”라는 태도는 굉장히 잘못된 자세에요. (관객 웃음) 나름대로 노하우를 개발해보지만 어려운 점이 많아요.

앞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싶다. 이런 포부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저는 사람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좋아요. 개인적으로는 ‘아버지'라는 주제에 대해서 프로그램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요. 굉장히 추상적이잖아요? 어떻게 끌어다 써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많이 부각되는 반면 아버지는 그렇지 않거든요.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나이가 드니까 굉장히 다른 관점으로 아버지를 보게 되더라고요. 웃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어요. 가족들이 다 같이 보면서 ‘우리 아빠도 그럴까?' ‘우리 아이는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런 거에 관련된 프로를 해보고 싶어요.

이제는 여성 PD로서의 임정아 PD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얘기를 들어보면 본인의 직업에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크게 작용했는데요. 여성 PD를 바라보는 내부의 시각은 어땠나요?

처음 들어왔을 때는 여자 PD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어요. 제가 어쩌다가 <육아일기>라는 프로그램을 같이 촬영하게 됐을 땐데요. 어느 날 담당 PD가 테잎을 찍어서 살펴보더니 ‘이 아이템은 불방(방송 못함)이다' 그러는 거에요. 근데 제는 그 테입이 재미있는 거예요. 호영이가 밤에 나와서 우유 타는 장면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남자 PD들은 거기에서 아무 감흥이 없었던 거죠. 그렇게 를 맡게 되면서 여자 PD로서의 감성을 보여줬고, 그 이후로는 남자 PD들도 ‘여자 PD 쓸모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 봐요.

지금은 여자 PD들이 MBC 간판 예능 프로인 <일요일일요일밤에>에도 있는데요. 남자 PD 이상으로 일을 잘해요. 남자 PD와 여자PD가 하는 일이 상당 부분 많이 겹쳐있고요. 더 이상 방송사에서 여자 PD를 마다한다거나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평가의 기준은 프로그램이에요. 프로그램만으로 판단하는 냉혹한 사회이기 때문에 여자라서 겁먹거나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한 해에 1명 혹은 2명이 여자PD로 들어오는데 데스크들이 굉장히 좋아해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내거든요. 아이템을 개발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한 아이템을 자꾸 발굴해내는 거죠.

아직까지 성차별이라고 말해질 수 있는 부분이 있기는 있어요. 예능국 남자 PD들의 경우 출산에 대해서 이해하기는 어려운가 봐요. 여자 PD들은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면 자연스레 임신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남자 PD들은 “임신 했다고 일 못하는 거야?” 그래요. 그런 부분들은 여자 PD들이 계속 얘기를 해서 당연한 권리임을 밝혀야 할 거에요. 성차별의 부분이 체계적이라기보다는, 그냥 경험하지 못했던 부분들에서 남자들이 너무 당황한 거죠. 여자들은 끊임없이 싸워야 되는 부분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 드릴게요. 이제까지 많은 프로그램들을 해오셨는데 PD로서 앞으로의 프로그램에 거는 기대는 어떤 것인가요? 그리고 어떤 것을 이뤄보고 싶은 지에 관한 저변의 가치나 철학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저와 너무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에요. 근데 여러분들 지금 잘 듣고 있나요? 집중력이 좋아 보이기도 하고 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설마 자진 않죠? 그렇다면 너무 상처받을 것 같아요. 하하. 음... 철학은 좀 그렇고요. 저는 단순한 편이거든요. 문제가 복잡할수록 더 단순해져요. 제가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 자랐다고 했잖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빈부의 문제와 함께 커왔어요. 빈부의 상당 부분은 선택이 아니죠.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 나오고 나면 부자인지 가난한지 상관없잖아요. 그렇지만 가난한 아이들은 출발선부터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가난해서 속이 삐뚤어졌군' 이게 아니고. 뭐랄까... 가난해서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한 친구들은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데 10미터 뒤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열심히 따라오지만 결코 그 간격은 좁혀지지 않는다고 생각을 해요. 저도 약간 10미터 뒤에서 출발했어요. 맨 처음 MBC 입사했을 때 선배들이 ‘너는 어떤 CD를 소장하고 있니?' 물었거든요. 근데 저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어요. 저에게 CD를 수집한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거든요.

저에게 영상적인 상상력을 준 매체는 오로지 TV뿐이었어요. 그 격차가 쉽게 좁혀지지는 않겠지만, ‘가난한 사람들도 TV를 보면서 희망을 갖고 즐겁게 살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요. 마취적 기능으로 '야, 넌 지금 행복한 거야' 그런 건 아니지만 10미터 뒤에서 달리고 있더라도 여전히 가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저변에 깔린 생각도 그거에요. 많은 오락매체를 갖지 못한 사람도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누군가는 “뭐야 구질구질하게, 저런 프로그램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요. 그들이 마지막까지 달리기를 조금이라도 즐겁게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혼자 달리고 계신 분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달리고 계신 분입니다. 박수는 꼭 시켜야 치더라. (우뢰와 같은 박수)

1. 반갑습니다. 저는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인데요. 저는 임정아 PD님이 찍고 계신 프로그램들이 사회복지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복지적인 프로그램들이 갖고 있는 효과와 한계 그리고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지 궁금하고요. 촬영을 하실 때 관련된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사회복지적인 성격이 가장 강한 게 <러브하우스>였죠. 전적으로 사회복지사들의 도움은 받습니다. 저희가 사연을 뽑는다는 게 단순히 집이 낡았기 때문은 아니에요. 나올 만 한 사람인가가 중요하고요. 그런 과정에서 사회복지사분들의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막연한 감정만으로는 프로그램을 할 수가 없고요. 필요하면 작가들하고 세미나도 해요. 전혀 관련이 없더라도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천지차이거든요. 작가들은 싫어해요. 하하. 하지만 장애 등급 같은 거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해요. 아주 가끔 방송 타서 이득을 보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제 프로그램의 긍정적인 효과는 잘 모르겠어요. 사회적인 파급이 어떻게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중요한 건 주인공들의 삶이 많이 변화되었다는 거예요. 저는 개인적으로 애들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소년소녀가장. 아무 것도 주어지지 않은 채 방치된 아이들. 근데 얘들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약간 기가 사는 거예요. 처음 가면 십중팔구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요. 감정을 주지 않죠. 또 배신당할까봐... 자신감도 없어요. 그런데 차츰 말을 시켜보면 ‘저도 이거 한번 해보고 싶어요' 얘기하거든요. 악영향은 뭐, 제일 많이 받는 비판이 그거죠. 시청률 지상주의다, 그 사람이 제일 가난한가요? 라는 질문들... 여러 문제점들이 있는데 그런 거 생각 안 하려고요. 잘 모르겠어요 단점은

2. 저요! 안녕하세요? 저는 인천계선여고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인천에서 어렵게 왔거든요. 여기 다 어른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요. (관객 웃음) 여기 보니까 저랑 좀 비슷한 학생분들도 많이 계시거든요. 고3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데 학생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면 들려주세요. 그리고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은데요. 제가 지금은 PD 선생님을 학생의 입장으로 보지만 나중에는 선후배님으로 꼭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와! 하하. 중고등학생한테 가장 하고 싶은 얘기는요. 음... 저는 뭐든지 열심히 하면 배울 건 다 있다고 생각을 해요. 공부도 해보면 배울만한 게 있거든요. 지금 하려는 얘기는 그 얘기는 아니고요. 제가 고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이 있는데요. 지금 읽어보면 그건 일기가 아니에요. 저주에요. 고교 생활에 대한 저주. 틀에 박힌 고교생활. 근데 학교 가면 너무 얌전해요. 선생님한테 질문하고 집에 와서는 다시 저주 쓰고. 아아,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에요. 자신감을 달라고 했는데 죄송해요.

하지만 고등학교 때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첫 번째는 아무리 입시에 시달려도 독서는 꼭 하세요. 상상력의 근원은 책에서 나와요. 읽고 싶은 어떤 책이든 읽으세요. 저는 만화광이었거든요. 하루에 삼십분만이라도 자기 머리를 하고 싶은 일에 쓰게 해주세요. 단 하루 30분만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삼십분 동안 나이트 가기는 힘들잖아요. 책도 좋고 만화도 좋고 그림을 그려도 좋고, 투자를 하세요. 원래 내가 어떤 애였지 돌아보세요. 30분에다가 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지는 말고 편하고 자유롭게 자기의 30분을 가져보세요.

저는 아직도 그 습관을 갖고 있거든요. 그래서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삼십분 동안은 항상 하고 싶은 일을 해요. 하루 종일 책상 앞에 붙어 있어도 공부 잘되는 거 아니잖아요. 동기부여 받으면서 하는 거예요. 고등학교 공부가 인생의 목표가 될 수는 없어요. 나는 이걸 하고 싶은데 이것도 필요하겠지 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할 거예요.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요. 커보면 다 제 주변에 없기 때문에. 하하.

3. PD가 되면 모든 사람들이 PD 한 명만을 바라본다고 하셨잖아요. 카리스마, 리더십이 꼭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다양한 집단을 내 뜻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제가 하는 방식은, 선배가 많은 영향을 줬는데 절대 화를 내지 않는 거예요. 동기를 부여해요.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친밀하게 함으로써 저를 좋아해주길 바래요. 좋아해서 이 일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일을 많이 했었어요. 끝나고 술도 많이 먹고요. 사람들과의 친화를 중심으로 일했어요. 화가 나는 경우도 있으며, 차라리 불러서 말을 하는 편이에요.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화를 안 낸다고 해서 절대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이 되지는 않아요.

하다보면 정말 심한 경우도 있지요. 그럼 팀에서 뺄 수밖에 없지요. 그럴 땐 과감히 팀에서 뺍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그런 느낌을 받을 수도 있죠. 의외로 무섭다. 하지만 무슨 결정을 내릴 때 적절히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우스워 보이는 사람이 되기 쉽기 때문에 팀에서 제외시키는 방법을 택합니다. 강호랑 비슷한 거죠. 신의를 기본으로 하고 약속을 했는데, 몇 번의 기회를 줬는데도 나와의 신의를 깬 경우에는 함께 일을 하지 않죠. 처음에는 저를 여자로 봤거든요. ‘귀엽게 생겼네~' 그럼, ‘정말 전 귀여워요' 그랬죠. (관객 웃음) 목소리 크면 소리 질러도 되요.

4. 작가가 단순히 대본을 쓰는 직업이 아닌 줄은 알고 있었지만 PD랑 작가랑 의견 조율을 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인지는 몰랐어요. 정확히 작가의 역할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고요. 앞으로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하겠지만 정식 작가가 되기 이전에 인턴이나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방송 경험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예능 작가는 예능 PD랑 같이 운동화 신고 뛰어다니는 사람이에요. 드라마 작가는 하나의 소설을 써야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PD랑 만나서 방향같은 것을 조율을 하죠. 아주 많이 뜨게 되면 조율에서 조정으로 갑니다. (관객 웃음)

예능 작가는 폼은 좀 안 나요. 하지만 현장에서 운동화 신고 뛰어다니는 것, 그것도 좋은 것 같아요. 인턴 경험은 이상한 선입견만 갖게 될 것 같고 와서 처음 배우는 게 제일 좋아요. 차라리 그 시간에 붙을 수 있는 방법을 따로 연구하는 게 나아요. 메인 작가가 되지 않으면 힘든 속에서 느끼는 환희는 좀처럼 엿보기 어렵거든요. 드라마 작가는 좀 다르지만요. 미리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5. 대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요즘 방송사마다 학력 폐지니 연령 제한이니 말이 많잖아요.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정말 소위 스카이 출신 PD들이 많다고 들었는데요. 정말 학력 제한이나 연령 제한 없이 뽑는지 궁금하고요. 실제로 PD가 선발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라디오 작가 같은 경우는 공채해서 뽑는 식이 없잖아요. 라디오 작가나 방송 작가의 경우는 어떻게 뽑히는 지 궁금합니다.

회사에서 사람을 뽑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인데 회사가 학력 철폐를 선언한 까닭은 스카이가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 거예요. PD는 약간의 또라이 기질이 있어야 되는데 아, 물론 스카이 중에도 또라이 굉장히 많아요. (관객 웃음) 그런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고 회사는 발상의 전환을 하며 몸부림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심사할 때 보니 학력은 모두 가려있었어요. 주로 자기소개서 부분을 보게 되죠. 방송사 시험은 제로베이스에요. 이 사람이 전 단계에 몇 점을 받았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러니까 시험을 망쳤다고 머리 쥐어뜯을 필요 없고요.

작가의 경우 알음알이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요. 작가들은 대부분 프리랜서거든요. 예능국의 경우는 아이디어, 기획안을 보고 작가를 뽑습니다.

6. <라디오 PD가 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 운영자입니다. 저희가 여기 오기 전에 사회자분께 질문을 전달해달라고 부탁드렸는데요. 질문지를 한번 보시고 답변해주시고 싶은 질문에 답을 부탁드립니다.

네, 함께 오신 분들 질문은 나중에 질문 드리려고 빼두었는데요. 그 중에서 하나 고를게요. PD라는 직업에 대해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오해는 뭔가요?

(질문자에게) 라디오 PD가 되고 싶은 거에요? 자기가 라디오 PD가 되고 싶다는 것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됐어요? 나는 ‘이게 되고 싶다' 고 일찍부터 말하는 사람이 굉장히 신기했어요. 놀리는 게 아니고 정말 신기했어요.

라디오가 따뜻하고 개인적인 매체이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되고 싶어 했어요.

라디오는 아기자기하게 좋은 아이템이 많아서 TV로 갖고 와서 하는 것도 많거든요. 토크쇼 아이템은 거의 다 라디오에서 오는 거예요. 라디오 만드는 사람들이 굉장히 가족 같은 분위기거든요. 근데 여기 앞줄의 학생들. 여기 왜 왔어요? PD하면 어떤 이미지에요?

옛날에는 좋아했어요.

오늘 마음을 접은 거군요. 이럴 줄 알았어. 또 다른 것은요?

어려보여요~

신경 많이 쓰고 있어요. 심은하 메이크업 쪽으로... (관객 웃음) PD에 대해서 갖고 있는 이미지 중에 멋진 이미지는 하나도 없네요. 저는 PD는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동의를 하는데 너무 괴로운 직업이라는 건 쉽게 간과되곤 해요. 육체적인 한계들이 많고 너무너무 혹사시켜요. 체력적인 부분이 굉장히 힘들어요. 56시간동안 안잔 적도 있어요. <진호야 사랑해>의 진호가 시합을 마치고 화요일날 우리나라 들어와서 목요일날 녹화를 떴어요. 일요일날 방송을 내야 되는데 그 순간은 정말. 수명을 1, 2년 단축시키지 않았을까 해요.

PD가 반드시 즐거운 직업만은 아니에요. 굉장히 많은 인간관계들을 조율해야 해요, 굉장히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를 풀어야 해요. 중립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힘들어요. 장수하지 못할 직업 베스트 파이브로 뽑혔던데 그 정도로 스트레스가 너무너무 심해요. 그러면서 계속 자기 개발해야 되거든요. 요즘 애들은 뭘 하고 노나 살펴보고. 그래서 저는 요즘 주말에 토플 학원에 다녀요. 강남에 가서 대학생들 구경하려고요. 그렇다고 뉴욕제과 앞에 앉아있을 수는 없잖아요. 토플학원에서 뒷풀이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같이 끼고 주책 맞게. 하하.

PD, 되게 괴로운 직업이에요. 저의 어머니가 "왜 연예인들만 TV에 나오는 거니. 고생한 너도 좀 나오지" 그러실 정도에요. 가방 속에는 365일 여행 패키지가 들어있어요. 안 그러면 이도 못 닦고 양말도 못 갈아 신으니까. 농담도 많이 했어요.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하하. 그때 쉰여섯시간을 깨어있으니까 이상한 엔돌핀이 분비가 되면서 고통의 숲을 지나니까 환희와 즐거움의 공간이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하하하 웃으면서 편집을 해요. 피부도 팽팽해진 것 같고, 삶의 의욕이 솟고.

힘든 체력을 버텨낼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방송이 나갈 때에요. 편집을 마치고 피곤해서 찜질방에 간 적이 있는데, 역시나 마루에는 <엑스맨>이 장악을 하고 있더라고요. 깰 수가 없어요. 사세에서 팔십세까지 보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근데 다른 방에서 아줌마들 삼십명 정도가 <진호야 사랑해>를 보고 있는 거예요. 뒤에서 아줌마인 척 같이 보면서... 아, 아줌마가 맞죠 하하. 사람들이 웃는 것을 보니까 고통스러웠던 것들이 싹 사라져요. 사람들이 보고 즐거워하는 게 너무 즐거워요. 그런 걸로 56시간을 버티는 것 같아요. 알 수 없는 환희에요.

시간이 길지 않아서 더 많은 질문을 받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임정아 PD님과 한 시간 반 가까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눠봤는데요. 오늘도 어김없이 종이비행기를 날릴 거에요. 여기에는 임정아 PD님의 응원의 메시지가 적혀있습니다. 비행기 갖고 계시죠?

소도구는 반드시 챙깁니다. 근데 잘 쓸 걸. 너무 유치해요. 자막은 제가 직접 쓰거든요. 항상 음악을 틀어놓고 써요. 근데 아까는 음악도 없었고 아우 창피해. 꼭 읽어야 되나요? 알겠습니다. 유치하지만요. 그냥 들어주세요. 이 글을 쓴 이유는 제가 이문열씨의 <사람의 아들>이라는 책에 나온 한 구절 때문이에요. 사실 거의 기억을 못해요. 하나 인상적인 게 뭐냐면 ‘젊은이를 갉아먹는 것은 가난도 아니고 돈도 아니다. 가장 젊은이를 갉아먹는 것은 꿈을 잃는 거다'라고 읽었어요.

오늘 임정아 PD님하고 함께 한 각각의 여정을 기억하시라고 비행기를 날리겠습니다. 굉장히 구깃구깃한 것은 저희가 비행기를 접을 줄 몰라서 여러 번 시도했기 때문이에요. 자, 멀리 날리겠습니다. 앗, 비행기가 꼭 멀리 날아야되는 것만은 아니에요. 하하. 나눠가졌으니까 마음들 다 좋게 가지시고요. 오늘 토크쇼에는 이런 얘기가 굉장히 많았어요. ‘그것도 도움이 됐었어요' ‘누구를 만난 것도 도움이 됐었어요' 그런 인생을 기획하는 일이 쉽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거든요. 언제나 즐거운 임정아 PD님께 감사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