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요즘 그런 책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더라고요. 소위 실용서라고 불리는 책들이요. ‘이렇게 하면 잘 살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남을 잘 설득할 수 있다' 그래도 그런 책들에서 힌트를 얻기란 굉장히 힘든 것 같아요. 오히려 선배 직업인들이 미리 헤쳐나간 길을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깊이 들여다보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이야기 손님도 그런 분들 중 한 분인 것 같아요. 날씨가 안 좋아서 그런지, 추워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오시지는 않았습니다만 오신 분들만큼은 오신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있어요.
이 분은 체구가 굉장히 작으신 분이에요. 성찰적 삶과 함께, 생동하는 현장과 사람만이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두려울 건 없다 김영 프로듀서를 소개합니다. 박수로 맞아주세요. | ||
![]() | ||
안녕하세요? 김영입니다. 그 당부가 저를 향한 당부이셨군요. 크게 이야기하라는 당부요. 하하. 재단 측에서 이렇게 몰래몰래 동영상을 준비해주셨는지 몰랐어요. ‘저렇게 얘기할 때 손을 많이 썼나? 말이 안 되니까 손을 많이 썼구나. 오늘은 말을 많이 해야지' 생각했습니다. 반갑습니다.
| ||
![]() | ||
이런 자리가 제일 어렵죠. 저에 대해서 특별히 말씀드릴 게 없는데요. 영화인이라고 보통 말씀드립니다. 저는 제가 영화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있고요. 더 나아가서 앞으로는 ‘전천후 영화인'으로 불리고자 해요. 전천후 영화인으로서 세상에 필요한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다가 죽으려고 생각합니다. (웃음) | ||
![]() | ||
|
영화를 해볼생각으로 8mm 영화 만드는 집단에 들어가게 되었고, 조한혜정 선생님과 여러 동인들의 터인 <또 하나의 문화>에서도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문화>를 만나면서 여러 모로 점점 깨지게 되었어요. 여러분들이 아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80년대 후반은 암울한 시기였지요. 그시절 나라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영화로 담던 젊은이들도 있었는데, 그런 축에서 여성의 문제를 다루던 <바리터>라는 곳이 있었어요. 현재 충무로의 변영주 감독, 김소영 교수, 홍효숙 프로그래머 등등. 모두 <바리터> 출신의 영화인들입니다. 그 후 한국영화진흥원 소속의 한국영화아카데미 8기로 들어가서 연출을 전공했어요. 다양한 경험을 쌓다가 94년에 김홍준 감독의 데뷔작인 <장밋빛 인생>이라는 영화에서 기록을 맡았습니다. 연출부 안에서는 스크립터라고도 하죠. 지금은 아니지만, 예정에는 여자들만 담당한다고 생각해서 충무로에서는 꽃이라고 불리던 일이었습니다. 영화 앞 장면에서 까만색 예쁜 목걸이가 나왔는데 그 다음 장면에서 사라졌다면 그건 옥에 티죠. 스크립터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충무로에 입문을 했습니다. 한동안 방황의 기간이 있다가... 보통 백수라고 하죠. (웃음) 97년부터 여전히 스크립터로서 시나리오가 일관성을 가지고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후반 작업을 도왔어요. 그렇게 90년대 문화의 세기를 마치면서 영화아카데미를 졸업했죠. | ||
| ||
|
방송도 하고 지내다가 2002년에 김지운 감독 작품이고 오기민(영화사 ‘마술피리'), 오정완(영화사 ‘봄') 두 분의 제작자 밑에서 여러분이 잘 아시는 <장화홍련>의 실무 프로듀서를 맡게 되었습니다. 외국에서는 ‘라인 프로듀서'라고도 불리는데요. 1년 반을 그 일을 하고 장화홍련이 6월 13일, 13일의 금요일에 개봉을 했지요. 김지운 감독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 많은 사랑을 받았지요. 한국에서도 공포영화가 잘 될 수 있구나 라는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그해 가을에 <이공>이라고, 90년대 제가 다녔던 영화아카데미가 20주년을 맞아 개막작을 준비하면서 <이공>이라는 프로젝트가 만들어졌습니다. 작년에 런칭을 하고 얼마 전에 DVD가 나왔어요. <이공>은 스무 편의 단편이 모인 옴니버스 프로젝트구요. 아실만한 감독을 포함해서 20명의 영화아카데미 졸업생 및 동문을 포함한 감독들이 만든 단편 옴니버스영화입니다. | ||
![]() | ||
|
현재 영화판의 프로듀서들 중에는 소위 ‘(운동)권' 출신들이 굉장히 많으세요. 진보적으로 나가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한편으로는 학교 때 룸펜이었던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결정을 못하던 분들이 많았단 생각이 드는 거죠. 뭔가는 하고 싶은데 결정은 못하겠고. 나중에 보니까 할 말이 많았던 거죠. 저도 늘 어디선가 밑으로는 다양한 기운이 움직이고 있을 거야 생각했던 쪽이었어요. 그래서 <또 하나의 문화>에도 가게 되었던 거구요. 당시만 해도 영화판 사람들을 ‘일탈'이라고 규정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저로서도 나름대로 도약이었어요. ‘너처럼 규범적인 아이가 어떻게 영화를 할 수 있니?'라고 묻는 사람도 많았고요. 규범적으로 보이는 제 안에 말할 수 없는 열정이 있고 그걸 죽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열정, 저 그거밖에 없거든요. 사람들은 몰랐지만 저는 어렴풋이 알았죠. 그래서 용기를 내서 알아왔던 길 말고 그 길로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
![]() | ||
|
프로듀서에는 여러 가지 등급이랄까요. 종류가 있습니다. 알기 쉽게 보통 얘기할 때는 제작자, 사장, 대표라고 하지요. 제작자란 말은 그 개념을 말하는 거고요. 제작사의 대표가 하는 일은 우선 어떤 영화가 있을 때 기획의 단계를 맡는 거예요. 이때는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취할 수도 있고, 감독의 아이디어가 영화로 되는 경우도 있고요. 많은 성공한 영화는 감독의 기획으로 된 것이 많은데요. 일단 투자사와 얘기를 해본 뒤 결정을 합니다. 일단 그 전에는 좀 주물럭 주물럭 매만져 둬야겠죠. 투자사에서 영화에 투자를 하는데요. 요즘은 한편에 최소 25억 그렇게 가죠. 프로듀서는 이 모든 단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좀 더 실무적으로 와 닿죠. 단편의 경우는 역할 구분이 거의 안 되어 있어요. 지금은 점점 되어가지만, 과거에는 자기 돈 오십 만원 내서 하는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큰 영화는 오십억씩 쓰잖아요. 그런 경우 감독이 연출에 전념을 할 수 있도록 상황과 재화와 창작성까지 감독과 같이 상의해서 영화를 만들어가는 역할, 그 역할이 프로듀서입니다.
<장화홍련>의 마케팅을 맡은 영화사 <봄>의 오정완 대표는 ‘프로듀서는 감독보다 반보 뒤에서 걷는 사람이다'라고 하셨어요. 물론 감독과 함께 제작자에게 의견을 낼 수도 있고, 제작자와는 당연히 사이가 좋아야 하고요. 어떻게 보면 박쥐같겠죠? 항상 그렇게 적절한 위치에서 영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프로듀서다라는 말은 굉장히 와 닿았고요. 김익상 프로듀서 같은 분은 ‘프로듀서는 검과 도 중에서 검이다. 감독이 칼날이 하나밖에 없는 도라고 한다면 프로듀서는 창작적인 부분과 함께 이재(理財)적인 감을 지닌 일종의 검과 같은 역할이다'라고 얘기했습니다. 김지운 감독의 경우는 ‘감독이 현장의 아버지라면 프로듀서는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셨죠. 제가 현실에서는 오빠와 여동생 같은 관계라고 말하기는 했었죠. (웃음) 그런 것들을 놓고 봤을 때 저는 그냥 노동자로서의 프로듀서였던 것 같아요. 주어진 일과 과제를 해결해 가고 앞으로 밀어붙이는 일을 해왔어요. 물론 프로듀서의 역할은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프로듀서에는 제작부, 제작차장, 부장, 실장, 라인 프로듀서, 슬래쉬 프로듀서, 제작자 이렇게 제작과정을 거쳐서 가는 방법. 마케팅팀의 일원으로 해서 카피 쓰는 것부터 영화 예고, 신문광고 내는 것 등을 맡은 다음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를 알고 영화를 알아서 입문하는 방법도 있어요. 최근에는 마케팅하던 출신들이 영화계에서 각광을 받거든요. 유명한 여성 프로듀서들 가운데는 유명한 마케터 출신이 많습니다. 연출의 고통을 겪은 다음에 제작자가 되는 경우도 있지요. 저와 비슷한 경우도 다소 있기는 합니다. 제 경우 프로듀서 하기 전에 가장 두려웠던 부분은 돈 관리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제가 돈 관리에 대해 모르지 않을까 했는데 하다보면 점점 알게 되고요. 장점이라 생각했던 부분은, 예전에는 연출을 하면서 영화 만드는 내용에 집중을 했다면 프로듀서가 되고 보니 시야가 굉장히 넓어졌어요. 알게 된 세상에 대해 책임도 느끼게 되고요. 단점은 다른 사람의 돈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스탭들에게 넉넉하게 해주지 못하는 점이에요. 지금까지는 스탭으로서, 동료로서 같은 편에 서 있다가 프로듀서가 되니까 깎아야 되잖아요. 제작 시스템이라든가 환경이라든가 스탭 처우 개선 문제라든가 정책 입안이라든가 압력 단체의 입장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거죠. | ||
![]() | ||
| ||
| <바리터>에 소속되었을 때,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어서 다큐멘터리 조연출 인터뷰를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소개받은 인터뷰였는데 연결해줄 선배가 저를 딱 보시자마자 푸하하하 웃으시면서 “여자였어? 다 좋은데 남자도 데리고 가라. 꼭 남자랑 같이 가” 하는 거예요. 학교는 그런 걸 잘 못 느끼게 했는데 사회 첫발을 내딛는 순간에 그런 일이 있으니까 굉장히 충격적이더라고요. ‘그건 또 용납할 수가 없지!' 하면서 혼자 갔어요. 아니나 다를까 라디오국에서도 웃으면서 “남자랑 와”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결국은 남자 동료들한테 일자리를 소개하고 남자 셋, 여자 하나가 지원을 했고 남자 하나, 여자 하나가 됐어요.
첫 질문이 그거였어요. “결혼은 어떻게 할래?” “제가 알아서 합니다.” 건방지게 생각하셨나 봐요. 방송 조연출은 굉장히 바쁘거든요. 머리도 안 감고 짐도 들고 3개월이 지났는데 딱 부르시는 거예요. '네가 오래 못 버티고 나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잘 견디더라. 내 딸이 너처럼 될까 걱정 된다' 그러시더라고요. 그때부터 마음이 통하는 상사와 AD로 지냈어요. 그때가 스물다섯, 여섯 그랬죠. 사실 여자 AD라는 게 굉장히 힘든 위치에요. 다들 팔짱 끼고 얼마나 잘 하나 보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저는 만약 아침 6시에 촬영이 있다 하면 1시간 일찍 나와서 방금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어요. 내가 남을 깨워야지 남이 나를 깨우면 안 되겠죠. ‘성실이 기본이다'라고 생각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시절이 있었고요. 많은 사람들이 ‘너는 현장에 안 어울려' 했지만 저는 이미 현장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고요. 제가 영화인이라고 자연스럽게 말씀드릴 수 있는 상황에서 영화판은 여성들이 자유롭게, 성차별 별로 느끼지 않고 자신의 능력과 노력과 아이디어, 밀어붙이기, 체력으로 - 남는 건 체력 밖에 없습니다 - 나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고민이 많다 보니까 ‘유일한 전략은 싸가지 없게 구는 거다'라고 결론을 냈는데요. ‘제가 알아서 합니다'처럼 때론 이런 식으로 싸가지 없이 구는 게 작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렇게 상냥하고 친절하고 온화하신 분이 어떻게 이런 식의 전략이 가능한가 생각도 드네요. | ||
![]() | ||
적나라하게 ‘영화란 나에게 이런 것이다'라는 김영 프로듀서님의 생각을 전달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현장 이야기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주문한 거였고요. ‘공론장'으로서의 영화 만들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 ‘영화판에서 그녀를 모르면 간첩', ‘네트워크의 중심에 그녀가 있다' ‘굉장히 넓고 셀 수 없이 많은 발을 가졌다' 그런 소문들을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일부러 기억하지 않으려고 한다든가, 관점에 따라서 사람 대하는 게 달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사실 카메라 앞에 있는 분들은 잘 기억을 못해요. 대신 스탭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았고요. 여자들 사이에서 구인구직이 필요한 경우 문자를 좍 돌립니다. 예를들어 영화제 프로그램 팀장 자리를 구한다라며 조건을 달죠. 성별, 나이 딱 달고 좍 쳐요. 그러면 사방에서 또 문자를 막 쏴줘요. 영화 <엠마>의 주인공 엠마가 자기 머리는 잘 못 깎잖아요. 대신 매치매킹은 잘 시켜주잖아요. 저는 저를 엠마라고 부르는데 세상에 도움이 된다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 ||
![]() | ||
|
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있어요. 솔직히 말해서 계획한대로 되는 거 하나도 없어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여러분들 기분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예전에 누가 이렇게 말해주면 기분 좋았거든요. 열심히 사는 것 같아 보인다면, 그렇게 봐주셨다면 순간순간 충실히 사시고요. 무엇보다 후회하지 않으시려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셔야 됩니다. 저의 부모님들은 아주 반대는 안 하셨지만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폄하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 거에 굴복하지 마시고요. 좋아하는 일은 안 되도 후회하지 않죠. 좋아하지도 않는 일 하다가 안 되면 정말 후회하겠죠. 먼저 좋아하는 일을 찾은 다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 ||
![]() | ||
문자를 보내잖아요. 저는 꼭 1분 안에, 그리고 끝까지 답장을 합니다. 상대방이 ‘제발 좀 그만 하세요' 그러는데. (웃음) 전 텍스트 세대에요. 문자를 자주 보내고 그것도 꽉 채워서 보냅니다. 근데 그런 제가 토크쇼 전날 밤에 손이 마비가 됐어요. 통증도 없었어요. 문자질, 젓가락질, 펜 쓰는 거 등등 디테일한 작업이 안 됐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점점 마비가 풀리더라고요. 이제 아시겠죠? 건강. 건강은 끝까지 갑니다. 건강만 하면 못하는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운동하세요. 얼마 안 남았습니다. (웃음)
| ||
| ||
박수 부탁드립니다. 오늘 김영 PD님과 함께 한 토크쇼 여덟 번째 자리는 이쯤에서 마무리할까 해요. 어떤 것도 계획된 대로 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말씀이 인상 깊었습니다. 지금까지 함께 해주신 이 자리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프로듀서'에 해당되는 글 2건
- 2005/10/23 꿈을 찍는 토크쇼 - 김영프로듀서
- 2005/09/28 꿈을 찍는 토크쇼 - 임정아 PD
![]() | ||
여러분, <러브하우스>, <진호야 사랑해>라는 코너 아세요? 이런 코너들이 매주 방송될 때마다 시청자들은 잔잔한 감동과 따뜻함을 느꼈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얕은 술수나 잔꾀는 부려볼 생각도 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먼저 좇는 분이 계십니다. 기술보다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 MBC 예능국의 임정아 피디님 모시겠습니다.
먼저 인사드릴게요. 제 이름은 임정아라고 하고요. 현재 8년차 피디입니다. 좀 됐죠. 하하 저의 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음... 제가 했던 프로그램은 | ||
![]() | ||
![]() | ||
앞으로는 어떤 프로그램을 하고 싶으세요?
사실 저는 수줍음이 되게 많아요. 주변 사람들은 별로 인정하지 않는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익숙하지 않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저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이야기들을 들었고 거기에서 힘을 얻어 PD를 하게 된 것 같기 때문이에요. 제가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는 '아, 저렇게 평범한 사람도 되는구나. 꿈이 있으면 꿈을 이룰 수 있구나‘ 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예요. 저도 굉장히 평범했고 지금 만나면 "네가 피디를?" 라고 말하는 학창시절 친구들이 많아요. 아주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서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오늘 이 자리를 통해서 아주 작은 거라도 용기를 얻어가셨으면 좋겠어요. 왜, 고 3때 이런 얘기들 하잖아요. “이번에 전교 100등이 100점 올렸대.” 그럼 우리 정말 용기를 얻잖아요. 제가 지금 굉장히 떨고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이 PD가 맞나? 왜 자기 일에 대해서 한마디 말도 못하나'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언뜻 보면 약간 언니 벌로 보이지 않아요? 하하. 말 트셔도 됩니다. 편하게 얘기해주셨으면 좋겠고요. 조명이 밝으니까 제가 말하고 침 튀는 게 다 보이네요. 하하. 앞으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자기 성향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예능이라는 틀 안에서, 제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어서 MBC에 들어온 거고요. 앞으로도 지금 하고 있는 프로그램 같은 것들을 많이 할 것 같아요. 변화하려고 많이 노력하겠지만 주제는 일관되게 가지 않을까요.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 ||
![]() | ||
![]() | ||
아주 짧게 소개를 받아봤는데요. 본격적으로 질문을 드리기에 앞서 개인적인 궁금증입니다. 개인적으로 라디오 PD든 TV PD든 PD라는 꿈을 최소 3지망 안에 가지고 계신 분들, 손 좀 들어주시겠어요? 이야~ 많다. 용기를 많이 주셔야 되겠습니다. 각자 알아서 찾아가는 용기일까요? 하하. 임정아 PD님은 왜 피디가 되셨나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 모아서 왜, 한판 벌린다고 하죠. 판을 한판 벌리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옛날이야기 듣는 것도 굉장히 좋아하고요. 대학교 가서도 학생회 활동을 많이 했어요. 학생회 활동을 많이 했던 것도 사람들 모아서 시키는 거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절대 제가 나가진 않아요. 시키는 걸 좋아하죠. 하하. 그러면서 뭔가 그런 거랑 맞는 직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회사에서 일하는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스물 넷, 다섯에 제가 하고 싶은 일이 PD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 ||
![]() | ||
![]() | ||
|
제가 나이가 데드라인에 딱 걸려서 올해 이거 봤다가 떨어지면 취업을 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때 당시 제가 취업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주변의 만류는 굉장한 갈등이 되었어요. ‘절대로 취업이 안 될 거다. 통과돼도 죽을 거다. 내가 아는 데 소개시켜줄 테니까 가라.' 집에 와서 고민을 살짝 했어요. 나이 얘기도 걸렸어요. 여자로서 나이가 너무 많다. 정말 이걸 못해보는 건가 생각이 들었을 때 갑자기 단순해졌어요. 저는 약간 중요한 선택을 할 때는 굉장히 단순해져요. 결과는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거거든요. 신만이 아는 거란 생각이 드는데 신도 바꿔주실 거라 생각했고, 내가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을 도전도 해보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할 거다 생각했어요. 공부 장소도 완전히 옮겼어요. 소도시에 작은 도서관으로 옮겨서 아무 얘기도 듣지 않고 저 혼자 그 상황을 즐기면서 공부했어요. 아주 즐겁게 준비를 했고 아주 좋은 결과를 얻었어요. 선배들 말과 달리 다행히 MBC는 여자 PD를 뽑아줬고 아직 살아있습니다. (관객 웃음) | ||
![]() | ||
|
귀티나게 생긴 저의 겉모습과는 달리 (객석 웃음) 나름대로 살면서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별로 부유하지 않았고 주변에는 항상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살았어요. 앞집에는 장애인이 살고 뒷집에는 미친 언니도 살고. 이 사람들에게는 볼링장을 갈 수 있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상한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제 나름대로 프로그램을 생각할 때 나의 부모, 나의 이웃을 생각하게 되고, 아이템을 개발할 때 항상 거기에 포인트를 둬요. <러브하우스> 같은 경우는 그런 거죠. 집을 고쳐주는 프로그램이 맞아요. 그렇지만 핵심은 매직처럼 펼쳐지는 변신 같은 것보다는 ‘가족'에 있어요. 그 당시 러브하우스 했을 때가 IMF였어요. 잘 모르는 세대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때 당시 가족 해체라는 부분이 굉장히 컸어요. 저는 아무리 어려워도 가족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을 잡고 싶었어요. 하지만 예능 PD는 다른 사람들이 채널을 돌리지 않게 해야 하죠. 그 장치로 들어간 것이 인테리어에요. <아시아 아시아>같은 경우도 메시지는 가족이지요. 이런 식으로 저는 어렸을 때 제가 경험했던 것들, 감동받았던 주제들을 많이 찾는 편이에요. | ||
![]() | ||
![]() | ||
|
관념이나 상식 때문에 변하지 않을 때, 방송이라는 매체를 이용하는 것이 최고일 수 있어요.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시사프로죠. 저는 외국인노동자들에게도 우리와 똑같은 동생이 있고 부양할 가족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가족상봉'쪽으로 갔던 거예요. ‘가족 상봉하면 문제가 해결되느냐'는 비판도 받았어요. 하지만 세상에 한방에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고 생각해요. 단 한 사람이라도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서 동등한 입장으로 볼 수 있다면... 하는 생각에서 <아시아 아시아>를 했었습니다.
제가 확실하게 웃겼으면 좋겠어요. TV 보면서 저녁 먹고 ‘와, 즐겁게 먹었다'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요. 사람에게 웃음을 주고 싶기 때문에 제가
첫 번째 시험은 상식이에요. 상식은 상식이죠. 정상적인 초등학교 과정을 거쳤으면 3개월 공부하면 누구나 다 똑같아져요. 재수에 삼수를 거듭할수록 불리하다고도 해요. 많이 떨어지는 건 2, 3, 4, 5차에서예요. 지식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시험, 그게 어려운 거잖아요. 제가 시험 보았을 때 4차 과정에서 판토마임 같은 것을 시켰던 것 같아요. 이게 얘가 무엇을 얼마만큼 잘하나 보는 게 아니라, 융통성 있게 꿀리지 않고 자기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사람인가를 보는 거예요. 태도를 보는 거죠. 드림플래쉬 관련자분들 미리 만났을 때 얘기한 적 있는데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이에요. 자신감은 그 사람 표정에서 나오게 돼 있어요. 하고 싶은 일을 목표로 정했으니까 해보겠다! 이게 자신감이에요. 최악의 경우는 떨어지는 것뿐이겠냐는 거죠. 단어들을 주고서 선택한 다음 1분 스피치를 해야 하는 문제도 있었어요. 이건 논설문 작성하는 거랑은 달라요. 하지만 이 문제가 나만 어렵겠어요. 딴 애들 똑같이 다 어려운 거잖아요. 굉장히 못해도, 똥배짱 튕기면서 자신감 있게 하는 사람이 PD에 적합한 사람이에요. PD는 끊임없는 선택과 책임, 선택, 책임을 강요당하는 직업이에요. 이런 건 학교에서 배운 걸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2, 3, 4, 5차는 자질을 보는 문제가 주어지죠. ‘자질이 안돼나 봐요' 말씀하시는데요. 자기가 가진 자질은 자기도 몰라요. 흔히 주변 사람들의 평가로 자신의 자질이 평가되죠. ‘너는 이런 앤가봐', ‘너는 그런 것 같애' 그런 말 듣고 스스로를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신감, 똥배짱,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물불 가리지 않고 하는 자세가 중요한 거에요. 최종 시험은 양복 입으신 분들이 문제내시는 거였어요. 딱 들어갔더니 ‘나를 웃겨보세요' 하는 거예요. 진짜 머리가 하얘지면서 무슨 얘기를 할지 고민이 되는 거예. 그때 도저히 말도 안되는, 해서도 안되는 ‘참새시리즈'를 시작했어요. 타임캡슐에나 들어갈 그 이야기 말이죠. “참새가 세 마리 있었습니다. 전깃줄에 앉아있었지요” 어쩌구 저쩌구~ 달달달 떨면서 얘기를 끝냈어요.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죠. ‘면접을 망쳤구나.' 근데 사실 마음이 편했어요. 생각나는 건 참새밖에 없었으니까요. 당연 심사위원분들은 재미없어 하시죠. “그게 웃긴 얘깁니까?” 물으시는 거예요. 웃으면서 “안 웃긴가요? 하하하” 이랬죠. 그랬더니 갑자기 그거 되게 웃기다는 거예요. 그 정도로 말도 안되는 걸 물어보곤 해요. 신화와 동방신기와 ss501의 멤버 수를 더하면? 이런 문제도 있어요. PD되고 싶은 분들이 ss501이 누구야 하면 안되죠. 말도 안돼는 문제들이 나와요. 그런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를 원하는 거고, 프로그램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방송되기 까지 사건 터지고 폭풍우 불고 세트 쓰러질 때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는 단 한 사람, 결정을 내리고 방송에 꼭 내야 하는 사람을 뽑기 때문에 그래요. 절대 칼라바가 나갈 수는 다는 거죠. 세트를 다시 세우든지 폭풍우가 나오는 아이템으로 바꾸든지 선택을 해야 해요. ‘그럼 천재만이 될 수 있겠군요' 하실 수도 있는데요. 제일 중요한 건 제발 겁을 먹지 마시라는 거예요. 하고 싶은 일 하는데 왜 겁을 먹어요. 토익 성적에 너무 충격 받지 말고요. 그렇습니다 대략. | ||
![]() | ||
|
저희 하는 일의 80퍼센트가 꼬시는 일이에요. 동시에 연예인과 MC에게도 꿈을 불어넣어주는 게 중요해요. 이상을 가진 사람과 이상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굉장히 달라요. ‘네가 이거를 함으로써 이러이러한 게 좋다. 봐라!' 그러면 ‘응응, 그런 것 같다' 그러죠. ‘그렇지? 얼렁 찍어야 겠다' 그렇게 해서 팀이 꾸려지는 거예요. 카메라 감독, 조명, 오디오... 이십명이 같이 버스 타고 다니고 사후에 또 날밤 까면서 편집하고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저게 뭐야 유치하잖아!” 채널 돌리시고 그렇죠 하하. | ||
![]() | ||
|
저 같은 경우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는 바닥이예요. 사실 PD란 직업이 저에게 즐거운 이유는 과정 자체가 코미디이기 때문이에요. 입사한 이후로 프로그램에 관해서는 단 한 번도 똑같은 일을 한 적이 없어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을 하기도 해요. 똑같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PD란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이었죠. 이런 얘기를 들으면 마냥 좋겠다 이러실 수도 있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와 책임이 동반되고요.
| ||
![]() | ||
![]() | ||
|
| ||
![]() | ||
이제는 여성 PD로서의 임정아 PD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얘기를 들어보면 본인의 직업에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크게 작용했는데요. 여성 PD를 바라보는 내부의 시각은 어땠나요?
지금은 여자 PD들이 MBC 간판 예능 프로인 <일요일일요일밤에>에도 있는데요. 남자 PD 이상으로 일을 잘해요. 남자 PD와 여자PD가 하는 일이 상당 부분 많이 겹쳐있고요. 더 이상 방송사에서 여자 PD를 마다한다거나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평가의 기준은 프로그램이에요. 프로그램만으로 판단하는 냉혹한 사회이기 때문에 여자라서 겁먹거나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한 해에 1명 혹은 2명이 여자PD로 들어오는데 데스크들이 굉장히 좋아해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내거든요. 아이템을 개발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한 아이템을 자꾸 발굴해내는 거죠. 아직까지 성차별이라고 말해질 수 있는 부분이 있기는 있어요. 예능국 남자 PD들의 경우 출산에 대해서 이해하기는 어려운가 봐요. 여자 PD들은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면 자연스레 임신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남자 PD들은 “임신 했다고 일 못하는 거야?” 그래요. 그런 부분들은 여자 PD들이 계속 얘기를 해서 당연한 권리임을 밝혀야 할 거에요. 성차별의 부분이 체계적이라기보다는, 그냥 경험하지 못했던 부분들에서 남자들이 너무 당황한 거죠. 여자들은 끊임없이 싸워야 되는 부분이 있어요. | ||
![]() | ||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 드릴게요. 이제까지 많은 프로그램들을 해오셨는데 PD로서 앞으로의 프로그램에 거는 기대는 어떤 것인가요? 그리고 어떤 것을 이뤄보고 싶은 지에 관한 저변의 가치나 철학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빈부의 문제와 함께 커왔어요. 빈부의 상당 부분은 선택이 아니죠.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 나오고 나면 부자인지 가난한지 상관없잖아요. 그렇지만 가난한 아이들은 출발선부터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가난해서 속이 삐뚤어졌군' 이게 아니고. 뭐랄까... 가난해서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한 친구들은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데 10미터 뒤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열심히 따라오지만 결코 그 간격은 좁혀지지 않는다고 생각을 해요. 저도 약간 10미터 뒤에서 출발했어요. 맨 처음 MBC 입사했을 때 선배들이 ‘너는 어떤 CD를 소장하고 있니?' 물었거든요. 근데 저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어요. 저에게 CD를 수집한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거든요. 저에게 영상적인 상상력을 준 매체는 오로지 TV뿐이었어요. 그 격차가 쉽게 좁혀지지는 않겠지만, ‘가난한 사람들도 TV를 보면서 희망을 갖고 즐겁게 살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요. 마취적 기능으로 '야, 넌 지금 행복한 거야' 그런 건 아니지만 10미터 뒤에서 달리고 있더라도 여전히 가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저변에 깔린 생각도 그거에요. 많은 오락매체를 갖지 못한 사람도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누군가는 “뭐야 구질구질하게, 저런 프로그램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요. 그들이 마지막까지 달리기를 조금이라도 즐겁게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 ||
![]() | ||
![]() | ||
|
제 프로그램의 긍정적인 효과는 잘 모르겠어요. 사회적인 파급이 어떻게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중요한 건 주인공들의 삶이 많이 변화되었다는 거예요. 저는 개인적으로 애들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소년소녀가장. 아무 것도 주어지지 않은 채 방치된 아이들. 근데 얘들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약간 기가 사는 거예요. 처음 가면 십중팔구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요. 감정을 주지 않죠. 또 배신당할까봐... 자신감도 없어요. 그런데 차츰 말을 시켜보면 ‘저도 이거 한번 해보고 싶어요' 얘기하거든요. 악영향은 뭐, 제일 많이 받는 비판이 그거죠. 시청률 지상주의다, 그 사람이 제일 가난한가요? 라는 질문들... 여러 문제점들이 있는데 그런 거 생각 안 하려고요. 잘 모르겠어요 단점은 | ||
|
하지만 고등학교 때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첫 번째는 아무리 입시에 시달려도 독서는 꼭 하세요. 상상력의 근원은 책에서 나와요. 읽고 싶은 어떤 책이든 읽으세요. 저는 만화광이었거든요. 하루에 삼십분만이라도 자기 머리를 하고 싶은 일에 쓰게 해주세요. 단 하루 30분만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삼십분 동안 나이트 가기는 힘들잖아요. 책도 좋고 만화도 좋고 그림을 그려도 좋고, 투자를 하세요. 원래 내가 어떤 애였지 돌아보세요. 30분에다가 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지는 말고 편하고 자유롭게 자기의 30분을 가져보세요. 저는 아직도 그 습관을 갖고 있거든요. 그래서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삼십분 동안은 항상 하고 싶은 일을 해요. 하루 종일 책상 앞에 붙어 있어도 공부 잘되는 거 아니잖아요. 동기부여 받으면서 하는 거예요. 고등학교 공부가 인생의 목표가 될 수는 없어요. 나는 이걸 하고 싶은데 이것도 필요하겠지 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할 거예요.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요. 커보면 다 제 주변에 없기 때문에. 하하. | ||
![]() | ||
|
하다보면 정말 심한 경우도 있지요. 그럼 팀에서 뺄 수밖에 없지요. 그럴 땐 과감히 팀에서 뺍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그런 느낌을 받을 수도 있죠. 의외로 무섭다. 하지만 무슨 결정을 내릴 때 적절히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우스워 보이는 사람이 되기 쉽기 때문에 팀에서 제외시키는 방법을 택합니다. 강호랑 비슷한 거죠. 신의를 기본으로 하고 약속을 했는데, 몇 번의 기회를 줬는데도 나와의 신의를 깬 경우에는 함께 일을 하지 않죠. 처음에는 저를 여자로 봤거든요. ‘귀엽게 생겼네~' 그럼, ‘정말 전 귀여워요' 그랬죠. (관객 웃음) 목소리 크면 소리 질러도 되요. | ||
|
예능 작가는 폼은 좀 안 나요. 하지만 현장에서 운동화 신고 뛰어다니는 것, 그것도 좋은 것 같아요. 인턴 경험은 이상한 선입견만 갖게 될 것 같고 와서 처음 배우는 게 제일 좋아요. 차라리 그 시간에 붙을 수 있는 방법을 따로 연구하는 게 나아요. 메인 작가가 되지 않으면 힘든 속에서 느끼는 환희는 좀처럼 엿보기 어렵거든요. 드라마 작가는 좀 다르지만요. 미리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 ||
|
작가의 경우 알음알이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요. 작가들은 대부분 프리랜서거든요. 예능국의 경우는 아이디어, 기획안을 보고 작가를 뽑습니다. | ||
|
| ||
| ||
|
힘든 체력을 버텨낼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방송이 나갈 때에요. 편집을 마치고 피곤해서 찜질방에 간 적이 있는데, 역시나 마루에는 <엑스맨>이 장악을 하고 있더라고요. 깰 수가 없어요. 사세에서 팔십세까지 보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근데 다른 방에서 아줌마들 삼십명 정도가 <진호야 사랑해>를 보고 있는 거예요. 뒤에서 아줌마인 척 같이 보면서... 아, 아줌마가 맞죠 하하. 사람들이 웃는 것을 보니까 고통스러웠던 것들이 싹 사라져요. 사람들이 보고 즐거워하는 게 너무 즐거워요. 그런 걸로 56시간을 버티는 것 같아요. 알 수 없는 환희에요.
| ||
![]() | ||
오늘 임정아 PD님하고 함께 한 각각의 여정을 기억하시라고 비행기를 날리겠습니다. 굉장히 구깃구깃한 것은 저희가 비행기를 접을 줄 몰라서 여러 번 시도했기 때문이에요. 자, 멀리 날리겠습니다. 앗, 비행기가 꼭 멀리 날아야되는 것만은 아니에요. 하하. 나눠가졌으니까 마음들 다 좋게 가지시고요. 오늘 토크쇼에는 이런 얘기가 굉장히 많았어요. ‘그것도 도움이 됐었어요' ‘누구를 만난 것도 도움이 됐었어요' 그런 인생을 기획하는 일이 쉽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거든요. 언제나 즐거운 임정아 PD님께 감사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
![]() |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 동안 자기의 영역에서 독자적이고 창의적으로 살아오신 선배 직업인들과 조용한 자리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어봤는데요. 이번에도 저희에게 운 좋은 힌트를 주실만한 이야기 손님을 모셨습니다. 우선 지금까지 일곱 번의 행사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어왔는지 영상으로 준비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영입니다. 그 당부가 저를 향한 당부이셨군요. 크게 이야기하라는 당부요. 하하. 재단 측에서 이렇게 몰래몰래 동영상을 준비해주셨는지 몰랐어요. ‘저렇게 얘기할 때 손을 많이 썼나? 말이 안 되니까 손을 많이 썼구나. 오늘은 말을 많이 해야지' 생각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서서 합니까? 벌써 앉아있네요. 하하. 여기 앉아있으니까 조명 때문에 앞이 하나도 안 보이고, 제가 그동안 연예인들에게 왜 그렇게 가혹한 행동을 했던가 후회가 밀려오네요. 


















라디오가 따뜻하고 개인적인 매체이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되고 싶어 했어요.
옛날에는 좋아했어요.
어려보여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